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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03일 주일 메시지 (설교안)
시리즈 주제: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두 번째 설교
제목: 왜 우리는 천국을 죽은 후에 가는 세상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요한일서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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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적
사후천국 사상이 기독교 신앙 안에 들어온 까닭은 두 가지다: (1) 세상과 육신에 대한 시각의 왜곡을 초래한 영지주의가 그 첫째요, (2)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경륜을 모르고 망령되고 허탄(虛誕, 거짓이 많아서 미덥지 않음)한 신화를 그리스도인이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비성경적이며 반기독교적인지를 밝히고 천국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이 설교의 목적이다.
설교 개요
1. 지난 주 복습: 성경은 천국을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1-1. 불교의 천국, 정토(淨土)
1-2. 성경이 말하는 천국
2. 왜 우리는 천국을 죽은 후에 가는 세상으로 여기게 되었는가?
2-1.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
2-2. 영지주의라는 거짓 가르침
2-3. 성경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2-4.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경륜
1. 지난 주 복습: 성경은 천국을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1-1. 불교의 천국, 정토(淨土)
우리나라 불교에는 대중으로부터 존경 받는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무소유를 실천하고 가르친 법정 스님이 있습니다. 오랜 수행을 통해서 깨달은 바를 한 마디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정리한 성철 스님이 있습니다. 이 두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스님으로는 법륜 스님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법륜 스님은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질문을 받아 그 자리에서 대답해 주는 ‘즉문즉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법륜 스님에게 고민을 말하고 대화를 통해서 해답을 찾게 되는 자리입니다. 3년 전에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천국이나 극락세계가 정말 있습니까?”
그 대답을 들어보면 불교의 가르침이 천국을 무엇이라고 설명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사바(娑婆) 세계라고 부릅니다. 기독교에서 천국이라고 부르는 것을 불교는 정토(淨土)라고 부릅니다. 불교의 정토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세상 말고 다른 더 나은 곳을 타방(他邦) 정토라고 합니다. 그것을 흔히 극락(極樂) 정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시간의 관점에서 보는 것으로, 지금 말고 훗날 미륵부처가 와서 이룰 정토라 해서 미래(未來) 정토라고 부릅니다. 미륵(彌勒) 정토라고 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다른 장소나 다른 시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내 마음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유심(唯心)정토가 있습니다. 그런데 타방정토나 미래정토는 사람이 알 수 없으니 그런 것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지금 여기서 마음을 잘 다스려 해탈(解脫)과 열반(涅槃)에 도달하면 그것이 곧 정토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에 힘쓰는 것이 불자에게는 중요합니다.
불교의 천국은 결국 마음에 있다는 말입니다. 미래에 오는 세상이나 다른 어떤 곳에 있는 세상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실과 오늘을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에 불교의 강조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 성경이 말하는 천국
우리가 속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천국을 무엇이라고 소개합니까? 지난 주에 본 바와 같이 천국은 우리에게 가까이 오는 새 시대를 가리킵니다.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를 다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외쳤습니다. 이전 시대는 지나갔고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나간 시대를 세상 임금이 통치하는 시대라고 한다면, 오는 시대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시대입니다. 이전 시대가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하는 시대라면, 새로운 시대는 은혜가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는 시대입니다(롬 5:21). 이전 시대가 하나님께 대하여 반응할 줄도 모르는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라고 한다면, 새로운 시대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반응하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런 삶은 오는 세대의 삶이라고 해서 영생이라고 부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 순종하고 살아가는 삶에는 의로움과 평화, 그리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롬 14:17). 그렇게 자기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 적은 무리에게 하나님이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눅 12:32).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시는 당당하고 화목하고 기쁨 가득한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 가운데 이미 천국이 있습니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따를 때 누리는 행복하고 충만할 삶이기 때문입니다(눅 12:20~21).
천국은 이처럼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우리에게 가까이 온 새로운 시대이며, 그 가운데서 살아가는 기쁨 충만한 삶이며, 그러므로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이미 받아서 누리고 있으며 우리 안에 있으며 우리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생명과 같습니다. 그 생명이 다 자라면 온 세상은 생명으로 다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 세상을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천국을 죽어서 가는 세상으로 여기게 되었을까요?
2. 왜 우리는 천국을 죽은 후에 가는 세상으로 여기게 되었는가?
2-1.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합니까? 이 세상은 살기 좋은 낙원입니까? 아니면 세상은 온갖 고통과 부패가 만연한 곳입니까? 우리의 인생은 축복입니까? 아니면 저주입니까? 우리가 세상과 인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세계관(世界觀, a world view)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사노라면 어렵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질병과 죽음 앞에서 절망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사람은 이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꿉니다. 그런 세상이 어디 없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렇게 힘들었지만 죽은 다음에 오는 저 세상에서는 좋은 곳에서 살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런 곳은 기쁨이 충만한 곳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극락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에는 없는 곳이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런 곳을 이상향(理想鄕)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유토피아(Utopia)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유토피아는 이 세상에 없는 곳(ou+topos)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만큼 좋은 곳(eu+topos)이라는 의미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이상적인 세상을 사람들은 바라지만 알 수 없기에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어떤 경우에는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환상이 진짜라고 여기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줍니다. 그렇게 해서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진짜로 믿으면 장례식을 그렇게 준비합니다. 어떤 장례식에서는 은전 한 닢을 죽은 사람의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쌀 한 줌을 입에 넣어줍니다. 그리고 해마다 기일에 찾아올 혼백을 위해서 음식을 장만합니다. 어떤 시대에는 왕이나 귀족이 죽으면 그의 사후세계에서 섬길 사람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배우자나 종들을 함께 매장하기도 합니다. 일명 순장(殉葬)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상상 속에 만들어진 이야기를 설화(說話)나 전설(傳說)이라고 하기도 하고 신화(神話)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모든 신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우리 주위에는 근거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고 거기에 빠지게 되면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는 디모데에게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디모데전서 4:7
공동번역성경은 이 부분을 더 실감나게 옮겼습니다:
늙은 아낙네들이나 좋아하는 속된 이야기들을 물리치시오.
그리고 경건한 생활에 힘을 기울이는 훈련을 쌓으시오.
2-2. 영지주의라는 거짓 가르침
세상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근거 없는 이야기에 빠지지 말고 바른 신앙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런 거짓된 가르침은 세상과 인간을 삐딱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는 거짓 교사들이 초대교회에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실패작이며 인간의 몸은 더러운 것이다. 신들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은 거룩하지만 육체는 영혼에 비해서 열등하다. 영혼은 썩지 않지만 육체는 썩어 없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은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있으며 육체를 벗어나야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혼이 들어가는 세상이 진정한 천국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열등한 육체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육체를 가지셨다면 그렇게 보일 뿐이다. 육체는 죄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괴롭게 할수록 영혼은 정결해진다.
이런 것을 가르치는 이들을 영지주의(靈智主義)자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오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의 죽음도 없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는 화목제물도 없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역을 헛되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신자들을 비정상적인 삶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대적하는 이들을 조심하라고 성경은 일찍부터 경고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한일서 4:1~3
그러나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허탄한 신화와 어떻게 다릅니까?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붙드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은 달라집니다.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을 해석하는 눈이며, 우리를 미래로 인도하는 지도와 같기 때문입니다. 틀린 지도를 가지고 어떻게 바른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2-3. 성경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육체와 영혼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영혼 없는 몸은 죽은 것이며, 몸 없는 영혼으로 된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몸과 영혼을 동시에 가진 존재로 여깁니다. 그러기에 몸이 결코 열등하지 않으며 도리어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으면 다시 부활합니다. 부활은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전까지는 부활을 기다리면서 안식할 것입니다.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자들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하기도 했고,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는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그런 것은 모두 안식하는 인간의 상태를 그린 비유적 설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이 세상에 대하여 무엇을 말합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주인으로 통치하시는 세상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마태는 하늘 나라 곧 천국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 세상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이 세상에 하나님이 주인으로 다스리는 시대가 가까이 왔다는 말입니다. 본래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한 마귀의 종노릇을 하면서 죄와 사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하나님 앞에서 아들로 순종하면서 살 수 있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종으로 부리는 귀신의 세력을 몰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2:28, 개역개정
나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러니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마 12:28, 공동번역성경
2-4.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경륜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은 본래부터 천국복음이었습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온 이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당함, 평화, 그리고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를 속이고 괴롭히던 원수는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 세상은 주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일에 주역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정신으로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짐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십자가가 원수의 잔악함과 폭력성을 비폭력으로 드러냈던 것처럼, 우리들도 선으로 악을 대항하여 이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처럼 우리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만 남지 않은 줄 알고 사람들을 속여 ‘발악(發惡)’하지만, 우리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최종적인 승리를 확신하고 선한 일을 도모합니다. 마귀의 발악(發惡)에 대해서 우리는 발선(發善)합니다.
삼일운동은 총검을 든 일본 헌병대의 발악에 대하여 태극기를 든 우리 조상들의 발선입니다. 비무장 비폭력 평화운동이기 때문입니다. 금년은 삼일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전 부총리이자, 3.1 운동 및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한완상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지난 3월 1일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삼일운동이 베트남의 호치민 청년과 인도의 시민운동가 네루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전 세계에 비폭력 평화운동을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준 한민족의 삼일운동을 통해 세계의 지도자들이 깊은 도전과 용기를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본래 종교는 그렇게 사회를 밝히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장 크게 갖는 사람들이 종교인입니다. 3.1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모두 종교인입니다. 천도교 16명, 기독교 15명, 불교 2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종교가 본질에 충실할 때 하는 일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 민족은 미래를 밝혀줄 등불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등불을 밝힐 수 있습니까? 현재 기독교인이 세상을 비출 등불을 들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우리의 신앙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천국이 죽어서 가는 세상이라고 믿는 사후천국 신앙입니다. 예수께서는 새 시대에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정신으로 살아가라고 천국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지주의와 같이 헛되고 거짓된 가르침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추하고 더러운 곳으로 여기게 되었고, 마침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탈출해야 하는 곳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영혼과 육신을 분리하여 진정한 천국은 우리가 육체를 떠나 영혼이 가는 세상으로 여기게 했습니다. 이 사상이 하도 뿌리 깊이 박혀 있는지라 이 세상에 이미 천국이 왔으며 장차 천국이 이 세상에서 완성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이단으로 여길 정도입니다.
언제 하나님이 세상을 포기하셨습니까? 언제 하나님이 육체를 더럽다고 하셨습니까? 언제 우리의 영혼이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언제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 천국을 만들어 놓고 이 세상을 탈출하는 구명선이나 방주를 타고 그 강물을 건너 낙원으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모든 가르침은 하나님도 성경도 모르고 망령되고 허탄한 사후세계 신화를 생각 없이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불에 타 없어질 세상을 누가 잘 가꾸려고 하겠습니까? 곧 이사 갈 셋집을 누가 돈 들여 잘 수리하겠습니까? 이 세상이 우리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곳이며, 우리를 통하여 다시 생명으로 충만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곳임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참여할 것입니다. 본래 기독교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세상은 교회를 칭송하고 교회는 세상에 빛이 될 수 있었습니다.
100년 전에 민족대표 33인 중에 절반 가량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세상과 함께 하며 세상을 선도했습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들은 세상을 사랑합니까? 세상을 선도합니까?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바뀔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마침내 하나님이 그렇게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이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웃과 친구가 되며 이 땅에 온 이방인들과 조화로운 세상, 평화와 공존의 세상을 만들 마음과 꿈이 있습니까?
천국을 죽어서 가는 세상이라고 믿는 한 이 모든 일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치는 한 우리의 복음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천국,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를 다시금 살펴보고 우리 자신을 개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신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를 믿고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이 일관되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시고 인간에게 관리를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은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땅과 인생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죄악이 가득하게 될 때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셔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렇게 부름 받은 사람들이 바로 노아요, 아브라함이며, 모세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세상과 사람을 치료하시고 구원하셔서 다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부름 받은 사람들을 교회라고 하며,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믿음의 조상들처럼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온 세상에 나타낼 것입니다. 그것을 본 공중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하나님의 지혜에 놀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들도 몸으로 다시 살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들려주는 대 서사시의 줄거리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이 땅에서 하늘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환상 가운데 본 것이 무엇입니까? 새 예루살렘으로 우리가 들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오는 환상이었습니다. 이 땅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그려주는 상징입니다.
사람이 영지주의와 같은 허탄한 이야기를 붙들지 않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경영하시고 완성하실 위대한 이야기를 붙든다면 자기의 영혼이 죽어서 어디에 갈꼬 하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동참하게 하신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합당하게 행하려고 자신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교회로 모인 이유요 목적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 2:15~16)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신 세상은 무엇이고,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세상은 무엇입니까? 다음 주에 이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끝>.
설교 동영상: https://youtu.be/qbHpy7Rnb_Q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02 - 왜 우리는 천국을 죽은 후에 가는 세상으로 여기게 되었을까(설교안) (1).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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