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중독'이 된 야구는 주지하다시피 미국에서 창조한 구기 종목 가운데 하나다.
대개의 구기종목이 양쪽 진영을 가른 다음, 골대에 골을 넣거나 네트를 사이에 두고 공방을 다투어 승부를 가르는 형태지만, 야구는 베이스를 차례차례 밟은 다음 원래의 출발지로 되돌아오는(Back Home) 것을 경쟁하는 특이한 방식이다. 여타 종목의 유니폼이 팬티차림이지만, 야구 유니폼은 이례적이고 기묘하기 짝이 없는 외계형(外界形)이다. 축구 농구 배구 등이 전 세계적인 글로벌 스포츠인 반면, 야구는 '일부 지역'에서나 하는 마이너급 로컬 스포츠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야구는 일본과 궁합이 잘 맞았는지 일본식으로 재포장되어 한국으로 이입되었다.
그 시기에 한국이 일본에 먹히면서 우리는 좋든 싫든 일본식 야구에 길들여지게 된다.
우선 '야구(野球)'라는 말부터 '일쩨'다. 영어 Baseball을 일본에서 '野球(야큐우)'로 번역했고, 우리는 '野球'를 우리 식으로 '야구'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요즘 정치판에서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일제 잔재'인 셈이다.
Baseball을 '야구(野球)'로 번역한 일본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야구에 대해 일자무식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Baseball을 한국어(또는 일본어)로 번역하면 야구지만, 야구(野球)를 영어로 직역하면 Baseball이 아닌 'Fieldball'. 농구의 경우는 영어 Basket, 한자 농(籠)이 바구니로 일치하지만, 야구는 Base(壘)와 Field(野)로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베이스볼을 야큐로 번역한 일본인은 베이스 대신 넓다란 필드가 더 꽂혀 Field=野로 번역한 것 같다.
반면 같은 한자권인 중국에서는 야구가 아닌 봉구(棒球)라고 번역했다. 배트를 휘두르는 것을 연상해서 몽둥이 봉(棒)자를 붙인 것 같다. 둘 모두 베이스볼은 아니지만 일본의 '야큐'보다는 더 Baseball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뒤늧게 일본에서도 '야큐(野球)'가 무식한 번역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요즘에는 야큐보다 '베스보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야구 용어도 일본식으로 '재창작(再創作)'했고, 우린 그것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어에서는 '죽인다'라는 말이 하나도 없지만 일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죽인다'라는 말이 대거 도입되었다.
아웃(out)을 사(死)나 살(殺)로 번역했고, 심지어 찔러죽인다(刺殺)라는 말까지 있다.
수비에서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을 풋아웃(Put Out), 아웃시키는데 일조한 것을 어시스트(Assist)라고 한다.
원어로 사용해도 문제될 게 없는데 이것을 일본어로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살벌한 용어가 태어났다.
즉 Put Out을 刺殺(자살), 직역하면 '찔러죽이다', Assist를 補殺(보살), 직역하면 '죽이는데 도움을 준다'.
한자로 표기하면 의미는 알 수 있지만, 이것을 한글로 표기하면 도통 뜻을 알 수 없다.
야구 문외한에게 '자살'하면 스스로 목숨을 끓는 자살(自殺)을, '보살'하면 불교 용어 보살(菩薩)을 떠올릴 것이다.
야구 용어, 경기방식, 유니폼 등등 여타 스포츠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요소들이 유별나게 많은 야구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푹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상은 연구 대상이다.
공을 칠 수 없게 던져주고, 베이스를 밟지 못하게 방해하고, 그것을 뚫고 귀환해야 하는, 인간의 귀소(歸巢) 본능 욕구를 설정해서, 그것을 달성했을 때의 희열을 교묘하게 자극하여 야구를 만들었나? 야구 밖에서 보는 야구는 미스터리한 스포츠라는 말을 들을 만한 조건은 갖추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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