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년 5월 앞산과나코님의 게시글 ##
왜 그들은 다시 모차르트로 돌아올까.
어렸을 때 체르니 진도 어느 정도 나가고 나면 자연스럽게 모차르트 베토벤 소나타를 접하게 됩니다. 이 때 많은 학생들도 그랬겠지만, 저 역시 베토벤, 쇼팽 등의 악보를 보다 모차르트 악보를 보고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에이~ 음표가 별로 안 복잡하네ㅋ"
뭔가 그럭저럭 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실제로 띄엄띄엄 그럴 듯 하게 치기도 합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공할 학생 아니면 대부분 이 근처 쯤에서 피아노 레슨을 그만 두게 되죠.
이후 저는 성인이 되어 클덕질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히 유명 피아니스트의 모차르트 음반들도 저의 컬렉션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고, 어렸을 때 절뚝절뚝 건반 두들겼던 기억을 되살리며 한 곡씩 감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음반을 듣는 순간, 어렸을 때 쳤던 모차르트의 기억은 그냥 나의 흑역사 중의 하나가 되어버리죠ㅋㅋㅋㅠㅜ
대가의 음반을 듣다보면 모차르트가 왜 어려운 것인지 제대로 깨닫게 됩니다. 지극히 투명한 구조 속에서 음표 하나하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반복되는 악구 안에서나 심지어 도돌이표로 똑같은 음표들을 연주함에도 그 하나하나의 터치들이 모두 다르게 들린다는 것에 경악을 하고 맙니다.
백건우 선생님의 한창때 음반들 - 베토벤, 쇼팽,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에프 등의 여러 디스코그라피를 뒤로 한 채 이번 발매한 모차르트 소나타 음반에 대한 기대감은 컸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모차르트 소나타는 젊은 시절의 피레스, 우치다 등의 연주들인데 지금까지의 백건우 선생님의 스타일(매우 깊고 철학적인, 때로는 반전된 색조와도 같은)을 고려해보면, 그리고 만년의 대가의 고전주의로의 회귀와도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면, 제가 상상하지 못하는 모차르트를 펼쳐 보여주실 것 같았습니다.
아직 음반을 구입하지는 못했으나, 벌써 유튜브에 음원이 풀려 몇 곡을 예습 겸 들어보았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한창 때의 독창적인 색감은 덜 했으나 노대가의 여유와 관조가 드리운 너무나 듣기 편하고 아름다운 연주였습니다. 약간 낭만주의 모차르트를 듣는 듯한 기분이랄까.
말년의 폴리니처럼, 젊을 적 '피아노 현은 금속이다'라는 철학을 견지하던 연주자도 노년에 이르러서는 타건과 타건 사이의 간격이 한결 여유로워지고 페달링도 보다 부드럽고 풍부해지는데, 백건우 선생님 역시 이를 모차르트에서 너무나 아름답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음악이 느슨해지거나 무뎌지지 않고 레코딩 음반 특유의 간결함과 균형감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도 감탄스러웠습니다.
오늘 공연장에서의 연주는 레코딩 음반에서의 연주와는 해석 상의 큰 틀의 변화는 없으나 보다 더 여유롭고 페달링이 풍부한 연주였습니다. 좀 더 뭉글뭉글하다고 해야 하나. 아마도 실황 특유의 상황 같기도 합니다. 피아노 독주를 하기에는 홀이 좀 크고 소리가 번져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이 역시 모차르트의 또 색다른 매력이라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여유로운 호흡으로 관조하는 듯한, 마치 오늘 공연장 들어오기 전에 봤던 아름다운 저녁노을과 구름 위로 희미하게 번지는 햇살과도 같은 연주였습니다.
위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 왜 대가들은 다시 모차르트로 회귀할까.
이제 더이상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와 순수를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