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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인간 양심
1.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
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
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
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
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살인하지 말지니라 14.간음하지 말지니
라 15.도적질하지 말지니라 16.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17.네 이웃의 집을 탐내
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
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출20:1-17)
저는 오늘 출20:1-17까지의 말씀, 여러분 모두 잘 아는 내용이지요. 여러분! 뭐 읽으셨어요? 여러
분이 십계명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읽었어요. 그래서 오늘 이 계명으로 하나님의
양심과 인간 양심에 대하여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십계명을 말하자면 하나님의 양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닮아 지음을 받은 사람도 양심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양심이 기준이 되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양심을 따라 말하고,
양심에 의해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자기 양심이 위주가 되어 자기 편리할 대로 자기 좋
을 대로 정하기도 하고 바꾸기도 합니다. 만일에 다른 사람에게서 어떤 못마땅한 모습을 보면, 자
기도 그렇게 했을 때가 있었음에도 그것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비난하고 나옵니다. 현재 상황, 자기
상황에다 맞추고 자기 위주로 바꾸어 말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같은 여러 가지의 인간 양심에 관해서 기술하기를 딤전4:1,2에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했고, 딛1:15에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했고, 히10:22
에 양심의 악이라 했고, 히9:14에 양심으로 죽은 행실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끼리는 양심을
가지고 '아, 저 사람 바른 양심이야, 깨끗한 양심이야, 좋은 양심이야'라고 할 수는 있지만, 하나
님에 대하여서는 인간 양심이라는 것은 죽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죄로 죽은 인간 양심은 타락하
고 부패하여 거짓이 가득하고 더럽고 악하고 죽은 행실의 모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죄
에서 구원받아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죄로 타락하고 부패한, 자기가 중심이 된 인본의 기준으로
살던 것에서 깨끗이 돌이켜 하나님의 양심을 받아들여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사는 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양심이라고 하는 십계명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지켜야 하는 법으로는 같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는 기본법입니다. 지키고 싶으면 지키고, 지키고 싶지 않으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규범입니다.
백성이 십계명을 범했을 때는 그 백성에서 끊쳐지리라 했습니다. 돌로 맞아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
래서 믿기 원하면 삶이 돼야 할 계명부터 분명한 인식을 해야 하고 자세를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
의 양심을 받아들여 그 양심으로 살고 있느냐가 구원받았느냐 구원받지 않았느냐를 알 수 있는 척
도가 됩니다. 믿음이 겉보기에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하나님의 이 십계명의 뜻이 삶이 되지 않았다면
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사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인격적이지 않
고, 자기 양심을 따라서 믿는다 하고 있어서 참으로 개탄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양심인
계명에 자신을 깨끗이 하기를 기뻐하여 행하는 모습들이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뒤늦은 때에 이런
말씀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참 답답하고 난감하기는 합니다만 구원에 확신 없는 가운데 방향을 알
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들을 보면서 좀 방향을 잡아보라고, 갇힌 육에서 좀 나오라고 하는 뜻에서
말씀을 드려보는 것입니다. 참으로 들을 귀, 깨닫는 귀가 있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관계 맺는 것을 자기 양심을 좀 착하게 해서, 좀 바르게 해서, 좀 정직하게 해
서 맺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범한 죄를 알려주시고 그 죄에서 나오라고 가르쳐주신
계명을 깨끗이 행하는 것부터가 돼야 합니다. 계명이 말씀하는 죄들을 버리고 그 계명을 내 양심의
기준으로 삼아 기쁘게 행하는 것이 돼야 그것이 삼위의 하나님과 관계가 열리는 기본이 됩니다. 그
러므로 믿기 원하면 심각하게 듣고 자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는 말
입니다. 그런데 이 기본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머리로 열심히 요리하고 있습
니다. 인간 양심을 착하게 해서 바르게 해서 정직하게 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려고 자꾸 끌어내려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도 당연히 맞는 것으로 여기는 것에 부족함이 없으니(자기 양심에 맞
으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은 자기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도의 수양과
훈련으로 양심이 바르게 되어도, 착하게 되어도, 겸손이 되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인간 양심에도 겸손이 있어요. 착함이 얼마든지 있어요. 또 바른 것, 바른 생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하여는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양심으로 맺으려는 그 영혼은 하늘
의 기쁨도 평안도 행복도 없습니다. 설사 기쁨이 있다 해도 그것은 무언가 응답된 것, 신비한 체험
등을 한 것들에 의해서 있는 것일 뿐이지, 실제로 영혼에 성영님으로 이루어진 생명의 기쁨과 행복
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이 지나가는 말로 듣고 흘려버리면 구원은 보장받지 못합
니다. 하나님의 양심을 자기 양심으로 받아 사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자기의 삶이 되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음녀입니다. 계명이 말씀하는 죄들을 깨끗이 하는 기본부터 갖추는 것이
하나님께 나온 자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에는 구약과 신약이 같지만 지키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
다. 구약은 육체의 법입니다. 육체에 새기는 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육체의 상징인 돌에다가
십계명을 친히 새겨주시고 육체의 법으로 주시면서 '너희가 이것을 지키면 살리니'하셨습니다. 사
는 법인 줄 알고 존중하여 지키는 자는 산다고 하셨습니다. 계명 지키는 것이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 사람이 이 계명에 대한 죄를 지었으므로 죄인이 되었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오셔서 죗값을 치르시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으려면 경계의 법으
로 주신 십계명의 죄를 알고 그 죄에서 떠나 나와야 구원 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지켜야만
구원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기를 원하면 심각하게 들어야 합니다.
렘17:10에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
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의지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감각 없이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다음 신약에서는 영적인 법입니다. 구약은 무슨 법이요? 육체의 법, 그래서 육체에 새겨주셨어요
육체를 상징하는 돌에다 새겨주셨다는 말이에요. 신약은 무슨 법이요? 영적인 법입니다. 육체에도
새겨지고 마음에도 새겨진 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에도 새기고 마음에도 새긴 법이니 혼
과 육체가 온전히 그 법의 삶이 돼야 하겠지요? 맞아요 안 맞아요? 전인이 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양심적으로 깨끗하고 바르다 해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죽은 양심입니다.
사람이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게 된 자기의 처지를 알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구원을 받아들
이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이때 즉시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는 영이 되는 것이 아
니라, 전인이 계명의 삶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아까 말했잖습니까? 육체에 새긴 하나님의 양심, 오
늘 본문이 말하는 이 십계명을 세세하게 깨달아 그렇게 살면서 자기를 깨끗이 할 때에 성영님이 영
에 임하실 수 있는 육체의 거룩함이 된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
한다고 해서 즉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을 만한 믿음의 거룩함이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여 모셔들입니다' 해도 구원받을 만한 믿음의 증거, 곧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하신 하나님의 그 거룩함이 자기 삶의 거룩함이 되지 않으면 구원으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같이 죄 사함 받은 믿음의 거룩함이 되기까지, 처음에 성영님께서 옆에 와계십니다. 성영님이
오신 증거로 질병의 치유가 나타나기도 하고, 병을 준 더러운 귀신이 떠나기도 하고, 예배를 드릴
때 마음의 평안을 느끼기도 하는 이런 흔적들이 있습니다. 이 같은 경험들은 바로 옆에 계신 성영
님께서 구원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말씀으로 빛을 주신 일입니다. 그렇기에 참으로 구원받기를
원하면 예수님을 믿기 전엔 감각도 없이, 구애됨 없이 행하던, 마귀와 한통속이 되어 하나님을 대
적하듯이 하며 짓던 계명의 죄들을 분명히 깨달아 알고 깨끗이(회개) 하여야만 구원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심으로 사는 이 계명에 대하여 걸리지 않아야, 깨끗해야 한다는 것 분명 강조하고 또 강
조합니다. 제가 <세상과 벗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 됨>이라는 제목으로 전한 말씀에서도 모든 가증
하고 더러운 것들에서, 자신을 깨끗이 해야 구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성전
의 모든 말씀도 물론입니다. 그것이 성영님으로 거듭나 구원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 구원은 영
원한 구원,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구
원받는 자는 세상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관심 두지
않습니다. 오직 모든 소망과 뜻을 예수님께 두게 되어 있습니다. 성영님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안에 오셨기 때문에, 지키라고 해서 지켜왔던 육체에 새겨진 계명의 법이 이제 심비, 마음에 새겨
진 법, 곧 자기 새 양심이 되어서, 마음에서부터 기쁘게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지키라 해
서 지키는 것에 머물러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구원에 들어온 것 아니에요. 계명에 완전하신
예수님이 성영님으로 안에 오셔 계시니, 지키지 않으면 벌 받을까 봐서가 아니요, 지키라는 간섭의
말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완전하신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온전한 증거예요.
하나님의 양심이 곧 자기 마음에 법, 자기의 양심이 되니 그 양심으로 삽니다. 그것이 기쁨이고 행
복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 모든 초점이 맞춰져 예수님 계신 그곳, 하나님 보좌 우편에 함께 있
는 관계로 천국이 되니, 죄라고 말씀하신 것들에, 세상 것들에 관심도 없고 만들지도,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싫은 것들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구별된 온전한 삶이 되고 온
전한 구원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큰 복을 여러분 아십니까? 안다고 답하지 마십시
오. 영으로 보면 아는 자 그리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전한 말씀들을 잘 듣고 진정으로 자신을 비
추어 즉시로 말씀으로 사는 능력을 갖추십시오. 이 구원의 복 안으로 즉시 들어오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계명을 왜 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양심으로 살기를 원하여 지으셨습
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자기가 피조물의 창조주인 것처럼 신이 되겠다는 교만한 마음
을 품고 보좌를 찬탈하려고, 하나님께 도전하여 대적했습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쫓겨나 땅으로
내려와 하나님께 대한 분풀이로 처음 사람에게 다가와 선과 악을 아는 실과를 먹도록 유혹하여 먹
는 죄를 짓게 했습니다. 사단의 유혹한 말은 너도 하나님처럼 신이 될 수 있다고, 네가 선악과를
먹고 신이 될까 봐 먹지 못하게 하나님이 거짓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떠나간 사람은 다 인본이 되었어요. 자기가 하나님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유
혹의 말을 듣고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보자 사단은 그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
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도록 하여 유혹을 받게 되었고, 그것으로 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
러므로 세상 것들을 우상 한다면 구원으로 들어올 수 없는 것임을, 이미 이 선악과 사건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믿는다는 사람이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이는 이 세상
의 것에 마음을 두고 쫓고, 눈을 두고, 명예를 찾고, 힘쓰는 것이면 절대로 구원과는 관계없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모든 뭇 별 위에 자기를 신으로 높여 스스로 신처럼 행세하려 했습니다. 구원 얻
을 후사들을 섬기게 하려고, 창조된 하늘의 모든 천사들 위에 자기의 보좌를 두려고 했다는 말입니
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신과 행음한 자요, 간음한 자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거짓말하는 것처럼
속여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었습니다. 사단은 안식의 날에 하나님에 대한 거짓 증언으로 이간질하
여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안식을 범했습니다. 사단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공경하여 경배하지 않고 만홀히 여겼습니다. 사단은 사람의 생명을 자신이 취하려고 살인
하도록 사주하였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것, 창조하신 만물을 도적질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에
대하여 거짓으로 증언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의 것을 탐낸 탐욕의 노예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사람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먹지 말라 하신 말씀을 어겼으므로 함께
그 죄에 들어가게 되었고, 아담 이후 사단에게로 나간 가인의 계통인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과 동질이 돼 버렸습니다. 사단과 한통속이 돼 버렸다는 말입니다. 사단의 사망 권세 아래 있
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마음 안에 양심이 있고, 양심 안에 영이 있는데, 바로 그 양심이 하
나님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인간 양심은 자기 위주, 자기 본위의
양심이 되어, 옳고 그름을 정하고 또 바꾸기도 하면서 자기의 법정이 돼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어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범한 죄목이 무엇인지 알게 하
시면서, 그 죄들에서 나와 살도록 하는 십계명을 주시고, 지키고 범치 말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살리는 법인 줄 알고 존중하여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피 흘려 죗값을 치러 용서하
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이시겠다는 언약으로 계명을 주셨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죽고 지키면 살
리라는 언약의 법으로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해됐습니까?
그래서 백성이 부지중에 계명을 범했을 시는 용서받을 길이 있었지만, 지켜라 명하신 것을 듣고도
고의로 또는 자기 육신의 사는 것 때문에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모든 계명을 다 범하는 것이 되어
서 돌로 쳐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날도 그 원리는 같은 것이기에 구원에 들어갈 수 없어요. 이미
다 말씀드렸던 것이니 여러분이 이제 다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나님께 나온
것이면,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죄에 빠진 자신을 구원하신 것인데, 자기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있
다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사단이 범한 죄에 동조한 사람의 그 죄
때문에 오셔서 죽으셨고, 그 죄를 용서하셨는데 여전히 계명의 죄들을 범하는 것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것은 거짓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심이 내 양심이 되어야 그가 바로 구원에 들어가는 것이요, 들어갔다는 증거입니다. 인
간 자기 양심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
길 수도 없습니다. "나는 왜 열심히 믿는다고 하는 데도 복이 없어! 나는 믿음이 들지 않는 것 같
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렵고 믿는 것이 힘들어! 나는 하나님이 잘 이해가 안 돼! 나는
말씀을 봐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깨달아지지가 않아!" 바로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자기 양심으로
믿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양심에서 발동하는 것들로 말씀을 잘라내고 북 치고 장구
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성탄절 지킨다고 불법이라고? 성경 어디에 불법이라고 했느냐? 하나님을 위해서인
데 그것이 왜 불법이냐! 말 같지 않은 소리다, 그래도 어떻게 수천 년을 행하던 것을 쉽게 버릴 수
가 있느냐! 지나친 행사들은 좀 줄이고 예배만 해도 되지 않겠어?" 이런 꼴값들을 떱니다. "아니,
집안에 조각품 좀 둔다고 그것을 섬기고 절하는 것 아닌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믿는 것인가?""아
니, 주일에 예배드리고 나서 볼일 좀 볼 수도 있지, 이 바쁜 세상에 시간이 어디 있어, 주일날밖에
날이 없는데, 하나님도 내 형편 아시니까 예쁘게 봐주시겠지 뭐!""아니, 성찬식 때 쓰는 떡이 이스
트 넣은 빵이면 어떻고, 뻥 튀겨놓은 과자면 어때, 그냥 예수님의 살이라는 믿음으로 먹으면 되지,
믿음이 중요한 것 아닌가!....."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자기 양심에서 나는 이런 생각들로 타협하
며 기어코 죽음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좋을 대로 이랬다저랬다 정하는 믿을 수 없
는 양심이 기준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괜찮을 것 같고,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하면 꼭 망할 것 같고, 생각해보니 뭐 나쁜 일은 아니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 사람 양심에 맞는 말 하는 것 아닙니다. 사람들이 지금 자기 양심은 하나님에 대
하여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가운데, 그래서 옛사람은 죽음에 내줘야 함에도, 자기 양심과 하나
님의 양심에 대해 가름되지 않은 무지함으로 믿음 생활한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저의 이 말씀들이
다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 마음 다칠까, 상처받을까, 거부하지 않을까 걱정
하고 조바심하며 말씀 전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제가 사실은 몇 주 전까지 조금 조바심을 했습
니다. 이 말 하면 이 사람이 걸리고, 저 말 하면 저 사람이 걸리고, 이 사람이 걸리고 저 사람이
걸리고 또 저보다 연장자들도 걸릴 것에 다소 마음이 불편하여 조바심하면서 말씀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못하신 성영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저의 그 같은 작은 조바심에 대해서 마음에
책망하시며 그것으로 사단이 나를 속이고 들어오도록 내가 틈을 내준 것이 되었다고 그것을 네가
당하였다고 일러주셔서 제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제게 뭔 일이 좀 있었거든요.
그러니 혹이라도 인터넷을 통해 말씀을 듣고 은혜가 된다고 하여, 여기 이 예수님의 교회에 오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기회에 당부 말씀까지 합니다. 저는 자기 양심으로 행하는 일들을 드러내어 자존
심을 다치게 할 수도 있는 말씀을 할 수밖에 없으니, 만일에 여기 와서 다치는 것 원치 않으면 절
대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존심 다친다고 안색을 바꾸고 떠날 일이면, 저와 맞지 않으니 여
기 오는 것 삼가라는 말씀을 분명히 드립니다. 인터넷에서 말씀을 듣고 받든지 받지 않든지 한다면
자기 자존심 상할 일 없지 않습니까? 또한 이미 사람을, 또 세상을 초월한 저에게 와서 자기와 같
지 않다고 가르치려고 하는 것, 다른 교회와 같지 않다고 가르치려는 것, 절대로 받을 일 없으니
쫓아오는 것 신중히 생각하란 말입니다. 또한, 말씀을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은 이제 자
기가 성영님과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지 제가 설명해드릴 것 더 없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자기
양심을 동원해보았자 자기를 망할 길로 이끌어가는 것밖에는 더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인간 양심에 일어나는 작용에 대해서 알 수가 있는데, 요8:9에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했습니다. 양심에 가책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다음 롬2:15에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했습니다. 예를 들면 양심에서 나는 것으로 생각들이 '내가 잘
못 되었구나' 인정했다가도 곧 뒤따라서 '내가 잘못할 수밖에 없도록 나를 그렇게 만들었잖아!'하
는 식의 송사하며 변명한다는 것입니다. 인간 양심은 다 그렇다는 것 아닙니까? 끊임없이 자기 양
심이 송사했다가 변명도 했다가 하는 것이잖아요. 성경에 인간 양심의 특징이라는 것이 이렇게 가
책을 느끼기도 하고, 송사와 변명을 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자기 양심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자기 양심은 몰
랐잖아요. 하나님이 계신 것도 몰랐잖아요.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자기를
지으신 분이라는 것도 자기 양심이 알고 있었던 것 아니잖습니까? 여러분! 양심으로 예수님을 알고
교회 나왔습니까? 양심으로 예수님 알았어요? 양심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 알았습
니까? 성경을 통해서 주신 복음을 듣고 우리가 믿을 수 있었던 것이지,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성영님이 옆에 오셔서 믿을 수 있도록 도우시니 믿는 것이지, 자기 양심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자기 양심으로 하나님 알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자기 양심으로
하나님 섬길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러므로 자기 양심과 상관없이 자기는 죄인으로서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피 흘려주신 그 은혜를
입지 않으면, 지옥 가는 존재라는 그 믿음이 왔으면, 예수님은 구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
주요, 심판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으면,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결단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결
단이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삶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이방인으로서 하나님께 나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말입니다. 다니엘서
에 보면 이방 나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당하여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가
이방 나라에 높은 학문을 익힐 자로 선택되어 바벨론 왕궁으로 불려 갔습니다. 그들 앞에 왕이 먹
는 진미가 하사되었으나 우상의 앞에 놓였던 것과 부정한 짐승의 고기로 차려진 음식이라 왕의 것
을 거절하는 것은 왕을 거절하는 것이 되어 참수를 받게 되는 것임에도 이들이 그것을 먹지 않을
것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뜻을 확고히 정하였다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이방인으로서 하나님께 나와 예수님을 믿게 된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뜻대로 믿을 것이
라는 뜻을 확고히 정해야 합니다. 뜻을 정하지 않고는 믿음을 바로 가질 수 없습니다. 믿음을 바로
행할 수가 없습니다. 결단 없는 신앙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양심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
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에는 사람과의 관계도 끊어야 할 일도 있고, 양심적으로도 어려움이
따르기도 하고, 비난이 따르기도 하고, 때로는 직업적인 것도 손해가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그 세 친구가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뜻을 두었을 때, 하나님께서 확실히 보상하셨던
것처럼, 그 모든 보상은 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참으로 믿는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죄인인 것도, 하나님이 계신 것도, 자기 양심으로 알고 있었던 것 아니요. 자기 양
심으로 믿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도 기어코 자기 양심으
로 믿겠다고 하는 부정하고 더러운 모습들로 있습니다. 자기 양심의 기준으로 맞는 것은 받아들이
고 맞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몸부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심으로 고침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신 말씀을 너무
나 절감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기 양심이 하나님의 산 양심으로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서 말입니다.
두려워서! 도무지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양심, 하나님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냐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냐를 자기 양심으
로 판단하고 송사하고 변명하니, 그래서 절대로 믿음도 되지 않을뿐더러 진정한 회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가 되지 않아요! 회개가 무엇인지를 아예 모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양심을 받아들
여 살지 않으면 자기를 볼 눈이 되지 않으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회개를 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
가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으로 말씀을 들으면 양심의 가책은 좀 받기는 합니다. 인간 양심의
특징이 가책을 받는다고 했잖아요? 말씀 듣다 보면 자기가 하나님의 양심으로 살고 있지 않으니, 받
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이 느껴져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까 성경이 뭐
라고 했습니까? 곧 변명한다고 했잖습니까? 말씀 앞에 가책이 따르니까 자기 양심이 편해지려고 양
심 안에서 변명으로 돌아가 버리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근히 마음에 화가 올라와 가인이 안색
을 변하였던 것처럼 안색이 변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는다고 해도 자기 양심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회개가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전적으로 가망 없는 죄인인 자기를 보지 못하니, 하나님의 표적에 맞
히는 회개를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가책하기는 해도, 뉘우치기는 해도 하나님의 권위 앞에 절대
복종이 되지 않고, 참된 회개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요8장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고발하여 죽일까 하고 그 고발할 조건들을 만들기 위해서 간음하는 여자를 현장에서
붙잡아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이 사건 다 알지요? '율법은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했
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할 것입니까?'라고 이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렇게 묻는 것은 예수님
께서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 즉 죄를 용서하여 생
명을 얻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했으니 그러면 '나는 살리러 왔으니 이 여자를 죽이지 말라'한다면
모세의 율법을 폐하는 것이 되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모독하는 것이니, 돌로 맞아 죽어야 할
조건이 되고, 또한 생명을 주려고 왔다고 하면서, '그래! 율법을 범했으니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쳐 죽여라'한다면 죄 용서하여 생명을 주러 왔다는 것이 거짓으로 드러나니 고소당할 조건이 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혀 땅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쓰시자 누
구도 예수님께 시비를 걸지 못하고 더 묻는 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시고 또다시 땅에 글을 쓰시니 저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도 젊은이도 모두 하나씩 하나씩 다 나갔다고 했어요.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
의 가책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양심에는 가책을 받았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쓰시면서 무엇을 다루셨겠습니까? 그들의 죄를 다루신 겁니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자기들의 숨
은 죄는 아무도 모를 줄 알았지만, 예수님께서 가까이 있는 자로부터 하나씩 하나씩 숨은 죄를 드
러내시자 죄가 드러나니 슬그머니 나가기 시작했는데 여자 외에 남은 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나 그 여자를 돌로 치려고 현장에서 잡아 온 자신들이나 다 돌로 맞아 죽어야 하는
똑같은 죄인이더란 말입니다. 이들이 자기의 죄가 드러나니 양심의 가책은 받은 겁니다. 양심의
가책은 받았어요. 그런데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기가 바로 돌로 맞아 죽을 죄인이라는 것, 하나
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은 바로 자기 자신들이라는 것을 자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자
복하지 않았어요. 그냥 슬그머니 다 나가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죄를 드러내셨으니 자기 양심이 가
진 죄들을 스스로 다 알고 있음에도 그곳에서 슬금슬금 나가버린 겁니다. 바로 이것은 사람이 자기
양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섬긴다, 한다면 자기 죄가 드러날 때 양심에 가책은 받기는 해도 절대
로 회개가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뜻을 도무지 깨달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자기 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하나님
을 섬기겠다고 하는 것에 스스로 완고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양심으로는 하나님과 걸리는 것 없다
고, 자기가 생각해보니 자기의 죄는 죄가 아닌 것으로, 스스로 타당하게 여기고 변명으로 돌리는
겁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인과는 상관없고, 그 죄인이 되지 못하여 간음한 여자보
다 더 악한 자기를 보지 못했고 예수님 앞에 죄인으로 엎드리지 못했습니다.
사실 오늘날 믿는다는 이들의 영적 상태는 이 바리새인 서기관보다 더합니다. 예수님 믿는다는 사람
들이 다 자기 양심으로 믿는 데에 뿌리를 깊게 내려버렸습니다. 예수님과 관계없이, 관계를 맺지 못
한, 믿는다는 것만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가 잘 믿는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
님 앞에 누구만 남았어요? 간음한 여자, 죄인만 남았습니다. 율법에 정죄당하여 죽음에 내몰린 죄인
만 예수님을 만나 용서를 경험하고 생명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으려면 먼저 죄인이 돼
야 합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제1계명에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하셨으니 자기를 위해 다른
신을 두었다는 것, 하나님께 죄인이지 않습니까? 아! 나는 죄인이구나!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제2계명이 우상 형상 만들지 말라 하셨으니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것들을 좋아하고 집안
에 장식하고 좋다고 껴안고 함께 동거하던 자기의 유치하고 더러운 모습들이 있잖아요. 그러니 아!
나는 죄인이구나!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기
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신 계명 앞에, 아! 나는 죄인이구나! 이지,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모든
계명을 범한, 영원한 형벌에 떨어질 죄악의 종자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간음하는 자입니다. 그
렇기에 이 계명의 죄들에서 깨끗이 나오지 않으면 그는 여전히 간음하는 자입니다. 자기 양심은
죄와 상관없는 줄로 착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기 양심으로 믿는다고 한 이 사람들은 죄를 드러내자 양심의 가책은 들었어도 가책을 느낀 것일
뿐이지 회개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것 여러분이 눈이 있으니 보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아무
리 들었어도 예수님을 아무리 많이 보았어도 예수님과 관계가 이루어질 수가 없으니, 예수님의 말
씀 앞에서 떠나 자기 양심으로 믿는 하나님에게 가지 않습니까? 이것이 오늘날의 믿음의 형편입니
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피해서 자기 사상으로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
까 예수님은 뒤로하고 주여만 부르고 주님만 찾잖습니까? 그래서 자기 양심에 맞는 말 들으러 다
니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을 높여주는 말 들으러 쫓아다니는 겁니다. 그리고 '참 은혜 받았다, 기
쁘다, 그 목사 능력 있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는 겁니다. 자기 양심에 맞지 않는 하늘의 말을
전하는 곳은 저거 이단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이단이라고 하는지도 모르면서, 자기 양심과 다르니
이단이고, 육으로 행하는 것에 부딪히니 이단이라고 무시하는 겁니다.
죄로 드러나고 지적받으면 양심의 가책은 따라오긴 해도, 곧 또 변명이 따릅니다. 자기 양심의 기
준에다 올려놓고 판단해보니 '그것이 왜 죄냐! 말이 안 된다! 그렇게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자기 양심으로 말씀을 대하면 그렇게 절대로 하나님의 기준
에 맞는 회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요8장에 분명히 증거가 있지 않습니까?
마27장에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다닌 가룟 유다가, 로마의 속국이 된 유대를 예수님께서 해방하고
왕이 되면, 한자리 얻어 명예 부귀를 누리리라는 꿈과 기대를 하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보니
아무래도 자기가 꿈꾸던 그런 분이 아닌 것으로 짐작이 되어 은 30냥의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유다의 생각은 대제사장이 예수님에게 사람들 선동하지 말라고 다짐을 받고 매질이나
해서 내보낼 줄로 알았던 것인데,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죄인이란 누명을 씌워 사형을 시
키려는 그 움직임을 본 겁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 양심에 가책이 따른 겁니다.
생각해보니 삼 년 세월 따라다니며 보아온 예수님은 배고픈 자 먹이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
아내고 죄인을 용서해주신 분으로 죄라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그분이 정죄당하는 것을 보고, 마음
이 대단히 괴로웠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심의 가책이 따라 괴로우니 돈을 다시 돌려주고
되돌리려고, 그들에게 가서 그는 무죄한 분이라고 주장했지만, 되돌릴 수가 없게 되자, 결국 목숨
으로 갚으려고 목매어 죽은 겁니다. 죽음으로 갚으려고! 자기 양심에 따르는 가책 때문에 죽음으로
처리해 보려고 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믿음이 무엇인가? 어떻게 믿는 것인가를 여러 모습
으로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인으로서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세상 것을 위해서 믿는
것이 되고, 그 목적이 되어 자기 양심으로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상관없고 죄인이 될 수
없고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더 증거를 대야 하겠
습니까? 인간이 철저히 죄인이 아니면, 자기 양심으로 믿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파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삼 년여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모든 병을 다 고치신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귀신
을 다 쫓아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무화과나무를 명하여 마르게 하신 것도
풍랑 위를 걸으신 것도 압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놀라운 이적
을 나타낸 분인 것도 압니다. 자신에게 권능을 주셔서 나가 귀신을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미 죽
어서 냄새나는 나사로 살린 것도 또 여러 죽은 사람을 살린 것도 목격했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
는 능력을 행하신 것을 다 보았습니다. 또한, 죄인들을 영접해 맞아들이고 평안과 위로와 기쁨을
주고, 새 삶을 얻게 하시고, 그들을 친구로 대해 주신 것을 다 보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
과 동고동락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예수님과 관계없는 자가 되었습니까? 죄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인과
구주로 만남이 되지 않으면, 예수님의 하신 일을 낱낱이 안다고 해도, 박사가 되었어도, 자기가
병에서 치료되었어도, 귀신이 쫓겨나갔어도,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이 많다고 해도, 부자가 되었어
도, 예수님과 관계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자신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인인 것을
절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확실히 깨달아져야 합니다. 지옥의 형벌로 들어갈 처지에 놓인 자신을 알
아야 하고, 예수님은 죄인의 구주로 오셨으니 죄인만이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의 말씀이 구주와 죄
인으로 만난 자의 것이 되어 생명과 복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죄인으로 예수님을 만났다면 죄에서 용서받은 큰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증거입
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냐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향
해 찾아 나가게 됩니다. 용서받은 기쁨이 있는 자는 순종이 복이요 행복인 것을 아는 것으로 나타
납니다.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자기가 지금 무엇을 순종하지 않은 지, 무엇을 순종해야
하는지, 찾게 되고 기도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 것에서 마음이 떠나고 하늘의 것을
좇아가는 것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죄인으로 구원받은 기쁨이 있는 자에게서 점차로 나타
나는 특징들입니다. 이것을 벧전3:21에서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죄에서 구원받은 것을 아는 그 기쁨이 있는, 오직 하나님의 것을 받아들
인 그 선한 양심만이 하나님을 찾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선이 있다고 했습니까? 인간에게는 선이 없어요. 죽은 양심이라고 했잖습니까? '양심에
거리끼는 것 없다''아주 착하다'하는 것을 선이라고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이
아니에요. 성경이 말씀하는 선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입니다. 하
나님의 말씀이 선이에요. 인간 양심은 죄로 타락하고 부패하고 더러운 양심이 되어서 거룩하신 하
나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섬길 수도 없다고 했잖아요. 도무지 선에 반대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히9:14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영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
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말씀
했습니다.
인간 양심은 하나님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그래서 인간 양심으로 행하는 것은 죽은 행실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자기 양심
에 의한 것이면 다 죽은 일입니다. 히10:22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했습
니다. 이같이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양심을 악이라고 했습니다. 양심의 악을 깨달아야 함을 말했어
요. 그러므로 자기는 하나님에 대하여 죽었음을 알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은 다 하나님에 대
하여 죽었습니다. 그래서 죄인이요 양심에 뿌림(피 뿌림)을 받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 흘
리심을 깨달아 알고 자신이 하나님께 대하여 죄인임을 인정하여 자복하고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죄 용서의 은혜를 입는 것이 양심의 악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한 양심의 일입니다.
먼저 자신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죄인임을 아는 것, 인정하는 것, 이것이 선한 양심의 기초라는 말
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를 통해 예수님의 피로 죄 용서받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따를 확고한 결단으로 성영님의 인도를 따르는 이것이 선한 양심입니다. 성영님으로
말미암아 자기 안에 이루어지는 이것이 선한 양심이에요. 그래서 죄인으로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진
자는 반드시 성영님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게 되어서
하나님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가 하는 것을 찾아가게 돼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선한 양심이 하
나님을 향해 찾아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영님이 임하시니 자기 양심은 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인간이 가져야 하는 하나님의 기준을 향
하여 찾아간다고 하는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양심의 기준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선한 양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벧전3:16에 선한 양심을 가지라 딤전1:19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누누이 말씀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양심을 받아들여 사는 것으로 자기 양
심이 되라는 것입니다. 먼저는 기본이 되고 근본이 되는 것이 십계명입니다.
시77:13에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롬7:12에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
우며 선하다고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양심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 양심과는 구별된 거룩한 것이
라 말이지요. 이 거룩한 법으로 살 때 그것이 거룩한 삶이요, 바로 의의 삶이요, 선한 양심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이, 인간이 사단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께 범한 죄의 목록으로 예수님이 이 죗값을 십
자가에서 치러주셨고 또한 예수님은 계명에 완전하신 분이니, 이 계명에 완전하신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와계시면 계명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능력이 되었으니 계명으로 사는 것이 아주 기쁜 것입니
다. 육은 세상을 좋아하여 세상 것을 좇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그렇게 구원받은 영은 하나님의
것을 좇는 것이 자연스럽고 기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예수님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안 지키면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가 아닙
니다.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자기 양심입니다.
물론 예를 들면 예수님의 날 예배하러 나와야 하는 것이, 때로는 귀찮고 힘든 생각이 들 때도 있습
니다.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그 유혹을 이기고 나와 예배를 드리는 때
도 있습니다. 이렇게 육체의 안일을 이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날을 안 지
키면 벌을 받고 무슨 일 일어날까 봐서 할 수 없이 지키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 양심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배의 날을 자기 양심 편하기 위해 지키는,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으려고 지키는 것이
지 믿음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자기 양심이 껄끄러워서 지키는 것 절대 하나님과 관계없습니다. 잘
알아듣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여기에 속한 자인 것인지 진단이 내려지면 하나님의 양심으로
살 것이라는 결단이 속히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계명에는 인간 양심에 맞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 공경하라,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라''과부
를 돌아보고 구제하라'는 등등 물론 이와 같은 계명도 영적인 것과 연결되지 않고 문자에만 매인다
면, 사실상 하나님의 의도에는 빗나간 것이지마는 이 같은 계명들은 인간의 양심에 맞는 것이기에
부모 공경한다고 해서 핍박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 공경한다 해서 누가 핍박합니까? 욕할
사람 없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고 구제한다고 해서 핍박받고 순교 당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오히려 좋은 일 한다고 상 준다 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양심에 맞는 것이니,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아도 교회 가면 나쁜 것은 안 가르친다고, 그래도 교회 가면
좋은 말 듣는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자기 양심이 기준이 되어 믿는다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앙을 볼 때, 얼마만큼 부모를
잘 섬기느냐, 얼마만큼 형제간에 우애 잘하고 희생하느냐, 얼마만큼 이웃들과 정을 나누고 관계를
잘 맺고 있느냐를 척도로 보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 하시는 사랑인 줄 아는 겁니다. 그래
서 목사도 자기 양심으로 척도 삼고 저울질 하고 눈여겨보다가 미흡하다 싶으면 사랑이 없다, 인정
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인간 양심에 맞는 것이 아니라, 인간 양심에는 전혀 없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양심으로서 하나님께 맞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인간 양심으로는 도무지 알 길도
없는 것, 즉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우상 형상 만들지 말고 절하고 섬기지도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
는 이 네 계명과 그에 따른 영적인 신영한 윤리와 도덕입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할 때 거룩히 지키는 것이 무엇이냐 말입니다. 여러분! 거룩히
지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기에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양심으로 살 때, 인간 양심에
맞지 않으니 당연히 핍박과 비난을 받기도 하고, 외면을 당하기도 하고, 많은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는 것이 신앙이요 하나님이 보시는 척도입니다.
긴 말씀이라서 듣는 여러분에게 죄송하지마는, 그러나 믿음을 바로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
에...., 여러분이 진짜 구원으로 들어가려면 마음을 좀 기경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다 갈아엎어
야 합니다. 자기 양심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만난다고, 섬긴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참
으로 믿기 원하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다 자기 양심으로 믿는 자리에 있다고 해
도 절대 과언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말씀 좀 길다고 해서 몸 자세가 느슨해지고 풀어진 모습
들이 있다니 지금 뭐하자는 것입니까? 여기 왜 왔습니까? 충격으로 들어야 하는데, 그냥 하시려면
하시고 마시려면 마시오. 이런 태도들이니, 여러분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는 것입니까? 그러면
예배 자세도, 말씀 듣는 태도도 바로 하십시오.
신앙은 인간 양심과는 전혀 맞지 않은, 하나님께 맞아야 함을 말하기 때문에 핍박이 따르는 겁니
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날을 지키는 것도 거룩히 지키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세상 말에도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거 정말 맞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이 예수님의 날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가를 보면, 다른 계명들에 대해서도 지켜지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예배
당에 와서 예배 순서까지 다 마쳤으니까 그것으로 거룩하게 지켰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이날을 온전히 섬기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들어온 지체로서
가져야 하는 교회의 모임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듣고 배워 변화를 받으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께 온 마음을 두고 묵상하며, 경배하고 섬기는 마음이 되어 있느냐,
참으로 신영과 진정이냐?
아니면 오늘 예배드렸다는 자기만족으로, 이후의 시간을 세상의 일로 열심히 하고 분주하고 있는 것
인지, 세상의 모임들로 흥청거리며 자기 기분을 위하고 있는 것인지, 눈과 귀와 마음이 티브이나 컴
퓨터 등에 붙들려서 그런 영상 매개체 등을 들여다보는 것을 자기의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지, 무엇
으로 돈을 좀 많이 벌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을 도모하느라고 동분서주하고 있는지, 어찌 되었던 하나
님께서 거룩히 지키라고 세상과 구별해놓으신 하나님의 날 생명과 복이 약속되어 있는 예수님의 날
을 이런 육체의 일들로 깨트리는 것이 된다면 '예배 드렸으니까'하는 것은 자기만족일 뿐이고, 하나
님과는 관계가 없는 헛된 예배라는 것을 말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알아듣습니까?
그것은 자기 양심을 따라 행한 것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거룩히 구별하신 날을 자신에게 더럽히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저주가 따를 뿐, 참 하나님과는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룩
하게 구별하신 이날, 온전히 삼위의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예배로 영광 돌리는 뜻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날을 거룩한 날로 지켜야 한다는 것 반드시 알기 바랍니다. 자기의 날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
는 말입니다. 성영님께서 함께하심으로써, 복된 삶으로 인도하시고 마침내 영광의 하늘에 들어가는
믿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이 예배의 날은 예배하는 날로 딱 정해놓으십시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를 복되게 하신 삼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2013년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인간 양심.p123-p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