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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씨 뿌린 비유 (좋은 땅만이 말씀을 깨닫고 결실함)
1.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3.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
렸고 5.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
니 12.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
라 14.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
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
였느니라 16.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18.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20.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
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3.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13:1-23)
오늘부터 마13장의 비유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리가 읽은 내용을 '씨 뿌리는 비유'라고 말합니다.
1에서, '천국은 좋은 씨'라고 하셨으니 그러면 여러분은 그 좋은 씨를 받아 결실한 밭입니까? 아니
면 결실하지 못한 세 종류 중에 있는 밭입니까? 자신을 보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본문 1,2에
예수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거늘.... 했습니다. 이렇
게 큰 무리가 모여드는 것은 여기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계신 어디에나 모여들고 따라다녔습니다.
그 많은 무리가 모여들고 따라다닌 이유는 예수님께서 어떤 병이 되었든지 고침 받고자 나오는 자들
의 병을 다 고쳐주시고, 또 귀신을 쫓아내주셨기 때문입니다. 병을 치료해주시고 귀신을 쫓아 주신
소문이 온 유대와 유대 근방에 퍼져서 병을 치료받고자, 예수님을 보고자, 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
고자 하여 모여들어 예수님이 계신 곳마다 가신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마4:23,24에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
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
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
를 고치시더라고 했습니다. 바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후에 치유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치유가 먼
저가 아니고 복음 전파가 먼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확실히 믿고 받으면 따라서 병이 고침
받는 것입니다. 마9:35에 예수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했습니다. 항상 복음을 전하시고 병을 고
치셨습니다. 눅9:6에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제자
들도 나가서 복음부터 전했습니다. 전한 후에 병을 고쳤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날마다 모여드
는 무리에게 또 가시는 곳마다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는 일을 쉬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하
는 것은, 천국이 인간 속에 오셨다는 첫째 표적의 증거가 바로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자가 고침 받
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천국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오셨다는 것, 그
예수님이 죄를 사하시고 생명 얻게 하시는 구주라는 표적과 이적을 나타내심으로 증거가 되게 하셨
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 모인 큰 무리에게 씨 뿌리는 말씀을 하시면서 9에 뭐라고 하셨습니
까? 귀 있는 자는 들으라입니다. 그러면 귀 없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 귀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귀 없는 자가 누구
냐? 4에서부터 씨가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 씨가 길가에 떨어지면 새들이 먹어버
리는 것 당연합니다. 새는 무슨 씨든지 보이면 본능적으로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 5에서 씨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않으므로 싹이 나오긴 했어도 뿌리를 내리지 못해 결국 말랐다고 했는
데 이것 또한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 말
을 못 알아듣습니까? 누구든지 알아듣지 못할 말 절대 아닙니다.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7에 가시 떨기, 즉 씨가 가시덤불에 떨어지면 가시덤불이 더 기세가 세니 그 기운을 막는 것,
씨가 자랄 수 없는 것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이런 자연의 이치를 몰라서, 신앙의 결실
이 안 될까 봐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신 것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메시아 언약을 받은 그들
의 영적 상태가 그렇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듣도록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릴새 이같이 길가요, 돌밭이요, 가시덤불이라 결실이 없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고하십시오. 3-8까지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그다음 18에서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하신 것부터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유대인의 큰 무리를 향해서 비
유로 말씀하신 것을 이제 제자들에게 해석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신약시대의
믿음을 대표하는 사도들입니다. 이 사도들로 말미암아 복음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
로 우리는 사도들의 믿음과 같은 믿음이 되어 사도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사도들이 기록한 예수
님의 말씀을 받아서 우리의 믿음을 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에게 비유를 설명해 주신 것은
신약시대의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도 그 같은 유형들로 길가가 있고 돌밭이 있고 가시덤불이 있
다는 것, 좋은 땅만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오늘날의 믿는 자가 말씀을 어떻게 듣고 믿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10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하고 이유를 예수
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13에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
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에 대해서, 즉 믿음의 조
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음의 언약을 받은 유대인들이 그 언약하신 실체가 오셨음에도 알아보지 못
하고 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이신 표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해서 비유로 말한다는 것입니
다. 예수님을 실제로 보면서도 알아보지도 못하고 다니시는 곳마다 천국 복음을 전하시며 가르치셨
음에도 듣는 그 말씀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닫게 하려
고 비유로 말씀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11에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했습니다. 제자
들에게는 허락되었다는 말인데 그러면 천국의 비밀이 무엇일까요? 창세 전부터 비밀로 하셨던 예수
님이지요! 그러면 창세 전부터 예수님이 오셔서 죽으실 것에 대하여 누구에게 비밀로 하셨습니까?
사단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했으니, 그러면 저희는 누구에게 속했다는
말이 됩니까? 사단입니다. 그래서 사단에게 속한 그들에게는 비밀이니 비유를 말해도 알아듣지 못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오실 메시아를 언약하시고 선지자들이 그것을 외쳐왔기
때문에 지금 그 메시아가 오셔서 언약하셨던 천국을 말씀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계속하여 비유로
말씀하셨음에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면 그들이 천국의 비밀이 허락되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이라
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죄 사함을 얻지 못하는 저희를 드러내려는 것이라
고 하는 말씀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그러면 '씨 뿌리는 자'하신 것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계속 씨를 뿌리셨습니다. 영생 얻게 하시는 생명의
씨를 뿌리고 다니셨습니다. 서두에 들어드린 대로 너희가 귀가 있으면 이 비유를 듣고 너희 앞에
씨 뿌리는 자가 곧 19에서 천국 말씀이라고 했지요? 이 천국 말씀을 뿌리는 자가 누구인지 깨달아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천국의 복음, 천국 말씀을 백성에게 계속 뿌리고 다니셨는데
그 뿌린 씨가 더러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곧 싹은 나왔으나 흙이 깊지 않아 뿌리를 내리지 못해 해가 돋으니 말라버렸고, 더러는 가시 떨기
에 뿌려졌는데 가시가 자라니 기운을 막아 결실이 없다. 그러나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결실
하여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되었다고 하셨으니, 말씀을 받는 것이 이처럼 여러 유형이니, 그
러면 좋은 땅 외에는 결실입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과 상관없습니다.
막4:33-44에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
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고 했
습니다. 많은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신 이유가 바로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닫게 하려는 것이요. 사단의 종자를 드러내려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
늘 본문 14,15에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가 뭐라고 예언했다는 것입니까?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
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
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
워함이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이 오실 땐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
서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고 말씀을 깨닫지도 못한다고 예언했다는 거예요. 몇백 년 전에!
그러면 마음이 '완악하여'한 '완악'은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은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졌다. 여러분이 아는 완악이란 단어의 뜻이 뭘까요? 틀려도 괜찮습니다. 틀렸으면
바로 알아볼 기회가 되니 손해될 것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완악의 뜻이 뭐예요? 강퍅해졌다. 또
요? 우리가 알기로는 강퍅하고 성질이 모질고 질기다거나 고집스럽고 사납다거나 뭐 이런 뜻이지
않겠어요? 그런데 성경의 뜻은 그렇게 우리가 아는 것,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절대 안 됩니다. 우
리의 시각으로 보면 인간의 말밖에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해답입니다. '완악하여
졌다'는 것은, 그들이 사단과 같은 마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단과 같은 마음이 되었으니 예수
님의 말씀이 도무지 깨달아지지도 않고 예수님을 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원수로 여기게
되었다고 하는 그들 영적 상태를 말한 것입니다.
그중에 더러는 말씀을 받긴 했는데 마음이 길가와 같고 마음이 돌밭과 같고 마음이 가시 떨기와 같
아서 곡식 중에서 그런 쭉정이가 돼버린 자들이 있기는 했으나, 그리고 더러는 좋은 땅으로 결실이
있기는 했으나 그 외에는 다 완악하여져서, 사단의 무리가 되어서 그래서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했다
는 것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결실했다고 했으니, 결실이 누구일까요? 제자들입니다. 제
자들! 또한 죄인이라고 비난받고 정죄 받고 손가락질 받은 그들이 예수님이 보실 때 바로 좋은 땅입
니다. 그래서 그들을 두고 말씀을 받아 결실한 좋은 땅이 더러는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막4:1-20에 똑같은 비유의 말씀이 있는데 그중 11,12에 말씀하기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
는 주었으나 여기서 너희는 누구입니까? 제자들입니다. 바로 제자들과 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
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땅이기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 자신을 그들에
게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 외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이제 다 아는 것이니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
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
이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들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예수님이 지금 사람들의 구원을 막는 것처럼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 죄 사함 얻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비유
로 하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니 그래서 사람들이 깨달아 구원받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로 말한다는
고의적인 것으로 오해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아님을 조금 전에 여러분이 설명을
들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나 모든 비유는 유대인들이 귀만 있다면 듣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듣고 깨달아야 했
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시겠다고 언약하시고 여러 모양으로
뜻을 보이셨으므로, 그 언약하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백성이었으므로,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
의 말씀을 뿌렸고, 천국의 표적과 이적을 나타내셨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밝히셨으니 그러
므로 비유를 듣고 깨어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신들을 말씀하는 비유를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다면, 그것은 외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외인이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 밖에 어두운 곳,
지옥의 불구덩이에 던져질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밖에 있기 때문에 고침 받을
까 두려워하여 듣기를 거절하고 눈도 감아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비유로써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자인지를 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라면 들을 귀가 있고, 마귀에게 속한
자라면 들을 귀가 없어 전혀 알아듣지 못하니, 비유를 듣고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더는 구원의 가
망이 없다,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
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비유로 하는 것은 외인에게
는 죄 사함을 얻지 못할 자로 드러나는 것이기에 비유로 하신다는 것, 알아듣습니까?
여기 마가복음에서는 '외인'이라고 했는데 본문에서는 '저희'라고 했습니다. '저희'또는 '외인'은
같은 의미로써 다 하나님의 나라 밖(세상 임금인 사단)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
성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세상 나라로 나가 세상을 추구하여 세상의 눈과 귀만 있는 완악(사단의
마음을 받은 코스모스 세상을 품은 자들)한 자들이 되었으므로, 도무지 예수님을 볼 눈도 말씀을
들을 귀도 없으니,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말
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말이지요,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의 의미는 유
대인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는 모든 이들이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인간 배후에는 하나님
의 나라와 마귀의 나라가 있다는 것, 다 잘 알잖아요? 그렇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가 있고, 마귀의 나라가 있단 말입니다. 오늘 비유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
이 깨달아지지 않으면, 천국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깨달아지지 않으면, 그것은 마귀의 나라라는 것
을 가르쳐주시는 거예요. 이같이 하나님의 백성의 완악함을 말씀하시면서, 신약의 믿는다는 자의
완악함은 바로 18에서 22까지의 유형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저는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고 하신 이 말씀이 너무나 충격이
었습니다. 충격! 그렇게 충격일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고침 받을까 봐 두려운 것입니까? 그런데
오늘날 고침 받을까 두려운 사람들이 그렇게 많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충격이라는 말입니다.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가라지, 다음은 가라지 비유라서 그 비유 말씀을
드릴 건데요, 그 가라지 말씀에서 그들 마음에 사단의 씨가 뿌려져 있어 마음 밭이 어떻다는 것입
니까? 가시덤불이고, 돌밭이고, 길가로 그것을 고침받을까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고침 받을까 봐
서! 그러니까 사단과 한통속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한통속이기 때문에 고침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
이고, 그래서 곡식의 씨가 결실하지 못한 쭉정이라 말하고 쭉정이를 불에 태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큰 무리가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계신 곳마다 따라다니며 모여들었고,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에게 모여들었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모여들었을까요?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신 후 병자를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주셨습니다. 유대 전역을 다니시면서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표적과 이적을 나타내 자신이 하나님께로 오신 생명의 주가 되신다는 것을 보이셨고,
그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으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다는 것을 보이시며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세상에는 없는 하늘의 말씀, 진리를 말씀하실 때마다 진실로 진실로 하셨습
니다. '내 말은 세상의 말이 아니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말로,
이것이 하늘의 진리요 법이다' 내 말은 참이요 진리요,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너희에게 이르는 내
말이 아버지의 말씀이라는 것을 그같이 '진실로 진실로'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마5장에서 7장까지의 말씀을 들은 무리가 "야, 가르치시는 것이 참 권세 있다! 권세 있는 자
와 같은데....,우리를 가르치는 서기관들과는 같지 않다"하며 놀라기는 했습니다. 놀라기는 했어도
이 모든 무리가 이렇게 말씀을 듣고 보았음에도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보고 영접해 드리지 않더라
는 말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그 이적을 보고, 그 떡과 고기
를 먹으면서도, 그 표적으로 떡을 먹이시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관심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의 나음을 얻었어도 병을 그렇게 고쳐주신 분, 지금 자기의 병을 고쳐주신 그분이 누구인지는 그
저 병 나은 것만 신나서 내 병을 주님이 고쳐주었다고 할 뿐, 예수님을 알고 영접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오늘날 사람들의 믿는 형편이 이와 같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다! 자기 병 나은 것으로, 기도
가 응답된 것으로 자기가 하나님께 사랑받고 인정받고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말입니
다. 이 유대인들이 메시아로 영접하지 못하고 뭐라고 합니까, "이는 선지자가 아니냐!" 일부는 "혹
시 그리스도가 아닐까?" 거기까지는 갔습니다. 또 일부는 "우리가 그 부모를 아는데 자기가 무슨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그 부모는 요셉과 마리아가 아니냐! 우리가 그 부모를
아는데 무슨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나님이라고 자꾸 그런 헛소리 하고 다니는 것이냐"하
는 쟁론들만 무성히 하는 것입니다.
마16장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즉 "하나님이 사람으로 온 나를, 하
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온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더러는 침례 요한이라고 하고요, 더러는 엘리야
라고도 하고요,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도 하던데요"했습니다. 침례 요한의 신
분이 뭐예요? 예수님을 침례 준 마자막 제사장이요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누구예요? 선지
자잖아요. 이스라엘 나라에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도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그러니
까 그 선지자들 중의 한사람이라고들 하던데요 했지만, 여기에서 "더러는 우리의 구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던데요!"하는 말 있었습니까? "더러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구주라고 하던데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는 했는데 능력을 많이 나타내는 선지자 정도로 본 것입
니다. 그러니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어떠하냐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정말로, 자기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피 흘려주신 자기의 구주요, 생명을 내놓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 사랑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사랑하여 따르고, 예수님 때문에 살고,
예수님 때문에 고난받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믿음이 돼 있는가, 할 때 과연 몇이나 되겠냐는 것
입니다. '어디에서 병이 치료되었다네'하면 몰려가고, '아, 귀신을 잘 쫓는다'하면 쫓아가고, '잘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해준다'하면 쫓아가고, 그래서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되어
그 목사를 믿고 사람을 신처럼 받드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왜 선지자로밖에 보지 못했습니까? 마음이 완악하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5:40에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사람들에
게 생명을 얻게 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너희가 나를 먹으면 살리라는 영생의 말씀, 영적인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처럼 따르던 큰 무리가 서
로 수군거리면서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저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자기 살을 어떻게 먹인다는 것이냐, 아니, 이런 말씀은 너무 어려워서
누가 들을 수 있겠냐"하고 예수님 앞에서 다 물러갔다고, 다시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했
습니다. 맞습니다. 육의 귀로 들으면, 또한 육체의 것을 위해 믿는다고 한다면, 도무지 이해 못 할
말로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영생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지 않
습니까? 그러니 오늘날 이런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는 것, 정말 저는 동감합니다. 너무너무 동감
이 돼서 말이지요. 저의 전하는 이 레마의 말씀을 노골적으로 비난하여 "그렇게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사람들이 영생 얻기 위해서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므로 영생에 대해 말씀을 하시자 모두 떠나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 얻기 위해 예수님께 모여들고 따라다닌 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
입니까? 영생 얻으려고 따라다닌 것이 아니었는데, 영생을 말하니 "무슨 말이냐 듣기 어렵다, 누가
이런 말을 알아듣겠냐?"하며 다 가버리고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았다 하였는데, 그럼 이 많
은 무리들이 왜 따라다녔습니까? 뭣 때문인 줄 아십니까? 그렇지요. 병에서 놓여나고 귀신을 내쫓
아 주고, 배불리 먹이니 그것들을 얻기 위해 쫓아다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믿는다면서 그런
것 보고 따라다닌다면 그들 무리와 똑같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복음을 듣고 깨달아 내
것이 되기만 하면, 말씀은 그대로 살아서 운동(역사)하시니 말씀대로 믿으면 몸에 질병 떠나가는 것
입니다. 천국이 내 안에 있는데 어떻게 그 저주가 머물러 있습니까. 병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서입니다. 그것이!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가시는 곳마다 천국 복음을 먼저 가르쳐 전파하시고 병
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이것이 순서란 말입니다.
요6:26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
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하셨습니다.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그러니까 오늘날도, 주님이 베드로의 실패 만난 빈 그물, 한 마리도 못 잡
은 빈 그물에 많은 고기를 몰아주셔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히게 하셔서 형편이 피게 되었다는
데, 그런 좋으신 주님 믿고 형편 좀 피어 보려고 믿는다고 하는 경우들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물
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고, 보리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을 베풀어주셨으니, 그 좋으신 주님을 내가 믿으면 내게도 기적을 주
시겠지 하는, 그 기대 가지고 믿는다고 하지 않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빈 그물의 기적이
이 사업장의 기적이 되게 해주시라고 기도하고, 오병이어의 복이 이 가정에 있게 해주시라고 기도
하고, 그런 표구들을 만들어서 집안이나 사업장이나 걸어두라고 선물로 주는 것 아닌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죽음에서,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피 흘릴 육신으로 오신 그 표적,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부활이요 생명이시라는 것을 보이신 그 표적,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그 이적으로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 되심을 나타내신 그 표적, 하나님 되심의 그 표
적을 보고, 참으로 세상에 오신 구주이심을 믿어 영생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고, 사
람들이 떡 먹고 배부른 까닭에 예수님을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아서 그렇게 주시는 떡을 먹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 그 생각으로 예수님을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떡 먹고 배부른 까닭에 예수님을 세
상의 임금 삼으려고, 임금을 삼아 '돈 나와라 뚝딱, 빵 나와라 뚝딱'하듯이 하면 얼마나 좋으냐고
그래서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쫓아다니고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그런 정신으로
믿는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번 생각해 보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나를 찾는 것은 떡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로지 병 낫기 위해 모여들고 떡 얻어먹으려고
모여들고 그러니까 세상 것 채움 받으려고 찾아다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자들은 예수님 밖에 있는 외인이요, 완악한 자에 속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
래서 18-23까지의 말씀으로 자기를 진단해봐야 합니다. 신약시대 사람들의 믿음의 형편을 말씀하신
것이니 자기를 진단해봐야 합니다. 누구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유대인 외에 모
든 사람이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악한 자가 누구예요? 마가복음 누
가복음에서는 정확하게 사단이요, 마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깨닫지 못하면, 그 마음에 뿌려
진 것이라도, 예를 들어, 말씀을 듣고 무슨 말씀인지는 잠시는 압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자기 안
에서 속사람의 능력으로 서지 못하고, 자기중심의 주인인 마귀가 빼앗아 버립니다. 그래서 길가에
떨어진 씨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좋은 땅이 되려면 말씀을 자꾸 듣고 또 듣고 새김질
하고 말씀의 능력으로 서는 훈련을 힘써 해야 합니다. 오늘 들은 말씀도 여러분이 일주일 동안
새김질해서 말씀이 자기의 정신이 되고, 영에 생명 얻는 것이 되고, 그렇게 사는 능력이 돼야 합
니다. 그래서 영적 새김질을 해야 돼요. 본인 스스로가 예수님의 이 같은 말씀들로 깨닫고 믿음이
되려는 사모함이 있고, 이렇게 예배에서 말씀을 자세히 풀어주는 이 생명을 받아 나를 비추고 나를
고치는 말씀이 되고 새김질하면 그것이 내 영에 뭐가 되겠습니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입니다.
내 영에 생명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은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니,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을 얻습니
다.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나의 구주시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내가 진정
으로 믿어 영접합니다'하면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신 성영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10장에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으니, 그같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내내 새김질을
하면서, 자기 속사람의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므로 풍성히 얻는 생명이 되게 해야 합니다. 마귀에
게 빼앗기는 말씀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은 끊임없이 들으면서도 늘 빼앗기니 그러니까 능력
없잖아요. 능력 없으니 누가 건드리면,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으로 구원받은 이 사실에 기뻐서 그
런 것들을 능히 감당하고 이길 수 있어야 함에도, 좀 해를 입는다고 하면 똑같이 말이지, 반격하는
그런 성숙하지 못한, 거룩함이 없는 모습들로 정말 예수님이 자기에게서 보이지가 않으니 능력
없는 거잖아요?
그다음 돌밭, 가시밭에 뿌리웠다는 것,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있잖아요? 예수님 믿는 것 때
문에 환란이나 박해나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엄청난 환란, 박해, 핍박을
받았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어떻게 내가 예수님
흉내를 내겠느냐, 나를 거꾸로 못 박으라'고 해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서 순교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도 예수님의 제자로 선동자라 하여 밧모섬이라는 곳에 유배되었는데 기름 가마에
던져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니엘서에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풀무불 속에서
머리카락 하나도 타지않게 하여 살리신 것처럼, 기름 가마에 던져진 사도 요한도 건져내셨다는 것
입니다. 이후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박해를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포기하지 않는 믿음, 왜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자기 목숨보다, 그런 엄청난
핍박과 박해로 고통받으며 죽어도 될 만큼 큰 가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린 뭡니까? 좀 깨달아 보자고요. 누가 자기 기분을 좀 상하게 하면, 비위 거슬린
소리 좀 했다 하면 팩 하고, 기어코 따지고 변명하고 분석하고....,어떻게 그래야 하겠는가 말입니
다. 이런 태도는 다 바리새인이요 쭉정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환란
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는 자, 즉 믿는 것을 포기하든지 타협해버린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돌밭입니다. 가시 떨기에 떨어진 것은 세상 것들로 염려하는 겁니다. 염려로 마음이 매입니다. 왜
매입니까? 돈 때문인 것을 말씀하셨잖아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바로 돈이 비중인 것을 가
르쳐주잖아요? 돈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버려서 결실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영적인 원리입
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들어가지 않는다. 영생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것에 마음이 붙들리고 돈을 좇아가면 그것으로 막
혀서 예수님의 말씀을 귀로 열심히 듣기는 해도 마음에서는 그냥 밀려나 버린다는 말입니다. 밀려
나 버려! 그 세상으로 마음이 채워져 있으면 말씀이 그것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으니 결실이 없다
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마음에 있는 세상, 돈 좀 탁 놔버리고 말씀을 믿는 믿음의 훈련을 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하루하루 주신 일에 그냥 최선을 다해요. 내가 오늘 얼마를 벌어야 할까, 내가 오늘 돈을
많이 벌어야 할 텐데, 이런 계산이나 생각도 하지 말아요. 무슨 일이든지 일하는 목적을 돈에다 두
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업이고, 일이라는 것을 믿으면, 돈이 적다 많다 이
런 것에 매이지 말고, 그냥 성실히 일하세요. 그리고 맡기세요. 맡기고 성실히 일하면서 영생의 생
명, 자기 영생의 생명을 사랑하는 일에 충실하세요. 그 영적인 일, 영을 따르는 일에 관심을 쏟는
다면, 그때부터 아버지가 이끌어 가시는 것을 확실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버릴 능력만 된
다면 신앙은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마음에서 정말 벗어 내버릴 수만 있다면, 마음에서
딱 놔버린다면 신앙은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귀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마음에서 세상을 다
비우고, 오직 자기가 섬기는 그 신에게 마음을 두고, 목숨을 내놓고 온 마음을 다해 섬기는데, 하
물며 나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참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어떻게 그렇게 마음에다 하나님이 싫어하시
는 세상을 두고 좇으며 섬긴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섬김이 안 됩니
다. 예수님께서 그것은 말씀이 막혀 들어가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결론은 예수님
과 상관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니 진정 믿으려면 정신 차린 믿음으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땅만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결실하는 것이니 좋은 땅이 돼
야 합니다. 위에 말씀으로 결실할 수 없게 하는 그 같은 세 유형에서 힘이 된다면, 곧 나와야 할 것
입니다. 마음에 세상이 있고 돈에 매여 있으면, 말씀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는 겁니다. 이미 그런
것들로 심어져 지배받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말씀이 계실 수가 없게 됩니다. 마음이 그런 것들에서
깨끗이 청소되었을 때 말씀이 깨달아지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좋은 땅이 하나
님 아버지의 거두시는 알곡으로 아름다운 보석입니다. 자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지 않습
니까?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알아서 부모의 뜻을 존중하여 따라주면, 그 자식이 얼마나 보배와 같
고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마음을 알기는 커녕 그거는 모른다 할지라도,
무슨 말 하면 탁탁 받아서 지가 더 잘난 것처럼 하는 것 그것 보뱁니까? 자식이 아니라 원수지 같
지! 그렇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좋은 땅인지, 아니, 좋은 땅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생각
하는 그런 것 말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좋은 땅이 무엇인지 눅8장으로 들어가서 보겠습니다. 같
은 비유인데 여기는 이해가 쉽게 되어 있습니다. 8:15를 읽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입니다. 마태복음은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라고 간단히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마태복음의 말씀을 좀 더 이해하여
적용할 수 있게 하신 구체적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진 것이 좋은 땅이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좋은 땅이라는 것
입니다. 당연히 좋은 마음이니 착하지요. 그래서 착하다는 것은 좋은 마음이니 착한 것입니다. 그
래서 착한 것, 좋은 것 다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면 '착하다'를 우리가 삶 속에서 많이 쓰고 있는
단어이니 무엇을 착하다고 하는 것인지 우리 다 잘 알지 않습니까? 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완악'
을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착한 것에 대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자! 어떤 학생이,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짐 보따리를 이고 가는 것을 보더니, 얼른 받아서 그 할
머니 댁까지 들어다 드렸대, 이거 착해요, 안 착해요? 착한 것이지요? 야! 그 학생 참 착하다 하
지요. 어떤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불우한 학생에게 학교 마칠 때까지 학비를 대주어서 그 학생
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대. 자! 이것이 착하고 좋은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착하고 좋은 사
람 맞지요? 누구는 남편이 생활 능력이 없어 궁색한데도 불구하고, 그런 내색 하지 않고 사는 것
보면 '사람이 참 무던하고 착한 것 같아' 그런 말 하지요? 사람이 무던하고 착한 것 같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착하다는 거잖아요. 이 같은 모습들이 얼마나 착하고 좋은 마음들입니까? 그렇다
면 이같이 착하고 좋은 마음들이라서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결실한다는 것일까요? 아니라는 것 아
십니까? 인간이 보는 착한 것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착한 것과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만일 성
경의 뜻을 인간이 생각하는 것으로 풀이하면 성경은 모순투성이가 돼 버립니다. 그래서 이것을 불
법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하나님이 생각하는 착한 것, 또는 좋은 마음, 좋
은 땅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성영님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말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알아듣습니까? 인간 양심적으로 착하고, 인간 성품으로 착하다
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성경에 접근하는 방식이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가져야
할 예의요 겸손입니다.
그러면 착하고 좋은 것, 이미 듣고 배운 부분도 있으니 예수님께서 말씀하는 착하고 좋은 마음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알 것 같으면서도 설명이 안 되지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잘 듣고 자신도
확실함에 서고 설명까지 할 수 있는 지식(능력)을 갖추란 말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 또한 착한
행실 하는 것은 인간 윤리 도덕, 이런 소극적인 것을 넘어선 하나님의 입장의 것, 영적이라는 것
아시지요? 그러니까 성경을 전하고 해석하는 모든 사람이 그 수준에 있지 못하니, 다 똑같이 마음
이 어질고 고운 사람이, 마음에 악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순종 잘하고
열심히 믿는다는, 이런 인간 중심적인 해석들로 쓰레기 같은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 그렇
게들 말함으로써 불법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아주 이성적인 말이
니 거부감 없는 겁니다. 아주 수준 있는 고상한 인격적인 가르침이라 여겨 그 말에 빠져드는 것입
니다. 그래서 착하게 되려고 말이지요, 속에서는 시기와 질투로 부글부글하면서도 겉으로는 겸손
한 척 가식으로 위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을 다 가짜 작품으로 만들어 놓는 거예요.
성경의 좋은 땅, 착하고 좋은 마음은 바로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나 산, 죄인이라는 것을 알
고 통감하는 자의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보니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임
을 알고 통감하는 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는 착하고 좋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좋은 땅이요,
거기에 말씀이 뿌려지니 그 말씀을 지키고 인내로서 결실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그 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해됐습니까? 여기 서 있는 저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착함이 있어서, 마음의 악함이 없고 어질어서 예수님께서 저를 만나주신 것 아닙니다. 저 어
질고 착하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만일에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만나주시는 것이
라면, 저는 지금도 예수님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면초가와 같이 욱여쌈을 당한 그 환경의 어
려움으로 고통당하는 나를 불쌍해서 만나주시겠지, 그런 나를 정말 불쌍해서 만나주시겠지, 불쌍한
처지에 있는 나를 핑계로 하여 그렇게 만나주시길 갈망했습니다. 예배 열심히 참석 잘하면 만나주
시겠지, 기도 열심히 하면 만나주시겠지, 내가 열심히 정성드리니 만나주시겠지, 그렇게 핑계를 해
서 만나주시기를 간절히 갈망했는데, 그러나 이런 열심도 불쌍한 것으로도 예수님 만나지 못했습니
다. 여러분! 이런 불쌍한 것 가지고도 예수님 만나지 못했어요. 얼마나 오랜 세월 이런 불쌍한 것
으로 만나주시는 것인 줄로 알고 하나님을 찾고 간절히 구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들었기 때문입
니다. 예배 열심히 쫓아다니고 기도 열심히 많이 하고, 새벽 기도니 뭐 작정 기도니 밤샘 기도니,
이런 것에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복 주신다고 그렇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나의 불쌍한 처지를 가지고 나와서 "아버지 만나주세요, 하나님 아버지 저 좀 만
나주세요, 어디 계세요, 구만리장천에 계십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계신다더니 도대체 나와 함께
계신 증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만리장천에 계시다면,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면 응답하신다고 하
셨으니 '그래, 나 여기 있다'하고 대답 좀 해주세요"하고 매일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뭔지 모를 것
으로 마음이 슬프고 괴롭고 아파서 나에 대한 연민에 빠져서 그렇게 애원하고 애원했습니다. 그러
나 예수님께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그 표징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표징만 체험시키
셨을 뿐, 내 안에 천국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나와 같은 동기로 하나님께 나와 만나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내가 불쌍하니까 내 정성을 보고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시겠지!'하고 자기
연민을 품고 기도하는데, 그러나 자기 착각이요, 오해입니다. 어느 날 내가 죄인임을 내 영혼에 처
절하게 깨닫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을 만큼 처절하게
경험을 했습니다. 나 자신이 아주 가망 없는 죄인인 것을, 내 고집과 마음이 다 죄라는 것을 알았
고, 하나님을 거역했고,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온 죄인이라는 것을 내맘 깊숙이에서부터 복받쳐 오
르는 애통의 눈물을 흘리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기도한 끝에...., 그래서 정말 지옥 떨어져도 마땅한 죄인으로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눈물로 발을 적시면서 "주 예수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입
니다" 한없이 고백하면서 "주 예수여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는 죄인입니다'를 한없이
고백하면서(한없이 터져서) 내 가슴을 치며 회개를 했습니다. 내 가슴을 치면서....., 그리고 날마
다 내 양심에 걸리는 것, 죄라고 생각되는 것,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회개하는데 어느 날 성영님께
서 내가 죄에서 아주 깨끗함을 얻고 자유케 된 내 모습을 영의 눈으로 확실히 보게 하셨습니다. 가
르쳐주셨습니다. 그 기쁨은 경험해야 압니다. 경험해야! 그러니 목숨 내놓을 수 있지요. 이후 점차
영혼에 자유함의 능력이 서 가고, 영이요 생명의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이 되니, 그 말씀으로 내가
얼마나 큰 권세가 있는 존재인지 성영님이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나를 속일 수 없고,
음부의 권세가 나를 이길 수 없는 권세이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뭐 있으며 흉흉한 소식들이 무슨
문제며 염려거리가 되겠습니까, 말씀은 더욱더 깊게 열려가니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게 이
루어져 친밀함이 깊어지니, 이 행복을 어찌 말로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한없으니 있는 자
에게 더 주신다는 말씀이 내게 실제가 되었고 또 되리라 믿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도도 말씀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제 성영님과 그저 친구처럼 대화합니다. 예전에는 그것도 시
간을 봐 가면서, 기도를 오래 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들었기 때문에, 어떤 때는 길게 기도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보면 삼십 분도 안 된 겁니다. 하여 또 기도한다고 억지로 하기도 했습니다. 물
론 늘 그랬다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못할 때도 많아서 그것이 마음의 짐이 되어 마음이 편치가 않
았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율법적이며 미신적입니까? 인격적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율법적
이면서도 하나님은 알지 못하는 인본의 열심, 인본의 주장을 따른 것이니, 나와 하나님과의 인격적
인 관계는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더 설명하면 최소한 하루에 한 시간씩은 기도하라 해서 시간을 채
워야 하는 줄 알고, 남이 한 시간 하면 나는 두 시간 채워야지 하는 욕심으로 두 시간을 채우려고
억지로 기도하고 말이지요, 기도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방언 있으니까 방언으로 하는 겁니다. 그
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오랜 시간 엎드려서 기도하는 일 없습니다. 다 몰라서 우매
하고 미련한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지, 알게 된 지금은 매일 내 안에서 성영님과 교제하며, 성영님
안에서 기름 부음으로 나를 가르치고 이끌어주시니 내가 할 것이 없습니다.
또한 '성영님 이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하고 묻는 겁니다. 말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머리로는 이것인가! 하고 짐작은 하지만, 그러나 나는 천 번을 죽었다 깨도 모르는 것이니,
성영님 가르쳐주세요'하고 말씀을 마음에 두고 생각하면서 성영님의 가르침을 기다립니다. 그렇게
성영님과 함께 친구처럼 대화하는 거예요. 아주 성영님 안에서 헤엄치고 살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친구처럼 말씀하시고 지혜가 돼 주시고 인내할 수 있도록 붙잡아 주시고 무릇 있
는 데서 받아 더 넉넉하게 하시는 것을 크게 경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예수님 때문에 아주
행복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런데 이제 내 주변을 돌아볼 때에 가슴이 짓눌려서 말입니다. 아프
고 아주 근심되어 고민하게 되지만, 나 자신은 내 안에 계신 성영님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
한지 말로 다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여러분, 막1장에서 한 문둥병자를 우리가 만나보았잖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다 영적으로 그
같은 문둥병자였다는 것 다 알았잖아요? 예수님께 나온 문둥병자는 자신이 하나님께 부정한 죄인임
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정한 자신을 깨끗게 해주시지 않으면 소망 없는 자기의 처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문둥병자가 착하고 좋은 마음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좋은 땅이라
는 말입니다. 그 많은 무리 중에서 한 문둥병자만이 예수님이 그동안 숨죽이며 기다리고 기다린,
자기의 저주를 벗겨주실 주시라는 것을 마음으로 알아보았고, 예수님 앞에 나가지 못하도록 방해하
는 모든 것들을 뚫고, 예수님 앞에 나와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였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
게 하실 수 있나이다" 주님이 저같은 부정한 자라도 깨끗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내가 그 일을 위해 왔다. 내가 부정한 죄를 벗겨 깨끗게 하려고 왔다. 너와 같은 자를 깨끗게 하고
영생 얻게 하려고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즉시, 즉시입니다. 즉시! 즉시로 문둥병이 깨끗하여
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지만 그만이 예수님이 받으시는 죄인이었습니다. 그
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용서를 경험하고 말씀을 듣고 깨달아 결실하는 좋은 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죄인이 필요하다고 네가 죄인이면 내게 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 찾으
러 오셨습니다. 죄인을 찾으러! 예수님은 한 문둥병자 같은 그 죄인 찾으러 오셨지, 의인을 찾으러
오신 것 아닙니다. 죄인인 척만 하는 자들을 위해 오신 것 아닙니다. 나는 죄지은 적 없다고 하는
자들 찾으러 오신 것 아니에요. 나 좀 물질로 부자 되게 해주시면 주님 잘 믿겠다고 하는 자들을
위해서 오신 것 아닙니다. 죄인입니다. 죄인! 그러니까 죄인이 필요하다고, 죄인이면 내게 오라고
하신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 안에 용서가 있고 생명이 있고, 쉼이 있고, 평안함이 있고, 풍부가 있
고, 부유가 있고, 건강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천국의 이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
달아 자기 것이 되어 결실로 나타난다고 하신 겁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는 자만이 예수님이 얼
마나 귀하고 필요한 분인지를 알게 되고, 천국의 비밀이 허락되어 결실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들도 가룟 유다만 빼고 죄인으로 살고있었습니다. 지키라 주신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
신들의 연약함을 알고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피 흘리실 메시아가 오시면 그 짐에서
자유 얻게 될 날을 기다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오셔서 고난받으실 메시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그
리스도, 믿음의 조상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독자, 오직 고대하며 기다리던 그분이 오셔서
그들에게 "나를 따르라"하시니 반사적으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고 했습니다. 그분
이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냐, 아니냐? 이것저것 따져보고 알게 되어서 따른 것이 아니라, 자석
에 끌리듯 그들의 심영이 예수님께 끌려 반사적으로 따라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영혼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착하고 좋은 마음, 좋은 땅이므로 부르셨습니다. 부르실 때 '지금 하던 것
좀 정리해놓고 가겠습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버려두고 좇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따따부따 따지지 말고 좀 받아들여서 믿음으로 적용하여 자신이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기를 힘쓰기 바랍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결실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누가 뭐래도 '예수가 밥
주냐? 옷을 주냐? 너 예수 믿는데 잘된 것 뭐 있냐?' 아무리 비난해도 '넌 그래라 결국은 네가 볼
것이라'하고 예수님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착하고 좋은 마음인
가 여러분 자신을 진단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로 살고자 몸부림치고 있는지 자신을 보시란 말
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는 착하고 좋은 마음은 자기를 보는 눈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보는 것은 자기를 아는 것이니,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은혜와 그 사랑에 붙들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6권으로 된 성경을 주신 것은 나를 알고 예수님을 확실히 알아서 연합의 관계를 이루
라는 뜻에서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말씀을 설교한다고 하는 것들도 들어야 할 것인지 스스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막4:24에 너희가 지금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지금 너희가 듣는 것이 예수님
의 말씀으로 생명을 주는 것인데 헤아리고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삼가라 하셨습니다. 또한,
저들로부터 누구로부터 하나님이 보내신 생명의 말씀을 듣는 것이냐, 자기 자신이 듣기에 좋은 자
기 중심의 말을 듣는 것이냐,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듣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인지 깊이 생각
하라, 무엇을 듣는가, 너희가 지금 무엇을 듣는가 말입니다. 정말 예수님 없는, 생명 없는 인간의
귀로 듣기에 좋은 말, 다 헛된 교훈이요, 다 누룩이요, 불법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과 말씀으로 함께 있는 자가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넓이
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자기의 유업이 되는 천국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예수
님을 알고 그의 말씀을 깨닫는 자는 결실이 몇 배라는 것입니까? 혹은 삼십 배, 혹은 육십 배, 혹
은 백 배라고 하셨으니, 자기의 영적인 복으로 자라 삼십 배에서 육십 배로, 육십 배에서 백 배로
나아가는 여러분이기를 바랍니다. 자기 안에 이루어진 천국이 자고 나면 자라고, 자고 나면 자라는
천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나라에 들어갔을 때, 육체 안에서 이루어진 천국의 크기대로 그
영광을 얻는 것이니, 여러분이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니 그리 알기를 바랍니다.
또한 복음의 확산도, 누구에게 복음을 주어 그가 진정 좋은 땅으로 결실이 되고, 그가 또 복음을
주어 결실이 되게 함으로써,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맺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여러
분이 아멘으로 받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예수님의 의도대로 깨달아 우리 믿음에 적용할 수 있게 하신 성영님께
감사의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제 5 장 씨 뿌린 비유 (좋은 땅만이 말씀을 깨닫고 결실함).p121-p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