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한 사랑 - 고향에서의 추억, 사랑
2018.11 더불어
음력 10월 보름이 나의 할머니의 기일이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산양면 영운리 우리 동네에는 작은 개울물이 산으로부터 흘러내려서 그 개울물을 중간쯤에 받아서 마을의 공동 빨래터로 사용하였다. 그 물이 흘러 다시 바다로 이어지는 개울이 있었고 그 개울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있었다. 그 다리 건너에도 동네 사람들이 사는 집이 모여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아직 결혼을 하기 전이던 고모가 제사라고 와서 제사를 다 지내고 엄마가 제사 음식들을 집집마다 나누어 싸주시면 나와 고모는 그 음식들을 고모는 머리에 이고 나는 손에 들고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했었다.
그 밤 보름달이 어찌나 밝았던지 개울가의 그 다리 위에서 바라본 둥글고 커다란 달빛이 고모와 나를 비추고 있어서 밤길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 은은하고 노르스름했던 달빛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 달은 하늘보다는 땅과 더 가까이 있는 듯했고 껑충 뛰어 손을 뻗으며 닿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가깝게 떠 있었다. 달빛이 밝은 가을밤이었고 고모와 나는 그렇게 동네 이웃들에게 제사음식을 나누어주고 돌아왔다.
요즘은 제사를 지내도 이웃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이 거의 없다. 제사에 참석한 친지들조차도 제사음식을 아주 조금만 가져갈 뿐이다. 그 시절은 먹을 것이 귀했으니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 밤의 그 달빛이 내 가슴 한곳에 남아 나를 비추는 듯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기 때의 나와 할아버지의 추억은 어른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 들었다. 내가 동네에서 소문 난 울보 아기였을 때 겨울에 커다란 잠바를 입고 계셨던 할아버지께서 그 잠바 속에 나를 넣어서 동네를 한 바퀴 구경시켜주고 집으로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다.
이제껏 할아버지께서 어린 손녀를 잠바 속에 넣어서 세상구경을 시켜주시는 장면을 상상해보지 않았는데 그 장면을 떠올려보니 그때의 할아버지와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울보였던 손녀에게 바깥 구경을 시켜주려고 할아버지의 체면은 잠시 뒤로 한 채 손녀를 자신의 잠바 속에 넣어서 안고 나가셨을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때의 나는 할아버지의 심장소리에 안심하고 따스한 체온 그리고 잠바로 인해 춥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의 할아버지의 마음과 나의 느낌들을 되살려보는 일이 내게 힘을 주는 듯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통영으로 내려와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미수동 삼촌댁에 사셨던 할아버지께서는 회사가 있는 북신동까지 걸어 오셔서는 차 한 잔을 마시고 또다시 걸어서 미수동까지 걸어가셨다. 나름 자수성가한 아들이 일하는 회사에 와서 큰 대접을 받고 가지는 않으셨지만 할아버지는 자식과 손녀가 함께 일하는 그곳을 방문하는 일을 하루의 중요한 일로 여기시며 뿌듯함을 느끼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늘 꼿꼿하셨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 난 뒤 뵙게 된 할아버지는 왠지 더 정감 있게 여겨졌다. 할아버지와 정다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은근한 그 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늘 덜 사랑받고 자랐다고 생각해왔지만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있기 전부터 존재했었던 달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있게 한 나의 부모님과 그 부모님의 부모님들. 내가 모르는 수많은 나의 조상님들을 떠올리면 나라는 사람이 참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깜깜한 어둠에 갇힌 듯 마음이 외로워질 때면 그 달빛을 꺼내어 본다. 그 밝고 커다랗고 따스한 느낌의 달빛에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지고 따뜻해져 온다. 그 달이 항상 내안에서 빛나고 있는데 나는 자주 그 사실을 잊고 살았나보다. 나를 비춰주는 달빛을 떠올리며 나는 또 한 걸음 한 걸음 망설였던 발자국을 떼어볼 용기를 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