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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뿌린 나의 뿌리는 뿌린 대로 거둔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인류의 공동체는 옛날부터 오늘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정을 기반으로 발달해 왔다. 그러나 오늘의 인류는 물질과 무력에 눌려 존엄한 가정의 존재와 가치를 망각하고 있다. 따라서 가정윤리의 핵심이 되는 효도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인류의 타락과 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하늘로부터 선본성(善本性), 인심(人心)을 받아 지니고 있는 인간은 다시 본연으로 돌아가서 가정윤리를 되찾고 건전한 가정을 재건해야 한다.
이 말은 이미 오래전에 붕괴된 서양사회를 향하여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의 무너져 가는 효 문화를 예견하여 경종을 울리는 말이니 요즘사람들은 귀 기울여 명심해서 들어야 할 말이다.
요즘의 시대는 옛날과 다르게 의식구조가 빠른 속도로 바뀌어, 효는 붕괴되어 자식이 부모에게 효는커녕 공양도 하지 않는 이상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상하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는 이상한 시대가 되었으니 참으로 이상하다. 늙어 병들고 돈 없다 하여 자식과 며느리에게 학대받고 버림받아 눈 뜨면 마음 둘 데가 없으며 갈 곳도 없다.
우리 부모세대들은 노후대책이 안 되어 돈도 없고 아픈 곳도 많은데다 누구하고 말 붙일 상대도 없어 자연 세상이 싫어져 우울증에 안 걸릴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 세상을 반영하는 며칠 전 뉴스가 있었다. 서울시민 3명 증 1명은 극도의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 고 하는데 노인은 젊은 사람보다 더욱 더 외롭고 고립된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통계의 의하면 2016년 1인 가구 수가 30%를 넘었고 1~2인 가구 수도 절반을 넘었으며 1인 가구 수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부모자식과 형제들은 모두 떨어져 살아 찾아가거나 오지도 않으며 전화연락조차도 하지 않으며 이웃 간에는 문을 굳게 잠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관심조차도 없다. 몇 년을 살면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고 사는 극도의 고립 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옆집에 살면서도 죽은 지 몇 달이나 몇 년이 지나도 죽어도 죽은 줄을 몰라 시신이 백골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종종 T. V뉴스로 듣기라도 하면 섬뜩하며 나도 나중에 저런 꼴이 되지는 않을 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옛날 어르신들은 외롭거나 답답하고 심심할 때 바람 쐬러 간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이웃동네에 마실(충청도 방언)을 가는 것이다.
햇볕도 없는 집안에 계속 있다 보면 심심하고 우울하여 바깥으로 바람을 쐬러 가는 것이다. 우울증은 일시적인 우울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뇌하수체 이상으로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해서 생기는 병이다. 그러므로 우울증은 흔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마음의 병이 아니라 뇌의 병이다.
바람을 쐰다는 것은 공기욕을 뜻한다. 삼림욕(森林浴)은 해수욕, 일광욕, 공기욕을 이르는 삼욕 중 공기욕의 하나인 삼림욕으로 볼 수 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맑은 날 산속에서 숲을 거닐며 삼림욕을 하면서 동시에 햇볕을 쬐는 일광욕은 기분이 상쾌하여 우울증이 치유되며 예방도 된다.
그 과학적인 근거는 햇볕에는 행복호르몬이라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시켜 우울증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햇볕 속의 자외선은 혈압을 내리는 작용을 하여 고혈압환자에게 좋으며 햇볕을 쪼이면 멜라토닌을 생성시켜 밤에는 잠이 잘 오게 하며 몸은 가볍고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병원에서 우울증의 처방제로 쓰이는 프로작이나 졸로프트 같은 약은 바로 세로토닌의 분비를 활성화시켜 주는 물질이다.
그러나 약보다는 천연치유제인 햇볕을 쬐는 것이 약보다 훨씬 좋다. 이유는 우선 햇볕은 돈이 들어가지 않으며 약물의 부작용이 없어 무엇보다 좋다. 그리고 숲의 흙속에는 우울증을 치유하는 미생물인 미코박테리움 바카이 라는 미생물이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영국의 신경과학이라는 학술지에 보고한 연구결과다.
그리고 숲속의 식물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는 인체를 진정시켜 주는 효과가 있어 우울증을 치유해 주는 효과도 있다. 햇볕이 없는 집안에만 오래 머무르면 우리 몸은 무겁고 자연 답답하며 우울해 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땐 집 안에만 있지 말고 바깥으로 나와 햇볕을 쬐고 숲을 거닐면 바람 쐬는 효과가 있어 몸은 가볍고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우울증도 사라진다.
오늘을 살며 나는 돌이켜 생각해 본다. 나는 살아생전에 부모님에게 무엇을 하였으며 내 자식을 사랑하듯 나의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경하였으며 사랑을 베풀었는가 하고 내 자신을 돌아본다. 지나온 세월은 후회스러워 허망하고 가슴속은 서글프고 허전하여 우울하다. 지나온 날을 생각하니 나는 살아생전엔 부모님에게 지독한 불효자식이었기에 평생을 죄책감에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자식에게는 늘 미안한 생각이 드는데 이유는 자식을 낳아 금 수저까지는 몰라도 은수저라도 입에 물려주어야 하는데 그렇게도 못한 것 같아 마음은 자식에 빚을 진 것 같은 기분이 들며 또한 남의 자식들처럼 풍족하게 해 주지 못한 것 같아 또한 늘 미안한 마음이다. 나의 부모님에게는 제대로 공경과 효도를 하지 못하여 죄인의 심정으로, 나의 자식에게는 제대로 넉넉하게 해 주질 못하여 빚쟁이가 된 기분으로 살아가니 마음이 편치 않다. 사람으로 태어나 부모의 자식으로 내 자식의 아버지로 사람답게 사람소리 들으며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녹록(錄錄)치 않다.
과거의 흘러간 시간은 분명 아주 오래된 세월 같은데 짧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남은 미래의 시간 역시 지나간 시간처럼 짧으며 생각처럼 길지 않으며 또한 불확실하여 죽음의 순서조차 알 수 없이 살아가는데 이 또한 불확실하고 순서를 알 수 없어 행복한 삶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의 순서에 의한 죽을 날짜를 알고 산다면 공포감에 하루도 살아가기 힘들다. 다행히 우리들은 하늘과 신의 뜻에 따라 그 순서와 죽게 될 날짜를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으로 하루를 즐겁게 살아 갈 수 있다. 흘러간 시간은 짧으며 미래 역시 알 수 없는데다 짧다. 서둘러 살아야 한다, 오늘하루를 서둘러 살면서 살아 있을 때 부모님을 자주 뵙고 전화라도 하여 사랑을 전하여야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 갈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 찾아 뵐 수도 없으니 이 얼마나 비통하고 불행한 일인가. 부모님과 같이 살아있었을 때는 같이 살고 있는 부모님의 소중한 의미조차 몰랐는데 지금은 그저 부모님이 살아계시기만 해도 행복이 아니겠는가.
지금 내 나이 또래에 아직도 부모님이 살아계신 행복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 부모님의 연세는 대략 100살 정도이다. 100살의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은 부모님자신은 물론 자식들에게도 큰 축복이다.
몇 년 전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를 보았는데 60대의 아들이 90살의 아버지를 병간호를 하는 사연이었다. 그 병상의 아버지는 현대의료기의 기계적 장치에 의하여 숨만 쉬고 아무 의식이 없는 뇌사상태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식물인간이었다.
그런데도 그 아들은 그런 아버지 곁을 24시간 지키며 병간호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아버지가 저렇게라도 산소호흡기로 살아있어야 하며 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살아있다는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당장 산소호흡기만 떼버리면 바로 죽는다. 그러나 산소 호흡기를 떼지 않고 살아있게 한다는 것은 삶과 죽음과의 큰 차이로 자식에게는 정신적인 삶의 안위가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요즘 같은 세상에 찾기 힘든 효자가 아닐 수 없다.
며칠 전에 K.B.S의 인간극장을 잠깐 보았는데 주인공은 4대를 거느린 다복한 집안의 75살의 증조할머니인데 그것도 일곱 살인 증손자가 있음에 놀라웠으며 또한 너무 부러웠다. 75살에 어떻게 4대를 볼 수 있는가 놀라웠는데 그렇게 되려면 4대 모두가 결혼을 일찍 해야 가능한 일이다. 본인 혼자서야 일찍 결혼을 할 순 있다지만 4대 모두가 일찍 결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그렇게 4대 집안을 이룬다는 건 요즘 세상에 찾아보기 힘든 가정으로 다복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92살의 할아버지도 4대를 둔 어르신이었는데 증손자가 6살인데 그 할아버지는 치매초기로 증손자를 보면 `너 누구냐` 하고 물어본다고 하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치매에 걸려 자기 증손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고 있으니 참 불행한 일이다.
92살의 연세로 장수한 다복한 4대의 가정을 이루었지만 증조할아버지가 자기증손자인줄 몰라보고 산다면 장수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4대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건강은 신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뇌건강도 매우 중요하다. 뇌의 질환인 치매는 동물 중에서 인간에게는 생기는 병이다. 예방을 위해선 육체운동뿐만 아니라 뇌 운동도 해야 한다.
뇌 운동은 독서, 외국어공부, 바둑 두기가 가장 좋다고 하는데 그것도 귀찮아서 하기 싫다면 껌 씹기를 권한다. 껌 씹는 일은 뇌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나를 낳아 주시고 키워 준 부모님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면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면 동물과 같다.
공자의 제자인 자유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근자에는 효를 공양하는 것 만으로만 생각하지만 개와 말도 키워주고 있다.
부모를 존경하지 않으면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 말은 자기를 낳고 양육해준 부모에게 감사하고 부모를 잘 섬기고 정성껏 공양해 올리는 것은 1차적인 효도다. 그러나 외형적. 물질적 공양에도 진정한 사랑과 존경심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자식은 부모를 통해 생명과 육신을 이어받았다. 그러므로 자식은 육친애(肉親愛)를 바탕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집안을 흥성케 해야 한다. 부모에게 효도를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 상예(喪禮)는 인간세계에만 존재는 예(禮)로서 상예(喪禮)가 없는 동물세계에서는 죽으면 그만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그런 상예(喪禮)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고 그냥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 하나는 예(禮)라는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갖가지 의식을 치르는데 효심 깊은 집안은 죽어서도 대를 이어가며 자자손손 제례(祭禮)를 지낸다.
인간이 예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간취급도 못 받는다.
예는 하늘의 도리를 바탕으로 정해진 엄격한 위계질서의 법도다. 예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인간의 도리를 행하는 인간만이 행하는 의식행위다.
부모님은 나를 받쳐주고 지탱해 주는 내 생명의 근원이며 나의 뿌리이다.
<내가 뿌린 나의 뿌리(=부모)는 뿌린 대로 거둔다>. 이 말은 나의 뿌리인 부모님에게 효를 베풀어야 나의 자식이 그걸 보고 배워 내가 부모님에게 베풀었던 효가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효자 집에 효자 나온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나라 속담과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로서 뜻이 같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불효자 집에 불효자가 나온다는 말이기도 하다.
위의 말대로 불효자인 나도 나의 부모님에게 불효자였기 때문에 나는 지금 나의 자식들로부터 효도를 받지 못하고 있다.
위로는 살아생전에 나의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못하였고 아래로는 나의 자식들로부터는 효도를 받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지금 나의 삶은 이중으로 괴롭고 가슴이 아파하면서 한편으로 살아생전에 나의 부모님에게 불효했음을 후회막급하며 통탄한다.
제사상에 음식가득 차려놓고 절하고 부모님 묘소 앞에서 절을 하면서 불효자를 용서해 달라고 땅을 치고 통곡해봐야 아무 소용없고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자신이 괴로워 괴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런 제례(祭禮)를 갖추어 자기안위(安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지금 살아계신 부모님과 같이 사는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뒤늦게 부모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내가 여생을 행복하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면 불우한 시대에 태어나 고생만 하고 자식에게 헌신한 나의 부모님을 사랑으로 찾아뵙고 문안인사 드리고 다정다감한 가족얘기 나누며 맛있는 음식이라도 대접하여 부모님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가슴앓이를 하며 불행하게 여생을 살아가게 된다.
과학이 발달하고 사회가 변천하며 아울러 서양의 개인주의에서 나타나는 의식구조는 동양의 의식구조와는 매우 상반된다.
서양은 효도와 경노사상이 이미 무너진 지 오래이다. 서양인은 동양의 효도와 경노사상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부러워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도 효도와 경로사상이 많이 무너져 일부계층에서나마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이 세상에 저절로 태어나지 않았으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나온 하느님의 독생자도 아니다.
나의 부모가 있어 내가 있는 것이다. 부모님의 세월은 영원하지 않으며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고 언제인가 홀연히 떠나간다.
나의 부모님과 한 세상을 살았다는 것은 하늘의 운수로 태어나 이승의 세계에서 만나 부모자식과의 인연이 되어 소풍(消風)와서 바람(=風)쐬고 즐겁게 놀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앞에서 말한 바람 쐬러 마실 간다는 뜻과 일맥상통 함)
시인 도연명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에서 “이 세상에 살았다고 하는 사실은 잠시 형체(形體) 및 육신(肉身)을 현상세계(現像世界), 즉 有를 초월한 無의 세계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죽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실제로 되돌아간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그는 죽음을 옛집으로 돌아간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승에 온 것은 마치 나그네가 잠시 여관(旅館)에 들렀던 것과 같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손님(=客)을 맞아주던 집을 떠나 영원히 본가(本家)로 돌아가고자 하노라. 이 시는 천상병시인의 소풍이라는 시와 뜻과 맥(脈)을 같이 한다. 도연명시인은 언제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할 수 있었다. 정다운 가족이나 친척들과 참된 정이 넘치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즐거워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살아생전에 부모자식들과 화목하게 즐기고 어울려 살아야 한다. 그러나 부모님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언제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리고 부모자식으로 두 번 다시 이승에서의 삶을 맞이할 수 없다.
효도는 내일로 미루면 안 된다. 내일은 있지 않을 수 없으며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只今)은 이미 흘러간 과거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의 경계가 되는 바로 이 시간이다. 지금(只今) 부모님을 찾아뵙고 맛있는 음식 나눠 먹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고 웃는 낯으로 즐겁게 해 드려라.
그리하면 자식은 그걸 보고 배워 이다음에 커서 부모가 했던 대로 그대로 배워 따라 하게 된다. 효자 집안에 효자 나온다는 속담처럼 효도하는 길은 매우 간단하고 크게 힘들지 않으며 큰 돈 안 들어간다. 그렇게 하여야 남은 나의 삶이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다. 영국속담에 Money makes the mare to go-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는 말처럼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살이에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돈 가지고 안 되는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건강과 자식농사이다. 왜 건강과 자식농사가 돈으로 안 되느냐하면 하늘과 신의 뜻인 공평무사(公平無私)의 절대선의 진리에 의거 인간 모두에게 부여한 공평함 때문이다. 진짜건강법은 돈으로 살 수가 없고 오직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부자들은 돈으로 건강을 사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하는데 세계최고의 재벌과 갑부들은 천하제일의 약을 사먹었으나 결국은 다 병으로 죽었다. 이유는 돈을 주고 사먹는 약은 인체의 자연 생리기능을 마비 악화시켜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자식농사 역시 돈 가지고 훌륭한 자식, 효도하는 자식을 만들 수 없다. 세상의 돈과 재물은 오히려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행의 씨가 되는 경우가 많아 부자의 자식들은 부모재산 가지고 쌈질하고 쌈질로 안 되면 재판을 해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만다. 부자 집안에 불효자가 많으며 가난한 자의 집에는 효자가 많다.
돈은 노력하면 다시 벌 수 있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행한 불효는 노력해도 복구가 되지 않으며 노력하면 할수록 가슴만 저미고 아프다. 늙고 병든 부모 앞에 오늘의 나는 젊고 건강하지만 부모가 돌아가시면 나도 나의 부모가 그랬듯이 나의 자식 앞에 늙고 병든 부모가 된다. 내 자식들이 보고 있을 때 내 부모님에게 보란 듯이 잘 해라. 잘 못하면 내가 부모님에게 했던 걸 내 자식이 보고 그대로 보고 배워 따라한다.
공자가 말 했다. “부모의 연세를 잘 기억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만 하다”
이 말은 인간의 생사(生死)는 원천적으로는 하늘이 주관한다(=人命在天). 사랑하는 자식이 병들어 죽는 경우, 부모라도 어쩔 수 없이 보내기 마련이다. 효자의 경우도 같다. 날로 노쇠해 가는 부모의 수명을 인간의 힘으로 연장할 수 없다. 다만 주어진 시간을 아껴서 효도를 해야 하는데 이를 애일지성(愛日至誠)이라 한다. 늙은 부모를 모신 자식은 하루를 아껴서 정성껏 효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생은 수레바퀴이란 말이 있다. 수레바퀴는 자리가 정해 진 게 없이 서로 자리를 바꾸며 다 같이 겪으며 돌아가게 되어 있다.
세월 속에 어제의 자식은 늙은 부모가 되고 그 자식의 자식은 젊은 자식이 되어 부모님을 공양한다.
돌고 도는 수레바퀴인생을 달통한 사람은 그 심오한 기미를 알고 다시는 미혹(迷惑)된 삶을 살지 않는다.
서경(書痙)에 나오는 말이다. “천지는 만물의 부모이고, 사람은 만물의 영(靈)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