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친구, 남은 자의 그리움
교정 회화나무 아래서, 말린 장비꽃 잎에 깨알 시를 적어 건네준 친구와의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55년 긴 세월동안 물리적으로는 만났다 헤어졌다 했지만 내 마음에는 늘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친구이다.
하나, 대학 졸업 전.
친구 어머님이 따뜻하게 우리를 맞이해 준 신문로 2층집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많으리라 본다. 2층 창문을 열면 지붕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가끔 그곳에서 밤하늘을 바라본 기억때문에 《어린왕자》를 몇번이나 읽었다. 우리는 명동거리를 기웃기웃하는게 좋았다. 명동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보기에 얼마나 빠졌는지 내가 결혼 하면서 짐 정리를 하고보니 연극 팜프렛이 2 상자였다. 특히 산울림 극단이 1969년 초연했던 사뮈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독하고 우울한 연기가 물씬 뭍어나오는 함현진 연기에 반했다. 함현진은 몇년 후 어느 사막에서 분신 자살을 하여 우리의 충격은 정말 컸었다. 극단자유의 이병복대표가 운영하는 까페떼아뜨르를 들락날락거리며 커피와 함께 권옥연(이 대표의 부군) 화가가 그린 나체화도 감상하였다.
둘, 친구가 한국을 떠난 후.
친구는 대학을 졸업 하자마자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민갔다. 가끔 한국에 오면 국립서울현충원을 산책하자하여 비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가곤했다. 내가 학회 참석 차 미국에서 만났을 때에도 묘지를 데려가곤 했다. 인경이는 왜 만나면 묘지를 산책하자고 할까 생각했는데, 김영수 사진작가의 '죽은자들의 공간에서 세상바라보기' (www.neolook.com)를 본 후에는 인경이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을 이해하게 되었다.
뉴저지에서 맨하탄으로 포도주를 한잔 하러 가던 날, 석양 빛이 아름답게 물든 허드슨 다리를 건너는 내내 한국에서 유행하는 가요를 틀어놓고 흥얼 흥얼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에서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같은 영혼을 지닌 친구가 고단한 삶의 무게를 힘들게 버티었을 애잔함이 느껴져서 더욱 마음에 남아있다.
친구는 LA에 자리잡은 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LA 지부에서
보람있게 상담사로 일하면서 틈틈히 전공을 살려서 미술작품전시회를 열고, 늦으막에 오랫동안 갈망하고 꼭하고 하고 싶어했던 연극공연도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작년 9월 내가 5주간 샌디에이고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도 친구는 만나고 싶어서 전화를 몇번 걸었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
남한테 아픈모습을 보이기 싫다고 혼자서 투병생활을 하다가 떠난 후 나는 혼자 명동거리를 거닐면서 친 구와의 기억의 장소들을 기웃거렸다.
정약용의 '삼락'중의 으뜸 즐거움은 '어릴때 놀던곳에 어른되어 다시 가보기' 라했는데 친구는 세상을 떠나가면서도 나한테 큰 즐거움을 선물로 준 영원히 좋은 친구이다.
(글쓴이. 김태현)
첫댓글 우리는 살면서 그리운 사람 두엇을 잃어버린 추억을 간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