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한 것뿐입니다
책 읽는 뇌는 누구나 만들어집니다
“우리 아이는 책을 정말 안 읽어요.”
“문장만 봐도 머리가 아프대요.”
“읽고는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대요.”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사라면 모두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조심스레 질문해봅니다.
“정말 책을 ‘못’ 읽는 걸까요? 아니면 아직 충분히 ‘안’ 읽은 걸까요?”
1. 읽기는 타고나는 능력이 아닙니다
말은 저절로 배웁니다. 부모의 말을 들으며 아기는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힙니다.
하지만 읽기는 다릅니다. 읽기는 인류가 만든 ‘문화적 기술’입니다.
우리 뇌에는 원래 읽기 전용 회로가 없습니다.
대신, 말을 이해하던 회로, 사물을 보던 회로, 주의를 기울이던 회로들이
서로 연결되어 ‘읽기 회로’를 새롭게 구성하게 됩니다.
즉, 읽기는 연습과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능력입니다.
책을 어려워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건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2. 뇌가소성: 뇌는 쓰는 만큼 바뀝니다
우리 뇌는 생각보다 유연합니다. 과학적으로 이것을 ‘뇌가소성’이라고 부릅니다.
뇌는 자주 사용하는 회로는 강화하고, 사용하지 않는 회로는 약화시킵니다.
자주 지나가는 길이 평평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의 뇌는 언어 처리 회로와 시각 인식 회로가 반복적으로 연결되며 점점 빠르고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반면, 독서 경험이 적은 아이는 그 회로가 아직 미숙한 상태일 뿐입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덜 익은 것”이죠.
3. 문자 친숙도는 읽기의 첫걸음입니다
읽기가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문자에 대한 낮은 친숙도입니다.
우리 눈은 글자를 ‘모양’으로 인식하고, 이를 빠르게 의미로 전환해야 읽기가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문자 노출이 적은 학생은 글자 하나하나에 멈칫합니다.
문장을 읽기보다는 단어를 ‘해독’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익숙하지 않으면,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 수 없고, 내용에 빠져들 수도 없습니다.
그 결과, 독서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즐거운 활동’이 아니라, ‘집중력을 갈아 넣는 고된 노동’이 되고 맙니다.
에너지 소비가 많이 되다보니 싫고 힘들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이러한 독서에 대한 원리 이해는 학부모 뿐 아니라 학생들도 꼭 알아할 정보입니다.
4. 운전처럼, 읽기에도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 운전을 배울 때를 떠올려 봅시다.
운전자가 아니라, 그저 브레이크와 엑셀, 핸들 사이에서 눈을 굴리며 버티는 연습생일 뿐입니다.
주변 풍경은커녕, 라디오 소리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서죠.
하지만 반복적으로 운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풍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산도 보이고, 바다도 보입니다.
주변을 즐길 여유가 생깁니다.
읽기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글자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지만, 익숙해지면 내용의 흐름이 보이고,
주제의식이 느껴지고, 감정이 전해지고, 상상이 펼쳐집니다.
글자에 빠져 헤매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타고 유영(문속에서 헤엄치며 놂)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5. 아이는 읽는 만큼 자랍니다
읽기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읽는 동안 뇌는 정보 처리, 감정 공감, 비판적 사고, 추론, 상상력 등 수많은 회로를 동시에 가동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능력은 ‘읽는 만큼’ 성장합니다.
한 연구에서는 책 읽기를 힘들어하던 아이가 3개월간 매일 15분씩 책을 읽었을 때,
뇌의 언어 관련 회로 활성도와 읽기 속도, 이해도, 집중력에서 유의미한 향상을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시간은 뇌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6. 교사와 학부모의 역할: 기다려주는 용기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왜 못 읽니?”라고 묻기보다
“얼마나 읽었니?” “조금씩 읽고 있니?”라고 물어주는 자세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할 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반복할 기회입니다.
처음엔 만화책이어도 괜찮습니다. 소리 내어 읽어도 좋습니다.
함께 읽고, 함께 나누며, 읽기를 ‘할 수 있는 일’로 경험하게 해주세요.
서툴러도 됩니다. 중요한 건 ‘읽는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7. 책 읽는 뇌는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책을 읽지 못하는 아이는, 책을 못 읽는 아이가 아닙니다.
읽는 뇌를 아직 만들지 않은 아이일 뿐입니다.
뇌는 자라도록 설계되어 있고, 읽기는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능력입니다.
읽는 만큼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만큼 내용에 빠져들 수 있고,
빠져든 만큼 생각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부디 기억해주세요.
지금 읽기 힘들어하는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건
책임이나 평가가 아니라, 시간과 기회와 기다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