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노동자! - 21세기 홍길동
글. 김태균 (매탄동 주민)
요즘 학교에서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근로자와 노동자와의 차이를 모르는 대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니, 차이를 넘어 노동자라는 표현보다 근로자라는 표현이 보다 고급적 표현이고, 노동자라는 표현은 무언가 껄끄러운 표현인 듯 사용하기를 부담스러워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근로부장관이 아닌 노동부장관, 근로조합이 아닌 노동조합, 근로법이 아닌 노동법 등 ‘노동’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일상에서 더 많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왜 노동자라는 표현보다 근로자라는 표현이 우리에게는 더 익숙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노동’과 ‘노동자’를 비하하고 의도적으로 왜곡하기 위해 노동자라는 표현보다 근로자라는 표현을 사회적으로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비하하고 왜곡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근로자와 노동자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확인해 보자. 근로자의 사전적 의미는 ‘부지런히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노동자의 의미는 ‘육체적 또는 정신적 노동을 통해 그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사람’을 의미한다.
확실히 사전적 의미도 다르다. 무엇이 다를까? 요즘 대부분의 상품이 정가제이기 때문에 흥정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재래시장 등에 가보면 상품을 사고 팔 때 흥정을 하게 된다.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보다 비싼 가격에, 같은 가격이라도 보다 적은 양을, 같은 가격과 같은 양이라도 덜 좋은 배추(상품)를 팔고자 흥정을 할 것이다. 이에 반해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싼 가격에 많은 양을 그리고 좋은 배추를 사고자 흥정을 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요구를 위하여 파는 사람은 ‘안 판다’고 사는 사람은 ‘안 산다’ 고 소리 높여 자신의 흥정력을 높인다.
이러한 흥정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노동력을 사는 사람(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보다 싼 가격(저 임금)으로 보다 많은 양(장시간 노동)과 좋은(노동강도)상품(노동력)을 사고자 흥정(교섭)을 하고자 할 것이다. 파는 사람(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비싼 가격(고 임금)과 적은 량(노동시간 단축)과 적정한 품질(적정한 노동강도)을 위하여 흥정(교섭)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흥정을 위해 파는 사람(노동자)는 안 판다(노동쟁의)를, 사는 사람(자본가)는 안 산다(직장 폐쇄)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교섭력을 높이게 된다. 이러한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교섭 구조를 그리고 교섭력을 높이기 위한 노동자의 노동쟁의(파업)를 부정하기 위하여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는 근로자로 부르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라 불리는 지금의 노동자들은 어쩌면 호부호형(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름)을 하지 못하는 21세기 홍길동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