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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일 주일 메시지
시리즈 제목: 신약성경의 세상살이 가이드
4. 요한이 새롭게 들려주는 예수님 이야기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설교 목적
공관복음은 사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을 제외한 세 권의 복음서다. 요한복음은 다른 관점으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세익스피어의 걸작은 해마다 새롭게 해석되어 공연되고, 모짜르트 같은 대가의 작품도 새롭게 해석되어 다시 연주되듯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새로운 관점에서 기록되었다. 새로운 관점으로 기록된 예수님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그 이야기가 새로운 시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먼저 읽게 되는 성경이 요한복음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에서 처음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들이 소책자로 만든 성경을 전해주고 갔는데 그것이 요한복음이었다. 나중에 신학을 공부하면서 김세윤 박사의 글에 보니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심오한 책이 요한복음이라는 내용이 있었다(김세윤 교수의 요한복음 강해 참고). 대가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가 보다. 하지만 나에게는 성경 전체가 쉽지 않다. 한평생 한 권의 책을 듣고 읽고 배우며 자랐으므로 익숙해서 그렇지 이 고대의 문서를 이해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신약성경이 들려주는 세상살이 가이드’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세 번의 설교를 통해서 (1)마가복음과 (2)마태복음, 그리고 (3)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다루었다. 한번에 책 한권을 통으로 정리하는 일은 쉽지는 않지만 그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생각해 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성경 전체가 결국 어떤 말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해서 탐구해 왔다. 이제 각 권으로 좁혀 생각해 보는 과정이다. 앞으로는 더 세밀하게 살펴보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복음서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로 소개된 새로운 세상의 도래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마태복음에서는 그 새로운 세상의 마그나카르타에 해당하는 가르침을 다룬다고 정리했다. 그리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람들의 모범을 살펴보았다. 이제 요한복음을 살펴볼 차례다. 나는 요한복음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공관복음과 다른 요한복음의 새로운 관점이 어떤 것인지, (2)요한복음이 소개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3)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 그리고 (4)요한복음이 가르쳐주는 세상살이 가이드는 무엇인지.(에고 에이미에 대하여 전에 쓴 글 참고)
나는 앞의 세 설교에서 리차드 헤이스의 글을 주로 참고했는데, 이번 요한복음은 톰 라이트의 글을 여러 번 읽고 생각했다. 톰 라이트는 요한복음의 독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즉, 제2성전기 유대인들의 세계관에 대하여 톰 라이트는 많은 글을 쓰고 있다. 그런 글은 2천년 후의 독자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설교 개요
1.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이야기
2. 요한복음이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계시자
3. 하늘에서 오신 이가 보여주신 하나님의 영광
4. 요한이들려주는세상살이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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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이야기
2021년 10월 현재 우리나라의 드라마 하나가 전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 드라마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현재 세계 66개국에서 방영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 즐겨 놀았던 놀이를 소재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게임들은 딱지치기, 구슬치기,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것으로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456억의 돈이 걸린 게임에서 455명이 죽어야 1등을 차지한다는 비정한 내용입니다. 세계인들이 이 드라마에 공감하는 까닭은 지금 세계가 이처럼 돈을 향하여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달음질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년 전에 우리나라 영화로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기념비적인 영화가 있습니다. 그 제목은 ‘기생충’입니다. 그 영화의 내용도 사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비극을 다루었습니다.
돈을 향한 집착이 낳은 비극을 다룬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도 얼마나 많습니까? 흥부와 놀부는 그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필요로 할까요? 그것은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그 어디에서나 이야기는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로 노래를 만들어 듣고, 연극과 영화로 제작하여 관람하면서 사람은 자신과 세계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마치 길을 잃은 것처럼 방황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나며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 이야기를 지도 삼아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의 이야기도 네 개가 되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그것입니다. 마태와 마가, 누가복음은 비슷한 관점으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래서 그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Synoptics)이라고 부릅니다. 공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메시아십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가문에서 나신 분이며, 열방을 위한 빛이 되라고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온 세상을 구원하실 구원자이시며, 교회를 세우셔서 그 일을 계속하라고 위임하신 분입니다.
저는 지난 세 번의 설교를 통해서 마가복음은 새 시대가 왔다고 선포하신 예수님을 소개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은 그 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가짐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로 소개된 새로운 세상을 세우는 사람들의 모범을 소개했습니다. 그 모범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행적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요한복음은 앞의 세 복음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펼쳐 나갑니다. 요한복음에도 예수님의 세례와 표적 행하심, 그리고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공관복음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소개됩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즉, 요한복음은 유대세계를 넘어 헬라 세계로 더 많은 세계인들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더 널리 전하기 위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와 다른 점은 그 이야기의 시작이 창세기와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그가 없이는 하나도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여기서 보듯이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소개할 때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요한복음은 유대인들뿐 아니라 세계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릴 적 놀던 놀이를 소재로 하여 만든 이야기인 ‘오징어 게임’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것처럼 요한복음은 유대인의 울타리를 넘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려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이 소개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2. 요한복음이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계시자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신 그분을 가리켜 요한은 ‘말씀’이라고 소개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지혜로 하늘을 창조하셨고(시 136:5) 땅에 터를 놓으셨습니다(잠 3:19). 그런데 요한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는데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요 1:14). 이것이 요한복음이 예수님을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으로서,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며,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아버지 품속에 계시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습니다(요 1:18). 그러므로 요한복음이 소개하는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요한복음이 소개하는 예수께서는 땅에서 하늘로 연결된 사닥다리와 같은 분입니다(요 1:51). 그 사닥다리를 통하여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성취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의 속마음을 다 아시기에 누구에게 ‘저 사람 어떤 사람이냐?’ 하며 물으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요 2:24~25).
요한은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합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요한복음 3:31~32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셔서 하늘에서 본 것을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증거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9). 이 말씀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과 같은 형상을 가지신 분임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골 2:9)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빌 2:6).
히브리서도 예수님에 대하여 요한복음과 같은 방식으로 소개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3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리라’(요 2:19)고 말씀하셨다고 소개합니다. 즉,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라는 말입니다. 성전이 무엇입니까? 그곳은 하나님이 계시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곳, 그곳이 성전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에 대하여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었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에서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천사들을 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요한복음 20:11~12
마리아가 본 것은 무엇입니까?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체 뉘었던 곳에 앉아 있습니다. 하나는 머리 편에, 다른 하나는 발 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두 천사가 앉아 있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성소의 언약궤 덮개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그 백성을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이라고 소개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인 시은소(施恩所, mercy seat, the throne of grace, 히 4:16)이기도 합니다. 시은소는 은혜의 보좌로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곳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요한복음이 소개하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되신 분임을 아는 것을 요한은 영생이라고 했습니다(요 17:3).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는 분입니다(요 20:31).
이렇게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그러면 요한이 보여주는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 좀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3. 하늘에서 오신 이가 보여주신 하나님의 영광 – 에고 에이미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에도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표적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표적을 소개하는 방식은 좀 독특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표적을 행하시고 그 표적과 관련된 설명을 하십니다. 예를 들면,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인을 치료하시기 전에도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고 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비유를 들어 소개하셨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 6:25-59)
2.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30)
3. 나는 양의 문이다(요10:1-18)
4. 나는 선한 목자다(요10:1-18)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 11:17-27)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
7. 나는 참 포도나무다(요 15:1-6)
예수님의 제자 빌립은 부탁하기를 ‘주여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요 14:8)라고 했습니다. 빌립만이 아니라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표적은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즉, ‘나는 ~이다’(I am ~, ego eimi, 헬. 에고 에이미)라고 자신을 소개하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은 사람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는 생명의 떡과 같은 분입니다. 어둠에 다니지 않도록 길을 비춰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생명의 꼴을 먹는 양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토록 인자와 긍휼이 풍성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에게 다시 생명을 주시며 인생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포도나무와 같은 분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소개하시는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이미 그 안에 계십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이미 그 안에 생명의 떡으로 하나님이 계십니다. 갈 길을 몰라 방황하는 사람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사람도 그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기적과 표적 속에만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을 나타내는 곳에 하나님도 함께 계신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요한은 복음서와 서신서에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하고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일서 4:16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한복음 15:10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한일서 4:12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은 성전에 와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의 빛이요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하나님은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라고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 가운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4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경건한 백성의 기도요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아름다움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그 아름다움을 예수님이 보여주셨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은 그 사랑과 은혜를 맛보고 자신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만족해하며 그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고자 사모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제자의 길이라고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4. 요한이 들려주는 세상살이 가이드
이제 요한복음이 들려주는 세상살이 가이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전세계인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한국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한국의 영화 ‘기생충’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오늘날 물질을 좇아 살아가는 비정한 인간과 빈부격차로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인간은 이런 드라마를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존재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기독교의 신앙 이야기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들려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어떤 특징(特徵, character)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소명(召命, vocation)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에덴동산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거기서 인간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찬양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피조세계에 드러낼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존재 목적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바로 육신이 되신 말씀이시며 그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소개합니다. 즉, 예수님은 참 인간의 모습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 인간이란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획하신 인간의 존재목적을 보여주는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신다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제자들은 하나님의 참 모습이 사랑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은 생명을 공급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는 생명의 떡이라 할 수 있고, 선한 목자와 포도나무의 모습으로 비유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그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삶을 살라고 초대하는 것 아닐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다고 소개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로 볼 때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하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요한복음의 새 계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4~35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는 아담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열방에 나타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아담은 지음 받고 에덴동산으로 인도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건짐을 받고 성막을 지키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거니셨고 하나님의 영광은 성막과 성전에 충만하게 임재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실패하여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났으며,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형상을 사모하고 나타내는 일에 실패하였고 하나님은 성전을 떠나셨습니다(겔 10장).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다시 그 백성 가운데 돌아오셨으며,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요 20:22). 그때 제자들은 새로운 아담으로 다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된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새로운 창조를 하신 후에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20:21, 23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 우리가 나타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영광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은 곧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대로 실천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이 메시지가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길을 찾았고 진실을 발견했으며, 생명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세계인을 위한 복음이며 온 인류를 위한 생명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 요한복음이 들려주는 세상살이 가이드를 마음에 새기고 그리며 새로운 인생을 열어 갑시다. 그 길은 생명으로 충만한 길이 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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