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 유감(有感)
서울을 휘감고 흐르는 강을 지금은 한강이라 부르고, 양수리에서 충주 방향으로 난 물길을 남한강, 춘천 방향으로 난 강을 북한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 편의상 부르던 명칭이 굳어진 것이지 강의 성격을 중심으로 이름을 붙여서 불렀던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특히 양수리를 기점으로 하여 제비 꼬리처럼 갈라진 형태를 가지고 있는 강의 이름에는 독특한 의미가 담겨 있어서 눈길을 끈다.
조선 시대까지는 양수리(兩水里)를 중심으로 한 상류 일대의 강 이름을 양강(楊江), 아래쪽은 양호(楊湖)라 불렀고, 동쪽에는 양근(楊根)이라는 지명이 있었다. 양근은 양평의 옛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지평과 양근을 합쳐 양평이라고 했는데, 그 뒤에 지평은 분리되어 원래 이름을 되찾았지만 양평은 그대로 사용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모두 버드나무를 뜻하는 한자인 楊이 들어가 있다.
楊은 버드나무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갯버들을 가리킨다. 주로 강가에서 자라는 갯버들은 뿌리 근처에서 가지가 많이 나오는 데다가 키가 1~2미터 정도로 자라는데, 우리에게 매우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식물이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갯버들은 특히 물이 매우 많은 큰 강가에 많이 자라는데, 이런 성질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뜻이 재미있다.
楊은 갯버들은 기본으로 하면서 드날리다, 매우 활발하다, 풍족하다 등의 뜻이 파생되어 만들어졌는데, 지명으로 쓰일 때는 주로 이 의미로 쓰인다. 지금의 양수리를 중심으로 하여 팔당댐이 있는 곳까지는 물이 많고 풍족한 곳이라고 해서 양호(楊湖)라고 불렀으며, 양수리에서 청평 부근까지를 양강(楊江)이라고 했다. 강과 물의 성격을 제대로 가늠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또한 동쪽에 있으면서 넓은 호수의 근원이 되는 곳인 지금의 양평을 양근이라고 했다. 楊이 들어간 지명은 버드나무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물이 풍족하고 많다는 뜻으로 쓰였다. 양호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양강(북한강)은 ‘하늘과 물을 한꺼번에 멀리 바라볼(天水二望) 수 있다는 뜻을 가지면서 수평선이 펼쳐질 정도로 물이 많고 넓다는 의미를 함께 가지게 되었다. 특히 양수리에서 청평까지의 북한강은 거의 곧게 뻗어 있는 데다가 굽어진 남한강의 줄기와는 아주 달라서 아득할 정도로 수평선을 조망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이름이 아주 잘 어울린다.
양수리 부근인 양호는 남한강, 북한강, 경안천의 세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인 데다가 바로 아래에 예봉산과 검단산 사이의 협곡이 만들어낸 여울이 있어서 많은 물을 가두어 두기에 아주 적합하다. 이런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서 20세기에는 팔당댐을 만들어서 한강 수위를 조절함과 동시에 상수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제는 굳어져서 바꾸기 어렵지만 북한강, 남한강, 양수리 등의 지명은 너무 직설적인 데다가 강이나 땅의 성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 별로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생각하기 싫어하고 쉬운 것만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못내 아쉬운 지명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양평이란 지명을 그대로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로만 일제 청산을 부르짖으면서 왜 이런 것은 바로잡지 못했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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