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고구려 정치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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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시간에는 동북아시아를 패권을 장악한 고구려의 정치체제에 대하여 대왕과 소수림왕과 대화를 통하여 알아보는 시간이다 .
소수림왕(小獸林王:371년~384년)은은 고구려 제17대 군주이다. 불교를 도입하고, 태학을 설립하였으며 율령을 반포하는 등 국가 체제를 정비하여 고구려 전성기의 기틀을 마련한 분이시다.
먼저 대왕이 묻는다.
"고구려는 북부여로부터 나왔는데, 주몽은 배다른 금와가 추격하자 엄리대수(奄利大水)에 다다라 말하기를 '나는 황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딸인 추모왕이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연결시키고 자라를 떠오르게 하라' 고 하였더니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라가 떠올라 건너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과연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을까요?”
소수림왕이 말한다.
“무지몽매한 시대에 하늘이 선택한 인물, 하늘의 절대성, 신의 권의로 백성들을 통치하기 위한 하나의 심리전적 통치숫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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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부족국가에서 중앙관제 체제가 개혁을 하게 동기는?"
“고구려의 초기에는 강력한 조직과 결속력을 지닌 국가라기보다는 각 지역의 부족집단들을 영도하는 완만한 연맹체로써 서기 전 107년에 한(漢)나라의 침략으로 현도군이 설치되어 직접적인 통치를 받게 되면서부터 강력한 중앙관제 체제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왕께서 어떤 분야를 개혁하셨는지요?”
“강력한 고구려를 만들기 위해 우선 국가적 위기를 대내 체제의 정비로 극복하려 하였습니다. 밖으로 중국의 전진(前秦)과 평화적 외교 관계를 맺어 불교를 받아들이고, 안으로 국립대학인 태학을 세우고, 율령을 반포하는 등 문물제도를 정비하였습니다. “
“개혁 결과는?”
“서쪽으로 후연(後燕)을 격파하여 오랫동안의 숙원이었던 요동진출을 이룩하였고, 이어 동북으로 숙신(肅愼)을 복속시켜 요하 동쪽의 만주 땅을 차지하였으며, 남쪽으로는 백제(百濟)를 공격하여 한강 이북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체제정비로 5세기에는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이란 불세출의 영웅이 등장하면서 고구려는 비약적으로 영토를 확대하여 대제국의 기틀을 쌓았고, 그 유업을 이어받은 장수왕(長壽王)은 한반도의 대부분, 만주전체, 요동반도 그리고 동해와 황해의 해상권을 장악하여, 동아시아에서 대륙과 해양을 겸비한 제국적 국가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그럼 초기의 5부(部) 체제는?”
“초기에는 계루부, 소노부, 순노부, 절노부, 관노부의 5부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각부는 독자적인 관인 조직 체계를 가지고 누층(累層)으로 중중(重重)히 연결되는 체제입니다.”
“5부와 왕과의 관계는?”
“고구려 통치체제인 5부((部)는 독자적인 자치제(自治制)로서의 기능과 결집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5부의 관등체제는 외침을 받아 강력한 왕권 통제가 요망되면서 서서히 계루부 중앙 왕권에 귀속되어 통제를 받게 되고 관직제도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계루부의 중앙체제와 5부(部) 관계는?”
“계루부의 중앙 정부에는 왕 아래 상가(相加)·대로(對盧)·주부(主簿)·우태(于台)·사자·조의·선인 등의 관계가 있고, 관직으로는 좌보(左輔)·우보(右輔)에 이어 국상(國相)이나 중외대부(中畏大夫) 등이 있어 국내를 통괄하였습니다. 각 부에는 부장 아래 패자(沛者)·우태·사자·조의·선인 등이 있었으며, 각 부 내부에도 사자·조의·선인 등의 관인(官人)이 있었습니다. 부장(部長)과 부(府) 내부의 장은 자기 소속집단의 장인[加, 汗, 干]이였으며, 상위 통합체와의 관계에서는 상가·우태 등이 되었다. 이처럼 고구려 제도는 중앙의 5부(部)와 부(府)가 중중(重重)히 연결되어 있는 제제였습니다.
“관등체계는?”
“삼국지에는 10관등, 수서나 당서에는 12관등, 한원에는 14관등으로 각각 되어있으나 한원을 기준으로 정리하면 ① 대대로大對盧(吐胥), ② 태대형太大兄(莫何羅支), ③ 울참鬱折(主簿), ④ 대부사자大夫使者(謁奢), ⑤ 생의두태형牲衣頭太兄(中裏牲衣位頭大兄), ⑥ 대사자大使者(太奢), ⑦ 대형가大兄加(窪支), ⑧ 수위사자收位使者(儒奢), ⑨ 상위사자上位使者(乙奢), ⑩ 소형小兄(失支), ⑪ 제형諸兄(?屬),⑫ 과절過節, ⑬ 불과절不過節, ⑭ 선인先人으로 14관등입니다.
“대대로, 막리지는 어느 계층에서 선출되는가요?”
“국가최고 지도자 수상인 대대로는 귀족집단인 가(加)에 의해 선출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광역시장이나 도지사 급 이상에서 나온다 이 말입니다.”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제가회의(諸家會議)는 ?”
“관등이 5계급 이상인 생의두태형(牲衣頭太兄) 이상의 5부족 귀족이 모여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여 만장일치제로 의결합니다. 만일 만장일치가 되지 않으면 전쟁을 해서라고 반대편을 굴복시켜는 일도 있지요.”
“고구려의 관등 가운데 특이하게도 형(兄)과 사자(使者)라는 말이 나오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고구려는 전형적인 부족제도로 장자법(長子法)을 썼습니다. 부족의 우두머리라는 지위가 자손에 계승되어 나이 많은 세대의 형제들 중 제일 위의 사람인 형(兄)이 이 지위를 차지했는데 이를 형(兄)이라 합니다. 족장 또는 장로,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죠. 고구려는 크고 작은 집단들의 족장 세력을 일원적인 조직 체계로 유지하고, 일직선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체제입니다. 사자(使者)라는 말은 일을 잘하는 공무원으로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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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皁衣)란 무슨 말일까요?”
"고구려 때, 국정(國政)을 맡아보던 벼슬로 12등급입니다. 조의선인(早衣仙人)이란 검은 빛깔의 조복(早服)을 입은 선인(仙人), 선배(先輩) 또는 선비라 불렀으며 사냥과 가무, 무예 등의 여러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을 선배라 불렀고 이들은 국가에서 급료를 받아 생활하면서 무예와 학문을 갈고 닦으면서 전시에는 이들이 자체부대를 조직하고 전장에 나가 정예군으로 활동했습니다,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예비군 중대장 + 무술사범 + 수련인 + 선생님 역할을 하다가 유사시에 그의 부하를 데리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신라의 화랑(花郞)이 귀족적이라고 하면 고구려의 조의선인(皁衣仙人)은 능력주의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합니다.”
“무관 제도는?”
“무관으로는 사령관에 해당하는 대모달(大模達)이 있고, 그 아래 말객(末客)은 중랑장(中郎將)과 같은 것으로 휘하에 1,000명을 거느렸고, 1~ 5계급에서 임명됩니다."
“고구려에서 군사 뽑는 제도는?”
“장군이나 고급 장교는 선발하는 제도는 1~ 5계급에서 임명하지만 하사관이나 중대장이하 장교는 특이하게도 아래에서 위로 선발 추천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군사를 아래에서 위로 선발 추천하는 제도가 있었다?”
“5명이 무술을 경기를 하여 제일 잘하는 사병이 분대장이 되고, 분대장 5명이 무술을 하여 제일 잘하는 사람이 소대장이 되며, 소대장 5명중 무술을 제일 잘하는 중대장으로 뽑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을파소가 주장하여 설립한 조의선인 제도로 인하여 고구려의 막강한 힘의 원천이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대왕은 이 말을 듣고 놀랬다. 수직적인 체제에는 부족과 골품제도로 묶어 평민들이나 천민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으나 수평적 후천시대에는 이 조의선인 제도가 국가발전을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어떤 확신적 느낌이 들었다.
“지방통치 제도는?”
“지방통치제도는 지방의 수장에게 맡겨 자치제로 다스리게 하고, 중앙에서는 사자(使者)를 보내어 공납을 징수하던 형태에서 벗어나 직접 지방관을 파견하여 율령을 지키도록 하고, 세금과 군사까지 통제하여 지역 방어체제를 담담하도록 하였으며, 정복된 군현에서도 이와 같이 통치하였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중앙에서 부지사나 부군수 같이 관리를 지방으로 내려 보내 국가 지령이나 세금, 군사를 통제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와의 전쟁시 병력과 물자동원은?”
“귀족 계층인 족장이나 성주들은 독자적인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국가적인 동원 체제에서는 대모달, 말객 등의 군관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하였으며 특히 조의선인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고추가(古雛加)란 어떤 직책인가요?”
“고추가란 고구려 때 왕족이나 귀족에 대한 칭호의 하나입니다. 왕족인 계루부에서는 적통 장자를 가리켰고, 옛 왕족인 소노부 및 왕비족인 절노부에서는 부족장을 일컬어 고추가라 합니다. 이를 신라의 거서간(居西干), 백제의 길사(吉師)와 같이 존귀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사극 연개소문에 나오는 막리지(莫離支)란 직책은?”
“고구려의 관등은 제1관등인 대대로(大對盧)를 막리지라 합니다. 막리지는 3년을 임기로 돌아가면서 국사를 총괄했는데 그 당시 제도는 왕(王)은 천제권(天祭權)만 유지하고 지상권(地上權)은 막리지가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 말기에 연개소문은 대당과 투쟁을 위하여 자신을 반대한 귀족들을 숙청하고 강력한 정치·군사 장악한 뒤 최고관직이 되었습니다. 막리지의 권한은 입법, 사법, 행정권을 장악하고, 거기에다 군사권까지 장악한 체제입니다. 연개소문의 아들 대에 들어와서 태대막리지(太大莫離支)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국방위원장 체제가 바로 태대막리지 체제군요.”
“태대막리지 보다 몇 백배나 강한 진시황, 한무제, 주원장 보다 더 강력한 사상권, 교시권, 문화권까지 장악한 체제가 북한의 국방위원장(國防委員長)이라 이 말입니다.”
대왕은 이제 고구려의 정체체제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특히 고구려 체제에서 배울 점은 중앙과 지방, 일원과 다원이 누층적으로 중중히 연결되어 배합 조직과 조의선인(皁衣仙人)이란 제도가 있었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향제(上向制) 제도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대왕은 결론을 맺는다.
“막강한 고구려! 을파소와 소수림왕,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거기에는 중앙과 지방, 일원과 다원조직 그리고 조의선인 제도가 있었도다. 이를 참작하여 다가오는 미래에는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왕복적 뱅뱅도는 회전제제와 중앙에서 지방으로 지방에서 중앙으로 연동되는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 체제를 연구하여 발표토록 하라!"
라고 교시를 하시었다.
이에 정치체제연구위원회에서는 즉각적으로 연구작업에 들어갔다고 하늘나라 뻐꾸기 대변인이 말하더라.”
다음은 백제의 정치제제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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