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지붕엔
굴뚝이 아주 가끔
먼 데로 연기를 보내고
그 옆엔 푸른 사다리가 하나
누워 있었다
새가 이따금 앉았다 갔다
그 사다리는
혼자 일어서서
뭔가를 먼 데로 올려 보냈다
그러나 가끔은 그걸 타고
먼 데에서부터 무엇인가 내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지붕 아래서 한 사람씩
쓸쓸해지고,
몸이 아프고 슬픔에 휩싸이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푸른 사다릴 지붕에서
꺼내오지 않았다
푸른 페인트가 다 벗겨졌다
어느 새벽녘엔 그 사다리가
창 아래까지 내려와
누군가를 데리고 올라갔으나
아무도 그것을 몰랐다
바닥에 음표처럼
담쟁이잎 몇 개 떨어져 있을 뿐이었으므로
-시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에서
/해설/ 조성래
사다리는 지상에서 높은 공간을 오르내릴 때 이용하는 도구다. 집에서는 마당에서 지붕을 오르내리거나 높은 나무를 오르내릴 때 사용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락방을 오르내릴 때도 이용한다. 이처럼 사다리는 지상에서 수직에 가까운 상승과 하강을 위해 고안된 도구지만 시에서는 대부분 '꿈/몽상의 상승'을 상징한다. 지붕 위에 무한히 펼쳐진 허공을 오를 때도 시인들은 '사다리'라는 장치를 이용하는 것이다(이때 사다리 위의 높푸른 허공은 이상 세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시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사다리를 타고 하늘 끝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여기에 '푸른 사다리'란 다방이 있다. 이 다방의 지붕엔 굴뚝 옆에 푸른 사다리가 하나 얹혀 있다. 이 다방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사다리를 통해 자신의 꿈/몽상을 먼 허공으로 "올려 보낼" 수 있다. 다방은 만남의 장소이지만 혼자서 죽치는 밀실이기도 하므로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꿈/몽상을 키울 권리가 주어진다. 그리하여 그것은 사다리를 타고 굴뚝 연기처럼 "먼 데"로 올라가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른다(이 기대감이 지속되는 한 꿈/몽상의 상승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꿈/몽상이 깨어지고 초라한 현실로 돌아올 때, 즉 상승했던 기대감이 한계에 부딪혀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추락할 때, 사람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사람씩 쓸쓸해지고('쓸씀함'은 복수가 아니라 단수의 개념이다), 몸이 아프고 슬픔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극단적 좌절감에 빠진 "누군가"는 "어느 새벽녘" 에 아무도 몰래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 영원히 먼 데로 가고 만다.
비극적인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