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틸다의 목걸이를 찾아서
박은영(동대문정보화도서관)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내가 매일 숨이 막히게 끌어안고 사는 불편한 생각들을 아주 견고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것, 바로 강박적인 성향이다. 나는 늘 완벽해야 하고, 불확실한 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내 능력에 스크래치가 가는 순간을 두려워하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모든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스스로 옥죄인다. 어떤 상황이 정리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고 매사 스스로 쌓아놓은 원리원칙과 순서에 얽매여 나 자신을 한없이 피곤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런 내 안에 들어 있는 강박적 성향은 스스로는 물론이고 주변의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학창시절과 직장생활에서는 이런 성향이 장점이 되어 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완벽한 준비와 성실함으로 늘 모범적인 우수한 학생, 철저하고 빈틈없이 꼼꼼하게 일처리를 잘하는 직장 동료로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이미 언급했듯 가장 안식을 취해야 하는 가정에서는 본의 아니게 극심한 피로감을 주면서, 완벽주의라는 덫으로 식구를 더욱 힘들게 하는 수많은 상황을 연출해왔다는 점이다. 특히 아이의 양육 과정을 돌이켜보면 더욱 그렇다. 항상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좋은 성과물을 얻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요하며 아이에게 숨 막히는 전쟁을 치러 왔다. 정서와 인지적으로 엄마와는 너무도 다른 아들에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정서적 폭력을 가한 경험이 너무도 많아 글을 쓰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에 그저 가슴이 먹먹하기만 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항상 무던하고 긍정적인 아들은 늘 해맑은 웃음과 덩치에 맞지 않는 애교로 엄마와의 극한 대치상황을 마무리하고 제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나는 항상 혼자 남아 뼈아픈 후회감과 자괴감으로 스스로를 벌주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내가 이럴 정도니 아들 역시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겹겹이 쌓고 있을까.
마틸다의 목걸이를 통해 돌아보게 된 내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나. 모파상이 ‘목걸이’라는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제삼자 입장에서는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쉬울지 모르지만, 마틸다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이 모르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것이 트라우마 때문이든, 자신의 틀 안에 갇힌 고정관념 때문이든, 자신의 틀에 얽매어 스스로 고생을 자초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내 스스로 힘들게 만드는 내 안의 마틸드 목걸이는 무엇일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처럼 완벽주의라는 틀 속에 스스로 갇히게 만든 것일까? 그 근원을 찾아 보니 아련히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우울하고 쓸쓸했던 모습이 자리하고 있다. 오빠에게 가려져 집안에서 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해 생겼던 마음의 상처는 성장과정에서 점점 더 단단해져 지금의 내 성향을 만든 건 아닐까? 오빠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통해 무엇이든 더 잘하려고 무던히 노력하면서 부모님께 나의 존재감을 인정해 달라고 끊임없이 매달렸던 것은 아닐까? 결과적으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나를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것을 아들에게까지 강요하는 강박적인 사고를 갖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어린 시절 오빠와 경쟁하던 어린 아이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는 나 스스로에게 이젠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싶다. 불안은 불확실한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던가? 완벽주의라는 함정에 빠져 더 이상 불안한 마음으로 허우적대는 시간을 접고 좀 더 편안한 내 마음의 방을 만들어야겠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한 정서적 교감의 시간을 많이 가지며 그들이 내게 들려주는 냉철하지만 따뜻한 영혼이 담긴 소리에 귀 기울여야겠다. 그리고 좋은 책과 음악을 통해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늘 맘속에 품고 타인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늘 함께 하고픈 마음 또한 내 마음속 방 한쪽에 넣어두고 싶다.
나는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만,
진지하지 않은 척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