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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일 주일낮 예배 설교
설교 제목: 세상의 빛,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8:12
설교를 위한 묵상:
예수님을 소개하는 요한복음의 방식은 독특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로 다윗의 후손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신 말씀으로 소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개하는 이유는 비유대인들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다른 이유가 이것이다.
그런데 비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으로, 창조의 말씀으로, 그리고 생명의 말씀으로 소개한다. 그 후에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소개한다. 여기서 요한은 자신이 유대인이면서 비유대인의 삶과 철학을 이해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비유대인들에게 창조의 원리와 생명, 그리고 빛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언약과 예언대로 오신 메시아로 소개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적절하다. 그들은 언약과 예언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비유대인의 경우에는 언약이나 예언과 상관없이 살아간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개념이 필요했다. 그래서 요한복음과 같은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도 비유대인이라는 점에서 요한복음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요한복음이 소개하는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다. 그리고 그 빛은 창조의 빛이며, 구원의 빛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을 만드셨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는 흑암에서 종살이하는 백성을 건지셨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8장 12절에 나오는 흑암에 다니지 않는다는 말은 곧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생각나게 한다.
요한에게 예수님은 창조의 빛이시며 구원의 빛이시다. 그런 점에서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을 치료하신 이야기는 창조의 재현이다. 거기서 예수님은 침을 흙에 뱉으시고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주신다. 그리고 그 소경은 눈을 뜨고 빛을 보게 된다. 이것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신 창조의 상황을 생각나게 한다.
요한은 예수님을 이처럼 창조의 빛으로 구원의 빛으로 소개한다. 특별히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신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만물을 맡기신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창조와 위임의 주님으로 소개한다.
이렇게 하여 세상의 빛으로서 새 창조와 구원의 주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동일한 임무를 부여하시는 분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말씀이 그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시며 그렇게 새로운 창조와 구원을 위해서 사셨고 본을 보이셨으며, 제자들에게도 세상의 빛이라 하시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권세와 사명을 부여하셨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면서 그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게 하셨다. 열방은 그 빛으로 나아올 것이다. 그래서 자기 백성은 일어나야 한다. 이사야 49장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이 이방인을 위한 빛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울은 참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진실과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삶의 근본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쳤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신 바로 그 삶이다. 그것은 빛으로 하나님의 새 창조에 동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처럼 선한 일을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시고 계획하셨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사야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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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개요
1. 비유대인을 위한 복음
2. 창조와 구원의 빛, 그리스도
3.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사는 백성
4. 빛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경륜
설교 목적
요한복음이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다. 그 빛은 새로운 창조를 상징하며 새 창조는 하나님의 본래적인 계획이기도 하다. 나는 이 설교를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다시 소개하고 우리도 예수님의 일에 동참하라고 부름을 받았음을 강조할 것이다. 그리고 빛으로서 새 창조에 동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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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유대인을 위한 복음
교회에서 설교를 하거나 듣거나 할 때 늘 고민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설교를 어느 수준에 맞출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기존 신자들을 중심으로 설교를 할 것이냐, 아니면 새가족들을 중심으로 설교를 할 것이냐 하는 것은 오랫동안 설교자의 마음에 있는 주제입니다. 기존 신자들이라 하면 성경을 배워서 그 줄거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분들을 말하고, 새가족이라 하면 성경의 이야기를 잘 모르는 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설교자는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이야기를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이야기는 많고 다양해서 그 이야기들이 의미하는 바를 어떤 방식으로 전하는가 하는 문제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생활에 지혜가 되는 교훈을 전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핵심 가르침을 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설교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흐름을 종합하여 그 궁극적인 주제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설교 내용과 청중의 다양성, 그리고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설교를 구상하고 준비합니다. 이런 일은 설교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그 안에서도 이런 고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책이 네 권 있습니다. 그것을 사복음서라고 부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입니다. 그런데 앞의 세 복음서는 예수님의 행적을 설명할 때 구약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소개하는 반면, 요한복음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소개합니다.
요한복음이 예수님을 소개하는 방식은 다윗의 자손이나 요셉의 아들이라는 식으로 하지 않고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요한복음이 소개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하면,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말씀으로 계셨으며,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는데 그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분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요한이 이렇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이유는 구약성경을 모르지만 이 세상이 오묘한 질서와 법칙 가운데 만들어졌고 운영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그 당시 어떤 사람들은 조물주가 있어서 이 세상을 질서 있고 오묘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로 그 조물주가 예수님이시며 그분이 그 안에 오묘한 질서와 은혜가 충만한 분이며 육신으로 태어나셨다고 소개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구약성경의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예언을 몰라도 사람들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시는 분이라고 예수님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들의 담벼락을 넘어 세계 만방에 전파되었고 사람들은 생명의 빛을 비추시는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습니다.
오늘 저는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인 요한복음이 소개하는 예수님에 대하여 설교하고자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세상의 빛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은 ‘세상의 빛,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말이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2. 창조와 구원의 빛
요한복음은 여러 면에서 창세기와 유사합니다. 창세기의 시작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도 그 시작을 이렇게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처음으로 빛을 창조하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생명의 빛이 말씀 안에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이야기가 창세기라면, 요한복음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흑암으로 가득한 세상에 빛을 창조하시고 낮과 밤을 만드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말씀 안에 있는 그 생명의 빛은 어둠을 비추어 어둠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사실 빛과 어둠의 이야기는 출애굽기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그들을 건지시려고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그때 애굽의 왕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내보내기를 거절할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재앙 시리즈의 절정에 하나님은 온 애굽에 흑암이 가득하게 하십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고센 땅에는 빛이 비추었습니다. 그 흑암 속에서 애굽의 장자들은 죽임을 당했으며 빛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빛을 비추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때도 하나님은 빛을 그들에게 비추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빛이 세상을 창조하는 생명의 빛이며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빛이라고 소개합니다. 요한복음도 예수님은 그렇게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8:12
또 다른 예를 들면, 요한복음 9장에는 나면서부터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그 눈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선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으시고 흙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흙을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는 가서 실로암 연못에서 씻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소경은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창조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흙으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셔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9장에서 소경이 눈을 뜨게 된 이야기는 좀 길게 소개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시비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소경은 그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고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소경을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칠 때 어두움은 빛을 싫어하여 빛으로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새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이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임을 믿는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비춥니다. 그분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어둠에 다니게 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명의 빛을 얻은 사람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 있고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빛을 밝히 보는 사람이 있고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소경이고 누가 앞을 볼 수 있습니까? 거짓에 속아서 사는 사람은 소경입니다. 진리를 구분할 수 없는 사람도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진실을 알면서도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사실 어둠에 매여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요새 텔레비전에서 온 국민이 아는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에 붙들린 사람들의 초라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때로는 진리를 외면하고 거짓에 속아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이 예수님을 창조와 구원의 주님이라고 소개하는 방식은 요한복음 20장에도 나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문을 닫고 있는 방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이 죽기 전에 입었던 상처들을 보여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21~22
우리는 이 장면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세상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창세기의 이야기를 마음속에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듯이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며 동시에 그 빛을 받은 사람들도 그 빛을 세상에 비추기를 기대합니다.
3.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사는 백성
성경은 예수님을 세상의 빛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읽어보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우리에게 친숙한 이 구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사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을 비추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흑암에 빛을 비추는 일이며, 하나님이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때도 빛을 비추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새 사람이 되게 하실 때도 빛을 찾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빛을 찾은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고 새로운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신도 예수님의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부르셨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하나님이 빛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8절)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6절)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이방의 빛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구원을 땅끝까지 이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실 때 바로 이 말씀으로 사명을 일깨우셨다고 여러 번 증거했습니다(행 9:15, 13:47, 22:21).
4. 빛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경륜
저는 설교를 통해서 성경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설교에서 저는 성경을 관통하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입니다. 이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인 선하시고 진실하신 모습을 세상에 나타내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처소인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밝히 나타내고 그 땅은 복을 받아 번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세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세력인 바벨론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 바벨론은 자기중심성을 제1원칙으로 사는 사람들의 도시입니다. 그곳에는 언제나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보내신 예수께서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성령을 따라 살면서 육신의 생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진면목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가리켜 구원이나 영생이라고 부릅니다.
다섯번째 주제는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연약하여 죄로 더러워질 때마다 피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통해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주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게 하시는 분인데 그 방법은 바로 씨앗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죄로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을 때에도 아브라함의 씨와 다윗의 씨에 대한 언약을 주시고 그 씨를 통해서 만국이 복을 받게 하는 충만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씨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그 약속이 이루어졌고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펼쳐 나갈 거룩한 씨앗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십자가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한 알의 밀과 같은 씨앗의 희생으로 설명하셨습니다. 그것은 죄인을 대신하여 자신을 바친 거룩한 행동이며 상징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 어린 양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은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새로운 해방을 누리고 한 알의 밀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것을 십자가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빛으로 창조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세상의 빛으로 오셔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고 우리들에게도 그 빛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으심을 받은 인간의 본래적 사명이며,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짐을 받은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이 맡은 사명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키워드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형상, 성전, 바벨론, 죽음, 보혈, 씨앗, 십자가, 그리고 빛입니다. 이상 여덟 개의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는 성경 이야기들을 연결해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단지 이런 저런 규정을 기록한 율법 모음집이 아니며, 옛날 이야기를 모은 신화모음집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만도 아닙니다. 성경의 많은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뜻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고 우리의 삶을 거기에 맞추고자 노력합니다. 그것이 성경을 배우는 목적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힘써야 할 일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