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恭愍王)이 임금이 됨에 국권(國權)을 회복(回復)하려고 뜻을 두었더니 마침 원(元)의 국세(國勢)가 쇠약(衰弱)하여 크게 내란(內亂)이 일어나거늘 이 틈을 타서 정원군(征元軍)을 일으켜 유인우(柳仁雨)로 하여금 원(元)에 빼앗겼던 동북면(東北面)을 수복(收復)하고 인당(印瑭)으로 하여금 압록강(鴨綠江) 건너 요동(遼東)을 수복(收復)하여 이로부터 원(元)의 기반(羈絆)을 벗었더라. 그 후에 금(金)의 유종(遺種)인 홍건적(紅巾賊) 한산(韓山) 류복통(劉福通) 등이 요(遼)를 거쳐 반도(半島)에 침입(侵入)하거늘 왕(王)이 정세운(鄭世雲) 등으로 하여금 평정(平定)하였고 또 납합출(納哈出)과 여진(女眞) 등의 내란(內亂)이 있어 십여년(十餘年) 간(間)에 국경(國境)이 소요(逍遙)하더니 최형(崔瑩) 이태조(李太祖) 두 장수의 힘으로 다 평정(平定)하였느니라.
- 한글
공민왕이 임금이 되자, 그는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마침 원나라의 힘이 약해지면서 큰 내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 공민왕은 정원군을 일으켰고, 그들을 통해 유인우로 하여금 원나라에게 빼앗겼던 동북 지역을 수복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인당에게 명하여 압록강 건너 요동 지역도 수복하게 했습니다. 이로써 공민왕은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문제가 계속되었습니다. 금나라 유민인 홍건적 한산 류복통 등이 요동을 거쳐 한반도에 침입했고, 납합출과 여진 등의 내란도 있었습니다. 이에 공민왕은 정세운 등에게 명하여 이를 평정하게 했습니다. 십여 년 동안 국경이 소요되다가 최형과 이태조 두 장수의 힘으로 결국 모두 평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