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열여섯 번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한때 ‘문고리 권력’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지위에서 얻은 권위를 진리로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이 변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누가 감히 우리를 건드려?” 그러면서 살았습니다. 명심보감에 “얻지 말아야 할 것을 얻은 것보다 더 짧게 가는 것은 없고/短莫短於苟得, 제 능력을 믿고 오만한 자보다 더 외로운 사람은 없다/孤莫孤於自恃”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헌법 제1조 제1항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공화共和’라는 말을 알기는 알아도 그저 상투적 언어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일찍이 중국에도 ‘공화共和’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군왕이 없는 상태에서 신하들이 ‘함께 화합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군주국가라는 환경을 제외하면 지금의 뜻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함께 화합하여’ 정치하라는 말이기에 아주 오래전 소크라테스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을 통치자의 첫째가는 품성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래야 함께 화합할 수 있으니까요. 권력을 이용해 사욕을 채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름을 떨치고자 하는 욕망조차 부끄러움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칸트는 <영원한 평화>에서 ‘스스로 예외가 되려는 사람’을 공화국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남을 속여야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고, 자기 자신까지 기만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철저한 이기심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많을 때 우리는 위기를 겪습니다. 유럽의 지성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에게 정치가 무어냐고 묻자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알고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지도자가 간절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