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유시인(吟遊詩人) ▲ 트루바두르(troubadour) 12~13세기에 남프랑스를 중심으로 활약한 중세의 시인겸 음악가들이다. 북프랑스의 트루베르(trouvère), 독일의 미네징거와 함께 중세의 세속가요를 전했으며,음유시인이라고도 부른다. 그 중 트루바두르의 음악은 악보에 남겨진 가장 오랜 세속가요다. 십자군원정 이래로 기사계급의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이 높아져 반도덕적, 반그리스도교적인 세속음악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그러나 13세기 중엽에 정치적인 불안으로 급속히 쇠퇴되었다.
음악은 단선율이며, 시와 음악이 같은 관련을 맺소 있다. 일정한 형식을 지닌 곳(발라드·론도·비틀레 등)과 이야기풍의 (샹송 드 제스트) 것으로 나뉘며, 그 중에서도 르프랭(후렴)을 수반하는 것이 즐겨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남부 프랑스의 푸아티에(Poitiers) 백작이자 아키텐의 공작인 기욤(Guillaume d’Aquitaine, 1071~1126)을 최초의 트루바두르로 보고 있다.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들은 주로 작시·작곡만을 했으며, 실제 노래와 연주는 직업적인 예인인 종글뢰르(jongleur)들에게 맡겨진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종글뢰르란 마을에서 마을로 방랑하면서, 성채 안이나 술집 또는 마을 광장에서 요술이나 곡예·카드 묘기·훈련된 동물의 묘기 등을 보여주거나, 무용담이나 사랑 이야기를 낭송하기도 하고, 가수·악기 연주자 그리고 무용수 역할까지도 하는 예인들이며, 민스트럴(minstrel)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종글뢰르(라틴 어로는 joculatores)의 문자상의 의미는 ‘마술사, 어릿광대’이며, 민스트럴(라틴 어로 ministeralis)에는 ‘기능인’이라는 의미도 있다. 결국 이 두 명칭은 같은 사람들을 칭하는 말로서, 종글뢰르는 일반적으로 경멸하는 의미로 부를 때 사용되고, 민스트럴은 조금 격을 높여 부를 때 사용되던 명칭이다.
▲ 트루베르(trouvère)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말에 걸쳐 북프랑스에서 활약한 음유시인을 말한다. 귀족 출신의 시인 겸 작곡가로 트루바두르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여, 차츰 시민층으로 계승되어 갔다. 선율은 시에 종속된 경향이 강했으며,파스투렐 등을 주로 하는 발라드(춤곡)형식이 주로 애용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대(大)트루베르라 부라 불리며 다성의 샹송과 목가극 <로방과 마리옹의 극>을 남긴 아당드 라 아르(1237경~1287)가 있다. 피들을 연주하는 민네징거 하인리히 폰 마이센과 친구들 (1300년경)
▲ 민네징거와 마이스터징거(Meistersinger) 프랑스의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는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활약했던 독일의 시인-작곡가 민네징거와 마이스터징거의 모델이 되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베아트리스가 1156년에 신성 로마 황제인 프리드리히 1세(Fridrich Barbarossa, 1152~90 재위)와 결혼하면서 프랑스의 음악이 소개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결혼하면서 트루베르 기요 드 프로뱅(Guiot de Provins)을 독일로 데려갔고, 이들을 통해 프랑스 음악과 문학은 독일의 예술과 사고에 영향을 주었다.
민네징거는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그 활약이 왕성했으며 다양한 주제의 노래들을 창조했다. ‘민네’는 ‘사랑’이라는 의미로, ‘민네징거’란 ‘사랑의 가인’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이러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주로 이들이 귀부인들의 사랑에 관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민네징거로는 포겔바이데(Walther von der Vogelweide, 1170경~1228), 로이엔탈(Neidhart von Reuenthal, 1190경~1237경), ‘숙녀 예찬(Frauenlob)’이라는 별명을 가진 마이센(Heinrich von Meissen, 1250경~1318) 등이 있다.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음악극 ‘탄호이저(Tannhäuser)’(1845)에 등장하는 탄호이저(1205경~1270경)와 볼프람 폰 에센바흐(Wolfram von Eschenbach, 1170경~1220경)는 비록 음악극의 내용 자체는 허구이지만 실존했던 민네징거들이다. 바그너의 음악극 ‘파르지팔(Parsifal)’은 볼프람의 서사시 ‘Parzival’에 기초한 것이다.
민네징거의 계승자들은 주로 교양 있는 중산계급 출신이었던 마이스터징거들로, 15세기와 16세기에 융성했다. 마이스터징거들의 노래는 민네징거의 것에 비해서 좀더 엄격한 규칙을 사용하여 보다 딱딱하고 비표현적이었다. 가장 유명한 마이스터징거들은 나흐티갈(Konrad Nachtigall, 1410경~84경)과 작스(Hans Sachs, 1494~1576)로, 특히 작스는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1861~1867)를 통해서 그 불멸의 이름을 남겼다. 마이스터징거들은 독일의 주요 도시들에서 조합(guild)을 결성하고 있었고,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조합의 하나가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조합이었다.
<출처 : 서양음악사 100장면(1),pp.98~105.>
● 참고 : 방랑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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