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www.everyday01.com 십자가(0,1)복음방송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영적인 로열패밀리 탐지기>의 줄거리:
영적인 로열패밀리가 세상 속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로열패밀리와는 다르게 가난하고, 지위가 낮고, 무식한 사람들 중에도 영적인 로열패밀리가 섞여 있습니다. 세상적인 로열패밀리가 한시적인 것과는 다르게 영적인 로열패밀리는 태초부터 결정된 질이 다른 생을 영원히 살도록 택함 받은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로열패밀리를 찾아 내는 일입니다. 심지어는 당사자도 자신의 신분을 모르기가 일쑵니다. 그래서 영적 로열패밀리 탐지기가 등장했습니다.
영적인 로열패밀리 탐지기
(역대상 5:1~26)
3.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요
4. 요엘의 아들은 스마야요 그의 아들은 곡이요 그의 아들은 시므이요
5. 그의 아들은 미가요 그의 아들은 르아야요 그의 아들은 바알이요
6. 그의 아들은 브에라이니 그는 르우벤 자손의 지도자로서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사로잡힌 자라
7. 그의 형제가 종족과 계보대로 우두머리 된 자는 여이엘과 스가랴와
8. 벨라니 벨라는 아사스의 아들이요 세마의 손자요 요엘의 증손이라 그가 아로엘에 살면서 느보와 바알므온까지 다다랐고
9. 또 동으로 가서 거주하면서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광야 지경까지 다다랐으니 이는 길르앗 땅에서 그 가축이 번식함이라
10. 사울 왕 때에 그들이 하갈 사람과 더불어 싸워 손으로 쳐죽이고 길르앗 동쪽 온 땅에서 장막에 거주하였더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영적인 로열패밀리 탐지기>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영적인 로열패밀리 탐지기’
로열패밀리는 왕궁 안의 삶을 뜻하는데 요즘은 꼭 왕가의 사람들만을 일컫는 말은 아닙니다. 특정 사회에서 귀빈 대접을 받는 사람의 가족을 로열패밀리라고 합니다.
세상에서의 유명한 로열패밀리로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 가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나라 안에서는 실업 문제 때문에 난리고 유럽공동체로부터 빠져 나오는 브렉시트 사건도 있었지만 로열패밀리의 일상적인 삶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로열패밀리를 보존시키는 것이 국법으로 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의미에서의 로열패밀리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요?
대표적인 성경의 말씀은 살전5:16~18절의 “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로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항상 기뻐할 수 없는 조건이 너무나 많습니다만 영적인 로열패밀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국의 로열패밀리가 언제든지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날 수 있듯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대로 영적인 로열패밀리는 기도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항상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열패밀리의 일상적인 삶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영적 로열패밀리의 삶에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처럼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언정 마음에는 이 세상의 형편과 벌어지는 사건들과 주어진 상황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섭리의 삶이 항상 주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스데반 집사님처럼 돌에 맞아 죽는 순간조차에도 마음에서는 완벽하다고 느끼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특징인 기쁨을 가지고 사는 영적 로열패밀리는 이 땅의 상황과 상관이 없습니다. 항상 창조주 하나님을 알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땅의 삶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세상의 로열패밀리와는 다르게 찾아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최순실씨와 연관된 사람들이 그동안 로열패밀리로 살았는데 이렇게 찾아지는 게 아닙니다. 신분의식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로열패밀리인 것을 모릅니다. 신분의식이 생겨야 로열패밀리에 걸맞은 삶도 주어지는데 그 의식조차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로열패밀리를 찾는 탐지기가 필요합니다.
탐지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금속 탐지기, 어군(魚群) 탐지기, 가스 탐지기 등이 있습니다. 미국에는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주는 직업도 있다고 합니다. 탐지기를 이용해서 심지어는 호수나 강이나 바다에 빠진 반지까지 찾아준다고 합니다. 이렇듯 세상 속에 흩어져 살고 있는 영적 로열패밀리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세상적인 로열패밀리는 가난하고 지위가 낮고 무식한 사람들 속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 로열패밀리들은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들 속에 끼어서 살고 있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섞여 살고 있으며, 학교를 다녀보지도 못한 상태로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 왕의 자손들인 로열패밀리가 있는데 오늘 본문은 탐지기를 통해 찾아질 로열패밀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다윗의 직계혈통을 제외한 유다의 여타 가계에 대한 족보 이야기와 시므온 지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오늘은 요단강 동편에 자리 잡았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의 족보는 너무나 빈약합니다.
야곱의 장남이었던 르우벤 지파에 대해 에스라가 확인할 수 있었던 정보는 BC722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까지의 기록 외에는 없었습니다.
700~800년이 지난 지금 르우벤 지파의 족보만 쓰려고 해도 옛날의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기록을 했다고 하면 그 양이 산처럼 쌓였을 것인데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기에 너무나 빈곤한 정보를 기반으로 해서 족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갓 지파나 므낫세 반 지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유다 지파와 연관해서 시므온 지파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은, 이들이 기존에 땅을 할당 받을 때에 유다 지파에게 할당 되었던 18개의 성읍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히스기야 왕 시절에 와서야 자신들의 거주지와 목초지를 정복하여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시므온 지파와 유다 지파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붙여서 언급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함께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특별한 의도가 있습니다. 이 요단 동편에 있었던 세 지파들에 대한 족보를 언급하면서 강조되는 공통적인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사실 족보자체는 에스라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 지파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BC722년에 앗수르의 살만에셀5세에 의해서 망하기 10년 이전인 BC732년에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3세에게 앞서 망하고 앗수르의 포로로 강제 이주 되었기 때문에 이 세 지파는 이방나라 속으로 흩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특징은 사울 왕 시절인 BC1020년경에 일어났던 전쟁에서 세 지파가 연합하여 승리했었다는 얘기를 반복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주석서에서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 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BC1020년에 함께했던 한 번의 전쟁을 모든 지파에게 적용하면서 언급하고 이후에 BC732년에 앗수르에 멸망하게 된 것으로만 이들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화 되어 있습니다. 에스라가 이들을 언급하게 된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4장에서 에스라의 시각에 대 반전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1~3장까지의 족보는 마지막 다윗의 자손이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에게 향하는 족보였습니다. 한편 4장에서는 오실 메시아에게 도달하려는 족보를 마음에 두고 읽다 보니 마음이 예수님께로 가버렸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시점으로 마음이 가서 BC450년을 돌아보고 이전 과거를 돌아보게 된 에스라가 새로운 시점으로 여타 족속들에 대한 언급을 했는데 오늘도 그 연장선상에서 내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기점으로 돌아볼 때 하나님의 선택은 다윗의 가문에게 집중되었고, 나머지 가문들은 버려지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다윗의 자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서 모든 선민의 가문들이 똑같은 선택의 가능성 앞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러한 방향성을 유지하며 요단 동편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앗수르에 의해 잡혀가서 강제 이주를 당한 자들이고 이방 세계에 섞이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BC722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망하고 BC586년에는 남 왕국 유다도 망해서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이후에 1차 포로귀환 때 성전이 재건이 되었지만 선민들이 기대했던 것 같은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방민족들의 끊임없는 침략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으며 국가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사는 선민은 과연 무엇이고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선민 됨이 삶에 어떠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지에 대해 회의에 차있었습니다. 이때에 에스라는 다윗의 혈통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였고, 그 지점에서 거꾸로 볼 때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 또한 찾았던 것입니다.
요단강 동쪽에 자리 잡았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BC732년에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3세의 의해서 사로잡히고 강제 이주를 당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이 패역해서 멸망을 당했지만, 그들을 선택하실 때에 선민들의 상태는 얼마나 대단했습니까? 야곱의 열두 아들들을 선택하실 때 그 아들들의 영적 상태가 훌륭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선민이 없어져버렸는데 하나님의 선택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서 에스라가 답을 얻는데 하나님의 선택방식이 바뀌었을 뿐이지 선민이 포기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앞장에서는 다윗에게 집중된 선택으로 인해 밀려났던 자들의 회복을 보았다면, 이 장에서는 세상 속에 흩어져버린 선민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대한 선민 탐지기를 보는 것입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의 사람들이 아무리 이방 세계 속으로 흩어져서 누가 선민인지도 알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살고 있더라도,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이라면 반드시 찾아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로열패밀리를 가려내는 탐지기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서 두 가지 사건을 세 지파에게 공히 적용시키는데 앗수르에 의해서 강제 이주된 상태와, 사울 왕 시절에 세 지파가 합동하여 전쟁 한 것을 거듭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전쟁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에 함께한 그들이 선민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사실과 세상 속으로 흩어졌다는 사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느냐는 것인데 그리스도에게서 답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점으로 볼 때 앗수르에 의해서 흩어져버린 세 지파들은 존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사실조차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 때에 그들은 가려내질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것을 깨닫고 또 한 번 감격했습니다. 자신들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터였기 때문에, 앞서 앗수르에 의해 이방세계 속으로 흩어졌던 선민들의 후손들의 형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면 자신들의 형편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인 영적 로열패밀리는 이 세상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절대적인 기쁨을 누리면서 언제나 세상의 창조주 되시고 왕 되신 하나님을 알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어진 형편이 세상의 기준으로 어떠하든지 그들의 마음에서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들을 가려내는 방법이 예수님의 십자가인데 자석에 쇳가루가 붙어 나온 듯이 십자가에 붙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생활화를 선포하고 전하면 그것을 듣고 마음으로 수긍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이 택하신 로열패밀리입니다. 십자가 생활화가 아니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다 알고 있었던 에스라는 그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관점에서 이 역사를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역대기의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질 복음의 내용을 세밀하게 펼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다윗에게 선택이 집중되며 버려진 것 같이 보였던 선민들이 어떻게 회복될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예 세상 속으로 흩어져버린 선민들에게도 하나님의 선택은 유효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윗의 피는 예수님의 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먹으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날마다 죽는 자들이 로열패밀리이고, 십자가를 제시했을 때에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자들이 탐지된 로열패밀리입니다.
그들이 십자가 생활화 의식을 가질 때에 아버지께로 가고 아버지를 더 많이 갖기 위해 삶의 현장에서 생활화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 자리는 항상 기쁨의 자리가 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알현하는 자리가 되고, 부족함이 없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로열패밀리가 섞여 살고 있습니다.
단순히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화할 수 있는 십자가를 전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죄에서 구원 받았다는 것은 기독교인 누구나가 인정하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생활화되지 않는 십자가는 진정한 십자가 복음이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생활화가 되지 않는 십자가는 결국 내게서 나오는 모든 악한 소원 전체를 칭의 해주는 효과 밖에는 가지지 못합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길입니다.
생활화해야 하는 십자가를 전했을 때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가 로열패밀리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아무리 세상 깊이 들어가 흩어져 살아도 로열패밀리들을 찾아낼 수 있는 탐지기이신 주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오늘도 그 십자가를 생활화함으로서 로열패밀리의 의식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