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과 발해(渤海)의 흥기(興起)
구려(句麗)가 멸(滅)한 뒤로 그 땅이 나뉘어 평양이남(平壤以南)은 신라(新羅)의 차지한바 되고 남만주(南滿洲) 일대(一帶)는 당인(唐人)의 점령(占領)한 바 되고 북만주(北滿洲) 일대(一帶)는 여러 영웅(英雄)의 차지한바 되어 거진 무주(無主)의 천지(天地)가 되었더니
구려(句麗)가 없어진 후 32년에 예전 구려(句麗)의 장수 대조영(大祚榮)이 부(父) 중상(仲象)과 및 말갈(靺鞨)의 부장(部長) 걸비사우(乞比四羽)로 더불어 병(兵)을 일으켜 고국(故國)을 회복(回復)코자 할 새 사방(四方)이 붙쫓아 군세(軍勢)가 크게 떨친지라.
마침 당(唐)의 내란(內亂)이 있어 나아와 싸우지 못함으로 조영(祚榮)이 이에 적군(敵軍)을 천문령(天門嶺)에서 크게 파(破)하니 당인(唐人)이 다시 엿보지 못한지라.
따라 사방(四方)을 정복(征服)하니 구려(句麗)의 옛 땅이다. 조영(祚榮)의 차지한바 되니 조영(祚榮)이 이에 동모산(東牟山) 부근(附近)에서 나라를 세우고 국호(國號)를 대진(大震)이라 칭(稱)하고 한홀성(汗忽城)에 도읍을 정(定)하고 조영(祚榮)이 왕위(王位)에 나아가니 이가 태조(太祖) 고왕(高王)이라.
태조(太祖)가 다시 돌궐(突厥)과 당인(唐人)으로 더불어 화친(和親)하고 이웃의 부락(部落)을 쳐 이기니 부여옥저(扶餘沃沮) 등(等)이 다 항복한지라.
지방(地方)이 5천여 리에 미치거늘 다시 나라 이름을 고쳐 발해(渤海)라 칭(稱)하니라.
<한글>
제20과 발해의 흥기
고구려가 멸망한 후 그 땅이 나뉘어 평양 이남은 신라의 차지가 되었고, 남만주는 당나라가 점령하였으며, 북만주는 여러 영웅들이 차지하여 무주공산이 되었습니다.
고구려가 없어진 지 32년 후인 698년, 전 고구려 장수 대조영이 부친 중상과 말갈 부장 걸비사우와 함께 병력을 일으켜 고국 회복을 꾀했습니다.
당나라의 내란으로 싸움이 없자 천문령에서 적군을 크게 물리쳤습니다.
조영은 구려의 옛 땅을 정복하여 동모산 부근에서 나라를 세웠습니다. 국호를 대진이라 하고 한홀성에 도읍을 정했으며 조영이 왕위에 올라 태조 고왕이 되었습니다.
태조는 돌궐과 당나라와 화친하고 이웃 부족을 정복하여 부여, 옥저 등이 항복했습니다. 영토가 5천여리에 이르자 나라 이름을 발해로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