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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행하는 자들
<마7:21~23>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성경은 무엇에 대해 증거하는 책인가? 즉 성경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 ㅎ님의 은혜다.
ㅎ님의 은혜를 드러내어 나타내기 위해서 쓴 글이요 책이다(대상: ㅎ님의 백성들/전 인류NO)
이것을 구원이라는 방편을 도구로 삼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어지는 ㅎ님의 긴 내용을, 오로지 ㅎ님의 은혜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성령께서 쓰신 ㅎ님의 승리의 서사시다.
이 성경의 본론은 ‘사람의 구원이 어떻게 주어지는가?’이다. ‘너희들은 모두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인데 어떻게 무엇으로 용서받아 구원받는 거니?’에 질문과 답을 주시는 것이 성경이다. 이 성경을 언약이라고도 하는데 왜냐하면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구약은 옛언약이고 신약은 새언약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ㅎ님의 언약은 비유와 상징으로 인봉되었기에 아무나 읽는다고 깨달아지는 게 아니다. 닫혀있는 밀봉된 비밀한 책, 비서인 뿐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읽고 있지만 정작 생명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ㅎ님은 왜 옛언약과 새언약을 나누어서 구원을 설명하고자 하실까? 먼저 옛언약과 새언약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야 한다.
옛언약=율법, 행함의 의에 방점(가치)을 둠/ 새언약=복음(은혜), 믿음의 의에 방점(가치)를 둠
옛언약은 사람 자신이 가능성을 가지고 ㅎ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잘 지켜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지 한번 시도해 보라는 의도에서 ㅎ님이 허락하신 체계이다. 그게 구약 이스라엘의 실패한 역사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구원은 너희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거나 힘써서 되는 게 아니니까 뒤로 빠져라, 대신 ㅎ님이 다 이루셔서 거저 선물로 줄게, 이게 새언약이다. 그래서 새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 IX이시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사 ㅎ님의 심판을 받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대속함을 받아 의롭다함을 받아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IX를 믿으면 다 용서받고 구원된다는 것이 ㅎ님의 새언약이다. 물론 ‘누구든지’는 전 인류가 아니라 택한자들을 의미한다.
계13장을 보면 두 짐승이 출현한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사단이 IX를 패러디(흉내)해서 조작한 짝퉁 그리스도이다. 붉은 용 사단이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서 만든 적그리스도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다. 그런데 그 짝퉁 예수에게 경배하지 않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창세전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이다. 이들만이 성령의 지키심을 받아 가짜를 분별해서 ㅎ님을 우상으로 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머지들은 모두 다 짝퉁 그리스도를 숭상하며 따른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입맛에 딱 맛아 떨어지는 신이기 때문이다.
<계13:4> 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사단은 모방의 천재이다. 그가 꾸민 짝퉁 예수는 어느 인간이고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칭송한다는 말이다. 무슨 말?(이렇게 좋은신 ㅎ님, 이렇게 은혜로우신 예수님이 세상천지에 어데 있는가?)라는 조롱 섞인 ㅎ님의 비웃음이다. (너희들이 설정하여 높이고 섬기는 예수는 너희의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고 병고쳐주고 천국 보내준다고 여기는 그런 예수이지? 그런데 그게 바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거든? 이 썩을 놈들아!)
ㅎ님의 호통이신데 이를 모른다. ㅎ님의 눈으로 보면 짐승인데, 미혹된 자들의 눈으로 보면 능력의 구세주로 보인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세상 사람들은 그런 예수, 그런 ㅎ님을 좋아하고 섬긴다. 복주는 좋은신 나의 ㅎ님! 십일조 내면 창고가 넘쳐난다는데 못할 게 뭐있나? 마치 로또 복권 사듯이 십일조는 좀 특별한 비싼 복권일 뿐이다. 언젠가 ㅎ님이 인정하시는 때에 한 방만 터지면 인생 펴지는 일인데 왜 못하랴? 로또야 확률이 작지만 십일조 내면 복받는다는 말은 성경에도 써 있고, 세상이 존경하는 목사들이 단골처럼 가르치는 교훈이니 믿을 만 하다고 여긴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러니 입 다물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라는 대로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아닌가?
그런데 성경은 이들을 일컬어 너희들은 진노의 그릇으로 처음부터 지어진 멸망의 종자들이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짐승을 짐승으로 보지 못하고 능력의 ㅎ님, 부활하신 예수라고 칭송하지만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일 뿐이다. 탐심에 미혹되어 엉뚱한 우상을 섬기고 있다.
<계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보라~ 다 미혹 당한다고 한다(택함 받지 못한 자들이..) 다만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은 성령의 지키심으로 보호되는 것이다.
그리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이 바다‘짐승을 높이고 경배하라고 부추긴다. 이름하여 거짓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사람의 가능성을 부추겨서 열심과 충성을 좋은 믿음이라고 호도한다. 그래서 사람이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ㅎ님을 잘 섬겨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에 동화된 자들은 자신들의 행함에 가치를 두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분주하게 종교생활을 한다. 열심을 많이 낼수록 좋은 믿음이라고 여기기에, 그래서 ‘누가누가 잘하나’라는 경쟁의 모드 속에서 수고하는 종교인들이다.(십일조, 새벽예배, 선교, 전도..)
이들은 ㅎ님이 왜 옛언약을 운용하셨는지 그 의도를 완전히 도외시한 채 그저 무턱대고 열심만 부리는 걸 장땡으로 여긴다. 그래서 롬10장 3절에서 ㅎ님은 친절하게 지적하시는 게 아닌가? ‘너희가 ㅎ님께 열심은 있으나 지식(진리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서 ㅎ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한다’라고, 이것은 구약에서부터 ㅎ님이 한탄하시던 부분이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 라고~
여기서 지식의 내용이 무엇일까? 인간 자신의 주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이다.
ㅎ님은 ‘네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좀 알고나 까불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너는 중풍병자인 주제에 축구하려고 나대는 꼴이라는 것이다. 렘17장에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계신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사64장에서는 ‘사람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다’ 이러한 지적을 마음에 새기지 못하니까 ‘ㅎ님을 감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고 팔 걷어 부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거야 말로 ㅎ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악인 줄 누가 알까?
그래서 옛언약인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고 한없는 용서를 베푸시는 긍휼의 ㅎ님께 나아오라는 ㅎ님의 지혜가 십자가 복음인 새언약이다. 새언약은 ㅎ님의 은혜의 산물이요 사랑의 증거이다.
(롬11:32~33)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모든 사람(택하신 백성)/성경핵심(긍휼을 심령 깊숙이 아로새기라는 것이 구원의 목적임, 이것을 위해 창조하셨으니 창조의 목적이기도 함. ㅎ님의 은혜를 뼈속 깊이 아로새겨서 본향인 천국에 오라는 것임: 그 은혜의 영광을 세세토록 찬양함이 성도의 본문이다(ㅎ님은 이같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을 창조하심)
이렇게 옛언약과 새언약을 운용하시는 ㅎ님의 구원의 경륜이 명확하거늘 이것을 모르고 아직도 인간 자신들이 구원을 이루어 내겠다고 팔 걷어붙이는 것이 문제이다. 성경은 인간 너희가죄와 허물로 죽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는데, ‘아니요 그래도 난 할 수 있다니까요, 내 열심 내 정성 좀 눈여겨보시고 점수 좀 주세요’ 한다. 이들이 누구다? 넓은 문, 넓은 길을 가는 자들이요, 거짓 선지자들이다. 율법 행함에 가치를 두고 사람의 열심과 정성을 보태 자신의 구원을 이루려는 자들이다.
짧은 동화 하나 소개~어떤 임금이 백성들에게 꽃씨를 나눠주고 가을에 심사해서 잘 기른 자는 큰 상을 주겠다고 함. 그러나 반드시 왕이 준 씨앗으로만 꽃을 피워야 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서 물을 주면서 키웠지만 이상하게 꽃씨는 싹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자 백성들은 상을 받기 위해서 꽃집에 가서 같은 종류의 새 꽃씨를 사서 왕이 준 씨앗과 바꾸어서 다시 심었다. 그들의 화분에서는 예쁜 꽃이 피어났다.
그들은 모두 임금에게 상 받을 일을 기대하면서 정성껏 그 꽃을 가꾸었다. 임금이 정해 놓은 기한이 차자 씨앗을 받은 백성들이 저마다 자신이 가꾼 화분을 들고 임금 앞에 나왔다.그렇게 저마다 아름답게 핀 꽃을 들고 나왔지만 이 상황에 임금님은 기뻐하지 않고 크게 실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떤 한 소년이 싹도 나지 않은 빈 화분을 들고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임금이 그 소년을 부르자 소년은 떨면서 임금 앞으로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임금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물도 주고 거름도 주며 온갖 노력을 다 해보았는데도 이렇게 싹도 피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벌을 받아 마땅한 자이니 제게 벌을 주십시오’ 하면서 울었다.
그러자 임금은 “아니다 너야말로 정직하게 꽃을 피웠다. 내가 원했던 꽃이 바로 그 꽃이란다라”고 말하면서 크게 칭찬했다. 임금은 아이에게만 상을 내렸고 나머지 엉뚱한 꽃을 피워가지고 온 백성들은 전부 감옥에 처넣었다. 알고보니 임금이 백성들이 얼마나 정직한가를 시험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싹이 나지 못할 썩은 씨를 주었던 것이다.저는 이 동화를 생각할 때마다 바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교회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다시 말씀드리지만 신앙의 출발선은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데서 시작된다.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인간의 정체성ID는 무엇인가?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는 것이다. 자기 밖에 모르는 자아사랑과 자기연민으로 똘똘 뭉쳐진 시한폭탄이다. 내게 유리하면 입이 함박꽃처럼 찢어지지만 내게 불리하면 입에서 게거품을 쏟아내는 버러지 같은 무존재가 인간 나다. 온갖 탐심을 가지고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남을 죽이고 해칠 수 있는 자다. 가인이 누구냐?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동생 아벨도 죽이고, 게다가 ㅎ님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자, 그 가인이 바로 나 아닌가?
그래서 사람이란 어려서부터 그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인 마귀새끼인 것이다. 그런 자가 어떻게 ㅎ님 말씀을 잘 지켜서 의롭다함을 얻겠다는 것인가? 마귀가 열심과 정성을 내면 선이 되겠는가?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맺을 수 있겠는가? 쭉정이와 가라지가 일천 번제를 드린다고 알곡이 되겠으며 염소가 불공을 드린다고 양이 되겠는가? 본성 자체가 다른데 거짓 선지자들은 이게 된다고 가르친다. 열심히 ㅎ님을 섬기면 복도 받고 천국에도 갈 수 있다고 부추긴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계13장에서 나오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정체가 계19장에서 밝혀진다. 거짓 선지자라고..
<계13:11~13>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종교의 옷/정신사상)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그들은 새끼양 흉내를 내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이적과 기사를 보인다고 한다. 새끼양이란 어린양이신 IX를 모방한다는 말이다. 이 모방이 무서운 것이다. 통상 적그리스도를 안티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안티라는 말은 유사하다라는 의미이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용어이다. 무엇이 그리스도를 방해하고 적대하는 것인가? 가장 유사하게 속임수를 쓰는 자들이다. 짝퉁 루이비통이야말로 가장 루이비통 회사에 치명적인 적이듯이, ㅎ님에게 가장 악한 자들은 가장 유사한 그리스도를 흉내 내고 짝퉁 예수를 섬기라고 가르치는 자들이다(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함).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는 밖에 있지 않다. 실제로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은 이방인들이 아니다. 진짜 교회를 허물어트리는 적그리스도는 교회라는 정통 교단의 옷을 입고 ㅎ님의 종이라는 양의 옷을 입고 있다. 이들이 부추기는 것은 사람들이 가장 듣기 원하는 말들이다. 복주시는 ㅎ님, 소원 성취해주시는 ㅎ님, 문제 해결해 주시는 ㅎ님, 천국 보내주시는 ㅎ님..
(딤후4:3~4)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욕심에 동화된 사람들의 특징은 바른교훈(진리)을 싫어한다. 진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손해를 감당하라는 십자가 설교는 귀에 거슬릴 뿐이다. 대신에 자기 사욕을 부추기는 설교에 귀를 기울인다. 복복복..한국인처럼 복을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공짜라면 양재물이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 신년 부흥회니, 문제해결 다니엘 기도원이니, 여기저기 방황하며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설교자를 찾아 동분서주한다.
게다가 거짓 선지자는 큰 이적과 기사를 보인다고 한다. 마24장에서도 많은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가 일어나 큰 이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라도 미혹한다고 한다. 세상 복을 주는 설교에다가 기적까지 일으킨다면 ㅎ님의 큰 종임에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두둑한 헌금을 준비하여 안수 받으려고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러나 이들이 사단의 종자인줄을 꿈엔들 생각할까?
가령,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나, 예루살렘교회 이초석 목사의 축사(장풍으로 나가떨어지는..) 현상이 과연 성령의 은사일까? 금이빨 은이빨이 십자가 복음과 무슨 상관이 있나? 그런데 이런 자들이 교계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ㅎ님의 허락이다. 진짜와 가짜를 걸러내는 방편으로 이들을 도구로 쓴다는 것이다.
(신13장)보면,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 말대로 이루어질지라도 그들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너희가 ㅎ님 말씀을 따르는지 그들의 말을 따르는지 알려하사 시험하시려고 그들을 두었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신다. 물론 죽이라는 말은 물리적인 살해가 아니라 마음으로 무시하여 뒤돌아서라는 말이다.
<계13:16~18> 16 저가(땅에서~짐승, 거짓선지자)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
16절에,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지지 못하면 매매를 못하게 한다고 한다. 교회가 완전히 세속화 되어서 그런 세상 복준다는 교훈을 가르치지 않으면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장사가 안된다는 말이다. 큰 성 바벨론으로 속화된 음녀교회를 차지한 거짓 선지자(거짓 목사들)들은 강대상에서 ㅎ님의 복을 팔고, 신자들은 복채(헌금)를 낸다(파는 복: 천국 티켓과 각종 형통의 복과 평안의 복이다), 복채는 각종 헌금, 십일조, 충성봉사의 노동력이다.
ㅎ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에서 잘먹고 잘살자는 이런 정신사상을 가지고 있기에 이마에 표를 하고, 이런 일을 가치로 여기며 살기에 오른손에 표를 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마는 정신사상을 비유하고, 오른손은 사람의 추구하는 행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래서 666표를 컴프터 바코드니, 혹은 교황이니 히틀러니 말하지만 그런 육적인 개념이 아니다. ㅎ님의 이름을 팔아서 땅의 가치를 챙기고자 하는 짐승화된 욕망을 상징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주는 표를 지칭해서 666이라고 한다. 666은 사람의 수요 짐승의 수라 한다. 무슨 말일까? 모양은 사람인데 실제는 짐승과 방불한 존재들이라는 의미이다.
짐승의 정체성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거는 자들이다. 눈만 뜨면 사냥감이나 먹거리를 찾아 땅만 쳐다보며 사는 족속들..(먹고 자고 싸고...먹고 자고 싸고..) 오로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서 산다. 여하히 성공출세해서 이 땅에서 높임 받을까? 여하히 돈을 모아서 육신을 편하게 누리며 살까? 여하히 무병장수를 누리며 살까?가 짐승화 된 인간의 목표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라이프 싸이클을 작동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더욱 가증한 것은 소위 교회라는 곳에서 ㅎ님의 이름을 팔아 이것들을 구하고 찾으면 이루어진다는 교훈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거짓선지자들의 행태이다.
마23장을 보면 거짓 선지자의 대표격인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해 ‘화있을 진저 이 외식하는 놈들아’7번이나 저주와 질타의 말씀을 하시면서 ‘너희가 교인 하나를 얻고자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 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고 일갈 하신다.
여기저기 선교니 전도니 하면서 사람을 얻으면 배나 지옥자식 만드는 자들이 거짓선지자들이다. 지옥자식이란 선악과 먹은 천연적인 인간들은 가뜩이나 탐심의 노예들인데, 이들에게 복주는 ㅎ님이라는 거짓을 퍼뜨려서 각종 종교적 헌신을 담보로 더더욱 땅의 욕심으로 불타오르게 하는 것을 지적하시는 말씀이다. 그래서 개독교가 되었다. 이방인들 보다 더 많은 욕심 덩어리가 되어 각종 범죄에서 감초 같이 연루된 것을 뉴스에서 접할 때마다 개탄스러울 뿐이다.
오늘 본문이 이런 것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날이란 역사의 종말이며 심판의 날이다. 그 때에 모든 일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거짓과 참이 밝혀진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이 뭐냐면 많은 업적을 자랑한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업적을 늘어놓는다.
선지자 노릇이란 말씀을 가르쳤다는 말이다. 전도하고 선교하고 설교했다는 것이다. 또한 귀신을 쫓아냈다고 한다. 김기동 목사처럼 축사를 했다면 그런 능력은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많은 권능을 행했다? 이건 병도 고치고 각종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다는 말이다. 승려도 가끔 병고치고 무당도 병고치며, 작두를 타는 등 각종 기적을 일으킨다. 사단이 주는 능력이다.
그래서 주님의 답은 너무도 냉정하고 차갑다.(나는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하니, 이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심판 주가 모른다고 떠나가라면 갈 곳은 하나뿐이다. 불못 지옥이다.
불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 말씀 앞에 하신 말씀을 보면.
15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여주여 한다는 말은 매사에 주님을 염두에 두고 살았다는 말이다. 바리새인처럼 열심과 충성을 보인 신앙인이 또 있을까? 그들은 박하와 근채의 십일조까지 했던 자들이다. 돈은 누구나 다 아끼는 게 아닌가. 그런데 철저하게 율법대로 살려고 사소한 물질에까지 헤아려 십일조를 드렸다. 게다가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는 경건생활을 중시했으며, 금식으로 아낀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구제에 힘썼다. 정말 ㅎ님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살려고 몸부림 쳤던 자들이 바리새인이다. 아마도 오늘날로 치면 종교인의 노벨상인 플리쳐 상을 받고도 남았을 참 괜찮은 신앙인들이다.
그러나 부연하지만 참 된 진리 지식을 모르는 채 무턱대고 사람의 열심과 충성을 다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많이들 오해 한다. 교회 일에 열심을 내면 좋은 믿음, 좋은 신앙으로 착각들을 한다. 경건주의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귀감이 될 정도의 윤리 도덕적 삶이 좋은 것이지만 참 된 신앙의 기준은 아니다. 이런 류는 모두 믿음과는 상관없는 자기 욕심의 표출일 뿐이다. 정말 믿음은 나대지 않고 조용하다. 자신을 믿지 않고 ㅎ님의 언약을 믿는 게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이렇게 훌륭한 바리새인을 보고 주님은 ‘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 아비는 마귀니라!’(호통을 치신 것임)
여기에 하늘 아버지의 뜻이 나온다. ㅎ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을 알면 불법도 이해될 것이다.
<요6:38~40절>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ㅎ님의 뜻을 이행하시러 이 땅에 오셨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역사되는 새언약이다. 40절보면, ㅎ님 아버지의 뜻은 그 새언약을 이루신 아들을 보고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율법적인 의로 생명을 얻으려고 하고, 윤리 도덕적인 것으로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다. 본문에서 ㅎ님의 뜻을 행하라는 말은 IX를 믿으라는 말이지 어떤 일을 수행하라는 말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롬3장 21~24)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무엇이 잘못된 불법인가? 옛언약은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려고 준 것인데, 이것을 모르고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 자신이 주제를 모르고 자기 가능성을 갖고 온갖 노력과 애씀으로 구원을 이루어 내겠다는 그것이 불법이다. 그리고 이것은 ㅎ님의 은혜의 산물이신 새언약의 그리스도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는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히브리서 10:28~29절)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란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들이다.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인 무익한 종이라고 해야 마땅한데, 거짓선지자와 거기에 부속된 자들은 알량한 자기 업적을 내세우며 그것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랑하니 이게 불법이다.
행여나 아직도 이런 자가 있다면 부디 회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 출처: 사랑과 복음교회(김기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