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음 자료를 읽고 <작성 방법>에 따라 서술하시오. [4점]
(가) 국사는 조국(肇國)의 유래와 국운 진전의 대요를 가르쳐 국체의 존엄한 이유를 알게 해 ㉠황국신민 정신을 함양하는 것을 요지로 한다. - 「소학교 규정」 제20조 (1938) -
(나) 강조가 적진에 끌려가자, 거란의 성종은 그의 결박을 풀게 하고 자기의 신하가 되기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강조는 “나는 고려 사람이거늘 어찌 너의 신하가 되겠는가!” 하고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성종은 거듭 신하가 되기를 간청하였으나, 대답은 여전하였다. 격분한 거란의 성종은 강조를 무참히 학살하였다. 강조가 비록 불행히 적의 포로가 되었으나, 적에게 굽히지 않고 고려인의 긍지를 살려 순국한 정신은 높이 추앙할 일이 아닐 수 없다. - 『( ㉡ )』(1972) -
(다) 문제는 ㉢이 시안에 담긴 …(중략)… 10월 폭동, 4・3 사건을 광주항쟁, 6월 항쟁과 똑같이 민중항쟁으로 기술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고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일보 1994년 3월 20일자 사설- |
<작성 방법> ◦밑줄 친 ㉠을 목적으로 1941년 개정한 교육 관련 법령을 쓸 것. ◦괄호 안의 ㉡에 해당하는 중․고등학교 독본용 국사 교재명을 쓰고, 자료 (나)의 내용을 참고하여 괄호 안의 ㉡이 이후 『국사』 교과서 내용에 미친 영향을 1가지 서술할 것. ◦밑줄 친 ㉢의 명칭을 쓸 것 |
[해설]
∙ ㉠국민학교령(1941년이라는 연도를 주면서 쉬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 ㉡시련과 극복, 영향 : 민족주의 교육 강화(이 답을 국사 교과서 분량의 변화라든가 등 답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던데, 이는 내용의 변화가 아니라 형식의 변화입니다. 질문은 내용에 미친 영햐을 서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 이후라는 표현도, ㉡이 폐지된 이후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던데 그것도 오해라고 봅니다. ㉡이 실시된 이후라고 보아야 합니다.)
∙ ㉢국사교과서 내용전개의 준거안('국사교과서편찬준거안'도 답이 된다고 봅니다)
[살아있는 역사교육론 p.277]
3) 제3차 조선교육령 시기
① 학교명을 소학교, 중학교, 고등여학교로 통일
② 조선어를 수의과목으로 하고 황국신민화 교육 본격화
③ 소학교
㉮ 5, 6학년에 국사(일본사) 주당 2시간
㉯ 황국신민 정신 함양
④ 중학교
㉮ 1∼5학년, 역사와 지리, 주당 3시간
㉯ 일본사, 외국사로 구분
⑤ 고등여학교
㉮ 5년제 학교: 역사 및 지리, 1∼2학년, 주당 3시간 / 3∼5학년, 주당 2시간
㉯ 4년제 학교: 역사 및 지리, 1∼2학년, 주당 3시간 / 3∼4학년, 주당 2시간
㉰ 3년제 학교: 역사 및 지리, 1∼3학년, 주당 2시간
⑥ 1941년 개정: 국민학교령 공포, 국민과에 역사 포함
[살아있는 역사교육론 p.281]
4) 제3차 교육과정 시기
① 1973년 중학교, 1974년 고등학교 교육과정 공포
② 학문중심 교육과정
③ 국사는 필수, 사회과에서 독립교과, 세계사는 사회과, 선택과목
④ 국정 위주 교과서 정책(중학교 모두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국정, 세계사는 단일 검정)
⑤ 『시련과 극복』이라는 중고등학교 독본용 국사 교재 간행, 보급
⑥ 세계사는 세계 속의 한국 강조, 아시아사 강조
⑦ 중학교
㉮ 사회과는 지리, 세계사, 일반사회로 구성
㉯ 국사는 정치사·일반사 중심의 통사적 내용
㉰ 2학년은 조선전기, 3학년은 실학부터
⑧ 고등학교
㉮ 사회과는 국토지리, 인문지리, 세계사, 정치·경제, 사회·문화로 구성
㉯ 국사는 문화사 중심으로 시대적 성격이나 문화적 특성 강조, 주제 중심 구조 도입
㉰ 고대와 근대라는 시대 구분 사용, 고려와 조선은 왕조명 사용
⑨ 1978년 교과서제도 개정(1종, 2종, 인정), 『시련과 극복』 폐지
[살아있는 역사교육론 p.282] 6차 교육과정
⑦ 1986년 국사교육심의회 구성
㉮ 국사교과서 편찬 준거안 마련
㉯ 국사교과서 내용전개의 준거안 마련
[역사교육의 이해 p. 288]
제3차 교육과정에서는 정부의 교과서 정책도 근본적으로 변하였다. 제1차와 2차 교육과정기에 국정과 검정을 병행하던 정책에서 국정을 위주로 하는 교과서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중학교 교과서는 전면적으로 국정화되었으며,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도 국정으로 바뀌었다. 세계사 교과서는 검정을 유지하였으나, 한 종류의 교과서만을 인정하는 단일 검정교과서였다. 한편 국난극복의 정신자세를 강조하면서 주로 우리나라의 대외전쟁사를 다루고 있는 『시련과 극복』이 중고등학교 독본용 국사 교재로 간행, 보급되었다. 하지만 『시련과 극복』은 국가비상사태의 선언어니 10월유신의 정당성에 대한 설명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등 정치권력의 강화와 체제유지 수단의 역할을 하였다.
[역사교육의 이해 p. 289]
중・고등학교 공히 ‘국적있는 교육’에 터한 주체성 확립이 ‘민족중흥’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국사교육의 목표로 내세워졌다. 이에따라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민족문화나 민족적 전통의 우수성을 나타낼 수 있는 내용이 중시되었으며, 민족사관의 확립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민족정신과 민족문화에 대한 강조는 한편으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으며, 민족사에 대한 국수주의적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세계사의 경우에도 ‘세계 속의 한국’을 내세우면서 세계 문화에 대한 올바를 평가와 수용을 강조하였다. 서양의 역사 못지 않게 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이 교육과정에서 표방되었으며, 동・서양의 역사적 특성과 독자적 성격이 중시되었다. 이러한 세계사 교육의 방향은 이후 교육과정의 개정 때마다 아시아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게 된다.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p.321]
북한 선전자료 복사판 우려
이로 말미암아 우익보다 좌익이, 남한보다 북한이 상대적으로 정통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 시안을 읽어본 관련 학자들의 반응이다. …
국사 교과서를 통해 북한의 경제와 사회, 문화를 이해하게 한다는 것이 자칫하면 그들의 선전자료를 그대로 옮겨놓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1994년 3월 24일자 5면 -
아무리 조선일보라고 하더라도,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국사 교과서가 북한 선전자료의 복사판이 될 수도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일까? 조선일보가 문제로 삼은 것은 국사 교과서 집필준거안이었다. 이 집필준거안은 1992년에 고시된 교육과정에 따라 국사 교과서를 집필하기 위해 마련된 ‘국사교육 내용전개의 준거안(시안)’이었다. 준거안 시안의 지침대로 집필을 한다면 국사 교과서가 북한 선전자료의 복사판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1994년 3월 18일에 열린 공청회를 전후하여 집필준거안 시안의 내용이 알려지자, 조선일보뿐 아니라 다른 보수언론, 당시 집권 여당이던 민주자유당(민자당), 보수 단체와 인사들이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p.329]
‘문제는 이 시안에 담긴 ’좌익 관계‘ 용어와 서술에 있다. … 10월 폭동, 4・3사건을 광주항쟁, 6월항쟁과 똑같이 민중항쟁으로 기술하는 것은 객관적이지도 않고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 1994년 3월 20일자 사설-’
교육부는 서둘러 사태 수습에 나섰다. 논란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언론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준거안 시안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에 따른 ‘시안’일 뿐이며, 교육부는 이런 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