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벽시간 리마 차베스 호르헤 공항

▶ 새벽시간 쿠스코행 라탐항공 카운터
오늘은 마추픽추가 있는 쿠스코로 가는 날이다. 9시에 쿠스코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여행 가방을 추스르고 호텔에서 주는 아침식사를 한 다음 6시 반 전용버스를 타고 리마 Jorge Chavez 공항으로 간다. 이 공항은 국제선과 국내선이 함께 쓰는 공항이다. 7시경 도착해 라탐항공 카운터로 가니 카운터에는 아직 항공사 직원들도 나와 있지 않고 카운터 앞 대기실에도 아무도 안 보인다.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도착한 것 같다. 인솔자의 임무는 일정에 따라 목적지로 안내해 주는 것이지만 너무 젊고 경험이 부족해 그런지는 몰라도 여유가 좀 부족한 것 같다. 항공기로 탁송되는 여행가방도 후입선출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제일 먼저 가 여행가방을 탁송하면 목적지 공항에서 제일 늦게 찾는 일이 다반사인데 내 생각인지는 몰라도 시간적으로 많이 손해보는 느낌이다. 이런 일은 앞으로 항공 이동시에도 계속된다.


▶ 비행기가 안데스 고봉과 나란히 날고 있다


▶ 비행기에서 본 쿠스코 외곽지역

▶ 쿠스코 공항
9시 10분 경 이륙한 항공기는 해발 고도가 높은 지역이라 그런지 항공기가 안데스 산과의 거의 비슷한 높이로 비행을 한다. 항공기 창문으로 보이는 풍광이 대단하다. 해발고도가 높아 설산이 손으로도 잡힐만한 높이로 비행 중이라 조금은 아슬아슬하다. 흰 뭉게구름이 뭉게뭉게 정말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도착하기 전에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높은 고도를 여러 번 순회한 다음 쿠스코 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붉은 색깔의 조그만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조금은 귀엽게 보인다. 1시간 반의 비행 끝에 쿠스코 공항에 착륙한다. 공항에서 나오다 보면 입구에서 코카 잎을 판매한다. 찻잎을 물병에 조금씩 넣어서 우려먹거나, 코카 잎을 씹으면 여행의 맛도 있고 고산병에 도움도 되니 일석이조인 듯하다.

▶ 잉카제국의 후예들이 펼치는 태양의 축제<퍼옴>
잉카제국의 문명이 살아 숨 쉬는 쿠스코에 내리는 순간부터 마음이 설렌다. 수많은 사람이 다녀가고 많은 사진으로 보아 왔지만 이제 내가 현지에서 실제로 내가 그 역사의 유적지에 발을 드려 놓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잉카 신화에 의하면 티티카카호에서 태어난 만코 카팍과 그의 누이 마마 오클로가 1200년 경 쿠스코를 세웠는데 만코 카팍이 황금 지팡이를 두드리자 기적처럼 땅이 열리며 지팡이를 삼켰는데 그 지점에 주춧돌을 놓아 도시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쿠스코는 8세기 경에 이미 거주지가 형성된 곳이라고 한다.

▶ 푸마의 형상을 본 떠 건설한 푸스코
쿠스코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해발 3,300m의 고산 도시이다. 안데스 산맥 고지에 자리한 쿠스코를 잉카제국 사람들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당시의 언어였던 케추아어로 쿠스코는 “배꼽”이란 뜻이란다. 또한 잉카사람들은 퓨마의 형상을 본떠 쿠스코를 건설하였는데 하늘은 콘도르가, 땅은 퓨마가, 땅 속은 뱀이 지배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쿠스코는 지형상 자연적인 요새를 형성하고 우루밤바 강이 흐르는 비옥한 농경지를 확보할 수 있어 잉카제국의 수도로 맞춤이었던 곳이다. 동시에 많은 여행자들이 고산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곳이기도 하다.

▶ 잉카인들의 태양의 신전(코리칸차) 위에 스페인 침략자들이 세운 산토 도밍고 성당
잉카제국은 16세기까지만 해도 페루는 동쪽으로 아마존, 서쪽으로 태평양, 남쪽으로 칠레, 북으로는 에콰도르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제국으로 그 중심에 쿠스코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호전적이던 잉카인들은 타 부족의 족장을 잔인하게 죽이는 방식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으며, 그 결과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인구 20만 명이 넘는 도시로 성장했고 잉카 로드를 중심으로 수많은 유적을 남겼다. 그러나 오늘날 쿠스코는 잉카의 고도(古都)라기보다 유럽풍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스페인의 도시에 더 가깝다. 스페인군이 가장 먼저 정복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건설했던 곳으로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이식하고자 잉카의 유적을 파괴해 잉카 신전과 건축물 대신 광장과 대성당을 지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심히 보면 그들이 완전히 지우지 못한 잉카 제국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옛 명성을 전하고 있다. 비록 오늘날에는 문명국가의 국민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지만 야만적인 약탈자이자 다른 문화, 종교를 말살한 박해자인 스페인 사람들의 추악한 과거 모습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로타리에 있는 잉카 9대 왕 피차쿠텍 동상
공항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쿠스코 시내는 좁고 낡은 도로로 교통체증이 심하다. 로타리엔 잉카제국의 9대 왕 파차쿠텍(Pachacutec) 동상이 둥근 벽돌 탑 위에 긴 창을 들고 당당한 기세로 우뚝 서 있다. 10여분을 달려 아르마스 광장 부근 호텔에 도착한다. 로비에는 온수 통과 함께 코카 찻잎이 비치되어 있어 잉카인들의 상용차이자 고산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여행객에 대한 배려인 듯하다. 우리도 앞 다투어 컵에 온수을 받아 코카 잎을 우려 마셔 본다.

▶ 쿠스코 시내 지도

▶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

▶ 아르마스 광장 피차 쿠텍 동상

▶ 칠례 화폐의 모델 잉카 최후의 황제 투팍 이마루

▶ 아르마스 광장 좌우로 대성당과 라 콤파냐 데 헤수스 성당이 있다

▶ 쿠스코 대성당 전경

▶ 라 콤파냐 데 헤수스 교회
호텔 방에서 누룽지를 끓여 간단히 점심을 먹고 어제 산 망고를 잘라 후식으로 먹은 후 호텔 바로 뒤에 있는 아르마스 광장(Cuzco Plaza de Armas)으로 간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는 아르마스 광장은 잘 가꾸어진 조경과 분수대, 그리고 잉카의 제 9대 왕인 피차쿠텍 동상이 분수대 위에서 긴 창을 오른 손에 쥔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동상의 주인공인 피차쿠텍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이 광장은 잉카 최후의 황제 투팍 이마루가 처형된 비극의 장소이기도 한데 이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과 이곳을 방문한 여행객들은 잉카의 비극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광장의 두 면에는 아름답기로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대성당과 라 콤파냐 데 헤수스 교회가 자리 잡고 있으며 나머지 공간은 여러 여행사와 상점, 레스토랑이 밀집된 아케이드로 둘러싸여 있다.

▶ 주전부리를 파는 잉카족 할머니를 따라 나 온 손녀

▶ 전통복장을 하고 기념품을 파는 잉카인
잉카 제국 당시 이 지역은 눈물의 의미를 담고 있는 우아카이파타(Huacaypata)와 행복을 뜻하는 쿠시파타(Cusipata)로 사피(Saphi) 강을 경계 삼아 나뉘어 있었는데, 스페인 식민지 시절을 거쳐 현재 우아카이파타는 아르마스 광장으로, 쿠시파타는 레고시호 광장(Plaza Regocijo)으로 남게 되었고 사피 강의 잔류는 모습을 감추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인 만큼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엽서를 파는 소년부터 여행사의 호객 행위를 하는 아저씨, 아이를 등에 업은 채 원주민 전통 복장을 하고 잉카 전통공예품을 팔기 위해 거리를 헤매는 아주머니와 소녀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유럽풍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광장의 평화로운 모습과 이곳의 옛 주인이었던 잉카 제국 후손들의 초라한 행색은 여행자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금을 비롯해 수많은 자원을 약탈해 제 뱃속을 채워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스페인은 지금까지 잉카제국의 후손들에게 어떤 사과나 지원을 했는지 묻고 싶다.

▶ 저ㅏㅇ면에서 본 쿠스코 대성당

▶ 대성당 우측 지붕 장식
광장을 가로 질러 대성당 쪽으로 간다. 아르마스 광장의 북쪽에 위치한 대성당(Cuzco Cathedral)은 17세기 바로크 양식답게 오래되었지만 웅장하고 위엄있는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쿠스코 대성당은 예전 잉카 시절 그들의 창조신 비라코차(wiraqocha)의 신전이 있었던 자리인데, 창조신은 하나여야 하는 카톨릭의 스페인이 잉카의 창조신 비라코차 신전이 용납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1560년에 건설을 시작해 거의 백년에 걸쳐 완공했단다. 그러나 지금 성당을 만든 사람은 없고 성당만 남았다. 신의 육신이 없고 말씀만 남아있는 것처럼.

▶ 스페인이 자기들의 신을 모시고자 쿠스코를 파괴한 요약도
잉카 당시 쿠스코 시가지가 푸마 형상으로 조성됐는데 그 형상의 배꼽 부위에 현재의 산토 도밍고 성당(잉카 당시의 태양신전)이 있고, 가슴 부위에 대성당이(잉카의 창조신인 비라코차 신전) 있다. 대성당 건축에 사용된 돌은 상당수 삭사이와망 유적지의 돌을 헐어서 사용 했다는데, 실제로 쿠스코의 많은 건축물의 외벽에 사용된 돌이 잉카 때 다듬어진 돌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삭사이와망은 퓨마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머리를 가슴에 묻은 형국이다. 고로 잉카제국의 머리를 떼어 성당에 장사지낸 만화 같은 실화가 아닌가.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는 질투가 심한 외골수 카톨릭의 나의 신은 옳고 너의 신은 틀리다는 헛된 종교적 사고를 가진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의 상징인 머리를 떼어 성당에 매장시킨, 종교가 종교를 핍박한 현장이 바로 이곳 대성당을 비롯한 쿠스코란 생각에 종교인들의 사고적 한계를 실감한다. 남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그를 파괴해 자기 신을 모신 사람들은 과연 천국에 갔을까?

▶ 은 300톤을 사용해 만들었다는 중앙 제단<퍼옴>

▶ 검은 예수상<퍼옴>

▶ 잉카의 여신 파차마마(Pachamama)를 의자 받침대로<퍼옴>

▶" 최후의 만찬" 그림 아래 좌측 유다 얼굴 대신 침략자인 피사로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퍼옴>
대성당 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들어 갈 수는 없었지만 내부에는 으리으리한 제단과 각종 기물, 그림들이 가득한데 잉카제국에서 약탈한 은 300톤을 사용해 만들었다는 대제단과 화려하게 장식된 성상들은 만든 이들의 돈독한 신앙심을 보여주는 것인가? 예수가 이를 알면 통탄의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특히 대성당에 있는 여러 성상 중에는 원주민을 닮은 검은 예수상이 유명한데 페루의 여러 축제 중 가장 큰 축제인 부활절 세마나 산타 축제 때 검은 예수상을 성당 밖으로 내어 거리를 순회하는 행사가 펼쳐진다고 한다. 그 밖에도 이곳에 걸려 있는 ‘최후의 만찬’ 그림에는 다빈치의 그림과 달리 쿠이와 치차를 먹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배신자인 유다의 얼굴 대신 침략자 피사로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 라 콤파냐 데 헤수스 교회(Iglesia La Compañía de Jesú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