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과 갑신정변(甲申政變)
청장(淸將) 오장경(吳長慶) 오세개(吳世凱) 등이 조선(朝鮮)의 완고당(頑固黨)을 이용(利用)하여 정치(政治)를 간섭(干涉)함으로 독립(獨立)과 개혁(改革)을 주장(主張)하던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서재필(徐載弼) 등이 일본공사(日本公使) 죽첨진일랑(竹添進一郞)과 연결(連結)하여 고종(高宗) 21년 갑신(甲申) 10월 17일에 우정국(郵政局)의 변(變)을 기회하여 고종(高宗)을 창덕궁(昌德宮)에 옮기고 일본병(日本兵)을 불러 궁문(宮門)을 지키고 완고당(頑固黨) 민태호(閔台鎬) 조녕하(趙寧夏) 등을 죽이고 새로 개혁당(改革當) 내각(內閣)을 조직(組織)하였더니 완고당(頑固黨)의 청원(請援)으로 청장(淸將) 원세개(元世凱) 궐문(闕文)을 깨치고 들어옴으로 일병(日兵)이 패퇴(敗退)하니 완고당(頑固黨)이 이에 홍영식(洪英植) 박영교(朴泳敎) 등을 죽이고 고종(高宗)을 경복궁(景福宮)으로 환어(還御)케 하고 17일로 19일까지 내린 조칙(詔勅)은 다 물시(勿施)하니 김옥균(金玉均) 등이 할 수 없이 일사(日使) 죽첨(竹添)과 함께 일본(日本)에 망명(亡命)하였느니라. 그 후에 일사(日使) 정상형(井上馨)이 다시 와서 사과배상(謝過賠償) 등 5조(條)의 한성조약(漢城條約)을 맺고 그 이듬해 을유(乙酉)에 청장(淸將) 이홍장(李鴻章)과 일사(日使) 이등박문(伊藤博文)이 천진(天津)에 모여 양국(兩國)이 다시 조선(朝鮮)에 주병(駐兵)치 않기로 조약(條約)을 정(定)하고 일처양국(日淸兩國)이 다 경성(京城)으로부터 철병(撤兵)하였느니라.
- 한글
청나라 장군 오장경, 오세개 등이 조선의 보수정파를 이용하여 정치에 개입했습니다. 이에 독립과 개혁을 주장하던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은 일본 공사 죽첨진일랑과 연결되어, 고종 21년(1884년) 10월 17일 우정국 사건을 기회로 고종을 창덕궁으로 옮기고 일본군을 불러 궁문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리고 보수파 민태호, 조녕하 등을 처형하고 개혁당 내각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보수파의 청원으로 청나라 장군 원세개가 궁궐에 들어와 일본군을 물리쳤습니다. 이에 보수파가 홍영식, 박영교 등을 살해하고 고종을 경복궁으로 돌려보냈으며, 김옥균 등은 일본 공사 죽첨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일본 공사 정상형이 와서 한성조약 5개조를 체결했고, 다음해 천진에서 청나라 이홍장과 일본 이등박문이 조약을 맺어 양국군이 모두 서울에서 철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