젠가
홍다미
우리는 즐거움을 쌓기 시작했죠
딱딱한 어깨를 내어주며 무너지지 않게 한 계단 한 계단 다짐을 쌓았죠 대나무가 마디를 쌓듯 빌딩이 올라가고 집값이 올라도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를
오지 않는 내일을 오늘처럼 지금처럼
바람 무게를 견디려면 마스크
쓴 계절도 빙하 녹는 북극도 쌓아야 하는데
밤하늘이 별빛을 빼내고 있었죠
쌓기만 하는 뉴스는
싫증나고요
거꾸로 가는 놀이를 해볼까요
쌓아놓은 블록을 하나씩 빼내는 놀이
장난감을 빼버리면 아이는 자라서 부모 눈물을 쏙 빼버리고 최저임금을 빼내면 알바는 끼니를 빼먹고 잠을 빼내면 기사님은 안전이란 블록을 빼내고야 말겠죠
언젠가 도심 백화점도 한강 다리도 이 놀이를 즐기다 쏟아졌고
모닝 키스도 굿나잇 인사도 기념일도 블록으로 빼내면 연애도 와장창 무너지겠죠
한순간 한 방이면 끝나는 게임
손끝의 감각을 믿기로 해요
쌓아 올린 우리가 와르르 무너질까봐
우린 서로의 빈틈을 살짝 비껴가는 중이죠
출처: 무등일보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펜치가 필요한 시점
김해인
♤출처 :부산일보
https://mobile.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4010116281760284
[2024 신춘문예-시] 펜치가 필요한 시점 / 김해인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짜장면과 짬봉 앞에서 고민하는나를 절단해 줘요불가마에 단련된 최초의 연장이 되느냐컨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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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성욱현
몸에 맞추어 옷을 만들던 시절은 지났다
우리는 만들어진 옷속에 몸을 끼워넣는다
입지도 않는 옷을 산 걸 후회했고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옷이 쏟아지다니, 이게 뭐니
창고에 갇힌 미싱은 소리 없이 울면서 혼자 돌아갔겠다
할머니가 늙어가는 소리처럼
소리 없이 할머니를 입는다
미싱을 배울 때가 좋았어
할머니는 사라질 것만 같은 쵸크 선을 따라서
엉킨 실을 풀며 매듭을 새기며 몸에 맞는 옷을 만들었겠다
미끈하고 곧게 선 재봉틀 위를 걸어가던 할머니는
두 발을 가지런히 하고 누워 계신다
열여덟 살 소녀가 누운 나무 관, 삐걱거린다
새 옷에서는 차가운 냄새가 난다
몸은 언제나 헌것이라 옷보다 따뜻한 것일까
치수를 재어
나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며
할머니는 오래된 치마처럼 낡아가며, 얇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
나를 한 벌의 옷으로 만들었다는 걸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거실 한쪽으로 미싱을 옮긴다
미싱 가마에 기름칠을 하던 할머니도
오래도록 팔꿈치가 접혀 있었다
여기 앉아보세요
눈발이 창에 드문드문 박음질을 하고 있어요
출처: 영남일보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31227010003927
[2024 영남일보 신춘문예] 詩 당선작 - 미싱
몸에 맞추어 옷을 만들던 시절은 지났다우리는 만들어진 옷속에 몸을 끼워넣는다입지도 않는 옷을 산 걸 후회했고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옷이 쏟아지다니, 이게 뭐니창고에 갇힌 미싱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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