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잡는 특무대장 김창룡 제2회》
2. 군(軍) 내부에 포진한 간첩
우리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동족이면서 이념을 달리하는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시련을 받아왔다.
서슬이 시퍼렇던 일본 공안당국의 검거 선풍으로 지하로 숨었던 공산주의자들이 해방과 동시에 고개를 내밀고 지상으로 기어나왔는데 이들이 박헌영, 김삼룡, 이주하, 이강국, 이중업 등이었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해체되었던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여 활동을 재개하였는데, 이것이 남로당이다.
당시 미 군정청이 공산주의 활동을 합법화 하였으므로 남로당은 공안당국의 제재를 받지않았다.
1945년 12월에 국방경비대 창설을 위해 미 군정청이 간부 양성 학교인 군사영어학교를 설립하자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던 일본 육사 출신 김종석 조병건 , 오일균, 만주군관학교 출신 최남근, 이병주 등 10명이 입교하여 국방경비대 장교가 되었는데, 박헌영이 이들을 남로당에 가입시키고 군 내부에 좌익세력을 양성하는 임무를 부여하였으며 이들은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여 군 내부에 1만여명의 좌익세력을 양성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양성된 좌익세력은 유사시에 사용할 무기와 탄약을 비밀리에 확보하였으며, 제주 4.3사건 당시에 직속상관인 9연대장 박진경 대령을 암살하고 한라산 유격대장 김달삼과 내통하면서 9연대의 공비토벌 계획을 김달삼에게 알려주는 등 이적행위를 한 문상길 중위, 여수 14연대 반란사건을 주도한 김지회 중위와 홍순석 중위 등이 김종석과 최남근에 의해 양성된 군 내부 간첩들이었다.
국방경비대는 1946년 1월 15일 태릉에 제1연대를 창설하고 1949년 6월까지 26개연대를 창설하였는데, 김종석 중령은 대전의 2연대장, 최남근 중령은 대구의 6연대장이 되었다.
특히 대구 6연대는 최남근과 김종석이 교대로 연대장 근무를 하면서 좌익세포를 양성했던 곳으로 여기서 사병으로 입대한 김지회 등 여러명을 선발하여 경비사관학교 3기생으로 입교시키도 하였다.
*김종석과 최남근이 6연대장을 교대로 하게 된 것은 당시는 연대장 보직 기간이 특별히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보직 이동이 잦아 연대장 근무를 여러곳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무렵 경비사관학교 생도대장이 오일균 소령이었으며 교수부장이 조병건 소령이었다. 그러다 보니, 경비사관학교 3기 졸업생 281명 중 80%가 좌익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나중에 3기 동기생 60명을 국가전복 및 내란 혐의로 체포하여 숙청한 장본인이 특무대장 김창룡이다.
그 외에도 2대 경비대 총사령관 송호성 준장도 남로당에 포섭된 좌익이었고 여수 14연대 반란사건이 일어나기 2개월 전까지 연대장을 했던 오동기 소령도 좌익이었다.
#박헌영으로부터 공작금을 받아쓰면서 이적행위를 일삼은 군 내외부의 간첩을 잡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다음 회부터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