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가 내렸습니다. 달리아, 칸나, 토란을 캔 뒤에 퇴비를 뿌리고 새 흙으로 복토를 해줬는데 때맞춰 비가 내린 셈입니다. 다행히 어제 오후부터는 날이 들었고 오늘 낮도 날씨가 좋을 거라고 합니다. 시골에서는 이번 주말에 김장을 계획하고 그 채비를 해온 집들이 적지 않을 텐데요. 한편 우리 집은 지난 주말에 올해 김장을 했습니다. 입동(立冬)을 맞으며 채비를 해서 연이어 아주 맑고 포근한 날에 김장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요즘은 김치를 땅속의 항아리에 담지 않고 김치냉장고에 보관하기에 일찍 김장을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헨드메이드(Handmade)라는 말이 있지요.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란 뜻이지요. 장인의 손길로 만든다는 의미를 띠는 것으로 대량의 기성품과는 사뭇 다른 특별한 것을 뜻합니다. 김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많은 사람이 편리하고 비용도 저렴한 마트의 김치를 선호합니다. 절인 배추를 주문해서 김치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요. 하지만 직접 담그는 김치는 전해져 내려오는 방식이 워낙 다양하고, 그 맛에 길이 들여진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때가 되면 김장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노란색 속의「불암2호」김장용 배추(Baechu) 우리도 그런 집 중의 하나입니다. 해마다 우리 나름의 김치를 담가왔습니다. 배추와 무를 외부에서 조달해서 우리만의 독특한 레시피로 그간 김장을 했습니다. 김장하는 게 오랜 전통이 되다 보니 하나의 축제와도 같은 행사로 발전하기도 했고요. 무척 번거롭기도 하고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는 일지만 여러 가족이 함께 모여서 벌이는 김장 행사를 해마다 즐기고 있습니다. 이런 김장에 관한 글을 이미 몇 차례 쓰기도 했지만, 올해는 더욱 각별한 김장을 했기에 다시 한번 김장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우선 올 김장은 내가 손수 가꾸어 기른 재료로 김장을 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이곳 나래실이란 산촌 시골로 아내와 내가 귀촌을 하고 나서 올해 김장은 내가 손수 가꾼 채소로 하겠다는 것을 일찌감치 공포했습니다.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지난여름 김장에 들어가는 각종 채소와 양념 작물을 가꿨습니다. 아래쪽 텃밭에서는 총각무와 동치미 무, 대파와 쪽파, 갓 따위의 것들을 홍감자와 자주감자를 캔 뒤 씨앗을 뿌리고 심어서 가꿨습니다. 언덕 너머의 밭에는 배추 모종을 심고 무 씨앗을 뿌려서 길렀습니다. 손수 재배해서 빻은 30여 근의 고춧가루로 가장 중요한 양념을 충당했습니다. 순무, 마늘, 양파, 생강 따위의 채소와 생새우, 젓갈, 소금 등의 것들은 외부로부터의 조달이 불가피했지만요. 각종 김장 채소들이 자라는 텃밭의 모습 배추와 무가 자라던 건너 밭의 모습 다소 많은 양의 배추와 무를 길러내는 일이 올해 처음이었던 데다가 날씨가 고약한 탓에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감자 캔 밭을 다시 일궈서 배추 모종을 심고 무 씨앗을 뿌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작은 모종과 싹을 살리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50일이 넘게 이어진 한여름의 열대야와 한낮의 고온 현상은 8월 말까지 이어졌습니다. 보통은 8월 중순에 배추 모종을 심고 무 씨앗을 뿌리는데 연일 이어지는 30℃ 이상의 낮 온도는 여린 잎들을 오그라뜨렸습니다. 아예 죽어버린 것의 자리에는 보식(補植)을 하거나 새로 씨앗을 뿌려야만 했습니다. 살아남은 것들도 성장세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때문에 추석 무렵의 배추는 ‘금(金)추’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포기당 2만원이 넘기도 했습니다. ‘김장 배추 대란’을 예상한 정부는 중국산 배추 수입을 허가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8월과 9월 초의 폭염을 피해서 심은 남도 지방의 배추 작황이 좋아져서 지금의 김장 시장은 여느 때와 같이 안정되었다고 하는군요.
입동을 전후한 3일 동안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지만, 그 이후로도 평년보다는 높은 기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고 뚝 떨어질 수 있는 기온을 염려해서 강원도의 산촌 시골에서는 김장을 서둘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무가 얼어버리면 낭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지난 주말인 11월 8일부터 10일 사이에 김장김치를 담갔습니다. 그간에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집안의 김장 행사를 치렀지만, 올해부터는 그 장소를 이곳 나래실의 시골로 옮겨서 하게 되었습니다. 주재료가 이곳에서 생산되는 데다가 널찍한 수돗가가 만들어져있어서 편리하기도 합니다. 수돗가 위로는 빛이 들어오는 투명 자재로 지붕을 얹어서 날이 궂어도 일할 수 있는 시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 김장의 메인 데이였던 지난 토요일 9일은 날씨도 좋고 포근하기도 했습니다. 아내의 형제, 아들과 조카의 7집의 가족이 모여 김장에 참여했습니다. 180여 포기의 배추를 절여서 해마다 김치 봉사를 하는 3집을 포함해서 모두 10집의 김치를 담갔습니다. 무와 배추 등을 뽑아서 다듬는 데 하루, 배추를 자르고 절이며 무채를 썰고 각종 양념 채소를 준비해서 김칫소를 만드는 데 또 하루, 3일째 되는 날에는 절인 배추에 소를 넣어서 김치를 만들고 총각무, 동치미무, 순무, 겉절이 김치를 만들었습니다. 정오가 훌쩍 지난 시간까지 김치를 담고 늦은 점심으로 배춧국과 보쌈김치에 푹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먹는 것은 지난해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녁에는 읍내에 있는 목욕탕에서 사우나를 즐기는 일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지붕을 씌운 수돗가 모습 수돗가 옆의 서재 마룻바닥에서 김치를 담는 광경 오늘은 일주일이 지난 11월 중순의 또 다른 토요일, 아마도 시골에 사는 많은 이들이 김장을 할 것입니다. 우리 문우회 글벗님 중에서도 김장하는 분이 있겠지요. 이웃에 사는 한 지인 댁도 오늘 김장을 한다고 합니다. 이분으로부터는 오늘 저녁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분은 배추 속이 황금색을 띠는 ‘황금배추’라는 새로운 품종의 배추로 김치를 담근다는 데 그 맛이 어떨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2024.11.16.) |
첫댓글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순우의 글을 읽으니 어린시절을 불러 오게 만드는군요 우리집은 도시로 유학 온 친척등 먹는 입이 많아서 200포기 김장을 하느라 어머님이 매년 고생을 하셨지요 순우의 땀과 정성 으로 담근 김치맛이 궁금해 집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