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사색 - 侍主常樂
공정하신 주님께 호소하오니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소서
오호라 어리석어 고집만 센 인생들 허망한 것에 빠져 흑백 구별 못하누나
개역성경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메시지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하나님, 내 편이 되어 주소서!
When I call, give me answers. God, take my side!
너희 어중이떠중이들아, 너희의 비웃는 소리 내 얼마나 참아주랴?
대체 언제까지 거짓에 빠져 살려느냐? 언제까지 망상에 취해 살려느냐?
오경웅은 시편 4편의 제목을 ‘侍主常樂’이라 붙였다.
‘주님을 의뢰하는 것이 영원한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왜? 그분은 공정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리석은 자들이 승리하는 것 같다. 흑백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허망할 수밖에 없는 눈앞의 즐거움’을 따라 산다. 눈앞의 즐거움이란, 세상적인 즐거움, 쾌락, 성공을 상징한다.
송대선이 ‘흑백도 구별하지 못하는 자’라고 번역한 부분을 유진 피터슨은 ‘어중이떠중이’이라고 번역하였다. 개역성경은 ‘인생들아!’라고 번역했다. 결국, 모든 사람은, 신앙인이라고 할지라도 어중이떠중이, 흑백 구분도 못 하는 삶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말이다. 세상적인 유혹에 길들면 오히려 신앙은 자신의 타락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사용된다.
오늘날 값싼 은혜가 판치고 있다.
더 많이 갖지 못해 안달하고, 매일매일 “더 많이! 더 많이!” 세상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을 자기의 욕심을 채워주는 기복 신으로 만들었다. 우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의 욕심을 합리화하는 정치인들의 행태에서 우리는 이런 모습을 쉽게 발견한다. 정치권력을 탐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편사색>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들은 ‘세상의 즐거움과는 다른 내밀한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내밀한 즐거움’은 일시적인 ‘세상의 즐거움’과는 달리 영원하다. 그리하여 ‘侍主常樂’이다. <메시지>는 이 ‘내밀한 즐거움’은 특별한 사건이나 날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속에 깃들어 있다고 밝힌다.
일상의 소중함, 일상의 삶, 카르페 디엠!
그 평범한 하루가 어중이떠중이들의 평생보다도 더 값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하나님이 있어 차고 넘칩니다.
평범한 하루 내가 누리는 이 기쁨이
날마다 흥청거리는 저들이 얻는 것보다 더 큽니다.
I have God’s more-than-enough, More joy in one ordinary day.
어중이떠중이들의 곡식과 새포도주가 풍성한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이 더 크다고 고백하는 신앙, 이런 신앙이 ‘侍主’의 증거이며, 이런 신실한 이들은 ‘常樂’이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읽는다.
맘몬의 시대를 살아간다.
물질과 권력과 돈이 절대자가 되어버린 이 시대를 동경하며, 그것을 성공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 여기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맘몬을 구하는 이들은 어중이떠중이 신앙인에 불과하다. 흑백도 구별 못 하는, 선과 악도 구별하지 못하는 무늬만 신앙인인 사람들. 그런데 거기에 취해있는 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신앙이 ‘지고의 선’인 듯 행세하고 있다.
이런 시대는 외형적인 것들이 지배한다.
<시편사색>에서는 이것을 ‘허망할 수밖에 없는 눈앞의 즐거움’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니 이런 현실 앞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타들어가는가?
그리하여 간절히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듯이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하나님, 내 편이 되어 주소서!”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이런 간절함은 나와 하나님의 신실한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신앙은 궁극에는 공동체를 추구하지만, 근원으로는 하나님과 개인, ‘1:1’ 관계다. 다른 사람의 신앙과 비교하며, 견주며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지도 말고, 기죽지도 말자.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낫다고 우쭐할 것은 뭣이며, 다른 이가 당신보다 조금 못하다고 상처를 받을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 얼굴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한 것 아닌가?
(2019년 6월 24일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