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영과 육
요한복음 3:1-8
강매(姜邁) 씨
2월 12일 (주일저녁)
吾等尋索聖句, 則有兩條記錄, 卽聖神及肉身也. 此聖句內, 亦尋靈肉, 他聖書內, 多言靈肉也. 生有兩方, 情神及肉體也. 吾等或思生命唯一而已, 然使徒敎訓內, 卽各言兩條.
一, 肉體方面, 則其生在衣食住而後可完全, 而其方法不一, 萬年前生活, 比今日之生活則判異也. 不知衣食之法, 又不知居處之法, 或入山而狩, 或入水而漁, 或取葉而衣, 或取木而食. 其居或在大木之中, 或在巖穴之中. 吾等思及其時, 則有不可思議, 而今日則穀種火食, 衣錦而處高宮之內, 比于上古有何等進步乎?
二, 情神方面, 則怒則行怒, 淫則行淫, 盜則行盜, 殺則行殺, 此上古之時代人之生活, 而今日則不然, 有國法有道德有知識, 有妨國法則不行, 有妨道德則不行, 有碍社會則不行. 靈生及肉生, 比上古進步, 推思此道果何故也? 在人不必要者不進步, 必要者進步, 進進不已也. 人思衣之一方便而又便, 推思其必要者而常常創造. 食之一方, 居之一方, 亦思其必要者而進進不已. 漸思其必要者而進步又進步, 此肉的生活, 自古及今進步不已. 靈生亦然, 惟從己欲而生, 則不能完全, 怒則行怒淫則行淫可進步乎? 有國法而防止者, 思其必要而行也. 或者食生肉, 而思其必要, 而必欲熟食者, 比生食尤宜故也. 今吾人信主何故也? 信後生活比信前生活尤宜故信矣. 主生猶國, 見世人之生活甚不完全, 欲使人信神, 而使人進于完全也. 人不知信之完全, 而問我何故信之, 生活于人間生食比熟食甚不便矣. 信主亦然, 信而後可知信之生活也. 信之國, 信之社會, 比不信之國又不信之社會, 可知其必要及不必要, 入或人之家庭, 則悲愁滿其中, 甚不完全, 擧一國而言之, 則可知其信之結果及不信之結果矣.
우리가 <성경>의 구절을 찾아보면 두 가지의 기록이 있습니다. 곧 성령과 육신입니다. 요한 3장 본문의 구절에서 영(靈)과 육(肉)이라는 말을 찾을 수 있고 성경의 다른 데에서도 영육에 대한 말이 많이 있습니다.
생명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으니, 정신과 육체입니다. 우리들은 간혹 생명은 오직 한 가지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도의 교훈에는 두 가지 조건으로 말하였습니다.
첫째는 육체의 방면에 대한 것입니다. 그 생명은 의식주가 있은 이후에 온전해 질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1만 년 전의 생활은 오늘날 생활과 비교할 때 아주 다릅니다. 그 때는 먹고 마시는 방법도 모르고 또 거처하는 방법도 몰랐습니다. 때로는 산에 들어가 사냥을 하고 때로는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어떤 때는 나뭇잎으로 옷을 하고, 혹은 나무 열매를 따서 먹었습니다. 그들의 거처는 혹 큰 나무 통 안에 들어가 살기도 하고, 혹은 바위 구멍 속에 들어가 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그 당시를 추측해 보면 생각으로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오늘날은 곡식을 심어 불에 익혀 먹으며, 비단 옷을 입고, 높고 호화로운 집안에 살지요. 상고시대에 비교해 볼 때 얼마나 많이 진보하였습니까?
두 번째는 정신 방면입니다. 성이 나면 화를 내고, 음탕한 마음이 생기면 음란을 범하고, 도둑질하고 싶으면 훔치며, 남을 죽이고 싶으면 죽입니다. 이것이 상고시대의 생활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법이 있고, 도덕이 있고, 지식이 있어서 국법에 어긋나면 실행하지 않고, 도덕을 해치면 실행하지 않고, 사회에 방해가 되면 실행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생활과 육체적인 생활이 상고시대에 비하여 많이 진보하였습니다. 이러한 도리를 미루어 생각해 볼 때 과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요? 사람에게 불필요한 것은 진보하지 않았고, 필요한 것은 진보하여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입는 옷을 한 개의 방편으로 볼 때 편리하고 또 편합니다. 그래서 그 필요에 따라 늘 창조하여 나아갔습니다. 먹는 것에 대한 방편과 입는 것에 대한 방편을 보아도 그 필요를 따라 나아가고 나가서 끊임없이 진보한 것입니다. 이는 육체적인 생활로 예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진보한 것입니다.
영적인 생활도 또한 그러합니다. 오직 자기 욕심대로만 산다면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성난다고 화풀이하고, 음욕이 생긴다고 음탕한 행동을 한다면 진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를 국법이 있어서 방지해 주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생각하여 행하는데 있어서 어떤 이는 날고기를 먹고, 또 어떤 이는 자기의 필요에 따라 익은 고기를 먹는 것이 날고기를 먹는 것보다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신앙을 가진 뒤의 생활이 신앙을 가지기 전의 생활보다 마땅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유대국나라에 태어나서 세상 사람들의 생활이 매우 불완전한 것을 보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완전하게 진보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앙을 가짐으로써 완전해지는 것을 모르고 나에게 무엇 때문에 믿느냐고 묻습니다. 인간 세계에 생활하는 데 있어서 날 것으로 먹는 생식이 익혀 먹는 숙식보다 매우 불편합니다. 주님을 믿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을 가진 뒤에 신앙의 생활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나라, 믿음의 사회는 믿지 않는 나라, 믿지 않는 사회와 비교해 볼 때 그 필요와 불필요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가정에 들어가 보면 슬픔과 근심이 가득하여 매우 불완전한 것을 볼 것입니다. 한 나라를 들어 말해 본다면 그 신앙의 결과와 신앙을 가지지 않은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윤길손(尹吉孫) 군
2월 15일 (수요)
聖經言其信仰經歷, 余信後別無祈禱, 病而後祈, 祖母主禁其禮拜, 然余暗黙禮拜, 日前牧師請說敎, 而余家又有逼迫, 禁其禮拜, 故不能說敎, 余家廊舍有信主者, 而家叔死亡, 祖母主歸咎信主者, 種種逼迫, 日前奚夫人及隣先生來付, 余甚心悅, 今幸來說敎也. 余於此更有所覺, 祖母曰 信主則謙遜云矣. 汝則信主而如彼頑悖乎? 余定心, 此後絶對謙遜, 使示信德也. 在家讚頌則祖母責之, 母設偶求福, 而余見心憎, 然不敢發者, 欲謙遜故也. 此後欲祈禱, 示其謙遜也. 咸夫人言其眼疾, 得恩而愈也. 李善昌氏言, 其信力希家王以信而生.
다음 三日全寄妙,姜恩卿氏.
신앙 경력을 말하였습니다. 나는 신앙을 가진 뒤에 기도한 일이 별로 없다가 병이 든 후에 기도를 하였습니다. 조모님께서 예배하는 일을 금하였으므로 나는 남몰래 소리 내지 않고 예배를 하였습니다.
일전에 목사님이 설교를 하겠다고 하였으나 우리 집에서 반대하고 예배를 못 하게 하였으므로 설교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집 종이 사는 행랑채에 주님을 믿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삼촌이 사망한 것을 조모님께서는 주님을 믿는 사람 때문이라고 하여 갖가지 방법으로 핍박을 했습니다.
일전에 종의 부인과 이웃에 사는 선생이 와서 부탁하였는데, 지금 다행스럽게도 와서 설교해 주는데 대하여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서 다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조모께서 이르기를 ‘주님을 믿게 되면 겸손해진다고 하는데 너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저와 같이 미련하게 대드느냐’하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정하였습니다. 이 뒤로는 절대로 겸손하여 신앙의 덕을 보여 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집에서 찬송을 하면 조모님께서 꾸중하시었고, 어머니는 우상을 놓고 복을 구하게 되니 나는 마음속으로 미운 생각이 들었지만 감히 나타내지 못한 것은 겸손하려고 한 까닭에서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뒤로 기도를 하고 싶으며 겸손을 보여주도록 하였습니다.
함(咸) 부인(夫人)은 ‘눈병인 안질이 은혜로 고침 받았다’고 하였고, 이선창(李善昌) 씨는 말하기를 ‘믿음의 능력으로 히스기야 임금이 살아났다’고 하였습니다.
다음 3일 (수요) 전기묘(全寄妙) 강은경(姜恩卿)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