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밀포드 사운드 갔다 오는 일정이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한 다음 6시에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퀸즈타운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는 290여km에 불과하지만 2차선 도로로 가자면 5시간 정도 걸린단다. 게다가 좀 늦게 출발하면 밀려오는 관광객들로 여유롭게 밀포드 사운드를 둘러보기 어렵단다.
아직은 인적이 드믄 퀸즈타운 시내를 벗어나 와카티푸 호수를 끼고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는 양 들과 소 들 만이 철조망이 쳐진 푸르고 한 없이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목장이 끝없이 이어지고 아주 가끔 농가가 아직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흩어져 있다. 뉴질랜드 남 섬에서 이렇게 초원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환태평양 조산대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화산활동으로 지열이 풍부하기 때문이란다. 또한 대륙과 멀리 떨어져 있어<호주 시드니까지 3,000km)맹수가 없어 양과 소, 산양 등을 마음 놓고 초원에 방사할 수 있다고 한다. 산과 초지가 모두 식량창고인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고기와 우유, 밀 등은 과거 1,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식량으로 공급되어 연합군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허기사 아무리 무기가 발달해도 군인도 먹어야 전쟁을 할 수 있으니 전쟁으로 피폐해진 영국을 대신해 당시 식민지였던 뉴질랜드의 역할이 정말 컸을 것이다.
산에는 개나리처럼 보이는 골단 꽃이 뉴질랜드에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고 뉴질랜드 마오리 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고사리과 식물인 고비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어제 세계 럭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뉴질랜드 국가대표 럭비팀 ALL BLACKS의 검은 유니폼에 그려진 문양도 고비 잎이란다.
버스로 한 시간 반쯤 달려 지루해 질 무렵 남 섬에서 제일 큰 호수라는 테아나우(Te Anau) 호숫가 옆 휴게소에 도착한다. 휴게소라고 유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차 몇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화장실 그리고 간단한 음식과 커피, 아이스크림, 잡화 등을 파는 상점이 달랑 하나 있을 뿐이다. 워낙 사람이 귀한 곳이라 이런 휴게소조차도 없는 곳이니 이곳에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호숫가로 나간다. 호수에는 수상비행기 1대와 배 몇 척이 물결에 일렁일 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새들 만이 아침식사를 하는지 바쁘게 날아 다닌다.
10여분 간 휴식을 마치고 버스는 다시 달린다. 도로 주변에는 키가 크지 않은 검은색 잡목들이 가로수처럼 많이 보이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마누카 나무란다. 이 나무는 11월에 오각형 하얀 꽃이 피는데 이 꽃에서 벌이 꿀을 채취한 마누카 꿀이 뉴질랜드 특산품이자 꼭 먹어야 할 건강식품이란다. 마누카 꿀은 꿀의 일반적인 효능인 피로회복, 면역력 향상, 숙취해소 뿐만 아니라 장속에 있는 비피더스균을 증가시켜 성장발육과 함께 영양분 보충에 좋아 아이들의 성장발육에 좋으며, 보습효과와 함께 피부세포의 재생을 도와주는 작용을 하여 손상된 피부의 회복능력이 뛰어나며 천연 팩을 만들어 사용하시면 피부를 곱고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또한 혈관 내에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춰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어 각종 혈관계질환을 예방 및 개선시켜 주며, 특히 세균이나 진균 등의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시키는 항균작용이 탁월해 위장병의 일종인 위염이나 헬리코박터균, 역류성 식도염 등의 치료에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한 시간 쯤 더 달리니 초원은 사라지고고 울창한 침엽수 원시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부터가 밀포드 피오드랜드 국립공원이란다. 그런데 나무마다 이끼가 끼어 있어 이곳이 매우 습한 지역임을 알려 주고 있다. 이곳은 1년 중 260일 이상 비가 와 모든 나무들이 늘 젖어 있어 이끼가 자라는데 최적지며 토양의 표층이 엷고 바위가 많아 나무가 오래 자라지 못하고 쓰러진단다. 그러고 보니 여기 저기 고목처럼 쓰러진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버스가 거울 호수(Mirror Lake)라 쓰인 안내판 앞 도로 한 쪽에 정차한다. 버스에서 내려 호수로 내려가 보니 원시림에 둘러싸인 작은 호수의 물이 그야말로 거울처럼 맑다 못해 시려 보인다. 바닥에 낀 투명한 이끼가 수면을 더욱 맑게 해 거울처럼 풍경이 반사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호수라기보다는 연못이다. 약 30m 정도의 짧은 연못이지만 나무다리를 만들어 놓아 거울호수를 들여다보기 편리하도록 해 놓았다.
다시 버스에 올라 평원지역으로 들어서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리다 버스가 정차하는 곳에서 개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빙하가 녹은 물을 떠 마시는 관광객들이 보인다. 우리도 손으로 개울물을 떠 마셔 보니 정말 차 속이 시원하다.
버스는 이제 나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암벽 덩어리의 산을 오르기 시작하더니 호머터널(Hommer Tunnel)에 이른다. Homer Tunner(호머 터널)을 만나면 일단 멈추어야 한다. 터널이 일방통행이기에 신호등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이 터널은 1950년대 세계 대공황의 경제 불황에 뉴질랜드 정부가 경기활성화 자구책으로 시행한 대규모 토목공사로 18년 동안 바위산을 깨고 뚫어서 1953년에 터널(1,219m)을 완성하였으며, 이로서 밀포드 사운드가 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고 한다. 동쪽으로 이글링턴(Eglinton) 계곡과 할리퍼드 강(Hollyford River)을 연결하고, 서쪽으로는 클레도(Cleddau)를 연결하는 이 터널은 화강암으로 남아있는데 지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다이너마이트 등 폭약을 사용하지 않고 뚫은 1차선 터널이다. 해발 945m 동쪽 출구에서 길이 1270m에 약 1:10의 기울기로 서쪽 끝으로 내리막을 달린다. 터널은 신호에 따라 교차 통행하는 일방통행으로 내부는 조명이 없어 어둠컴컴하다. 따라서 차량들도 속도를 줄여 천천히 달린다.
터널을 지나면 또 다른 풍경, 구불구불 옛 대관령 길처럼 감아 돌며 내려가는 지형과 좌우로는 바위산에서 흘러내리는 빙하 녹은 폭포수가 또한 장관이다. 다시 침엽수 원시림이 나타나는데 나뭇가지에 눈꽃이 핀 것처럼 하얀 이끼가 매달려 있다. 내리막이 끝나는 곳이 밀포드 사운드인데 밀포드 사운드에는 관광과 보존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120명 정도가 선착장으로 가기 전 조그만 동네를 이루고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는 바로 밀포드 사운드 선착장이다.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는 뉴질랜드 남섬의 남서부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에 위치한 피오르드로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록되어 있으며 마오리 어로 '피오피오타히'(Piopiotahi : 한 마리의 피오피오 새)라고 부른다. 밀포드 사운드는 태즈먼 해에서 15㎞정도 내륙으로 들어와 있으며, 1200m 이상의 절벽으로 둘러싸여있다. 울창한 무성한 우림이 절벽에 자라고 있는 반면에, 그에 접한 바다에는 바다표범, 물개, 팽귄 등이 자주 출현하며, 드물게는 하지만 고래도 있다. 이곳은 한때 고래잡이와 바다표범 사냥의 거점이었으나 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끌려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연간 7000-8000mm 비가 내리며, 1년의 2/3는 비가 온다. 그 때마다 일시적으로 폭포를 형성하는데 우기에는 1000m를 넘는 폭포도 있다. 이 비가 내릴 때는 피오르드 절벽 토양이 물러져 관광객에 위험한 상황을 가져올 수 있지만, 반대로 우림의 생육에 좋은 환경을 조성하여 우림이 집중적으로 자생하는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피오르드 지형은 유럽인들이 도착하기에 앞서 마오리의 터전이었다. 제임스 쿡은 밀포드 사운드를 여행하면서 좁은 입구로 인해 내부에 그처럼 넓은 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고 거친 바람 때문에 만약 들어갔다가는 빠져나오는 것도 쉽지 않았고, 또한 가파른 산악지대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두려워 그냥 지나쳐 갔다. 그러다가 1812년 물개잡이 선장인 존 그로노(John Grono)가 폭풍에 밀려 우연히 발견했고 그의 고향인 웨일스의 밀포드 헤이븐(Milford Haven)을 따서 이곳을 “밀포드 헤이븐”이라고 명명했고 이후 존 로트 스톡스 선장(John Lort Stokes)이 ‘밀포드 헤이븐’을 ‘밀포드 사운드’라고 개명했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가 유람선 서던 디스커버리 호<Southern Discovery>에 오른다. 유람선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보이고 종업원들 중에도 한국인들이 보인다. 한국어 안내 방송도 하고 있다. 선내에서 푸짐하게 차려진 뷔페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갑판 위로 올라간다. 밀퍼드 사운드는 피오르드의 입구인 데일 포인트의 태즈먼 해에서 내륙으로 15 km 들러와 있으며, 양쪽으로 1,200m를 솟아 있는 기괴한 바위 면에 둘러쌓여 있다. 가장 높은 봉으로는 주교가 쓰고 있는 마이터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1,692m의 마이터 봉이 있고 봉우리 중 엘리펀트 봉은 1,517m이며, 코끼리 머리를 닮았으며 라이언 봉은 1,302m로 웅크린 사자를 닮았다고 한다. 산 정상마다 안개가 자욱이 깔리고 짙푸른 바닷물은 강과 호수의 청옥 빛 물과는 대조적이다. 산사태가 있었는지 산자락이 무너져 내린 곳이 곳곳에 보이고 산등성이에서 만년설이 녹은 물이 가파른 바위 벼랑을 타고 바다로 떨어지는 무수히 많은 실 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보웬 폭포 그리고 신밧드 계곡을 거쳐 코끼리처럼 생긴 산을 돌아가고 있다. 커다란 바위 위에 여러 마리의 물개들이 낮잠을 줄기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피오르드 클래스 펭귄이란 이름을 가진 조그만 팽귄 몇 마리가 바위 위를 총총거리며 뛰어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귀엽다. 160m의 보웬폭포(Bowen Falls)는 이곳을 방문했던 뉴질랜드 초대 총독의 부인 엘리자베스 보웬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스터링 폭포에 도달한다. 155m의 스털링 폭포는 영국 군함 클레오 호의 선장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배는 폭포를 향해 서서히 다가가는데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무지개가 피어오른다. 출발한지 40분 쯤 되었을까 배는 어느덧 밀포드 해변을 돌아 선녀 폭포로 향하고 있다. 선녀 폭포의 물을 맞으면 10년이 젊어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승객들 모두가 폭포 물을 맞으며 즐거워한다. 유람선이 출발했던 항구에 도착하고 약 두 시간에 걸친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는 끝난다.
다시 버스에 올라 퀸즈타운으로 향한다. 호머터널을 지나 동쪽 출구 공터에 버스를 세운다. 안개가 자욱한 공터에 내리니 올빼미처럼 생긴 쾌 커 보이는 새가 사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고 있다. 키아 새(Kea Bird)라는 새인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기로 유명한 새로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잉꼬의 일종으로 때때로 여행객들이 머무르는 곳에서 신발을 훔쳐 달아나기도 하며, 자동차를 부리로 찍어 손상을 입히기도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