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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주제: 십자가, 새 시대로 안내하는 하나님의 표지판
설교4.
십자가, 참된 언약의 표지
누가복음 22:19~20
설교 목적:
성경이 말하는 언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약속이다. 그 약속은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꿈에 인간이 동참하라는 초청이며, 이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이다. 아담 이후로 노아, 아브라함, 그리고 이스라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초청을 받았고 동참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이 모든 언약 이행자들의 모범이며 완성이다. 예수님이 참된 언약의 이행자시라는 사실은 십자가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교회에게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하라는 초청의 언약식을 성찬으로 제정하시고 영원히 잊지 말라고 하셨다. 교회가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할 때 마침내 하나님의 꿈이 완성되는 세상을 물려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세상은 하나님의 성전이 땅으로 내려와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모습으로 완성될 것이다.
이 설교에서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언약을 이행하며 살아가는 삶을 가장 잘 보여주며, 결국 십자가가 세워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것이다. 십자가는 참된 언약의 표지다. 그 표지는 장차 우리가 물려받을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표지판이며, 동시에 우리가 그 아름다운 세상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바르게 이해하고 끝까지 이행한 사람이 지나간 곳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세워진다. 예수님도 그렇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다.
설교 개요:
1. 성경은 언약의 책이다.
2. 하나님의 언약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꿈이다.
3.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한 사람들
4.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언약에 충성하신 아들
5. 교회, 언약의 최후 이행자들
6. 십자가, 참된 언약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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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은 언약의 책이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나뉘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은 옛 언약과 새 언약입니다. 성경은 언약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약은 둘 사이에 맺은 약속입니다. 약속(約束)을 한자로 풀어보면, 약(約)은 실 같은 것으로 묶다는 뜻이며, 속(束)은 나무에 자루 같은 것을 감아 묶는다는 뜻입니다. 약속이라는 단어에는 묶는다는 말이 두번 사용되었습니다. 약속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단단히 묶는 행위입니다.
영어로 약속은 일반적으로 프라미스(promise)라고 합니다. 그것은 앞으로 어떻게 할 지를 먼저 말해주는 것입니다(L. pro-, forth + mittere, to send). 그런데 성경에서 사용된 언약이라는 말은 카비넌트(covenant)입니다. 이 말은 두 사람이 함께 간다는 의미입니다(L. con-, together + venire, to go). 여기서 함께 간다는 말은 마음과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어로 언약은 베리트라고 하는데, 이 말은 본래 쪼개다는 히브리어 ‘바라’에서 온 말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을 둘로 쪼개어 그 사이로 언약의 당사자들이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것은 생명을 걸고 언약을 지킬 것을 다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 15장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에 필요한 준비물을 말씀하셨습니다.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위와 같이 고대 히브리인들은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을 잡아 그것을 둘로 쪼개어 피를 흘렸습니다. 그 붉은 피와 살을 서로 마주 대하여 벌여 놓고 쌍방이 약속을 맺으며 그것을 진실되게 지킬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준비를 하게 하신 후에 그 언약의 증표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가나안 땅 전체를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약속은 다윗왕의 때에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은 출애굽기 24장에 나옵니다. 그때에도 역시 중요한 것은 피입니다. 시내산에서 맺어진 언약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겠습니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성경에서 언약은 피로 맺은 약속입니다. 이런 전통을 따라 예수께서 새 언약을 맺으실 때도 떡과 포도주를 나누시면서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언약식 말씀을 보겠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누가복음 22:20)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어 가는가를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그 언약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어떻게 그 언약을 지키며 살았는지를 들려줍니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과 새 언약을 맺으시고 새로운 언약공동체를 세우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언약식이 체결된 때는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유월절 식사 시간이 끝난 다음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는 예수님과 맺은 그 언약을 기억하기 위하여 모일 때마다 떡을 떼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는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이행하시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언약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꿈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인간과 언약을 맺으시는 것일까요? 성경의 언약을 엄밀하게 소개하자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언약을 맺자고 제안하시는 방식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언약을 제안하시는 이유는 이 세상을 관리하고 가꾸어 더 충만한 곳으로 완성하시기 위함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언약은 하나님이 인간을 불러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자는 초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시고 매우 기뻐하시면서 복을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의 세상이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존재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성경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자기 모양과 형상을 입혀 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모양이므로 그가 이 세상에 다닐 때마다 모든 만물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모습을 볼 것입니다. 인간이 피조세계를 맡아서 관리할 때마다 그 세상은 하나님의 손길과 지혜가 펼쳐지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농부의 손길이 닿는 땅이 아름다운 포도원으로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부부에게 이 세상을 어떻게 가꾸실지에 대하여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후에 아담과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깨트리고 배반했을 때 이 세상은 죄로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보복과 폭력이 일상이 되고 약한 생명부터 가장 먼저 죽어가는 죽음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물로 세상을 쓸어버리시고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제2의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새 창조입니다.
다시 물 아래에서 육지가 솟아나고 육지에 새로운 풀이 자라며 나무가 우거졌습니다. 그리고 방주에서 나온 생명들이 온 땅에 흩어져 뛰놀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관리할 주역인 노아의 가족과 하나님은 새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꿈은 전에 아담 부부에게 보여주신 것과 같았습니다. 이제 노아의 가족이 하나님의 꿈을 이 세상에 펼칠 새로운 언약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하나님의 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람들이 땅에 늘어날 때에 유력한 사람들이 일어났고 언어가 하나였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일에 하나되기보다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탑을 쌓는 일에 협력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시날 평지에 세워진 반역의 탑을 쌓던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을 온 세상으로 흩어 버리셨습니다. 그것이 바벨탑 사건입니다. 그 사건 이후로 온 세상의 언어가 혼잡하게 되었습니다(창 11장).
언어가 혼잡하게 되어 이제 사람들이 마음과 뜻을 모아 어떤 일을 이루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데 매우 큰 장애물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 마지기의 논을 경작한다고 합시다. 그때 온 가족의 마음이 하나 되어야 그 논을 잘 가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온 세상이 생명으로 충만한 땅이 되게 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떨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꿈은 결코 포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천하만민에게 다시 복을 주실 목적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장차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비출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가운데 충만하게 되며 열방이 그들에게로 나아올 것이라고 훗날 예언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했습니다(사 60:1~3). 그때 열방은 시온에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율법을 배우며 지혜를 얻을 것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면 온 세상이 다시 생명 충만한 땅이 될 것입니다(사 2:3, 미 4:2). 그것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영광과 은총을 만민에게 되비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아담처럼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호 6:7).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땅도 잃고 성전도 빼앗겼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있는 탐심과 고집, 그리고 무지가 그들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다시 세상에 펼치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꿈이 이제 실현될 때가 되었다고 선포하시면서 그 백성들을 다시 일깨우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선포 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는 선언은 하나님이 다시 자기 백성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게 하신다는 초청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꿈을 발견하고 그 꿈에 동참할 것을 결단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보면서 하나님이 과연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으며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꿈을 이루신다는 것을 깨닫고 기뻐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지도자 중에 유력한 사도 바울은 옛적에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약속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 모든 약속을 이루시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세상을 새롭게 만드시고 다스리실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교회가 앞으로 물려받을 새로운 세상과 기업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성도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엡 1:18).
하나님의 꿈에 동참한 사람들은 비록 현실이 힘들고 척박해도 기쁨과 소망 가운데 거룩하고 진실하며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의 공동체는 헛된 꿈에 붙들려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흠모하여 교회에 합류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미워하여 욕하고 비방하고 심지어 붙잡아 가두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꿈이 얼마나 영롱하며 분명한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밧모섬의 요한은 장차 하나님의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환상 가운데 보았습니다. 요한이 본 하나님의 꿈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상징하는 짐승과 그의 표를 받은 사람들에게 심판이 임할 것이며,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물려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물려받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하늘로부터 새 예루살렘 도시가 땅으로 내려와 온 세상이 거룩한 성전처럼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되며 만국백성이 하나님과 그 어린 양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의 처음에 에덴동산에서 아담 부부에게 보여주신 꿈이 확장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이 산에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꿈이 이루어져 마침내 하나님의 장막이 그 백성 가운데 세워지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모습이었습니다(계 21:3). 그것은 또한 모든 예언자들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이 마침내 완성되는 영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꿈은 예수님이 비유로 들려주신 하나님 나라가 그림으로 펼쳐지는 모습이었으며, 사도들이 편지 속에 설명한 바로 그 실상을 보여주는 그림이자 판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모든 사람들은 사실 하나님의 꿈에 동참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한 사람들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한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은 그 언약을 충실하게 지켰을까요? 성경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언약은 창세기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한 사람들은 아담 부부와 노아의 가족, 그리고 아브라함 가문과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아담 부부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노아의 자손들도 바벨탑을 쌓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결국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그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성경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한 사람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따른 신앙의 영웅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사사들, 그리고 다윗 같은 인물들입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소중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일깨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며 예언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충실히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후에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셨는지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세기 18:18~19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그 언약을 충실히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의와 공도를 행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언자 미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정의와 자비, 그리고 겸손한 신앙임을 깨달았습니다(미가 6:8).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언약백성들은 확신했습니다(시 1:2).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진실하고 따뜻한 삶을 실천하는 공동체를 세울 때 그 땅은 복을 받고 생명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즉,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생명으로 충만한 땅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꿈을 이해하고 그 꿈에 자신을 바치며 성실하게 순종할 때 열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은 후에 성막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그 백성을 만나시는 장소(회막)였고, 율법은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며 갈 길을 안내하는 등불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실 것이고 그들이 율법을 사랑하면 율법은 그들에게 생명과 번영으로 가는 길을 안내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한 세상을 물려받게 하시려고 승천하시기 전에 다음과 같이 분부하셨습니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19~20
교회는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임무를 맡은 공동체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 위대한 임무와 특권이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그 언약에 충실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큰 민족이 되었고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했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을 빛으로 인도하셨을 것이며,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살며 그 충만한 세상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하다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공동체를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며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온갖 지혜를 하늘에 있는 권세자들에게까지 알게 하실 것입니다(엡 1:23, 3:10). 그것은 교회가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언약에 충성하신 아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면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으니 그 일에 동참하라고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부르시는 이유는 그 백성들에게 다시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믿고 따르는 본래의 일을 하도록 촉구하고 격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세리장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을 반으로 나누어 그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잘못한 일에 대하여는 배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의 회개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언약백성에게 율법을 통해서 가르치신 바로 그 뜻을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주신 율법에서 그 백성에게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 19:18).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점차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그런 꿈도 갖지 못하고 그런 사명이나 본분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았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 둘씩 회개하고 돌이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라는 지도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꿈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꿈은 하나님이 예언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이었으며 장차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은 하나님의 언약을 소중하게 붙드는 사람의 수가 아무리 적다 할지라도 반드시 그 사람들이 대세를 이루는 때가 온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세상의 빛과 소금처럼 꼭 필요한 사람들임을 기억하라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은밀한 가운데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선행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은 누룩과 같이 반드시 가루 전체를 부풀게 하듯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이 선포하고 가르친 교훈과 명령은 예수님의 삶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낮은 자들의 친구가 되시고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불의와 거짓으로 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에게 맞서셨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용기와 꿈을 얻었고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본래부터 어두움에 속하여 빛을 멀리하는 사람들입니다(요 3:19). 그들은 작당하고 모의하여 예수님을 붙잡아 부당한 재판을 열어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때 악한 사람들은 거짓 증인을 매수하고 군중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주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꿈을 나누어 주시던 예수님이 허무하게 돌아가신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려웠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일일이 나타내 보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꿈을 잃지 말라고 격려하셨습니다(행 1:3).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제자들에게 믿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하늘에 올라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고 하나님의 꿈을 교회를 통하여 이루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함께 모여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데 십일째 되는 날 하늘로부터 성령이 강하게 임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과 꿈을 세상에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자기 백성에게 지금 성령을 부어 주셨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대로 하나님의 꿈과 언약에 동참하라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5. 교회, 언약의 최후 이행자들
교회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을 때, 세상은 이제 주와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있음을 제자들은 확신했습니다. 그 당시에 온 세상 사람들은 로마 황제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이저가 주님이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고백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전에 애굽 왕 파라오가 히브리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고 괴롭혔는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파라오를 벌하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신 것처럼 이제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종살이하는 모든 사람들을 구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친히 유월절의 어린 양이 되셨다는 사실을 교회는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 용서를 받는 사람들은 이제 그 피로 깨끗함을 입었으니 하나님 앞에 서서 주님을 섬기는 언약 백성이 된다는 것을 교회는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피로 깨끗함을 입은 백성들은 새 이스라엘이 되어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하게 됩니다.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만국을 위하여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으나 이제 교회가 그 일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이 세상을 관리하고 다스리며 돌보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벧전 2:9).
그뿐 아니라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지음을 받았음을 깨달았습니다(엡 4:24, 골 3:10). 마치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심으로 사람을 만드신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을 각 사람에게 주셔서 새 사람이 되게 하셨음을 교회는 깨달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고후 5:17). 그 말은 하나님이 전에 아담 부부를 지으시고 그들에게 기대하신 선한 일을 이제 교회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엡 2:10). 그리고 그 선한 일은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성찬의 떡을 떼면서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행 2:42). 특히 교회는 성찬의 떡을 떼면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할 때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언약에 얼마나 충실하게 순종하셨는지 기념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예수님의 가르침과 본보기를 따르기 위해서 열심을 냈습니다.
교회가 성찬의 떡을 떼는 것은 유대인의 오랜 전통을 잇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월절의 식사로서,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동안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 식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내신 일과 그들을 하나님의 산으로 부르셔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 앞에서 식사를 하던 일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 식사나 성찬의 떡을 떼는 일은 모두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임을 다시금 기억하는 예전이었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예수님의 분부를 가르치고 지키면서 하나님의 꿈을 세상에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고 교회에 끊임없이 성령을 보내시고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므로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라고 모두가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그들과 함께하시며, 성찬의 자리에 함께 오셔서 그들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교회는 굳게 믿었습니다(빌 2:13).
그러다 보니 자연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행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안디옥에서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행 11:26).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온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교회도 한쪽에서는 칭찬을 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려고 할 때마다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리에는 또 다른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이유는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신 이유와 같았습니다. 그것은 불의와 거짓에 동참하지 않고 그것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순교의 피가 흐르고 십자가가 세워지는 곳마다 새로운 교회들이 일어났고 그렇게 복음은 점점 온 세상에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갔습니다.
6. 십자가, 참된 언약의 표지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언약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 언약은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라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청사진이며 원대하고 영광스러운 계획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복음에서 하나님 나라로 소개되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은 에덴동산과 성막 또는 성전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하나로 만나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은 생명이 충만한 곳이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져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범 속에 가장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 언약의 이행자로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고 그 나라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권을 맡기신 새로운 세상이며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세상입니다(계 11:15).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나님의 꿈과 오늘 우리의 현실을 비교해 본다면 거기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고자 하면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아직 활개치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원수를 가리켜 말하기를,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또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엡 2:2). 이 말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헛된 욕심에 붙들려 사는 사람들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던 사람들처럼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공중에서 짓누르는 권세자에게 굴복하여 거짓과 탐심의 종이 되어 사람들을 해치고 세상을 어지럽게 합니다.
그 결과로 세상에는 전쟁이 있고 억울한 사람들의 한숨과 눈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지금의 암울한 세상을 새롭게 하여 눈물과 한숨이 사라지고, 전쟁과 죽음이 없는 세상으로 만들어 만인이 더불어 화목하고 함께 번영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계획이자 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불의와 거짓, 폭력과 착취에 맞서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약자의 생명이 보호되고 다 함께 기뻐하고 번영하는 세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맞서서 싸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와 꿈에 동참하려는 교회의 열정을 가로막는 종교지도자들의 반대가 아니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박해를 견디고 이기는 것 아니었습니까?
오직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이라야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사람들이라야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꿈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오늘날 박해를 받거나 반대하는 세력을 만날 일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고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을 다짐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교회는 어려움과 고난을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꿈을 이해하고 그 꿈에 동참하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조정하고 길을 바꿀 때 교회는 비로소 고통을 겪으며 반대 세력을 만날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지 고난이나 박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알고 그 꿈에 동참하는 참된 언약백성이 되는 길을 찾고 그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가장 쉬운 예를 든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는 진실과 자비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뜻을 따르고자 한다면,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을 나누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실천하기 쉽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하면서 삽니다. 특히 정치계나 경제계 등 이익이 첨예하게 맞서는 자리에서는 거짓말이나 비방이 일상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금전적인 문제나 체면 등이 개입되면 우리는 쉽게 거짓말을 합니다. 그것이 가장 먼저 처리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누기보다는 움켜쥐는 일에 더 익숙합니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는 것이 행복이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나누고 베푸는 일이 미덕이라고 확신하며 그것을 일상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삶은 우리와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배우고 깨닫고 돌이켜야 할 일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율법이 무엇을 명하시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서도 교회에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한 사람의 자세는 아닙니다. 그렇게 살기 시작할 때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암흑기를 경험했습니다. 사사시대가 그렇고 아합의 시대가 그랬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애쓰지도 않고 하나님께 길을 묻는 사람도 적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저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말은, 사사시대의 암흑기를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삿 17:6, 21:25).
오늘날은 기독교의 쇠퇴기라고 합니다. 교회가 문을 닫고 교인들이 급격하게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진정으로 질문하고 기도하며 십자가의 표지판을 따라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끝>.
참고:
시리즈 주제:
십자가, 새 시대로 안내하는 하나님의 표지판
https://cafe.daum.net/Wellspring/W8ej/1
설교1.
이 표시로 승리하리라
https://cafe.daum.net/Wellspring/W8ej/2
설교2.
십자가, 죄 사함과 회개의 복음
https://cafe.daum.net/Wellspring/W8ej/3
설교3.
십자가, 생명을 살리는 나무
https://cafe.daum.net/Wellspring/W8ej/4
설교4.
십자가, 참된 언약의 표지
https://cafe.daum.net/Wellspring/W8ej/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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