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벗들이여
그동안 가꾸어왔던 인간관계 노력이 허무하게 소멸되어 미치게 쏟아온 에너지가 공허함으로 돌아온 경우를 몇 차례 겪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 나이에 “옛 인연을 잊고서 새 인연을 맺도록”이란 찬불가처럼 살기가 쉽지 않아, 그냥 이제까지의 인연이나마 소중히 가꾸며 살자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허나 한 글벗의 건설적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 3월 1일에 내가 주도하여 육사 31기 7명의 작가모임인 <31구락부>란 문학 동호회를 발족시켰다.
이 나이에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자의 명분이 있겠지만 나의 존재가치를 탐색하는 과정이 아닐까? 나는 언제부턴가 글을 쓰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자손을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나의 제자를 어떤 사회인으로 만들 것인가, 늙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미래세대를 위한 유산인 자연보호를 위해 내가 실천할 것은 무엇인가, 유한한 인생을 무한으로 연속시키는 방법은 없는가, 어떤 내용을 담은 가승(家乘)을 작성해야 하나 등등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정의란 불어제끼는 나팔이 아니라 실천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써왔던 내용을 가능하면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고의 예각화와 자아성찰이요, 인격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과정인 것 같다. 이런 까닭에 하버드대 졸업생들도 한결같이 “살아보니 대학생활 중 가장 도움이 되었던 과목은 글쓰기”였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
내 인생의 7/8 바퀴를 달려온 현재, 수명을 연장할 수는 없지만 의미 있게 사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의미탐색과 실천에 골몰하고 있다. <31구락부> 회원들도 올해부터 내년까지 모두 고희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류에 따라 환갑도 건너뛰었고 또 칠순도 코로나 팬데믹을 빌미로 가족행사로 조촐히 보내는 분위기가 되었다. 허나 어쩌면 고희는 고종명 전에 친한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생일을 자축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닐까? 하여 나는 거창한 고희연은 안중에 없지만, 꼭 필요한 몇 번의 ‘축의금 없는’ 식사 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조만간 사회적 거리두기도 완화될 것 같으니, 그 하나가 <31구락부> 회원과 함께 하는 자리이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나이 들어 친한 친구들에게 막걸리 한 잔 국밥 한 그릇 같이 먹자고 제안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마음이 없는 차가운 사람은 늘그막에 친구로 사귈 가치가 없다. 친구(companion)란 함께 빵 먹는 사람이란 뜻이다. 코널대 연구팀이 “같이 식사하다 보면 가족 같은 밥상공동체 의식이 형성된다.”고 하였다. 나의 바톤을 이어받아 회원들이 마련하는 식사 자리가 올해도, 내년에도, 그리고 고종명의 순간까지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행복한 사람은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에 집중하는 반면,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쇼핑 같은 금전적 위로를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글을 쓰는 여러분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소년으로 육사에 입학하여 재학 중 훈련장으로 가기 위해 트럭을 타고 이동할 때 언듯 영감이 떠오르면 메모지를 꺼내 적던 옛날이 떠오른다. 그것이 씨앗이 되어, 국문학을 전공했고 사관학교와 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를 하게 되었고, 그간 11권의 수필집을 상재하였다. 많은 동기생들이 각자가 선택한 길에서 치열하게 살아 대부분 고급장교가 되었고, 소수는 하늘의 별을 따서 이마에 달았고, 공무원의 별인 이사관에 올랐다. 내가 선택한 길은 초라하기 그지없으나, 나도 내가 선택한 길에서 질풍노도했으니 남과 비교만 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자족할 만하다. 많은 행복은 대인관계에서 비롯된다는데, 우리 어깨동무하고 남은 생을 걸어가는 그런 동행이 될 수는 없을까.
나는 이런 저런 지병을 가지고 있는바 내일이 먼저 올지 내세가 먼저 올지 알 수가 없다. 하여 나는 고희를 맞으며 이제부터의 삶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육사는 나를 인간으로 만들었고, 서울대는 나를 학자의 길로 안내했으며, 3사는 나에게 두 번째 꿈을 갖게 했고, 대구대는 그 꿈을 실현시켜 주었다. 그러니 이제는 위 네 곳과 사회와 조국에 회향(回向)할 일만 남은 것 같다. 나보다 성공적 삶을 산 회원 여러분 모두 소중한 버킷리스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향해 우보호시(牛步虎視)하며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아가자고 제언하는 바이다.
2021. 3. 6. 갈헌 이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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