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역풍(逆風)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4장
홍제원교회
夫風有各種, 而據經言之, 則有任意之風, 요한三章. 又有大急之風, 사도二章. 又有四方風, 黙七章. 不知風路. 傳十一章五. 吹死使生. 겔卅七章九.
然此加利之風, 卽順逆而已也. 順則船往, 逆則船不往也. 此時門徒皆海邊之人, 嫺於海又熟於舟楫, 知風之如何也. 然且㥘而呼主, 其風可知也. 門徒能浮舟能量海, 猶畏風猛, 知不能運舟, 且在舟之人甚不可, 關係甚大故不得已呼主, 敎職員皆操舟之門徒也, 敎會內如有風波, 靈界不安, 其過不在敎人, 卽在敎職員之不足也. 不必怨人, 不必是非, 當伏而呼主祈禱, 若不如此則舟中之人皆葬於魚腹之中矣. 今此敎會之逆風果何也? ◇卽慾風也, 卽人之利己主義. 此風甚可畏也, 他風皆可製, 皆可利用而惟此風難制御也. 何也? 人皆有之故也. 雖有之不敢發者惟有所制也. 如洪水猛獸之禍, 如滔滔之海, 人皆溺之, 國家社會民族, 皆置之弄蕩, 今擧個人主義而觀之可也. 一人益之, 多人受害, 智者成愚者敗, 此風萎靡一世, 萎靡一國, 萎靡一族, 無處不被, 其力甚大, 佛經有一人渡恒河, 舟至中流顧見後方, 有一尸身流下云. 此尸身卽慾也. 世慾一去能渡恒河也, 由此觀之, 吾等歡天國而此風逆之故不能至也. 主臨而叱之, 風宿波平可至天國矣. ◇其次怒風也. 經曰怒不成神之義, 此風一到肅殺萬物, 天地閉塞, 吹之敎會, 敎友紛糾, 吹之家庭, 家族怨誹, 吹之社會, 親友謗瀆. 退溪曰人惟不學故不知其不足, 不知其不足故聞過而怒. 惟樂聞過然後可和平也. 信行中惟怒最害, 可務去此怒之根, 幸福和平, 是信之德矣. 昔相國黃喜, 不卞奴僕之是非, 故爲相業之最大, 怒者奴心也. 非上等人之所爲也. 此風一到, 最妨天國之行. 惟呼主祈禱而後, 能到之也. 深知怒之爲害故人皆忍之. 某宣敎師與夫人紛爭, 朝入地下室而立之云. 吾等常忍之可矣. ◇其次急風, 性急則生風, 此風改之則反爲良善也. 然性急不能改而入敎會亦不能改, 某人敎其子書, 幼不能執筆, 輒發怒投硯傷頭部, 某人欲防其女之往敎堂, 日日打之, 其女怨而走劇場爲娼女, 此皆性急之故也. 此風最妨做事, 壞事之後悔未及矣. 年前有急風捲去茅盖, 仁川敎堂洋鐵盡飛去, 某酒漢醉而歸家, 其夫人立而譁語, 其夫治而毆打, 房屋盡爲驅碎, 如戰爭之後, 子女股慄戰戰, 此何故也? 急風之故也. 敎會內亦然, 一性急之人, 爲有事甚苦之, 投賽什器後悔, 某職員於長有會時, 急呼會長請言權, 輒言人之過失, 使一座之人益懷不平, 此風一吹, 有妨天國之行, 某敎職性急詬辱牧師, 尙不知非, 此風利用則可疾行, 不能利用則失覆矣. 門徒雖嫺舟, 風甚急不能利用, 故呼主祈禱乃潺潺也. ◇其次惑風, 此風自四方而起, 其勢甚大, 海上有龍騰, 小艦去深龍騰之可畏故遠馳而避之. 若不避之則粉碎艦體矣. 謂之怪風, 且謂之颱風. 朝鮮謂之회호리風也. 自四方而起, 捲起波濤, 捲起沙石, 折木拔屋也. 操舟者遇此風則向風勢而立, 靜而俟之, 如不能靜俟則避之可也. 保羅四面抑壓, 知不可畏者, 惟救援在上故也. 昔요나遇此惑風, 終入魚腹而後活, 今日亦然, 四方有各主義發生, 排斥敎會, 使不能立而欲葬於風波之中, 而惟救援在上, 不必恐怖, 不必畏縮, 此風最妨天國之行, 當呼主祈禱, 偕之使護此風浪之海可也. 願借一陣淸風, 冒萬難出死力, 終至天國可也. 風者使吾疾行天國也. 但願與主偕之.
대개 바람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성경>에 근거하여 말해 본다면 임의(任意)로 부는 바람이 있습니다(요한복음 3장). 또 아주 급히 부는 바람이 있습니다(사도행전 2장). 또 ‘사방의 바람’이 있습니다(요한계시록 7:1). 바람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전도서 11:5). 죽은 자에게 불어와서 살아나게 한 바람도 있습니다(에스겔 37:9).
여기 갈릴리의 바람은 바로 순풍과 역풍입니다. 순풍이면 배가 가고, 역풍이면 배가 못 갑니다. 이때 제자들은 바닷가 사람들로서 바다에 익숙하고 배를 모는데 능숙하여 바람이 어떤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겁이 나서 주님을 불렀으니 그 바람이 어떤지 알 만합니다. 제자들은 배를 띠울 수 있고, 바다의 깊이도 헤아릴 수 있는데 오히려 사나운 바람을 두려워하여 배를 운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배 안에 있던 사람들도 배를 운행하는 것이 매우 옳지 못하다고 하여, 문제가 매우 컸으므로 부득이 주님을 불렀습니다.
교직원은 다 배를 모는 문도입니다. 교회 안은 마치 풍파가 일어나는 곳 같습니다. 영계[靈界]가 불안하니 이 허물은 교인들에게 있지 않고 교직원의 부족에 있습니다. 남을 원망할 필요도 없고 시비를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마땅히 엎드려서 주님을 부르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배 안의 사람들이 다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내고 말 것입니다.
지금 교회의 역풍은 과연 무엇입니까?
◇ 곧 욕심의 바람인 욕풍(慾風)입니다.
바로 사람의 이기주의, 이 바람은 아주 무섭습니다. 다른 바람은 다 제압할 수 있고 다 이용할 수 있으나 오직 이 바람은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가지고 있더라도 감히 발생시키지 않은 자는 오히려 제재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홍수나 맹수들의 화를 입는 것 같이 세차게 움직이는 바다에 사람들은 다 빠졌습니다.
국가와 사회의 민족이 다 세찬 물결 속에 두어져 있습니다. 지금 모두 개인주의에 들어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 유익하면 여러 사람이 그 해를 당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성공하고 어리석은 자는 실패합니다. 이러한 바람이 온 세상을 휩쓸고 한 나라를 휩쓸고, 한 민족을 휩쓸어 그 바람에 해를 입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 힘은 아주 큽니다.
<불경(佛經)>에 ‘한 사람이 항하(恒河)를 건너는데 배가 중간쯤 갔을 때 뒤를 돌아보니 시체가 떠내려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시체는 바로 욕망의 시체이었습니다. 세상의 욕망을 다 버려야 항하를 건널 수 있다고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볼 것 같으면 우리들도 천국을 좋아하면서도 이러한 바람이 거슬려 불기 때문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임하여 바람을 꾸짖어야 바람이 자고 물결이 진정되어 천국에 이를 수 있습니다.
◇ 그 다음은 성난 바람인 노풍(怒風)입니다.
<성경>에 ‘성을 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바람이 한번 불어 닥치면 만물을 말려죽이고 천지가 닫혀버립니다. 교회에 불어 닥치면 교우들의 분규가 일어나고, 가정에 불어 닥치면 가정이 원망과 비방으로 가득합니다. 사회에 불어 닥치면 친우들이 비방에 물듭니다.
퇴계(退溪, 이황)가 이르기를 ‘사람은 오직 배우지 않기 때문에 그가 부족한 것을 모르고, 그가 부족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허물을 들으면 성을 낸다. 오로지 허물 듣기를 좋아한 연후에 화평을 이룰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을 행하는 중에 오로지 성내는 것이 가장 해로우니 이 성내는 근원을 버리는데 힘을 써야 행복과 화평이 오며, 이것이 신앙의 덕입니다.
옛날 정승인 황희(黃喜)가 노복(奴僕)의 시비를 분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승으로서의 임무에 있어서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습니다. 성낸다는 ‘성낼 노’(怒) 자는 ‘종 노’[奴] 자에 ‘마음 심’[心]자입니다. 그러므로, 상등인(上等人)은 성을 낼 일이 아닙니다. 이 풍조가 이르면 천국으로 가는 길에 가장 큰 방해가 되니, 오직 주님을 부르며 기도를 한 뒤라야 이를 수가 있습니다. 성내는 일이 해가 된다는 사실을 깊이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내합니다.
어느 선교사가 부인과 분쟁이 있어서 ‘아침에 지하실에 들어가 서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인내해야 됩니다.
◇ 그 다음은 성급한 바람인 급풍(急風)입니다.
성격이 급하면 바람이 생깁니다. 이 바람을 고치면 도리어 선량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질이 급하여 고칠 수 없으면 교회에 들어와도 고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아들에게 글씨를 가르치는데 너무 어려서 붓을 잡지 못하자 그만 성이 나서 벼루를 던저 그 아들의 머리에 상처를 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딸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날마다 두들겨 팼더니 그 딸이 원망하다가 그만 집을 나와 극장으로 다니며 창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다 성급한 데서 나온 사고입니다.
이러한 풍조가 일을 하는데 가장 방해가 됩니다. 일을 망가뜨린 후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 해쯤 전에 급히 부는 바람이 지붕들을 다 날려 보냈는데 인천 교회당의 양철지붕이 다 날려갔습니다. 어느 술꾼은 술에 취하여 집에 돌아오니 그 부인이 서서 시끄럽게 나무라는지라 술꾼이 그 부인을 길들인다고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두들기고 하여 그 집의 방 안의 살림은 다 부서지고 마치 전쟁이 휩쓴 뒤와 같았습니다. 그 집 자녀들은 모두 벌벌 떨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게 다 무엇 때문입니까? 급한 바람 때문입니다.
교회 안도 역시 그러하니, 어떤 성급한 사람이 어떤 일로 매우 고민하다가 교회의 집기를 던져 후회하기도 하고, 어떤 직원은 회의가 있을 때 급히 회장을 불러 발언권을 달라고 한 뒤에 문득 남의 허물을 폭로하니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다 발언한 사람에 대해 불평을 가졌습니다. 이런 바람이 한번 불게 되면 천국으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됩니다. 어떤 교직자는 성급하게 목사를 마구 욕해 놓고도 아직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합니다. 급한 바람을 잘 이용하면 배가 빨리 갈 수가 있고, 잘못 이용하면 배가 뒤집힙니다. 제자들이 비록 배에 익숙했어도 바람이 너무 급히 불면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부르며 기도하여 바다가 잔잔해 진 것입니다.
◇ 그 다음은 거센 바람인 혹풍(惑風)입니다.
이 바람은 사방에서 일어나 그 형세가 대단히 큽니다. 바다 위에는 용이 올라가듯 용트림을 하고, 작은 배들은 깊은 곳으로 가다가 용트림이 두려워 멀리 달려가 피합니다. 만일 그곳을 피하지 않으면 배가 조각조각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바람을 괴풍(怪風)이라고 부르고 또한 태풍(颱風)이라고도 합니다. 조선에서는 회오리바람이라고 합니다.
이 바람은 사방에서 일어나 파도를 말아 일으키고, 자갈돌을 날리며, 나무를 부러뜨리고 집을 넘어뜨립니다. 배를 젖는 자는 이 바람을 만나면 바람의 형세대로 따라가며 조용히 기다리어야 합니다. 만일 조용히 기다리지 않으려면 빨리 피해 도망가야 합니다. 바울은 사면에서 억압을 당하였지마는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오직 구원이 위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요나는 이 바람을 만나 마침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났습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으니 사방에서 여러 가지 이념인 각각의 주의(主義)가 발생합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배척하여 이 세상에 서지도 못하게 하고 풍파 속에 장사지내어 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직 구원이 위에 있으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움츠릴 필요도 없습니다. 이 바람은 천국으로 가는 길에 가장 큰 방해가 됩니다. 마땅히 주님을 부르며 기도하여 주님과 함께 가도록 이 풍랑의 바다를 보호하여 달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하여 한 줄기 맑은 바람을 빌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온갖 힘을 다하여 마침내 천국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으로 빨리 가게 해 주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과 함께 가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