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天時代와 天地人참父母
제1장 천주부모
1. 새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이냐
2) 참사랑의 절대적인 진리
진리는 하나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자연과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원리입니다. 자연계에 있어서 그 원리는 만물만상의 근원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그 원리는 영성(靈性)과 육성(肉性)의 조화를 통한 인격을 완성하고 진선미를 실현하도록 인도하는 참사랑의 절대가치입니다.
본인은 지금까지의 신본주의나 인본주의 혹은 물본주의 주장들이 상호 화해할 수 없는 가치들의 상충만이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절대가치의 미완성적이고 일면적인 표현이요, 불완전한 주장이라고 봅니다. 인간과 현실세계의 여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주의나 주장들을 뛰어넘어 전체를 수습할 수 있는 절대가치, 하나의 원리를 찾아야 합니다.
절대가치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까지 이릅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수긍하는 것은 자연계 및 인간계에 항구적인 하나의 보편적 원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바탕 위에서 상대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가치들은 절대적 가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70-267, 1987.11.27)
하나님이 절대가치의 정의를 세우는 데 무엇을 중심 삼고 절대가치의 결론적 정의를 세울 것이냐? 지식이 아니고, 생명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체이기 때문에 생명은 필요 없다고 그럽니다. 생명은 자기 것이라고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적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러면 이 우주의 절대적 가치라는 것, 사랑을 두고 상대적 개념을 이야기한다면 절대가치의 결론이 안 나지 않소?” 할 지 모르겠으나 아닙니다. 절대가치는 절대가치인데 종적 기준에 있어서의 절대가치입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고, 우리는 대상인데 그림자와 같이 정오만 되면, 그림자가 없는 것 같지요? 대상은 대상인데 수직적 대상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횡적 대상으로 전개되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우주의 구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179-229, 198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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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평화는 개인의 평화로부터 시작하여 가정적 평화를 거쳐 사회와 국가의 평화로 확대된 뒤에 마침내 수립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절대사랑과 절대가치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합니다. 진선미의 가치는 사랑을 터로 하고 형성됩니다. 예컨대, 사랑의 실천은 선으로 평가됩니다. 즉, 사랑이 실천될 때 선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인 절대사랑을 실천할 때 절대선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자명합니다.
평화를 위해서 절대사랑을 실천하는 개인의 행위는 선입니다. 마찬가지로 평화를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의 행위도 선입니다. 사회나 국가 혹은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 가정, 사회, 국가를 막론하고 진정한 평화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절대 진(眞), 절대 선(善), 절대 미 (美)를 실현해야 되는 것입니다. 특히, 절대적인 선의 실천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렇게 되면 질서를 문란케 하고 파괴하는 어떤 악의 요소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진선미의 정신적 가치는 사랑을 터로 하고 성립하기 때문에 절대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서는 절대적인 진선미가 실현될 수 없습니다. 이런 절대가치가 실현되지 않는 곳에 진정한 평화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참된 평화를 위해서는 절대사랑이 실천돼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사랑이 실천되기 위해서는 먼저 절대사랑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110-252, 1980.11.27)
과학이 인간생활에 있어서 단순한 수단이나 목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영(靈)과 육 (肉)의 결합체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육적 생명을 바탕으로 해서 가치 있는 인생, 곧 사랑과 진리와 선과 미의 생활을 하게 돼 있습니다. 말하자면, 과학기술은 영적 생활에 부합되고 육적 생활에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치 있는 생활을 강조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과학은 가치관의 파괴를 가져오며, 오늘날과 같은 공포와 불안의 현실로 이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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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안한 현실에서 인간을 구하는 것은 진정한 가치관을 추구하고 발견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과학은 말할 것도 없이 절대가치에 기인하는 가치관에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절대가치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진리와 선과 미가 곧 절대가치입니다. 결국, 과학기술의 악용에 따르는 피해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은 과학 자체가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방향에 그 기술을 응용할 때입니다.
(106-53, 1979.11.23)
지금 내가 하는 것이 뭐냐? 세계 종교의 통일입니다. 그리고 과학자대회입니다. 지금까지 종교를 반대하던 과학자들이 이제는 차원을 달리해 가지고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과학에서 상 대적 가치는 인정했지만 절대적인 가치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적 가치가 추구되는 절대적 가치는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절대적 가치가 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순환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절대가치를 중심
삼고 운행합니다. 운행은 평면적인 운행이 아니라 구형적인 운행입니다. 우주는 진리의 핵을 중심 삼고 돌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논법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절대적 가치는 그 자체에서 끝이 아닙니다. 그건 순환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개인적 순환, 가정적 순환, 종족적 순환, 민족적 순환, 국가적 순환, 세계적 순환, 천주적 순환으로 들어간다 이겁니다. 그렇게 딱 정리돼 있습니다. (165-253, 1987.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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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제일 높은 자리에 혼자 계신다면 재미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이 혼자 제일 꼭대기에 떠억 버티고 있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어떤 부잣집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 할아버지가 그 나라의 주권자이자 세계의 대통령이 됐다고 합시다. 혼자 영광과 행복 그리고 권세를 쥐었다 이겁니다. 그런데 혼자 방에 버티고 앉아 가지고 ‘허허’ 하고 웃는다면, 그 사람을 보고 뭐라고 그래요? 미쳤다고 그러지요? 그건 볼장 다 봤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독단신 독수공방하면서도 아주 조그만 종이에다가 바늘 끝으로 쓸 수밖에 없는 글자를 써넣고 혼자 그걸 바라보고 있다면 그때는 미쳤어요, 안 미쳤어요? 아무리 작은 대상이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절대자 앞에 세워진 대상이라면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다는 뜻입니다. (41-147, 1971.2.14)
하나님은 최고의 분이요, 절대자이신데 그 절대자가 바라는 목적은 절대적인 것이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중심한 세계의 어떤 주의나 인간들이 바라는 어떤 목적보다도 절대적인 입장에 선 내용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비로소, 거기에서 인류가 바랄 수 있는 참된 목적을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 인간만의 목적을 중심 삼고 나오는 것은 우리 인생이 타당한 목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 다.
우리 개인을 두고 볼 때, 어떻게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냐? 인간에게는 하늘땅을 대표해서 자기 자신이 전체 앞에 더 높아지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이 있습니다. 그 욕망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그런 작용을 하느냐? 인간은 세계를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고, 자기가 중심이 되어 세계 인류를 끌고 가고 싶어하고, 자기가 누구보다도 최고의 자리에 서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를 보면,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 삼고 귀결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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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이 인류가 바라는 목적이 돼 가지고 안팎으로 들어맞을 수 있는 새로운 목적의 세계가 오늘 이 지상에 나타나면, 그때야말로 역사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인간으로 바랄 수 있는 소망의 때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41-323, 1971.2.28)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하나의 사상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신앙세계는 자연히 하나님을 중심 삼은 하나의 사상권으로 흡수되어 들어가야 합니다. 고차적인 사상은 저급한 사상을 흡수함으로써 하나의 체계를 세워 수습해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세계에 어떤 하나의 사상체계가 있으면, 그것을 강으로 말하면 지류와 같은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보면, 남쪽으로 흘러가는 강인데도 불구하고 북쪽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멋대로 흘러가지만 점점점 흘러감에 따라 대해(大海)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이 본류(本流)를 거쳐 통합되는 결과를 맞아 가지고 대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의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60-262, 197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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