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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핍박받은 자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5;8-12)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를 원하였다면 바른 신앙이 되기 위한 자기 애씀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사
실 애씀이 있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하는 이런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기를 원한다
면 자기 신앙을 위해 수고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것이 가장 중한 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
루는 데 있어 인격적이요 진정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말할 필요 없는 말을 또 합니다만, 자기 신앙
을 위한 애씀이 없이 TV나 컴퓨터 등 세속적인 것들을 절제하지 못하고 마음과 몸과 시간을 그런
곳에 두고 붙들린다면, 그것은 곧 악한 영들에 자기 정신을 내주고 있는 것이어서, 그런 경우라면
예배에 와서 말씀을 듣는다 해도 그 말씀이 자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바랍
니다. 설사 들은 말씀으로 믿음이 좀 세워지려 한다 해도 악한 영들에 곧 빼앗겨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하여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지옥의 심판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참으로 예수님을 믿기 원하면 세상에 정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던 때와 같이
여전히 세상 오락이나 취미나 그 같은 세속적인 것들에서 깨끗이 떠나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
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세상도 좋고 천국 가는 것도 좋다는 식의,
그런 형식에 묶인 종교적인 것들에서 이제는 벗어나서 정말 기회 있을 때에 진짜 신앙이 될 거룩
함에 이르는 그 영적 훈련에 적극적이고, 그 삶을 사는 것이 돼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하나님을 본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믿는다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말씀
대로 마음이 청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청결은 곧 생활의 청결과 연결됩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세상에서 살던 때와 다를 바 없는 환경과 생활은 마음이 청결한 것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청결
의 기본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이 아홉 가지의 복이 있나니는 그런 청결의 기본이 되지
않으면 해당하지 않습니다. 청결의 기본이 된, 세상을 깨끗이 떠나 나온 신앙만이 예수님의 이 말씀
들의 능력을 갖출 수가 있고, 이미 그 특성들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심영이 가난한 자요 애통하
는 자요, 온유한 자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요, 긍휼히 여기는 자이니 마음이 청결한 것입니다.
심영이 가난한 자이면, 그러므로 애통하는 자이면, 온유한 자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면, 긍
휼히 여기는 자이면 마음이 청결한 자로 하나님을 분명히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신
영한 자가 되었으니 하나님을 볼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이 자기 안에 오셔서 계신 하나님의 집이 되
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하나님을 뵙고 만나는 신영한 집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
음은 당연히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함을 분명히 알기 바랍니다. 그런데 구약의 출33:20에 보면 네
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분
명히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요1:18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라고 했
습니다. 그리고 요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라고 말씀하고 있어서 인간이 도무지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인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하신 말씀을 무시하듯이 '볼 것이라'
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셨는데 그런데도 예수님은 왜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시
는 것입니까?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버린 불의한 죄인이기 때문에 그래서 죄
인인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도 없을뿐더러 설사 본다 해도 그 즉시 즉사합니다. 그래서 구약 사람
들은 너무나 두려운 하나님, 무서운 하나님으로, 두렵고 떨려서 감히 하나님께 나갈 수도 없었고
아무도 가까이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시는 일도 성전을 지어
그 성전 지성소에다 이름을 두시고 오직 한 사람 대제사장만 일 년 일차 희생의 피(생명)를 가지고
들어오게 하시고 만나시는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난다고 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니
고 희생의 피를 받으시고 백성의 죄를 사하셨다는 뜻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데 이 희생의 피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안에 함께 계신 인성이 피 흘리시기 위해 사람
가운데로, 즉 자기 백성에게 육체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요, 그런데 사람
으로 오신 그분을 하나님으로 알아보는 자도 없었고, 생명의 피를 흘려 하나님께 속죄 제물이 되시
려고 오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보는 자도 없었습니다. 선지자를 통해 자기 백성에게 오실 메시아
에 대하여 알리신 말씀의 그 본질의 뜻을 알아듣고 메시아를 기다린 자는 소수였을 뿐입니다. 그렇
기에 하나님의 인성이 사람으로 오셨을 때는 사람이 그 예수님을 보고도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함께 먹고 마시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임당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냐? 하늘의 그 보
좌를 버리고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죄인처럼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첫째, 마음이 청결한 자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본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 귀신을 쫓으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의 행하신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표적임을 본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이심을 본다고 하시는 말씀입니
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친히 말씀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
르셨습니다. 그리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
이심을 보는 자가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는 그 하나님을 마
음이 청결하면 볼 것이라고 하셨으니 여러분이 진정 스스로 하나님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님을 직접 눈으로 본 예수님 당시는 예수님께서 다니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했지
만 오늘날은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의 하신 모든 일과 말씀을 통하여 스스로 예수님을 하나
님으로 볼 수 있어야 말씀대로 마음이 청결한 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보면 죽었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죽는 겁니다. 하나
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보고 살게 하시려고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 사람과 함께 계시
려고 사람 가운데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이제 사람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그래
서 예수님께서 요14:7에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므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아버
지를 아는 것입니다. 요14장에 빌립이 우리에게도 아버지를 보여주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
께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
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예수님
의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셨으니 예수님의 행하신 일들을 통하여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보고 믿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는 첫째,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본다는 말이고, 둘째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확실히 본다는
말이고, 셋째는 자기와 함께하시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본다는 것에 관해 더 설명을 합니다. 성경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하신 모든 일을 보고 '아, 이분은
참으로 하나님이시다!'하고 자기가 직접 본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사람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볼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
고 많이 듣기 때문에 들은 그것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 나도 믿는다'하는 것을 말하는 것
이 아니라 '아, 이분은 정말 하나님이시구나!'하고 자기가 직접 보는 분이 되어야 하는 것을 말한
다는 말입니다.
물론 듣게 된 것으로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이 확실히 믿어져서 믿음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만, 그
러나 예수님이 행하신 그 모든 일들, 죄를 사하신 일, 귀신을 쫓아내신 일, 병을 고치신 일, 죽은
자를 살리신 일,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을 먹이신 일 등, 예수님이 행하신
일 하나하나를 만나봄으로써 '아, 이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분이 분명하구
나'하고 자기에게 하나님으로 보인 예수님, 그래서 만나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
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성경을 자세히 봄으로써 예수님
이 하나님이신 것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보는 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니 분명히 하나님이시더라는 말입니다. 그분이 분명히 하나님이신 것을 자기가 보게 되었으
므로, 그 예수님을 사랑하여 말씀을 따르는 그것이 곧 인격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을 보니 예수님을 통해 하늘의 아버지가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14:9에 나를 본 자는 아버
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하신 말씀을 보니 곧 예수님이 오셔서 아버지의 일
을 하신 것으로서 그 일을 통해 아버지를 보이신 것이었다는 것을 곧 알고 예수님 안에 계신 아버
지를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모든 일은 곧 아버지의 뜻으로서 하나님 자신을 십자가
에다 못 박아 나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아버지의 그 사랑을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볼 것이라는 것입니
다.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죽으시기까지 나를 살리신 하늘 아버지의 그 사랑, 피 흘려 나를
낳으신 그 사랑의 아버지를 본다고 하는 거예요.
그 하나님이 또한 아예 자녀와 함께 계시려고 자녀 안으로 오셔서 잘못해도 의로운 피로 씻어주시
는 위로를 베푸시고,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힘주시며, 아버지의 이루신 전 역사와 함께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의 것까지 자녀 안에 가지고 들어오셔서 그것을 품고 가르치시며 깨닫도록 보이시고
들려주시며 적용하게 하시는 그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으로 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자기가 보았으므로 믿는 분이 돼야 하는 그것이 믿음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로 하나님을 보게 된 복 있는 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다음 9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입니
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
이 원수 되었던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화목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화평케 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화목케 하는 화목 제물이 되셨으므로 하나님과 사람이 화해되
어 화평한 관계가 되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또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
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내가 화평한 관계를 이룬 것처럼 또
한 사람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바로 하나님과 나와 화평케 하기 위함입니다. 그 일을 위해 십
자가로 올라가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과 사단에게서 구원하시려고
그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하신 일을 본받아 사람들로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에,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구원 얻게 하는 일에 수고와 희생이 따르게 되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마음이라야 한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세상에서 성공하게 하고, 돈 많이 벌게 해주고, 좋은
학교 붙게 해주고, 훌륭한 사람 되게 해주고, 명예 얻게 하고 하는 등등의 이런 세상 것들에 만족
케 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오셨습니다. 사람이 죄로 영원한 심판의 지옥 불에 떨어
지게 되었기에 그곳에서 구원해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 같은 예수님 오신 뜻을
알고 그 은혜를 입은 자면 또한 사람들을 그 죄에서 사망에서 지옥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행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가 복이 있는 자라 왜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오신 뜻과 예수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그 저주에서 구원해내기 위한
사랑으로 예수님을 전하다가,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는 일에 핍박을 받고 수모를 당하고
모욕을 받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 일과 같은 것으로 보시는 것이요,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마5:44,45에 너희 원수를 사
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
리니 하셨습니다. 아니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기도합니까? 나
도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했음에도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
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라 악인도 선인도 의로운 자도 불의한 자도
다 공평하게 비와 해를 주시듯 또한 구원받게 하시는 뜻도 다 공평하게 베푸시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고 하면 배후에 사단의 영들이 있어 핍박이 따르는 것이니, 그같
이 핍박하는 자를 미워하고 보복하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아들의 일이 아니다, 그것을 상대하여
똑같이 보복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고 그들을 위해 사랑하여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하셨습니다.
우리는 원수라고 하면 나를 괴롭게 하고 해 끼치는 자를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 원수라고 하시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그를 잡고 있는 악한 영들임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 악의 영
들에 의해 예수님을 노골적으로 싫어하고 믿음에 대하여 비난하고 해코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10:36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말씀하심으로 핍박을 심하게 하고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또한 집안 식구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악한 영이 믿음을 거절하는 자기 식구들을
통해서 믿음을 시험한다는 거예요. 믿지 못하게 하려고 감언이설과 폭언과 협박 등 심지어 폭력을
쓰기도 하는 이런 핍박과 고통이 따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0,11에서 뭐라고 하십니까? 참으로 예수님의 의를 입은 자로 의롭게 살려니 핍박받는
것이라면,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 것이라면 그것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냐? 하늘에서 상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니까 미워하고 정죄해라. 같이 맞서 싸우라 하신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랑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겁니다. 롬13:8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긍휼히 여기는 마음, 예수님
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지시고 자기를 못 박은 자들을 위해서 저들이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여 짓는 죄니 사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죽음의 그 자리에서도 간구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핍박하는 자들에게 정죄나 비판이나 비난과 미움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간구가 곧 우리
의 간구가 되어서 그 영혼이 진심으로 깨닫고 구원 얻게 해주시기를,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해주시
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말로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희생도 있고 수고도 있습니다.
희생하고 수고하는 것이 곧 예수님이 받은 고난을 같이 받는 것이 되어서 율법을 다 이루는 사랑이
라고 하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신 일이요, 또한,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 일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다음 10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것이 복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옳은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의 옳은 것을 말합니다. 첫째 기본으로써 바로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의 양심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겐 의의 삶입니다. 계명을 지키려 할 때는 반드시 핍박이 따릅니다. 우상
섬기고, 귀신 섬기고, 사람 섬기고, 조상 앞에 절하고, 물질 섬기고, 세상의 온갖 잡것들, 귀신들
을 섬기고 살던 것들에서 깨끗이 회개하고 돌이키려니 거센 핍박과 비난이 따릅니다. 그런데 이것
이 행복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이 저희 것이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본법인 십계명에
걸리는 것이면 천국은 절대로 저희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다음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 심영이 가난한 자로 사는 것이 의입니다. 애통하는 자로
사는 것이 의를 위한 삶입니다. 온유한 것이 의입니다. 온유한 자로 사는 것이 '의'로 사는 의로움
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것, 예수님으로 살고자 하는 것, 예수님과 예수님의 의를 가지고
살고자 하여 그것을 주린 자처럼 목마른 자처럼 찾고 사모하는 것이 의를 위한 의의 삶입니다. 예수
님의 의로 살고자 하는 이것이 바로 의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이 의를 위한 의의 삶입니다. 마음
이 청결한 것이 의예요. 마음이 청결한 자로 사는 그것이 의를 위한 삶이예요. 화평케 하는 것이
예수님의 의를 입은 의예요. 의를 위해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의로 사는 의로운 삶입니다. 구원
받은 것의 행실, 착한 행실로서 예수님의 의를 드러내는 삶입니다.
그래서 심영이 가난한 자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사
망으로 들어가야 하는 죄인인 것을 알아 심영이 가난한 자로 살려고 하니까 뭐가 따라요? 핍박이 따
른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성을 보고 애통하여 죄를 버리고 세상에서 나와 살려니, 세상 사람들로
부터 얼마나 비난과 비웃음과 조소를 받고 핍박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라 온유한 자로
살려니 핍박이 따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으로 살고자 하니 핍박이 따른다는 거예요. 사람의 종노
릇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세상의 종노릇하지 않으려 하니까, 죄의 종노릇하지 않으려 하니까 핍박
이 따른다는 겁니다. 사람에게 맞추지 않으려니 핍박이 따른다는 말이에요. 긍휼히 여기는 자 되지
못하게 하려고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케 하려고 하니 그렇게 친절하던 사람이, 그렇
게 사랑한다고 하던 사람이 돌변하여 핍박한다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 믿고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 그래서 온유한 자가 되고,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고,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고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세상일이 잘 풀려서 잘살게 되고 집안이 잘되는
복이 있으니 그러니 너희들 그런 복 있는 자니 기뻐하라고 하신 것 아니에요. 우리 인간이 생각하
는 복은 고사하고라도 핍박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로 살
려고 하면, 의를 위해서 살고자 하면 반드시 핍박이 따르는데 예수님은 그것이 복이라고 그것을 기
뻐해야 하는 일이라고,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그 복과 거리가 먼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6:26에 예수
님께서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하셨습니다. 아니, 여러분! 예수님 믿는 사람들
이, 그리고 교회가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칭찬하면 그거 좋은 사람들이고 좋은 교회이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에게 칭찬 듣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은 화가 있다고 하십니까? 예수님이 뭘 몰라도 한참 몰라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우리 믿음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기에, 그래서 반드시 세상이 욕하고 들어
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또는 교회가 예수님께 맞힌 믿음이면 핍박과 욕을 당연히 받고 따르게
되어 있는데, 사람에게 맞춰진 것이 되었으므로 또 사람에게 맞추는 것을 열심히 하였으므로, 칭찬
듣는 것이면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람 자기를
드러내는 일로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것이 되었으니 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마귀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마귀를 멸하러 오신 예수님을 믿는 자, 예수님의 의로 사는 자를 반드시
욕하고 들어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를 위하여 사는 것 때문에 욕을 듣고 핍박을
받습니까? 아니면 세상도 좋고 예수도 좋다는 식으로, 교회 나오면 교인이고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과 똑같은 모습들로 두 마음을 품은 이중적인 생활입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은 믿는다고 말하
지만, 그러나 심영이 가난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물론 핍박받는 것 편할 일은 아니지만, 핍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죄를 보고 애통하는 자가 되지 못하니 핍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온유한
자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으니 핍박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니 무슨 욕을 듣겠습니까? 예수님의 긍휼의 뜻을 모르니 인간 양심으로 가진 자기 긍휼을
나타내려고 자기 열심의 마음으로 좋은 일 하러 쫓아다니는 개인이나 교회에 누가 비난하고 욕을
한답니까? 인간 긍휼의 마음 가지고 자기 이름 내고 교회 이름 내는 것으로 쫓아다니며 사랑을 베
푼다고 하는데, 거기에 무슨 욕 들을 일이 될 것이며, 핍박받을 일 없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아무 데나 핍박을 한다고 붙이고 핍박 받는다고 말합니다. 과거 그런 잘못된 모
습들이 참 많았는데 사람들이 은혜받겠다고, 능력 받겠다고 교회 열심히 나오고 부흥회라는 곳에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집안일도 내팽개치고 쫓아다니고 뛰어다니니 가족들이 미
쳤다고 원성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요새 "우리 가족들이 핍박해서요, 핍박이 심해요"하고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핍박받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예수님 때문에 받는 핍박이 아니라
자기 기분, 자기만족을 얻기 위해 욕심에 의해 쫓아다니고 믿음의 분수도 모르고 쫓아다니다 받는
비난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생활할 때 새벽기도가 되었든 철야기도가 되었든 교회가 하는 모든 일에 쫓아다
니다 가정에서의 일을 소홀히 함으로써 가족들에게 욕을 듣거나 분쟁을 일으켜 받는 욕은 핍박이
아닙니다. '그따위로 하려면 교회 나가지 마라, 교회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교회 나가면 가만 안
둔다' 이런 식의 엄포들로 '우리 가족이 핍박이 심해요, 예수 믿지 말라고 협박하고 나와요'한다면
그것은 자기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지 않은 모든 것은 믿음도 아니요 핍박받는 것 아닙니
다. 자기 기분과 자기 뜻으로 행하다 받는 욕은 핍박이 아닙니다. 은혜받고 싶어서, 능력 받아 주
의 일 잘하고 싶어서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은혜받는 것도 능력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능력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거저 값없이 주셨다고 해서 은혜라고 합
니다. 값없이 주신 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죄를 용서하시고 사망에서 구원하여 영생
을 주신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입니다. 그리고 성영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영님이 오시면 여러 은사가 따라오는 것이기에 그래서 선물이
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깨닫게 되었으면 깨달
은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능력입니다. 바로 심영의 가난을 깨닫는 것이 은혜요, 애통을 깨닫는 것
이 은혜예요. 온유를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 마음이 청결한 것,
화평을 깨닫는 것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씀 듣고 나 은혜받았다고 한다면 말씀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깨달았다는 것은 그 말씀
대로 살게 되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깨달은 말씀대로 삶이 되는 것, 깨달은 말씀이 그대로 삶으
로 옮겨져서 사는 것을 능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말하는 바를 삶에 적용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요 능력이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심영이 가난한 자로 사는 것이 능력입니다.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로 사는
그것이 믿음이요,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에서 나는 사랑이 능력이예요. 장소도 시간
도 구애됨 없이 성영님 안에서 하는 기도가 능력입니다. 그래서 복이 있다, 복이 있다, 그런 너는
행복 자로다, 행복한 자라 하신 이것, 참으로 아멘 할 수밖에 없는 이것이 귀중한 복인데, 이처럼
귀중한 복, 이처럼 귀한 능력을, 이 귀한 은혜와 믿음의 능력을 두고 어디서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겠다고 뭘 그렇게 분주하게 쫓아다니면서 가족들에게 신뢰감 주지 못하는 것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방언하고 예언하고 환상 보는 것들을 얻으려고요? 병 고치는 능력 얻고, 귀신 쫓아내는 능력 얻기
위해서요? 물론 이 능력들도 귀하고 귀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한 말씀 한 말씀을 깨닫고 복이 있나니의 능력이 되는 것이 그런 저주와 부정적인 것에서 온전히
놓여나는 능력입니다. 복이 있나니의 능력이 되지 못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사람이 아니요, 예수님
으로 사는 자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심영의 가난도, 애통도, 온유한 자도,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도,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것과는 상관없음에도 불구하고 핍박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이기적 자기도취에 빠져서, 자기가 만족하기
위해서, 자기 성격에 의해서 자기 할 일 내팽개치고 다니다가 받는 비난입니다. 오히려 신앙을 잘
못 보여주므로 예수님이 욕을 먹고 사람들의 구원받는 길까지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핍박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죄 용서의 은혜를 입고 이제
온유한 자로 살려고 하니 핍박을 받는다는 거예요. 의에 주리고 목말라서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예수님의 의로 살려고 하니 핍박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니, 화평케 하는 자
가 되니 핍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다음 11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하셨어요. 예수
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이심을 전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으라고 전하
는데 욕하고 거스르고 악한 말로 핍박할 것이다. 나 때문에 너희가 악한 말을 들으면, 나 때문에
너희를 해치려고 욕하고 덤비면, 너희를 모함하고 거슬리거든, 옳고 그른 것을 변호한다고 분쟁하
지 말고 거기에 분을 품지도 말고 12에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
니다. 그래서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 것이 예수님을 바로 믿는다는 것이 증명되는 일이니 얼마나
기쁠 일인지 그것이 참 복이라는 것입니다.
마5:3에서 9까지 말씀하는 그 의를 위해서 살려고 하니 핍박이 따르고, 예수님을 주려고 하면 세
상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불신 가족들에게 오히려 핍박을 받을 것이니, 그러나 핍박받는 것은
복이 있는 자로 '천국이 너희 것이 되었다'는 것의 증거이니 이처럼 참된 핍박을 받는 너는 하늘
의 상이 크다, 그러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우리에게 그 대처하는 의로움의 방법을 가르쳐주
신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받는 고난만이, 받는 핍박만이, 받
는 욕만이, 진짜 믿음이요, 복이 있는 것이요, 큰 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만족하기 위해
쫓아다니다 받는 욕은, 받는 비난은 13에서 말씀하는 대로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
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마음이 청결하여 하나님을 보는 것과 화평케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과 핍박을 받는 상에 대해서 말씀을 듣게 되었으니 여러분의 말씀
으로 받는 믿음이 되길 바라면서 여기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는 은혜 주시고 말씀으로 사는 능력이 되게 하신 삼위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아멘!!
제 5 장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핍박받은 자는.p83-p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