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이조판서)
살아야 대의와 명분도 있는 것입니다.
김상헌(예조판서)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느니,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신의 뜻이 옵니다.
(김) 지금 전하의 군사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죽기로 성첩을 지키고 있사옵니다.
(최) 성첩 위 군사들은 이미 추위와 굶주림에 기력을 잃어가고 있사옵니다.
(김)내일이 보름이옵니다. 오늘 밤 반드시 검단산의 봉화가 오르고 근왕병들이 성을 향해 달려올 것이옵니다.
(최)오늘 답서를 보내지 않으면 칸의 대군이 성벽을 넘어들어와 세상은 불타고 무너져 버릴 것이 옵니다.
(김)하룻밤이옵니다. 하룻밤을 버티지 못하고 어찌 먼저 무릎을 꿇으려 하시옵니까?
(최)그 하룻밤에 온 세상이 무너질 수 있사옵니다. 상헌은 우뚝하고 짐은 비루하며, 상헌는 충직하고, 신은 불민한 줄 아오나 내일 신을 죽이시더라도 오늘 신의 문서를 칸에게 보내주소서
(김)명길이 칸을 황제 폐하라 칭하고, 전하를 칸의 신하로 칭했으니, 전하께서는 명길의 문서를 두 손에 받쳐들고 칸 앞에 엎드리시겠사옵니까?
무릎을 꿇고 술을 따르라 명한다면 칸에게 술을 따라 올리시겠사옵니까?
(최)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는 것과 같이,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해 못할 짓이 없는 것이 옵니다.
(김)정녕 명결이 말하는 것이 전하가 살아서 걸어가시고자 하는 길이옵니까?
(최)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그저 말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삶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김)명길이 말하는 삶은 곧 죽음이옵니다. 신은 차라리 가벼운 죽음으로 죽음보다 더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전하. 상헌이 말하는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 옵니다.
(김)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최)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만 백성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
(김)한 나라의 군왕이 오랑캐에 맞서 떳떳한 죽음을 맞을지언정, 어찌 만 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
저는 차마 그런 임금은 받들지도 지켜볼 수도 없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신의 목을 베소서
(최)무엇이 임금이옵니까. 오랑캐의 발밑을 기어서라도 제 나라 백성이 살아서 걸어갈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신하와 백성의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임금이옵니다.
지금 신의 목을 먼저 베시고 부디 전하께서는 이 지옥을 견디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