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우정 월몽 김영철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의 빈손을 잡고/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정호승 시인의 ”너에게“라는 시의 첫 구절은 가을비로 시작한다.
9월 추석 연휴가 끝나고 며칠 뒤 가을비가 서울에 내렸다. 말복과 처서를 맞이할 때만 해도 이번 추석만큼은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허사였다. 중추절(仲秋節)이란 단어가 무색할 정도였다. 중하절(仲夏節)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더위에 시달렸던 탓인지 그날 내리는 비는 정말로 단비였다. 더위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그날의 비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고인이 된 가수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의 가사처럼 세월 따라 잊힌 그 얼굴을 떠오르게 하는 그런 비였다.
그날의 비는 운치가 있었고 옛 추억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하였다. 그것도 서울의 한복판 안국역 근처였으니 고풍의 멋이 있었다. 빗소리 들으며 소주잔을 기울고 따끈한 커피 향 내음을 맡으니 조선시대 선비처럼 나는 너무 행복했었다. 삭막한 중국에서는 이런 맛과 멋을 즐기지 못하다가 참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안국동 밤거리를 거닐었으니 흥이 났고 기가 살았으며 감성이 솟구쳤다.
귀국 후 그냥 지방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한동안 얼굴도 보지 못했던 육사 동기생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아침 일찍 과천 본사로 출근하면서 ”미안하오! 내가 다음 주에는 서울에 없어 오늘 저녁 시간에 자네 얼굴이나 보고 가려는데 시간이 어떤지? 정말 미안하네. 내 주장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해 Sorry!”라는 메시지를 모 동기생에게 보냈더니 5분 후쯤 지났을까 바로 전화가 왔다. 너무나 반가운 목소리로 바로 오케이 Okay였다. 게다가 살을 더 붙여서 하는 말이 본인 외에도 3명에게 번개팅 요청을 했는데 괜찮겠냐고? 그렇다면 나로서야 금상첨화(錦上添花)지. 바쁜 나의 시간에 맞추어 당일 번개팅의 무례함이 너무 송구스러울 뿐이었는데 그렇게까지 배려해 주는 그 친구가 정말 고마웠다.
오후 5시,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왔다.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손에 물기가 있는 우산이 들려있는 것을 보고 비가 옴을 감지하였다. 계단을 반쯤 올라왔을 때 빗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두 명의 친구 N과 K형이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나도 우산을 펴고 ”와우, 오랜만이야!”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반갑게 그들과 악수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내 뒤를 따라오던 또 다른 K가 도착하였다. 다른 친구 C는 사정이 여의치 못해 참석하지 못하였다. 1년여 만에 만나는 인물들이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바쁜 시간 쪼개어 번개팅을 받아준 친구들이 매우 고마웠다. 나는 죄송한 마음에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만나려고 일부러 발걸음해 준데 고마움을 표시했더니 K 왈,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걷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인 내가 더 고맙다. “라는 말로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날의 비는 소주잔 기울이기에 딱 맞아떨어진 분위기였다.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N이 소개하는 식당으로 가서 자릴 잡았다. 이른 저녁이라 손님이 적었다. 우리 4명은 식탁에 둘러앉아 소주를 가득 부어 원샷one shot을 했다. 쇠고기 수육을 안주 삼아 마셨더니 절로 들어간다. 중국의 오지에서 이런 분위기를 맛볼 수 없었던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화두는 당연히 ‘비’였다. 비만 오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는 K의 감성 발언이 술잔을 더 비우게 했다. 또 다른 K도 공감하였고 N은 2차로 옆에 있는 카페에 가면 더 운치가 있을 것이라며 한술 더 떴다.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다.
나도 비를 좋아한다. 어릴 때 살았던 고향 집 함석지붕이 떠올랐다. 동네에서 비가 오는 것을 가장 먼저 느끼는 곳은 우리 집이었다. 지붕이 풀이나 기와인 집은 비 오는 소릴 방 안에서 듣지 못하였다. 함석지붕 탓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이 깰 때도 있었지만 일정한 음과 박자로 떨어지는 소릴 들을 땐 오히려 자장가처럼 들릴 때도 있었다. 비에 대한 감성은 바로 그 무렵에 생겼다. 1970년대 육사생도 시절, 우리는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았다. 어떤 재난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는 행동을 키우기 위한 교육 차원에서였다. 대신에 우의를 입고 모자는 비닐 커버를 씌웠다. 휴일 비가 오는 날이면 생도 정복에 우의와 비닐 커버 씌운 교모를 착용하고 교문을 나서서 서울 시내를 활보했던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비를 맞아도 끄떡없다는 일종의 자존감을 맛봄과 동시에 비가 상징하는 감성적인 멋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소주 4병을 마셨는데도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N의 소개처럼 식당에서 1차를 하고 2차로 간 곳이 카페였다. 밤이 이슥했지만 비의 강도는 약해지지 않았다. 카페는 입구부터 현관문 사이의 넓은 공간에 천막을 친 테이블이 운치가 있어 보여 그곳에 자릴 잡았다. 천막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옆으로 튀는 물방울이 우리를 모두 옛 추억에 잠기게 하였다. 더욱이 한가운데 버티고 서있는 200년 된 측백나무에서 풍기는 향에 더 매료되었다.
네이버 창에서 가을비와 커피를 검색했더니 이채 시인(詩人)이라는 분의 시 ”가을비와 커피 한 잔의 그리움“이 있었다. “가을비 촉촉이 내리는 날/ 외로움을 섞은/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 것은…. (중략). 가을비 촉촉이 내리면/ 커피 한 잔의 그리움으로/ 가을비 타고 올 그대를 그리고 싶습니다. “그날의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날 모두 감성에 젖었다. 누군가 그랬다. 이성보다 감성이 살아 있어야 늙지 않는다고. N, K, K 그리고 나, 모두 감성이 살아 있었다. 주량도 모두 고만고만한 데다 감성도 모두 비슷했다. 그들은 글 쓰는 취미를 가지고 있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기에 4위 일체가 되었다. 비, 우정, 취기, 커피 향의 멋과 맛을 즐길 줄 아는 노신사들이었다. N은 전형적인 서울 토박이지만 나 같은 촌놈이었다. 서울 사람에 대한 나의 어릴 때 편견은 깍쟁이였는데 N을 알고부터 그 편견은 없어졌다. 밤을 새우면서 소주잔을 기울고 싶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였다. 더구나 내가 제일 먼 곳에 살다 보니 그러했다.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안국역에서 3호선 승차, 종로3가에서 소요산행 1호선 열차를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는데 2시간 반이 걸렸지만, 하나도 취하지 않았고 눈이 말똥말똥했다. 비를 안주 삼아 멋있는 시간을 좋은 친구들과 어울렸기 때문이리라. 모처럼 느낀 빗속의 우정이었다. 그날을 기억하면서. (2024. 10월) |
첫댓글 월몽의 글 잘 읽었습니다 ᆢ 지난번 중국 여행 에대한 글도 잘 읽고도, 제가 직접 댓글을 달수 없어서 못했습니다 먼저 반갑고요. 우리 나이에 마음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옛 친구밖에 되어 있겠습니까? 진솔하게 친구 만난 즐거움을 잘 기억하게해 주셔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써 주시길 바랍니다.미송 유창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