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의(南儀) - 충경공 충간공 참판공파 8세
▲ 충간공(忠簡公) 남지(南智)의 5남 – 남의(南儀)
남의(南儀, ?~?)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관은 의령(宜寜)이며 참판공(參判公)파 파조이다. 증조부는 조선개국 1등 공신이며, 영의정을 지냈고 충경(忠景)의 시호를 받은 남재(南在)이시다. 조부는 병조의랑 남경문(南景文)이고, 부친은 좌의정 지냈고, 충간(忠簡)의 시호를 받은 남지(南智)이다. 모친은 전의 이씨(全義 李氏) 이문간(李文幹)의 딸이다. 부인은 영천이씨(永川李氏) 영양군(永陽君) 이응(李膺)의 손녀이다.
남의(南儀)의 생몰년일은 기록이 없으며 단양군사(丹陽郡事) 지냈으며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활동 시기는 예종실록의 기록으로 1450년 전후로 추측된다. 배위는 영양군(永陽君) 이응(李膺)의 손녀로 예종실록의 기록엔 이씨로 기록되어 있으며 과부로 지내다 재가(再嫁)를 하였고 1469년에 졸하였다. 자녀는 효달, 효운 두아들이 있다.
◆ 남의(南儀)의 가계도 - 충경공 충간공 별좌공파 8세
영의정 재(在) 충경공 | 5세 |
경문(景文) 의랑공 | 6세 |
휘(暉) 의산위공 | 간(簡) 직제학공 | 지(智) 충간공 | 7세 |
| | 동 | 의(儀) | 휴(休) | 구(俅) | 칭(偁) | 윤(倫) | 8세 |
| | | 참판공 (參判公) | 별좌공 | 간성공 | 부정공 | 감사공 | 파 |
◼ 증조부 : 남재(南在, 1351년~1419년)-조선의 개국공신, 영의정
◼ 조부 : 남경문 (南景文, 1370년~1395년/1403년) - 병조의랑, 영의정부사에 추증
◼ 조모 : 숙녕택주(淑寧宅主) 온양 방씨(溫陽 方氏) 방순(方恂)의 딸,
판전교시사(判典校侍事), 참의(參議) 고려의 문신, 호 만송당(晩松堂)
◼ 부 : 남지(南智) 1392년~1454년 좌의정
◼ 모 : 전의 이씨(全義 李氏) 이문간(李文幹)의 딸
장남 : 남윤(南倫) 황해감사
차남 : 남칭(南偁) 내섬시부정
3남 : 남구(南俅) 간성군수
4남 : 남휴(南休) 별좌
5남 : 남의(南儀) 참판
부인 : 영천이씨(永川李氏) 영양군(永陽君) 이응(李膺)의 손녀
- 장남 : 남효달(南효달) 좌랑
- 장남 : 남효운(南효운) 감찰
6남 : 남동(南仝) : 절손
▶ 예종실록의 기록 – 남의
1469년(예종 1년) 6월 22일 고(故) 단양 군사(丹陽郡事) 남의(南儀)의 아내 이씨(李氏)가 졸(卒)하였다. 〈이씨는〉 영양군(永陽君) 이응(李膺)의 손녀인데, 갑자기 죽었다.
의령남씨 남의, 별좌공파 남의, 단양군사 남의, 좌의정 남지 , 남의 (南儀) 충간공 별좌공파 남의
<참고문헌>
의령남씨 족보
예종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