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신라의 고도이다. 박석김 3성이 위인영걸을 선출하여 왕위상으로 인덕정치를 준수하면서 예락사어서수를 천양하니 국위가 진작하고 도학문장과 경공장상이 연계배출하여 문화시설이며 전장법도가 중원 불부하였고 통합삼한으로 국세강성하여 외관침략이며 역내분쟁도 저지하고 간난 극복하며 992년의 역년을 간직한바 박씨10왕이요 석씨8왕이요 김씨38왕으로 최종의 왕이 경순왕이시다. 왕의 김씨요 휘부요 시호는 경순이니 기시조는 휘알지요 시호는 대보공이다. 석탈해왕9년을축 시림중에서 계명성이 문지라 왕이 사호공이득금괴이래라 왕에 개이친지하니 유소아이출언이라 왕이 수이양지하니 용모비범이요 기골출중고로 왕이 명지왈 알지라하고 사성김하니 시위득성지소유시야라 경순왕이 경애왕박응휘후로 수선하사 입어왕위하시니 즉후당명종천성2년이요 단군기원후3260년정해이라 고위휘는 효종이니 관대아손으로 지시중터가 추존신흥왕하고 비위는 계아부인김씨계아태후하고 조휘는 실홍이니 관각간으로 존의흥왕하다. 개국가장흥에 군의신충하고 민심화평하여 덕화급사사해하며 가유현가지성하고 야유격양지가하여 덕업상권하나니 차위태평지세요 국운쇠퇴하면 풍속해이하고 난무농권하여 정국무도하고 민생도도어도탄하나니 여차면 수유현군양상이라도 도무내하니 시칙천야요 비인력소치이다. 왕이 천성순후하시고 관유인자하사 경천애인으로 성의지중하시고 즉위후9년에 선왕유업을 전수하사 국정진력에 만기확립이며 무민안정에 극력경주이나 폐인배의 농권으로 예속퇴패하고 시정일비하니 통막막심이라 세궁력진으로 부득이승국에 양위의사를 표현하시니 만조문무백관이며 태자휘일이 체루극간왈 국가존망은 필유천명이라 여충신현사로 수습민심하고 견수극복하여 항사자수타가 진력무책이면 수의이이 이거늘 선왕의 천승대업과 종묘사직을 기가이일조일석에 경이이인평 이까 왕이 답왈 민생고위하여 간뇌도지하니 무고생명을 하이상해리요 령유망국지왕의 오명이라도 무가내하라하시고 사시중금봉휴로 친서를 려왕에 전게 하니 가위천승여사이시다. 기불통한이리오 즉을미십월이러라.
려왕이 흔연이대하여 사왕으로 친광순화위국공신의 상주국낙랑왕정승을 봉하고 식읍팔천호와 태자상위로 후대하시고 세급일천석을 제하고 개신라위경주부하고 사위식읍하며 이장녀낙랑공주로 처지하고 창건신란궁이거지케하니 공주는 시려태조의 전비소생야러라 배위비는 박씨니 신덕왕 녀로 삼남일여에 장휘일이요 차휘황이요 차휘명종이요 여서에 고려경종휘전이요 계비위는 낙랑공주라 생6남2녀에 장휘은열이요 차휘중석 차휘건 차휘선 차휘종 차휘덕지요 녀서에 장수황경과 경주이금서러라 왕이 손위후에 여심복인사로 해내강호승지를 완상할새 선세국사인 랑혜화상 백월보광국사의 성덕을 감복하사 남포향내의 성주사에 유련하시며 대천의 왕대사와 궁촌평등지를 순수하시니 후인이 산명을 왕대산이요 궁촌평이라하였고 옥마산상에 후인들이 왕의 후덕을 추모코저 입묘향사하였다하나 금야에 유유지언이니 차칙삼국사와 사가들의 고징이 소연하다. 고려사에 의하면 경종무인사월사일에 훙하시니 송태종여국삼년에 경기도장단부고량진성거산하계좌하니 누경병화로 실기전이 구의타가 조선왕조 영조무진에 행득기지석하여 특명으로 이위성역화하고 매년 10월3일에 릉제행례로 다수후예가 지성참배하니 기불행심이리요 차영모전은 광복후병오에 건립으로 건전연대는 상천이나 휘일제전에 원근참반자가 대유성황이라 연이나 조연비가 미성에 전모불비로 첨종이 의정입석에 래여청문커늘 여불사안혼하고 여유기여계지명하니 왈
신라고벌이요 종지기망이로다. 불문신간은 위민평강이라 운지소치로 내사제향이라 영대고사는 영세생광
단기기원4322년 기사입추절 원임성균관장 밀성 박중훈 근찬
남포향교전교후예 김창원 근서
추기
첫댓글 수정하신 글 다른 종친님 들도 살펴 보셨으면 좋껬 습니다
위에 원문에 붉은 글씨로 諱"殷說"이라는 함자가 본인의 무식한 한문실력으로 은설로 오번역 되었음을 사과 드립니다.
번역문에 "은열"로 수정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