荀子(순자 BC 298-238 추정)
순자는 전국시대의 유가 사상가로
이름은 황(況)이고 순경(荀卿) 또는 손경(孫卿)이라고도 불렸다.
공자와 맹자의 유가 전통을 이어받았으면서도
맹자의 성선설에 반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다.
그는 사람은 원래 본성이 선하지 않으며 이익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기적인 존재
라고 보았고 교육과 수신을 통하여 예를 배우고 실천하여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의 성악설은
에덴동산에서 원죄(原罪)를 지은 인간의 모습을 꿰뚫어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공자와 맹자와 달리 유가 사상이 현실 정치에 접목되기 위한 실사구시적
(實事求是的) 방법론을 제시하였는데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특히 예(禮)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순자는 공자와 맹자에 비하여 상세함,
소위 디테일(detail)에 그 가르침의 특징이 드러난다.
순자에게서 수학(修學)한 이사(李斯)와 한비자(韓非子)가 전통 유가 사상에서 벗어나
부국강병을 통한 패도정치를 주장한 법가 사상가가 된 것은 순자의 이러한
현실적 시각에서 비롯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은 스승인 순자의 유가 사상이 공자와 맹자의 이상적인 사상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으나 혼란한 전국시대에 자신들의 지식을 펼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법가 사상을 중심으로 군주의 통치술이 더 고도화되어야 한다는
생각하게 되었다고 보았고 결국 두 사람은 군주는 엄격한 법과 제도로서
통치해야 한다는 법가사상(法家思想)을 각자 체계화하기에 이른다.
순자는 권학편(勸學篇)을 시작으로 32편에 이르는 장(章)을 통하여
인간사의 거의 모든 행위에 관한 예리한 분석과 주옥같은 권고의 말을 남겼으니
공자, 맹자와 더불어 유가의 대학자이며 사상가로 추앙받아 손색이 없다.
지금 세상의 정치, 사회상을 보면 순자가 지적한 대로 예(禮)의 실종이
그 어지러움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인들이나 소위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언행이 예에 어긋나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커녕 미움과 증오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것을 매일 보도되는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보는데
결국 그들은 일반 국민들도 비례(非禮)를
서슴없이 저지르게 하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논어를 비롯한 공자의 가르침이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편찬됐지만
<荀子>는 순자 자신이 기술한 것으로 알려져
그가 공자와 맹자의 유가 사상에 정통하였음을 알 수 있고 사리(事理)에 대하여
그가 얼마나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어 누구나 한 번씩
읽어보면 좋을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