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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6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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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은 지난 2천 년 동안 성서의 계시와 시대의 인문학, 신앙과 이성,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만나 빚어낸 거대하고 아름다운 정신적 구조물임을 맑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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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제일 학문(scientia prima) -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이상을 추구한다는 점과, 세속적인 세상의 구원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신학이 신 중심적 사유 체계라면 인문학은 인간 중심적 사고 체계 - 둘의 만남은 당연히 갈등을 가져오지만...시대를 불문하고 인문학이 신학에 -큰든 작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부단히 영향을 끼쳐왔다.(15)
정통신학과 플라톤주의
기독교 신학의 출발은 2세기 경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북부 아프리카에서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가 만나면서 시작(15)
이유
기독교가 외적으로 다른 종교와의 구분을 위해, 내적으로는 내부의 이단자들과의 구별을 위해 교리를 구성하고 사상을 체계화해야할 시기(16). - 이 작업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신플라톤주의(플라톤주의)'
Platon(B.C. 427-347) - 예수가 탄생하기 400년이나 전에 존재한 그리스도인(초기 기독교신학자들의 평가)
삼위일체론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가 됨(19)
일자 :
만물이 그에게서 생겨나, 그에게로 돌아가는 근원이자 만물을 끌어안고 있는 포괄자로, 그는 생성되지 않고 소멸되지 않으며, 규정할 수 없는 자이기에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있는 것들의 심연이며, 한정할 수 없는 자이기에 모든 것을 한정할 수 있는 것의 바탕이므로 모든 진리의 근거. - 우주 만물은 모두 일자로부터.
일자, 정신, 영혼 - 하나지만, 하는 일은 각각(그리스도인이 었던 암모니오스) 20
아우구스티누스(354-430) 고백록에서 플라통주의 철학에 대한 평가(20)
표현은 다르지만, 내용적으로는 기독교 진리와 완전히 같은 부분이 수없이 다양한 논거에 의해 납득되도록 서술되었다.
성육신 incarnatio
325년 콘스탄티누스 데제가 주제한 제1차 니케아 공의회 - 니케아신조 공포(22) -초기 기독교 신학은 플라톤주의 철학을 기반으로해서 이뤄진 것
하나님의 말씀이 수천 년 가나안 땅에서 무엇을 뜻했는가 하는 것뿐 아니라, 그 말씀이 시대마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도 답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23) - 인문학은 필수다.
중세 신학과 아르스토텔레스주의
아리스토텔레스 - 12세기 초까지는 기독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24) 이유는 6세기 초 유스티아누스 황제(483-565)가 칙령으로 아테네에서 모든 철학학교를 폐쇄했기 때문이었다.
십자군 전쟁이 지속되던 12세기 중엽 아랍 철학자들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전해졌고, 진보적인 성격을 지난 신학자들과 수도사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활용하여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 서구 기독교 신학은 아우수스티누스의 각주'(25)
시카고 대학교 대니얼 윌리엄스
13세기 스콜라주의의 전성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숭배받기 시작하고, 14세기에는 모든 수도원과 학교와 대학에서 그의 철학을 강의함으로, '신학이 곧 철학'이고 '철학이 곧 신학'인 시대가 도래.
'자연의 사다리와 존재유비'
피조물인 자연에도 하나님의 진리가 들어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성을 통해 그것을 파악함으로써 마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듯 점차 하나님께 다가가 마침내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27)고 생각....자연신학, 이에 대한 바르트의 반발, 1934년 바르멘 선언으로 종지부?
<성토마스 아퀴나스의 승리 1314 프란체스코 트라이니 작품>
*
이탈리아 피사 산타카데리나 성당 /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플라톤>티마이오스>/하단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서구에 전한 아랍 철학자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 - 기독교신학이 인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증명하는 그림
종교개혁 신학과 인문주의(32)
1453 동로마제국 멸망 ~1789 프랑스대혁명까지 Early Modern 근세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 진리가 종교나 철학이 아니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있다고 믿었고, 신앙에 의해 도달하는 하늘나라보다 이성에 의해 이 땅에 세워질 유토피아를 추구하기 시작함 - 신앙에 대한 이성의 반란과 전복의 시대(32)
33p
Humanitas- 인간을 존중하는 윤리적 태도 / 인문주의는 중세의 신 중심적 사상과 문화에서 탈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여기에서 기독교 인문주의 싹이 틈 / 종교개혁자 그룹이 이에 속함
에라스무스. 칼빈 - 가톨릭 교회와 교황에 저항 / 이론적인 대안과 돌파구로 고전을 연구
15세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 "근원으로 돌아가자!"의 의미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하나로 융합하자는 것. 그리하여 이들은 그리스로마신화와 성서를 융합하여 하나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35p
예)
단테(1265-1321)의 신곡 - 야훼=유피테르(제우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 하나님=제우스, 성모마리아=아프로디테, 예수님 = 아폴론, 아담 =아폴론...
37p
16세기 인문주의자들은 대부분 신플라톤주의 철학(거룩한 플라톤)에 몰두했고,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은 스토아 철학(거룩한 세네카)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세네카(B.C. ??-A.D. 65)
인문주의적 글쓰기의 전형(40P)
1. 문헌학적 설명으로 글을 시작하고
2. 오직 문법과 논리에 의지해 글을 전개하고
3. 수사학적 표현을 집어넣고
4. 고대 작가들이 남긴 고전적 지식들을 끌어다 활용하는 방식
바울과 세네카, 칼빈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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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스토아 철학에 영향을 받은 증거가 되는 특정 개념 단어들과 문장들...
'영원하신, 신성, 순리대로, 합당하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니라(롬 11:36)
- 이런 구절들은 세네카, 제논, 에픽테도스 같은 스토아 철학자들의 저술에 자주 등장한다.
이런 까닭에, 기독교에 그리스 철학을 끌어들인 초초의 인물, 그리스 철학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최초로 오염시킨 자(문동환 박사)...42p
차후에 마르틴 루터(칭의)와 에라스무스(세네카 신봉자)가 갈라서게 된 배경이 된다. - 둘의 조화가 아쉽지만, 결코 조화될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한다. 이후..이것은 자유주의 신학, 미국의 근본주의 등과 연결되고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의 갈등으로부터 현재의 보수와 진보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이어진다....
자유주의 신학과 자유주의(44p)
1789프랑스 혁명~1914년 제1차 세계대전(근대) / 이 시기에 자유주의 사조가 크게 유행한다.
칸트와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의 영향 + 민주주의의 출현, 자본주의 등장, 산업혁명, 합리주의 - 인간의 긍정성을 바탕으로 하여 '자유주의 신학'이 태동됨(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 1799). - 자율적 인격에서 나오는 다양한 실천 영역을 중요시하는 자유주의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융합하려고 시도함
자유주의 신학의 주된 내용
계시의 절대적 권위 부정 - 주관적, 역사적 의미로 해석
성서에 기록된 기적을 부정 - 합리적인 과학 지식을 존중(오늘날 창조신학회)
하나님의 부성애와 형제애를 강조
정쟁의 포기와 사회 정의 추구 등등...결과로 앵글로섹슨 테제에 부응하는 팽창주의적 선교관, 제국주의적인 형태의 선교...우리 나라에 전해진 기독교...결국에는 신학은 인본주의적, 개인주의적으로 탈바꿈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 이 문제를 고찰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기독교가 안고 있는 부조리를 해결하는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2차 대전 이후 자유주의 신학은 더 설자리를 잃었고, 이에 대응하여 신정통주의와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이 태동했는데,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은 현재까지 미국과 그들의 선교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도 왜곡된 신앙의 형태로 자리하게 되었다.
50p
큰 흐름을 읽자.
2천년 기독교 신학사의 줄기는 결국, 이성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기독교 신학이 '신중심주의'에서 '인간중심주의'로 차츰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사살이며, 이에 비례해서 성서와 교리, 교회의 권위는 점점 수축되어 간다는 점이다. 이 극단적인 형태를 우리는 포스트모던 신학에서 보게 된다.
포스트모던 신학과 포스토모더니즘(51p)
20세기 중반부터 새롭게 등장한 신학 - 하비 콕스 <새속도시의 종교>에서 해방신학을 최초이자 최고의 포스트 모던 신학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프랑스 68혁명이후, 푸코, 라캉, 데리다 같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과 이로타르, 하버마스, 로티 등을 통해 구체화되었다고 본다.
칸트의 순수이성
'나에게 옳은 것은 너에게도 옳다.'는 지식의 객관성을 보장하는 반면에 '나에게 그른 것은 너에게도 그르다'라는 지식의 폭력성을 낳았다.(54)
55p
리오타르의 '불일치의 이성' 또는 '다원적 이성' - 나에게 그른 것이 너에게 옳을 수도 있다.(포스트모던)
김용규 - 포스트모던 신학이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운동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중요성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
57p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무신론은 없었다. 무신론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반복되었을 뿐이다. - 영국의 문예비평가 테리 이글턴
58p
이 대안으로 앨프리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근거하여 구성적 신학(건설적 신학)을 전개...구성적 포스트모던 신학은 인간중심주의, 개인주의, 가부장주의, 경제우선주의, 소비주의, 민족주의 등을 낳은 근대적 이성을 재구성하기 위해 생태학, 페미니즘, 평화와 같은 해방 모티브를 지닌 운동을 지지한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58~59)
생태계기 곧 신의 몸이기 때문에 생태신학적이다...그러나 신의 내재성만 인정하고 초월성을 부인하는 만유재신론(panentheism)에 근거하기 때문에 정통신학과 근본적인 충돌이 불가피 하다.
김용규(59)
포스트모더니즘 자신도 이미 폭력적인 큰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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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기독교 신학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나 작게나 그 시대를 풍미하는 인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신학의 본질과 사명
기독교 신학 = 헤브라이즘+헬레니즘 +신앙+이성 +성서의 계시 + 인문학(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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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은 세상에 발 빋고 있으면서 동시에 하늘나라를 향해 뻗어 있고, 인간의 학문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며, 성서와 인문학을 지주로 하여 다분히 신성하면서도 동시에 세속적인 영역을 담당한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신론을 제일 학문으로 삼은 이유(62).
토마스 아퀴나스 - 최상의 지혜 / 아리스토텔레스 - 제일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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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로마서 5장 2절 주석 - 현재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다면, 누가 감히 영광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 현재를 사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분명한 인문학 지식이 없고,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속적이고 분명한 확신이 없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바르트 - 한 손에는 성서, 한 손에는 신문
결국, 인문학은 기독교 신학에서 걸려야 할 '불순물'이 아니고 오히려 강화해야할 '본질'가운데 하나이다.(64)
유발 하라리' 다가오는 시대를 호모 데우스의 시대로 규정
"18세기 인본주의는 신 중심적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신을 밀어냈다. 21세기에 데이터교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
경제 성장과 생태계 파괴 중애서 '성장'을 선택할 것이고,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파국을 막을 브레이크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만일 브레이크를 밟는다면, 경제가 파국에 이르고 그와함게 사회도 무너질 것이다. -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하야만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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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파국적인 현실에 대해서 기독교는 아무 책임이 없는가?
신의 죽음과 그 이후의 풍경들
1882년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에서 "우리가 신을 죽였다-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해자다!'
의미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니래, 서양 문명을 구축하고 이끌어 왔던 신본주의 가치들이 몰락했다는 것을 의미(68)
결국, 신은 죽었다 = 인간이 신이 되었다.
17세기 이후 게몽주의자들의 백과사전은 새로운 성경이었고, 민주 사회는 지상의 천국인 셈, 18세기 프랑스대혁명(1789)은 인간의 이성이 신마저됴 중세 천년을 두고 주지 못했던 자유롭고 평등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으며...19세기 오귀스트 콩트가 창설한 인류교...오늘날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 신진화론자...인간이 신이 되는 시대....
그런데, 신에게서 벗어나 '고삐 풀린 인간'은 한껏 자유를 누렸을까?(72)
인간의 이성이 신으로 등극하자마자 세상에는 오히려 끔찍한 추위와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73)
인간의 이성이 신으로 등극한 근대 이후, 자연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고, 인간의 삶을 갈수록 무의미해졌고, 사회는 무한 경쟁의 지옥으로 변했다..(75) - 신의 죽음은 곧바로 인간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위험사회와 유동하는 공포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1944-2015) '문명의 자기피괴적 잠재력' - 문명이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는 능력
이런 문명의 특징은 문명이 실패가 아닌 성공을 할 경우 파멸로 이어진다...= 위험사회(Risk Society)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
세계화가 낳은 인류의 단일화란, "근본적으로 달아날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이다."(78)
300년 동안 인간의 이성을 신으로 모시며, 계몽을 은총으로 믿고 살아온 21세기 우리의 초상화(79)
유동하는 위험=유동하는 공포
현상에 대한 결론(80-81)
"관능과 쾌락만을 탐닉하는 향락주의, 소유와 소비만을 추구하는 물질주의, 누구에게나 안락한 도피처를 제공하는 각종 상대주의, 모든 것을 시큰둥하게 만드는 냉소주의, 정이, 연애, 소포츠, 레저, 종교 등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열광주의..."
실리콘밸리가 만든 신흥종교
'데이터교'(유발 하라리) -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난 신흥종교 / 경제와 야합하며 막강한 세력을 구축
컴퓨터 알고리즘이 '신'이고 데이터가 '말씀'
예) 안젤리나 졸리 2013년 유방암에 걸린 확률이 87%라는 컴퓨터 알고리즘의 조언을 받아들인 사례(82)
당신도 이미 데이터교 신자다!
무신론적 인본주의의 불가능성
고대와 중세 -신본주의 가치
근대 - 인본주의 가치
현재 - 포스트모던 / 탈근대적, 개인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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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가치관의 변화가 이전의 가치들을 내몰고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
2019년 5월 7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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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 이후 인류는 신본주의 가치를 대신한 인본주의의 가치가 드러낸 폭력에 전율했다.
이로써 '신의 죽음'이 곧 '인간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이것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켄터베리 대주교 안셀무스의 정의
'신은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의 정점'- 그런데 이런 가치를 죽이면 무가치한 인간만 남는다. 그러므로 신을 배제한 이성, 사회 진보, 민중 해방이란 결국 우리가 원하는 이성과 진보와 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 20세기 일어난 인본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 하나님 없이는 온전한 인간성도 있을 수 없다(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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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은 큰 이야기에 대한 불신 = 상이한 질서의 축첩관계
첩을 여럿 둔 가장처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폭력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려고 했음 - 인간 이성의 실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논리 / 아우슈비츠, 구소련의 굴락 수용소,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
이성적인 너무도 이성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된 폭력
제노사이드 - 인간의 이성을 신으로 정당화할 때 일어나는 끔직한 일들
작은 이야기가 낳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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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은 자신을 진리로 포장한채 우리를 송두리째 사로잡고 있다.
예) 다양성, 개별성, 상대성, 타자성, 현재성을 지향하면서, 개인의 심리와 성적 취향, 다양한 문화와 요리, 놀이, 주거, 레저 등 작은 이야기에만 몰두하도록 한다. 카르페 디엠, 욜로, 소확행 등의 신조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밑바닥에는 소비를 통해 생존하려는 신자본주의의 교활한 술책이 은밀하게 숨어있다.
거대담론의 폭력성을 없애는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만, 그런 작은 이야기에만 매몰될 뿐 '거대담론'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인간의 헌신, 자기 비움, 사랑에 대해서는 전근대적인 가치라고하여 입을 닫고, 인간의 연대, 협동에 대해서도 근대적인 것이라하여 입을 다물고 있다.(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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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고 있지만,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굶주리고 매일 10만 명 이상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 - 이런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개인의 심리나 성적 취향의 다양성, 소확행, 레저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썩은 물과 진흙 쿠키를 먹는 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5초마다 한 명씩 목숨을 잃는 폭력에 침묵(무관심)하면서 과연 이것을 이성적이라 할 수 있는가?
부러진 모세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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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상실 - 자본주의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환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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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렇게 큰 이야기들을 모두 내쳐 버리고 작은 이야기만 하며 살가보니, 갈 길을 잃은 것 - 그러나 동시에 거대담론이 아니면 담론취급도 하지 않는 폭력성에 대해서도 숙고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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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들이 큰 이야기들을 하나씩 몰아내고 스스로 큰 이야기가 됨으로써, 소중했던 가치들이 모두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고...결국, 우리는 신의 은촌이 사라진 하늘 아래서, 인간과의 연대와 협력이 사라진 시대에서 작은 이야기들이 지향하는 상대성과 다양성에 매몰되어 아무런 이정표도 없이 스스로 갈 길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포스트모던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각자도생의 시대
공허와 맹목 사이로 난 길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이것이냐, 저것이냐?'하는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취하되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하는' 시대,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가 함께 이야기 되어져야 큰 이야기가 동반하는 폭력성이 차단되고, 작은 이야기가 가진 맹목성도 제거될 수 있다.(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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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진리, 선함, 아름다움, 정의 등의 전근대적(신본주의적인)인 가치들과 이성, 계몽, 혁명, 과학, 진보, 해방 같은 근대적(인본주의)가치, 상대성, 다양성, 개별성, 현재성 같은 탈근대적, 개인적 가치들의 조화 - 온전한 가치 창출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 희망의 종교요, 불가능성의 가능성의 종교
교회 역시도 거대한 통합과 융합의 도가니이다. 수치스러운 역사도 있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희망을 바라보며 걸어왔다.
102p
상호내주, 상호침투 - 단일성이 아니라 다양한 것이 서로 모여 이루는 공동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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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독교 신학은 너무 비판적으로만 봐 왔는지도 모른다. 정당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기독교 신학을 업신여기거나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햔제 설국열차와도 같은 상황에서 그 열차를 멈투고 인간과 세계를 구원하는데는 기독교 신학만 한 이론체계가 없가(김용규)
너희도 온전하라
통합과 융합을 이뤄내려면, 이론과 실천 사이에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 이 간격 속에서 연약한 인간들이 숨 쉬고,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며, 가대한 통합과 융합이 준비되고 숙성하는 것이다....'사이, 과. 간격...쉼...'의 중요성.104
105p
아우구스티누스 - 인간의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이 모든 죄악의 근원 / 탐심은 우상숭배니리(골 3:5)
그럼에도 그는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을 죄로 몰아 금하는 교리와 사뭇 다른 처방을 내렸다...
첫째, 우리 위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둘째,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셋째, 우리 곁에 있는 이웃에 대한 사랑
넷째, 우리 아래에 있는 물질에 대한 사랑
그런데 왜 예수님은 첫째와 셋째만 강조했는가(마 22:37-40)?
나머지는 가르치지 않아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그러므로 이 네 가지를 모두 사랑해야 비로소 '온전한 사랑'이 되는 것이다. - 온전한 사랑의 의미(마 5:45-48).
온전한 가치, 온전한 신학을 위하여
첫걸음은 신본주의 가치들의 복원, 이 가치를 기본으로 다른 가치를 구축할 때 '온전한 가치'가 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총이 사라진 하늘 아래서, 인간의 연대와 협력이 사라진 땅 위에서 유동하는 공포에 떨며 살지 않을 것이다.
109p
이 말은 기독교 신학이시대마다 새로운 변화와 도전으로 다가오는 시대의 인문학을 끌어안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온전함을 지향해야 함을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생태주의, 페미니즘, 4차 혁명-호모 데우스, 호모 유스리스, 데이터교- 등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도 수용해야 합당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야 신학이 공허하지 않고, 인문학이 맹목적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인들이 인문학을 공부해만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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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그의 책은 결코 독서한 시간을 아깝게 하지 않는다. 그의 책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데칼로그>도 추천한다.
위의 두 책은 분량에 있어서도 만만치 않지만, 이 시대 신학도 혹은 목회자가 반드시 숙지해야할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해야 하는가?>는 핵심만 요약한 책이라, 하루 정도 마음을 다잡고 읽으면 정독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간략하게 이야기된 것들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이해의 강도는 다르겠지만, 그 내용들은 위에서 소개한 그의 책들과 유발 하라리의 <호모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가 바탕이 되어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5월 7일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