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에 베를린에서 열린 녹유 총회 다녀왔다. 오랜만에 녹유 사람들을 만나서 정말 반가웠고, 프로그램도 알차게 짜여 있어서 좋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녹색당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나한테 중요한 키워드, 그리고 장애물에 대해 얘기했던 시간이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연대감도 느껴졌고, 각자의 관점이나 경험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된 점도 흥미로웠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후변화, 여성권, 동물권 같은 의제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ICT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새롭게 배운 게 많았다. 장애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장 해결책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나눌 자리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출생 정책 워크숍도 흥미로웠다. 사실 개인적으로 저출생 정책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심각한 문제라는 건 알지만, 그냥 막연히 세상이 이렇게 어려운데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적응의 한 방향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래도 이번 워크숍에서 저출생을 하나의 증상으로 보고, 이와 관련된 사회 구조적 문제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결국 그건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니까. 그리고 각 팀마다 정책 접근 방식이 꽤나 달라서 신선했다. 시 단위로 볼지, 국가 단위로 볼지, 지역 특성에 따라 어떤 부분을 더 강조할지 등이 다양하게 나와서 흥미로웠다. 정책 이름이나 내용만 보면 정당을 떠나 흥미롭고 좋은 아이디어들도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아이디어가 정말 필요한 곳에 효과적으로 적용되는가 하는 문제라고 느꼈다. 단순히 이름만 그럴듯한 정책이나 자원 투입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 구조나 양극화, 과로 사회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테니까.
사회나 정책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도 했지만, 저녁 시간에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친해질 수 있었다. 데이팅 앱을 여럿이서 같이 보면서 각자의 취향도 알게 되고, 지금 각자에게 필요한 관계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 우리에게 내재된 인종차별적 관점도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또 앱으로 남의 사주를 봐주며 사주란 뭘까, 빅데이터일까, 얼마나 믿어야 할까 고민해 보기도 했다. 타로카드 보는 사람까지 있었다면 최고였을 텐데.... 이렇게 사소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운영위원들이 대인원을 위한 숙소와 알찬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정말 고생한 게 느껴져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주변에 녹유 분들이 없는 곳에 살아서 1년에 한 번 정도밖에 못 만나지만,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더 자주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년에는 체육대회도 꼭 가야지! 그래도 글쓰기 모임이나 그페미 모임 등 온라인으로 자주 소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실제로는 1년에 한 번이나 아니면 심지어 난생 처음 봤는데도 자주 보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서 재밌다.
부활한 똑녹유와 새로 생기는 비건 소모임에도 참여하기로 했고, 다음 총회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들도 많아서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