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륭 경남 진주 출생.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외. 청소년시집 『사랑이 으르렁』. 동시비평집 『고양이 수염에 붙은 시는 먹지마세요』. 동시집 『앵무새 시집』 외. 이야기동시집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
2013년 제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2014년 제9회 지리산문학상, 2020년 제5회 동주문학상 수상.
당선작
비단잉어
김륭
비단잉어에게 비단을 빌려
당신에게 간다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바람은 글을 쓸 수 없어서 못 다한
인생에 피와 살을 더할 수 없고
당신은 누워 있다 요양병원 침상에 누워만 있다
떠날 수 있게 하려면 물에 젖지 않는
종이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죽어서도 뛰게 할 당신의 심장을
고민하고 있고, 당신은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반짝인다 비단잉어에게 빌린
비단을 들고 서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다
허공에 고양이수염을 붙여주러 온
미친 비행기인양,
내가 낳았지만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걱정 마, 엄마는
지금 엄마 배 속에
있으니까
제5회 시와경계 문학상 심사 경위
제5회 시와경계 문학상 심사를 마쳤다. 올해 심사는 시와경계 문학상 기수상자인 김효선 시인, 손진은 시인, 오민석 시인(평론가)과 천융희 편집장이다. 심사 대상은 2020년 겨울호, 2021년 봄호, 여름호, 가을호에 게재한 모든 시와 평론이다.
심사위원당 각 10편씩 추천작을 선정해서 작품당 최다수 득표를 한 시인을 선정했다. 총 23명의 시인이 추천되었으며 개별 작품으로는 총 29편이었다. 그 중, 동일 작품으로 2표를 얻은 시인은 곽효환 시인-「시베리아 횡단열자4」, 김신용-「못」, 박해람-「염소와 비」, 성윤석-「사실」, 손창기-「울음의 인연」, 유종인-「계곡물」, 이설야-「앵무새를 잃어버린 아이」, 정선-「밀양」 이었다.
김륭 시인의 「비단잉어」는 작품당 가장 많은 3표를 받았다. 심사평은 전 수상자인 오민석 평론가 썼다.
수상소감
다시 비단잉어에게 갑니다
김륭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을 자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주 보고 누운 자세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다시 비단잉어에게 갑니다. 비단잉어에게 비단을 빌려 당신에게 갑니다. 꺼져가는 눈빛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생각했습니다. 숨을 내쉬지 않고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비를 걷어와 묶어둘 수 있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이미 묶여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둘이서 하고 싶은 일을 생각했습니다.
고백컨대 나는 지금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엊그제 비로 만든 사람과 눈사람을 만드는 중입니다. 곧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입니다. 나무의자가 된 기분입니다. 혼자 서있습니다. 나무의자가 혼자 서있는 기분으로 나는 나를 기억해줄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발이 잠들 때까지 걷다보면 아름다움을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첫눈처럼 내려놓고 싶습니다. 눈사람을 함께 만들어줄 당신에게 제 손을 드립니다. 훗날 비단잉어로 돌려받을 날을 기다립니다. 졸작에 비단을 입게 해주셔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 배 속에 있는 엄마를 꺼내 비단을 선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눈처럼 두고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심사평
불가항력 앞에 선 절망의 언어
올해에도 네 명의 심사위원이 작년 겨울 호부터 올해 가을 호까지 《시와경계》에 실린 모든 작품을 검토하였다. 꼼꼼히 읽기에 적지 않은 양이었고, 심사위원마다 각 10편씩 추천작을 내놓는 작업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시인이 윤슬처럼 넘실거리며 시의 빛을 건지고 있는 풍경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골방에서 잠 못 이루는 시인들의 외로운 뒷모습이 어른거렸고, 저마다 다른 기량을 가진 문사文士들이 언어의 창검을 휘두르며 고투하는 모습도 연상되었다. 날실과 씨실로 새로운 언어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
집계 결과 심사위원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작품은 김륭 시인의 「비단잉어」(2021년 가을 호, 통권 50호)였다. 김륭은 시적 대상에 말려들지 않고 그것과 비판적 거리를 확보할 줄 아는 시인이다. 일종의 소격효과(alienation effect)라 할 수 있는 이런 전략을 통해 그는 대상과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다. 요양원에 어머니를 보내고 괴로워하는 소재는 요즘 들어 얼마나 흔한 글감인가. 또한 이런 주제는 센티멘탈리즘의 몽둥이로 얼마나 간단하게 시인을 쓰러뜨리는가. 김륭은 그 모든 통회痛悔의 감정을 뒤로 밀어내고, 흔해 빠진 주제를 낯설고 새롭게 만든다. 그는 대상과의 동일시를 최대한 거부함으로써 감상적 오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이 작품은 별리別離의 슬픔도, 아픈 추억도, 도래할 애도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죽음이라는 불가항력 앞에서 시적 언어가 취해야 할 새로운 자세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언뜻 읽으면, 상호연결이 되지 않고, 설명의 기술을 활용하지 않은 난해한 진술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야말로 김륭 시인의 전술이다. 그는 시가 인과관계의 담론이 아니며 비약과 일탈의 모자이크 언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시는 곧 다가올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불가항력 앞에서 징징거리거나 아픈 심정을 내어놓고 구걸하지 않는다. 엘리엇(T. S. Eliot)의 ‘비개성의 시학(poetics of impersonality)’처럼, 김륭은 아픈 마음을 직설하는 대신 그것에 상응하는 객관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들을 냉정하게 배치한다. 길지 않은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가능한 것’들의 목록을 나열하고 있다. 비단잉어에게서 비단을 빌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고, 다른 재료를 더하지 않는 한, 물에 젖지 않는 종이는 없다. 죽어서도 뛰는 심장은 존재하지 않으며, 비행기가 허공에 고양이수염을 붙이는 일도 가능하지 않고, 가까운 미래에 죽을 엄마가 “엄마 배 속”에 있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 시를 난해하게 만드는 것은 이 목록들 사이에 논리적 연관성이나 인과관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이것들은 하나 같이 ‘불가능성’이라는 의미소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다. 시인은 (불가능성의 의미소를 가지고 있는) 객관 상관물들을 나열함으로써, 죽음이라는 불가항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언어’를 감정의 개입 없이 보여준다. 구전 담론에서 잉어가 효도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고, 비단이 선물하기에 가장 좋은 옷감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이와 같은 냉정한 비유에 약간의 친절한 설명을 보태준다.
문학(예술)은 새로움을 궁구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소멸의 장르이다. 지각은 쉽게 지치며 새로움을 클리셰로 만든다. 이 엄정한 격전장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외롭고, 높고, 쓸쓸한”(백석) 일이다. ‘시와경계문학상’이 그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들에게 작지만 큰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빈다. 수백 대 일의 엄정한 경쟁을 뚫고 제5회 ‘시와경계문학상’을 받게 된 김륭 시인에게 깊은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아울러 계간 《시와경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이 큰 기쁨을 나눈다.
심사위원: 손진은, 김효선, 천융희, 오민석(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