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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단위계획은 ‘현재의 선’이 아니라 ‘미래의 설계’다
토지 현장에는 늘 비슷한 장면이 있다.
입지는 괜찮다. 도로도 붙어 있다. 주변 여건도 나쁘지 않다. 기반시설을 정리하면 충분히 계획적 개발이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막상 행정 검토에 들어가면 한마디가 툭 떨어진다.
“계획관리지역이 50%가 안 됩니다.”
그 순간, 많은 사람은 사업이 끝난 줄 안다.
땅도 멈추고, 논의도 멈추고, 행정도 멈춘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 할까. 50%가 모자란다고 해서 그 땅의 미래까지 포기해야 하는 걸까.
여기서 우리가 다시 봐야 할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제도의 본래 취지다. 지구단위계획은 본래 ‘지금 이 땅이 어떤 색이냐’만 따지는 제도가 아니다. 앞으로 이 땅을 어떻게 쓰고, 어떤 도로를 놓고, 어떤 기반시설을 갖추고, 어떤 질서로 정리할지를 설계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지구단위계획은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라기보다 미래의 토지이용을 짜는 설계도에 가깝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 설계도를 너무 자주 ‘출입금지 표지판’처럼 써왔다. 계획관리지역이 50%를 넘으면 검토하고, 모자라면 그 자리에서 문을 닫는 식이다. 법은 질서를 세우라고 만든 것인데, 어느새 질서를 이유로 가능성 자체를 막는 데 익숙해진 셈이다.
물론 법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도시지역 밖에서 아무 곳이나 무질서하게 개발하라고 2종 지구단위계획 제도를 둔 것은 아니다. 계획관리지역 50% 기준도 그래서 생겼다. 난개발을 막고, 최소한의 계획성을 담보하려는 안전장치다. 문제는 이 안전장치를 출발점의 숫자만 보는 잣대로 써버릴 때 생긴다.
현실의 땅은 교과서처럼 생기지 않았다.
어느 필지는 절반은 계획관리지역이고, 나머지는 생산관리지역이다.
어느 필지는 경계선 하나 잘못 그어진 듯 비효율적으로 갈라져 있다.
어느 곳은 도로와 입지 여건은 충분한데, 행정구역상 색깔이 어정쩡하게 섞여 있다.
이런 땅에 대해 “처음부터 50%가 안 되니 지구단위계획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읽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처음의 상태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어떤 계획으로 완성하느냐다.
현행 제도는 지구단위계획만 따로 떼어놓지 않는다. 용도지역 변경과 지구단위계획은 모두 도시·군관리계획 체계 안에서 함께 검토되고, 필요하면 병행 입안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지금 당장 계획관리지역이 50%에 못 미친다고 해서 곧바로 끝이 아니라, 용도지역 변경을 함께 추진하여 최종 단계에서 적법한 요건을 갖춘 계획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더 본질적인 질문이어야 한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토지이용 현실에서는 대단히 크다.
전자는 “안 된다”로 끝난다.
후자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로 넘어간다.
토지정책은 원래 두 번째 질문을 해야 한다.
법의 역할은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데 있지 않다.
공공성과 적법성을 전제로, 무질서를 질서로 바꾸는 데 있다.
생각해보자.
지구단위계획이란 결국 도로를 어디에 놓을지, 공원을 어떻게 확보할지, 건축물의 배치와 높이를 어떻게 정리할지, 주민 생활과 교통흐름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정하는 제도다. 이런 제도를 운영하면서 “현재 색깔이 조금 모자란다”는 이유만으로 시작도 못 하게 만든다면, 계획제도는 계획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계획을 가로막는 형식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이제는 행정도 관점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계획관리지역 비율이 50%에 미달하는 제안이 들어오면, 첫 문장부터 “불가”를 말할 게 아니라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토지는 용도지역 변경과 함께 검토할 수 있는가.”
“최종적으로 법적 요건을 충족하는 계획안으로 정리될 수 있는가.”
“도로, 배수, 환경, 경관, 공공기여까지 포함해 계획적 개발이 가능한가.”
이 질문이 살아야 토지이용 행정도 살아난다.
물론 오해는 금물이다.
이 말은 아무 땅이나 억지로 개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50% 기준을 무시하자는 것도 아니다. 최종적으로는 당연히 법이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생산관리지역과 보전관리지역의 편입 범위도 따져야 하고, 상위계획과의 정합성도 맞아야 하며, 환경성과 기반시설 수용능력도 검토해야 한다. 다시 말해, 병행 추진은 편법의 통로가 아니라 적법한 정리의 방법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 점을 전제로 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계획관리지역이 50%에 못 미친다는 이유만으로 지구단위계획의 문을 애초에 닫아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소극적인 행정이다. 법은 그런 식으로 읽으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법은 현실을 정리하라고 있는 것이지, 현실을 외면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토지는 살아 있는 자산이다.
오늘은 경계가 어색하고, 내일은 질서 있게 정비될 수 있다.
오늘은 비율이 부족해 보이지만, 내일은 적법한 변경과 계획을 거쳐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결국 토지이용의 핵심은 하나다.
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설계를 보는 것.
지금 몇 퍼센트냐만 따질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어떤 질서를 만들 것이냐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50%가 부족하다고 해서, 땅의 미래까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좋은 행정은 숫자에서 멈추지 않는다.
좋은 계획은 현재의 색깔을 탓하지 않는다.
좋은 제도는 막힌 땅에서도 길을 찾아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안 된다”는 익숙한 답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계획적으로 되게 만들 것인가”라는 더 큰 질문이다.
소나무보다 토종 과일나무
를 더 심었으면 한다
외국에 가 보면 가로수가 사과나무로 된 곳이 있다.
사과가 너무 크지도 않고, 탁구공보다 조금 큰 정도로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보면 보기에도 좋고 정겹다. 꽃이 필 때는 꽃대로 아름답고, 열매가 맺히면 또 그 자체로 풍경이 된다. 그냥 구경만 하는 나무가 아니라 계절을 함께 느끼게 해주는 나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정원수나 가로수를 심을 때 소나무 같은 침엽수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감나무나 대추나무, 매실나무, 사과나무 같은 토종 과일나무를 더 많이 심었으면 한다. 이런 나무들은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고, 관리도 침엽수보다 쉬운 편이며, 무엇보다 실용성이 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철이 바뀌는 모습이 분명해 생활 속에서 계절을 느끼게 해준다.
소나무는 산에 있으면 참 좋다.
하지만 정원과 마당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는 보기만 좋은 나무보다, 생활에 도움을 주고 정서를 풍부하게 만드는 나무가 더 어울린다. 과일나무는 그늘도 주고, 열매도 주고, 아이들에게는 자연을 배우는 살아 있는 교육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남들이 심으니 따라 심는 침엽수 중심의 정원 문화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산에는 소나무가 많으니 산에서 그 멋을 보면 된다. 대신 집과 마을에는 우리 땅에 맞고 실용성도 있는 토종 과일나무를 더 많이 심는 편이 훨씬 낫다. 정원은 체면보다 쓰임이 먼저여야 하고, 나무는 상징보다 생활에 가까워야 한다.
앞으로는 침엽수 대신 활엽수, 그중에서도 과일나무를 더 많이 심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 보기 좋고, 관리하기 쉽고, 먹을 것도 주는 나무야말로 진짜 생활 속의 나무이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세금-국세청에 보내는 조언-
국가 운영하려면 세금은 걷어야 합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문제는 어디에 세금을 매기느냐, 그리고 왜 매기느냐 이겁니다.
옛날 유럽을 보십시오.
처음에는 난로세를 매겼어요.
집에 난로가 몇 개 있느냐, 그걸 보고 세금을 매긴 겁니다.
그런데 난로는 집 안에 들어가야 보이잖아요.
관리들이 일일이 들어가서 확인해야 하니 번거롭고, 싸움도 나고, 확인도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머리를 굴린 겁니다.
“난로 말고 밖에서 바로 보이는 걸로 세금을 매기자.”
그래서 나온 게 창문세예요.
창문은 밖에서 보면 보이거든요.
들어갈 필요도 없고, 세금 매기기가 쉽습니다.
그 결과가 뭡니까.
사람들이 창문을 막아버렸어요.
빛이 안 들어와도, 공기가 안 통해도, 세금만 줄면 되니까 막아버린 겁니다.
이게 세금의 본질을 보여주는 겁니다.
국가는 늘 걷기 쉬운 데다 세금을 매기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나라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갑니다.
저는 세금이라는 게 거두기 쉬운 세금이 좋은 세금이 아니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설계된 세금이 좋은 세금이라고 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법인세가 참 만만합니다.
개인 하나하나 붙잡고 보기보다, 법인 장부 보고 확인하는 게 훨씬 쉽거든요.
그러니까 재정이 부족하면 자꾸 법인세부터 올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법인세라는 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법인이 이익을 냈다.
그 이익은 그냥 쌓아두는 돈이 아닙니다.
공장 짓고, 설비 늘리고, 연구개발 하고, 사람 뽑고, 해외로 나가는 데 쓰이는 돈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먼저 세금을 왕창 걷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업이 클 힘이 약해집니다.
재투자 여력이 줄어듭니다.
외국 기업도 “굳이 저 나라에 들어가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기업의 이익은 중간 정거장이지,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그 돈이 다시 투자로 돌아가야 경제가 크는 겁니다.
그런데 이 중간 단계에서 세금을 너무 세게 때려버리면, 경제가 클 연료를 먼저 빼앗는 겁니다.
외국에도 이런 문제를 고민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 같은 나라는 아예 발상을 바꿨어요.
기업이 돈을 벌었다고 바로 세게 과세하는 게 아니라,
그 돈을 회사 안에 남겨서 투자하면 봐주고,
배당으로 꺼내 쓸 때 세금을 매깁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국가가 기업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너 돈 벌었구나. 좋다.
그 돈으로 공장 짓고 사람 뽑고 기술 개발하면 당장 심하게 건드리지 않겠다.
하지만 그걸 밖으로 꺼내서 나눌 때는 세금을 내라.”
저는 이런 철학이 훨씬 맞다고 봅니다.
왜냐.
기업이 나라 안에서 돈을 굴리고 키우는 건 장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아일랜드 같은 나라를 보십시오.
법인세를 낮고 예측 가능하게 가져가면서 해외 기업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물론 그 나라가 잘된 게 법인세 하나 때문만은 아닙니다.
인재도 있고, 시장 접근성도 있고, 산업전략도 있었겠죠.
하지만 분명한 건 있습니다.
법인세가 낮고 안정적이면 기업은 들어오고, 높고 흔들리면 기업은 빠져나간다는 겁니다.
세금은 숫자가 아닙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게 그 나라의 태도예요.
“이 나라는 기업을 키우려는 나라냐,
아니면 기업을 좋은 세원쯤으로만 보는 나라냐.”
저는 여기서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업 투자와 성장은 세금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반대로 국민 건강을 해치고 사회적 비용을 키우는 데는 세금을 무겁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담배, 술, 설탕 같은 겁니다.
담배 많이 피우면 건강 나빠집니다.
결국 의료비 늘고, 생산성 떨어지고, 사회 전체 부담이 커집니다.
술도 마찬가지고, 지나친 당 섭취도 결국 국가가 비용을 떠안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데 세금을 더 매기는 건 말이 됩니다.
그건 단순히 돈을 걷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이건 좀 줄이자” 하고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저는 세금이 이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몸에 해로운 것, 사회에 부담을 주는 것, 국가 경쟁력을 깎아먹는 것에는 세금을 더 매기고,
투자하고, 고용하고, 생산하고, 기술을 키우는 것에는 세금을 낮춰야 한다.
이게 맞는 방향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처럼 “어디서 잘 걷히나”만 보고 세금을 설계하면,
옛날 창문세하고 뭐가 다릅니까.
밖에서 보이니까 창문에 매긴 거고,
장부에서 잘 보이니까 법인에만 자꾸 더 매기겠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편할지는 몰라도, 나라가 앞으로 가긴 어렵습니다.
세금은 쉬운 곳에서 뜯어내는 기술이 아닙니다.
세금은 나라의 방향을 정하는 정책입니다.
저는 세금의 기준이 딱 하나라고 봅니다.
“이 세금이 나라를 더 건강하게 만드느냐, 더 강하게 만드느냐.”
그 기준으로 보면 답은 분명합니다.
기업이 크고, 외국 기업이 들어오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재투자가 살아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 대신 담배, 과음, 과도한 설탕 소비처럼 국민 건강에 해가 되는 것에는 더 분명하게 세금을 매겨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겁니다.
좋은 세금은 공무원이 보기 쉬운 데 붙는 세금이 아니고,
나라에 해로운 데 붙는 세금입니다.
창문이 보여서 창문세를 매기던 시대는 끝나야 합니다.
이제는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키울 것인가,
그 철학으로 세금을 설계해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가야 나라가 삽니다.
세금도 살고, 경제도 살고, 국민도 삽니다.
지상·지하 분리형 도시개발 정책 제안
지금의 택지개발 방식은 필지마다 따로 지하를 파서 주차장과 설비를 넣는 구조다. 이 방식은 익숙하지만 비효율이 크다. 각 필지마다 지하주차장 출입구를 만들고, 전기·통신·상하수도·배수시설을 따로 설치하다 보니 공사비가 중복되고, 지상 공간도 어수선해진다. 주차장 램프와 설비실이 많아질수록 녹지, 광장, 보행공간은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지하도 비효율적이고 지상도 쾌적하지 못하다.
앞으로는 발상을 바꿔야 한다.
지상은 개별 개발, 지하는 공동 인프라로 나누는 방식으로 도시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즉, 택지를 분양할 때는 지상 건축권 중심으로 분양하고, 지하공간은 개별 필지별로 쪼개지 말고 지구 전체를 하나의 구조로 통합 개발하는 것이다. 지하에는 공동주차장, 전기, 통신, 상하수도, 배수, 기계설비, 물류공간 등을 넓게 연결해 넣고, 필요하면 도로 하부까지 연계하여 하나의 지하 인프라망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전기선도 지상으로 복잡하게 올릴 필요 없이 지하에서 체계적으로 연결할 수 있고, 유지관리도 훨씬 쉬워진다.
주차장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건물마다 따로 지하주차장을 만드는 방식은 차량 진출입이 복잡하고 공간 낭비가 크다. 반면 지구 단위로 광범위한 공동 지하주차장을 만들면, 주요 진출입구를 통해 차량을 지하로 유도하고 각 건물은 내부 연결로 접근할 수 있다. 마치 백화점과 호텔이 지하에서 연결되는 것처럼, 도시 전체가 하나의 체계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분명하다.
첫째, 지하공사 중복이 줄어 개발비용이 절감된다.
둘째, 차량 동선이 단순해져 교통과 주차가 더 효율적이 된다.
셋째, 전기·통신·하수 같은 기반시설을 공동화해 유지관리 효율이 높아진다.
넷째, 지상 공간이 훨씬 넓고 쾌적해진다.
지하에 주차와 설비를 넣고 나면 지상은 녹지, 운동시설, 광장, 공공편의시설 등 사람 중심 공간으로 쓸 수 있다.
결국 이 정책은 단순히 지하주차장을 크게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지하를 공공 기반시설로 보고, 지상보다 더 계획적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지상은 분양하고, 지하는 도시가 함께 쓰는 구조로 만들면 도시 전체의 효율이 높아지고 생활환경도 좋아진다.
앞으로의 도시개발은
지상은 사람을 위해 쓰고, 지하는 도시가 함께 쓰는 인프라로 설계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주택공급과 도시
녹지 보존 을 위한 정책 제안
지금의 주택정책은 너무 쉽게 기존 아파트와 시설을 허물고 다시 짓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겉으로는 공급을 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멀쩡한 주택과 도시 자산을 먼저 없애고 나서 다시 만드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공사 기간 동안 기존 공급은 줄고, 이주비와 철거비, 폐기물 처리비, 각종 금융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 결국 새로 짓는다고 해도 사회 전체로 보면 큰 비용을 치르는 방식이다.
특히 문제는 아직 충분히 기능하는 자산까지 너무 쉽게 없앤다는 점이다. 아파트뿐 아니라 도시 안에 남아 있는 녹지와 대규모 개방공간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대능골프장, 과천 경마장 같은 공간은 단순히 “개발 가능한 땅”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이런 곳은 도시 안에서 공기를 통하게 하고, 열기를 식히고, 도시가 지나치게 빽빽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중요한 녹지 공간이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이런 대규모 열린 공간은 시간이 갈수록 더 귀해진다.
주택이 부족하다고 해서 이런 공간까지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땅의 용도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도시 안에 남아 있는 공공적 가치와 국부를 없애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조성되어 있고, 기능하고 있고, 도시환경에 기여하고 있는 시설과 녹지를 허물어 버리면 그만큼 국가 자산도 사라진다. 집 몇 채 더 짓기 위해 도시의 숨통을 없애고, 이미 존재하는 자산을 철거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가 더 클 수 있다.
주택정책은 “무엇을 더 지을 것인가”만 볼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도 함께 봐야 한다.
대능골프장이나 과천 경마장 같은 공간은 단기적으로는 개발 압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부지를 무조건 아파트 용지로 바꾸기 시작하면, 서울과 수도권 안에는 결국 남는 녹지가 점점 없어지게 된다. 한 번 없어진 녹지와 개방공간은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또 기존 아파트와 도시시설을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은 공급정책으로도 비효율적이다. 기존 것을 헐면 그 기간 동안 주택은 사라지고, 주민은 다른 곳으로 밀려난다. 반면 기존 것은 그대로 두고 외곽에 새로 짓는다면 공급은 순수하게 늘어난다. 기존 주택 stock도 살아 있고, 새 주택도 추가된다. 이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국가 전체로도 이익이 크다.
그래서 앞으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핵심은 도시 안쪽의 녹지와 기존 시설은 최대한 보존하고, 필요한 주택은 도시 바깥에서 계획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울 안쪽을 더 빽빽하게 만들기 위해 기존 아파트를 허물고, 골프장이나 경마장 같은 큰 공간까지 주택용지로 바꾸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서울 안쪽의 녹지와 기존 자산은 살리고, 그린벨트 바깥 특히 한강 남쪽 외곽을 계획적으로 개발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서울 내부는 숨통을 유지할 수 있고, 외곽에서는 필요한 주택을 새로 공급할 수 있다. 그 사이에 남는 공간은 공원, 완충녹지, 도시 생태축으로 활용할 수 있어 도시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이 방식의 장점은 분명하다.
첫째, 기존 주택과 도시 자산이 사라지지 않는다.
둘째, 신규 주택 공급은 순증이 된다.
셋째, 재건축 기대이익 중심의 집값 상승 심리를 줄일 수 있다.
넷째, 도시의 녹지와 기억을 지킬 수 있다.
다섯째, 멀쩡한 자산을 부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외곽 개발은 아무 데나 해서는 안 된다. 교통, 학교, 병원, 생활SOC, 일자리 연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핵심은 난개발이 아니라 계획적 확장이다. 도시 안은 남기고, 바깥은 질서 있게 넓혀야 한다.
결론적으로, 주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도시 내부의 기존 시설과 녹지까지 쉽게 허물어서는 안 된다. 대능골프장, 과천 경마장 같은 공간은 도시의 여유와 녹지를 지키는 중요한 자산이고, 이를 없애는 것은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국부를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주택정책은
헐고 다시 짓는 도시가 아니라,
남길 것은 남기고, 필요한 집은 바깥에 새로 짓는 도시로 가야 한다.
도시 안의 녹지는 살리고,
도시 밖에서 질서 있게 공급을 늘리는 것,
그것이 주택도 늘리고 국부도 지키는 길이다.
훈장을 그렇게 거둘 거면 왜 줬나
훈장은 국가가 주는 최고의 공식 인정이다. 그 사람의 모든 생애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그 시점의 공적만큼은 국가가 책임지고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훈장은 신중하게 줘야 하고, 더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한 번 줬다가 정권이 바뀌고 시대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다시 취소하겠다면, 그건 정의가 아니라 권력의 변덕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훈장 수여의 근거가 허위로 드러났거나, 국가를 전복하려 했거나, 반국가적 중대 범죄가 명백히 확인된 경우라면 취소를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특별한 사유가 아니라면, 과거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공적을 훗날 정치적 해석으로 뒤집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과거의 공은 과거의 공대로 두고, 현재의 책임은 현재의 기준으로 묻는 것이 상식이고 법치다.
지금처럼 사후적 판단으로 훈장을 흔들기 시작하면, 무너지는 것은 몇몇 인물의 명예만이 아니다. 국가 포상 제도 전체의 신뢰가 흔들린다. 오늘은 나라가 상을 주고, 내일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상을 빼앗는다면, 누가 국가의 약속을 믿겠는가. 그때부터 훈장은 영예가 아니라 권력의 눈치를 보라는 경고장이 된다.
군 문제는 더 신중해야 한다. 군은 명령 체계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군인의 행위는 개인 감정보다 당시 국가 질서와 지휘 체계 속에서 봐야 한다. 물론 모든 명령이 다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수십 년 뒤 전혀 다른 정치적 잣대로 당시의 포상까지 일괄 취소하겠다는 것은 역사 평가를 넘어 소급 정치에 가깝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런 발상이 결국 연좌제적 사고와 닮아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과거의 연좌제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폐지했다. 그런데 이제는 당시 공로를 인정해 준 훈장마저 훗날의 정치적 해석으로 거두겠다고 한다. 이름은 달라도 본질은 비슷하다.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 전체를 몰아세우는 것이다.
국가는 상을 줄 때 약속한다. “당신의 이 공은 나라가 기억하겠다”는 약속이다. 그 약속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린다면, 훼손되는 것은 받은 사람만의 명예가 아니다. 국가의 품격과 신뢰가 함께 무너진다. 훈장을 그렇게 쉽게 거둘 거라면, 애초에 그렇게 쉽게 주지 말았어야 한다.
법대로 해달라는 국민이 왜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나
우리 사회에는 이상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공무원이 법대로 허가해 주는 일을 두고 “도와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친절해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아주 위험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공무원이 하는 허가 업무는 원래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법에 맞으면 당연히 해줘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건축허가를 받을 때, 이미 여러 집이 그 길을 통해 허가를 받고 집을 지어 살고 있다면, 그 길은 사실상 건축법상 도로로 기능해 온 것입니다.
더구나 과거 허가 과정에서 이미 그 도로를 기준으로 건축이 이루어졌다면, 뒤에 증축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이웃 동의서를 다시 받아오라고 하는 것은 말이 맞지 않습니다.
이미 법적으로 인정받아 써온 길인데, 나중에 다시 사람들 눈치를 보며 동의서를 구해 오라는 것은 결국 법으로 판단하지 않고 사람 관계로 판단하겠다는 뜻이 됩니다.
그 순간 행정은 법치가 아니라 눈치 보기가 됩니다.
주차장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에서 154대면 된다고 되어 있는데 410대를 만들어 놓고도 부족하다고 하면, 그때부터 기준은 법이 아니라 담당자 기분이 됩니다.
“다른 데도 그렇게 했다”, “우리 시청은 원래 그렇다”는 말은 행정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법으로 움직이는 나라이지, 시청 분위기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민원인이 법을 말하면 오히려 까다로운 사람이 된다는 데 있습니다.
공무원은 “법으로만 따지면 어렵지만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말은 좋게 들릴 뿐, 내용은 이상합니다.
법대로 하면 되는 일을 마치 자기가 선심 쓰듯 처리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은 공무원의 선의에 기대어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국민은 법에 따라 권리를 행사하는 존재입니다.
공무원이 국민을 돕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특별히 봐주는 것이 아니라, 법대로 정확하게 처리해 주는 것입니다.
건축법상 도로면 도로라고 인정하면 됩니다.
주차장이 법정 기준을 넘으면 허가하면 됩니다.
요건이 맞으면 해주고, 안 맞으면 안 해주면 됩니다.
여기에 담당자의 기분이나 관행이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허가권은 공무원의 호의가 아닙니다.
특히 건축법상 도로나 주차장 기준 같은 문제는, 법적 요건이 맞으면 처리해야 하는 기속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좋게 보면 해주고, 나쁘게 보면 안 해주는 식이라면 그것은 행정이 아니라 권한 남용입니다.
이런 구조가 계속되면 국민은 법을 공부하지 않게 됩니다.
대신 사람을 보게 됩니다.
법무사보다 공무원 성격을 먼저 살피게 되고, 기준보다 분위기를 먼저 읽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법대로 되는 사회”가 아니라 “잘 보여야 되는 사회”가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후진적 행정의 모습입니다.
더 답답한 것은, 이런 문제를 바로잡자고 감사나 시정을 요구하면 민원인만 유난스러운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법대로 해달라는 사람이 왜 유난스러운 사람이어야 합니까.
오히려 법대로 하지 않는 행정이 문제여야 맞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공무원은 국민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아닙니다.
법률에 따라 국민의 권리를 확인해 주는 사람입니다.
허가는 시혜가 아니라 행정입니다.
도움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행정이 바로 서려면 원칙은 단순합니다.
법에 맞으면 허가하고, 법에 안 맞으면 불허하면 됩니다.
그 중간에 관행도, 눈치도, 사람 봐가며 하는 재량도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이 정말 선진국이 되려면,
공무원이 “도와드리겠다”고 말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법대로 해주십시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이 까다롭게 들리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집값을 올리는 것은 땅이 아니라 규제다
사람들은 한국의 건물값이 비싼 이유를 흔히 땅값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건물이 커지는 이유를 건축주의 욕심이나 과도한 수익 추구에서 찾는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다르다. 한국에서 건물이 커지고 건물값이 비싸지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시장 자체보다 토지 형질변경과 개발허가를 둘러싼 규제비용이다.
내가 직접 겪은 지산 용인 창고 사례를 보자. 부지는 3만 평이고, 처음 살 때 가격은 평당 30만 원, 총 90억 원이었다. 이 가격만 보면 상식적인 선택은 단층 건물이다. 건물을 너무 크게 짓기보다 마당을 넓게 쓰고, 주차와 하역 공간을 확보하고, 필요하면 나중에 조금씩 확장하면 된다. 원땅 가격 기준으로 보면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허가를 받는 데만 3년, 건축에 2년, 총 5년이 걸렸다. 이 5년 동안 금융비용과 관리비, 설계 변경과 각종 행정 대응 비용이 계속 들어갔다. 사업가는 본업보다 허가를 받기 위한 준비와 대응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허가를 받고 나니 평당 30만 원 하던 땅이 평당 300만 원짜리 땅이 됐다. 10배가 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평당 300만 원짜리 땅에서 건폐율 20%만 쓰고 단층으로 가면 건물 1평이 사실상 땅 5평을 깔고 앉는다. 그러면 건물 1평당 토지 부담이 1,500만 원이 된다. 이렇게 되면 마당을 넓게 두고 쾌적하게 쓰는 방식은 경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사업자는 건폐율과 용적률을 최대한 활용해 건물을 크게 지으려 한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규제를 통과하면서 높아진 땅값을 감당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비싼 땅값은 원래 농지나 임야의 자연가격이 높아서 생긴 것이 아니다. 건축 가능한 땅으로 바뀐 뒤의 가격, 즉 허가 프리미엄과 규제 프리미엄이 높아서 생긴 것이다. 이 구조에서는 건축을 잘하는 사람보다 형질변경과 인허가를 잘 통과하는 사람이 더 유리해진다. 건설회사가 건설 실력보다 허가 능력으로 승부하는 비정상적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로 전가된다. 창고가 비싸지면 물류비가 오르고, 공장이 비싸지면 제조원가가 오른다. 건물값, 임대료, 유통비용 모두에 규제비용이 얹힌다. 결국 한국에서 건물을 키우는 것은 수요만이 아니라 규제다.
해법은 분명하다. 건폐율과 용적률 숫자만 손볼 것이 아니라, 토지 형질변경과 개발허가 절차를 더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바꿔야 한다. 그래야 땅값에 붙는 규제 프리미엄이 줄고, 건물을 불필요하게 크게 짓지 않아도 된다. 그래야 단층으로 짓고 마당을 넓게 쓰는 상식적인 선택이 다시 가능해진다.
한국에서 땅값을 올리는 것은 땅이 아니라 규제이고, 건물을 키우는 것도 수요만이 아니라 규제다.
지산 창업자. 한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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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대를 옮긴 뒤에 뿌리는 진달래꽃
국민은 처음 정해진 법과 기준을 믿고 길을 갑니다.
그런데 끝에 가서 국가가 기준을 바꾸고 골대를 옮기면, 국민은 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바뀐 규칙을 억울하게 따라간 사람이 되고 맙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원래 떠나는 사람을 조용히 보내는 슬픈 시입니다.
하지만 오늘 현실에 붙여 보면, 그 진달래꽃은 사랑의 꽃이 아니라 체념의 꽃처럼 보입니다.
국가는 처음에는 “법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 국민에게 그 바뀐 길을 그대로 밟고 가라고 합니다.
마치 꽃길을 깔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억울함을 참고 따르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의 진달래꽃은 예쁜 꽃이면서도 슬픈 상징입니다.
약속을 믿고 걸어간 국민 앞에, 국가가 뒤늦게 바꾼 기준 위에 뿌려 놓은 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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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예전에 우리나라 산을 다루는 법은
지금과는 꽤 달랐다. 지금은 산지관리법이 적용되지만, 그 당시에는 산림법이 중심이었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산지관리법은 ‘땅’ 자체를 관리하는 법이고, 산림법은 ‘산림’, 즉 나무를 중심으로 관리하는 법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산을 개발하려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땅이 아니라 나무였다. 나무를 베면 바로 법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법에는 지금 생각하면 꽤 재미있는 허점이 있었다. 바로 가축의 정의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염소나 소, 돼지 같은 동물을 가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시절 법에서는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염소는 가축으로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았고, 오히려 지렁이 같은 것이 법적으로 가축 범주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식과 조금 다른 정의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염소를 방목한다고 해서 특별히 법을 어겼다고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산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 냈다. 산에 염소를 풀어놓는 것이다. 염소는 나무의 어린 가지와 잎을 아주 잘 뜯어 먹는다. 특히 어린 나무나 새로 올라오는 싹을 좋아한다. 그래서 산에 염소를 풀어 놓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가 점점 약해지고 결국 말라 죽는다. 중요한 점은 사람이 직접 나무를 베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벌목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염소가 자연스럽게 먹은 것이기 때문에 당시 산림법 기준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염소가 가축으로 엄격히 관리되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산의 나무들이 말라 죽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나무가 죽어도 뿌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뿌리가 남아 있으면 땅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방법이 등장했다. 바로 멧돼지였다. 멧돼지는 땅을 파헤치는 습성이 강하다. 먹이를 찾기 위해 흙을 뒤집고 뿌리를 들춰낸다. 그래서 멧돼지를 산에 풀어 놓으면 죽은 나무의 뿌리들이 자연스럽게 뒤집히고 땅이 정리되는 경우가 생겼다. 사람 손으로 뿌리를 캐낸 것이 아니라 멧돼지가 자연스럽게 파헤친 것이기 때문에 당시 기준에서는 이것도 특별히 법을 어겼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동네에서는 재미있는 별명도 생겼다. 염소를 많이 풀어 놓고 관리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염부장”이라고 불렀다. 염소를 빌려 주기도 하고 나눠 주기도 하면서 동네에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멧돼지를 풀어 놓는 경우도 생기면서 “돈부장”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여기서 ‘돈’은 돼지 돈(豚) 자에서 나온 말이었다. 마을 모임이 있을 때 염소 한 마리씩 나눠 주기도 하고 멧돼지를 나눠 주기도 하면서 사람들과 관계도 좋아지고 산의 모습도 조금씩 바뀌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법은 크게 바뀌었다. 산림 중심의 규제는 점점 한계를 드러냈고 결국 산지관리법 체계로 전환되었다. 이제는 나무만의 문제가 아니라 땅의 형질 자체가 규제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나무를 베는 것 자체는 일정 조건에서 가능할 수 있지만, 뿌리를 캐거나 땅을 뒤집으면 바로 산지 훼손으로 판단된다. 예전처럼 염소를 풀어 나무를 말리거나 멧돼지를 이용해 땅을 뒤집는 방식은 이제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그 시절 이야기를 떠올리면 참 재미있는 시대였다. 법이 완벽하지 않았던 시기였고, 사람들은 그 틈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지금은 제도가 훨씬 촘촘해졌지만, 그때의 이야기들은 한 시대의 토지 개발 풍경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산업을 일으킨 사람에게 족쇄를 채우는 나라
정치가 경제를 가르칠 수 있는가
한국 경제는 저절로 성장하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깔고,
포항제철을 세우고,
광부와 간호사를 독일에 보내 외화를 벌고,
조선소를 짓고,
자동차를 수출하고,
반도체에 전 재산을 걸었던 기업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비난도 받았고, 모험이라는 조롱도 받았고,
“망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러나 그 모험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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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삼성이 반도체에 뛰어들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당시 국내 기술 수준으로는 무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현대가 중동 사막에서 건설을 시작했을 때도
실패하면 나라 망신이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 선택이 수출 산업을 키웠고,
그 수출이 외환을 벌었고,
그 외환이 국민 소득을 끌어올렸다.
이것은 이념이 아니라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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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산업의 브레이크가 될 때
산업이 위험을 감수하고 전진할 때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법 위반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묻는 것이 맞다.
그러나 산업 자체를 범죄시하고,
투자를 의심하고,
기업가를 잠재적 범죄자로 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누가 목숨 걸고 도전하겠는가.
국가를 키우는 사람에게
격려는 못할망정
족쇄부터 채우려는 정치는
결국 자기 발목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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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모르는 정치
경제는 구호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민을 잘 살게 하겠다.”
“따뜻하게 하겠다.”
“공정하게 하겠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산업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본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투자의 위험과 보상을 경험하지 못한 채
경제를 설계할 수는 없다.
정치인은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에
자신이 시장을 이해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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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줄 것인가, 족쇄를 채울 것인가
국가 부를 일으키는 기업가에게
정당한 법 집행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적 인기나 이념적 시각으로
산업 전체를 압박하는 것은
결국 국민의 소득을 압박하는 일이다.
나라를 키운 산업은
우연이 아니라 결단의 결과다.
그 결단을 비웃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그 열매를 나눠 가진다.
경제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정치는 표를 의식하지만,
산업은 시간을 의식한다.
나라를 일으킨 기업과 산업에
브레이크를 걸 것인가,
아니면 날개를 달 것인가.
정치가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국민은 그 대가를 치른다.
국가가 강해지려면
산업을 키우는 사람을
범죄자로 보는 시각부터 버려야 한다.
말이 아니라 결과로
경제를 증명해야 한다.
전력 계통과 국가 신뢰
— 반도체·데이터센터 시대, 정책은 흔들려선 안 된다
반도체는 산업이 아니라 국가 전략 자산이다.
그리고 오늘날 그 곁에는 반드시 따라붙는 산업이 있다.
바로 데이터센터다.
AI와 클라우드 산업이 확대되면서 데이터센터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산업 역시 반도체와 동일한 전력 조건을 요구한다.
24시간 무정전
대용량 연속 부하
고품질 전압 유지
복수 계통 연결
이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입지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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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kV 계통은 단순한 전압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765kV 초고압 송전망을 전국적으로 구축했다.
이는 발전소를 묶는 전력 고속도로다.
원전, 화력, 복합발전, 수력이 동시에 연결
지역 간 전력 재배치 가능
수요 급증 시 전국 단위 조정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는 이 계통 위에 세워진 산업이다.
전력망은 산업의 혈관이다.
혈관이 튼튼해야 심장이 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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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까지 더해지는 수도권 전력 부담
문제는 수도권 전력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공장 증설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건설
전기차 보급 확대
산업 자동화
이 모든 것이 전력 수요를 밀어 올린다.
수도권은 이미 대한민국 전력 소비의 중심이다.
따라서 전력망을 더 강화하지 않으면
계통 안정성에 부담이 생길 수 있다.
>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를 유지하려면
765kV 계통의 지속적 확충과 송전망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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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한번 발표했으면 흔들려선 안 된다
전략 산업은 장기 투자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십 조 원이 들어간다.
데이터센터 역시 수조 원 단위다.
이런 산업은 다음을 전제로 한다.
전력 공급 계획의 확정성
인허가 일정의 안정성
국가 정책의 일관성
국가가 한 번 발표한 산업 계획을
정치적 상황에 따라 흔들면
기업은 불확실성을 가장 큰 리스크로 인식한다.
전략 산업의 핵심은 자금이 아니라 신뢰다.
말을 바꾸지 않는 것,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
계통 확충 계획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
이것이 국가 전략의 기본이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는
전력 계통 위에 서 있는 산업이다.
765kV 초고압 송전망은
대한민국 산업 전략의 근간이다.
수도권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계통을 강화하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산업은 구조 위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구조는 신뢰 위에서 완성된다.
국가는 한 번 정한 방향을
기준과 데이터로 설명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시장도 움직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