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 특히 대중의 감각을 자극하고 참여도를 높혀라. 기업이나 정치나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모든 사람과 조직들은 몇 가지의 욕구를 충족시킬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과거의 업적이나 선전이 아니라 현실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것이어야 한다. 대중성은 항상 과거 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늘 과거의 화려한 업적이나 전통보다는 자기 현존의 삶과 미래 지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욕망에 더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적과 전통은 그에 대한 단순한 판단의 자료에 불과하다. 그것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그래서 과거의 업적을 내세우는 기업이나 정치 집단 혹은 개인은 꼰대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정치나 선거에서 이를 달리 해석하면 과거의 업적에 몰입하는 정당이나 정치인 역시 꼰대가 될 수 있다. 현대의 대중, 특히 젊은 대중들은 매우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실용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미래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향은 불확실한 현실성, 불확실한 미래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감각과 현실적 요구를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즐기려 하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디자인 회사 ‘디스트릭트’가 2020년 9월 제주에서 처음 문을 연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관 ‘아르떼뮤지엄 제주’는 2022년 1월 팬데믹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100만 관람객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2022년 8월과 12월에 각각 개관한 아르떼뮤지엄 여수와 강릉도 지역 명소로 떠오르며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디스트릭트는 기획 전시의 모든 면에서 예술성뿐만 아니라 대중성을 강하게 부각 시켰다. 그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관람객들의 관점을 적극 반영했다고 한다.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에서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 참여 과정을 통해 관람객이 직접 작품의 연출자가 되기도 한다. 빛과 소리, 향기 등을 활용하며 관람객들의 오감을 자극해 작품 감상의 몰입도를 높였다고 평가 받는다.(동아일보 2022년 3월 16일) 이런 현상을 보면 오래된 전통 기업보다 신흥 기업도 그 전문성(이 기업은 예술성)에다가 대중성을 강하게 부각시킨 점이다. 이제 화려한 전통은 한갓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화려했던 기업이 대중성과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려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경우도 무수히 본다. 화려한 정치인도 한 번의 오만이나 실언 실수로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경우를 본다. 현대의 대중은 그런 것들을 참아주고 기다려 주는 미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의 현상에서 다음 같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어쨌든 전문성은 기본이다. ‘디스트릭트’의 ‘아르떼뮤지엄 제주’ 등은 예술성을 높인 것이 바로 그 전문성이다. 그런데 그 전문성 역시 대중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업이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의 분야와 상품에 전문성을 높이는 일이다. 정치인이 수많은 공약을 나열하는 것보다 대중의 감각에 맞는 전문성 있는 공약을 몰입시키는 일이다. 둘째, 대중성을 높이는 일이다. 대중성은 대중의 감각에 맞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이다. 그 근원은 그들의 불만에 기인한다. 대중의 요구(니즈)를 파악하여 그에 맞는 상품을 기획과 전시하는 일이다. 정치인은 대중의 요구(니즈)에 맞는 공약을 개발하고 그들의 구미에 맞게 홍보하는 일이다. 즉 그들은 무엇에 ‘배고파 하는가’를 판단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대중성은 어떤 성격을 지니는가? 우선 요구(니즈)의 측면에서 볼 때 대중은 무엇의 결핍을 경험하였는가를 아는 것이다. 결핍은 불만임과 동시에 강한 지향성의 욕구이다. 그 불만을 욕구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상품, 기업, 정치인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방법은 그것을 부각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로부터 ~되기’ ‘~처럼 ~하기’ 형태로 전환 시키는 일이다. 펜데믹으로 갇혀 있던 대중의 예술 감상의 욕구에 ‘안방에서처럼 쉽고 편하게 감상하기’ ‘예술관으로부터의 연출자가 되기’ 등이다. ‘빛과 향기로부터 내 인생 힐링하기’ 등의 전환이다. 정치인의 경우 ‘집 없는 설움으로부터 내 집 있는 사람 되기’ ‘학력 저하로부터 고학력자 되기’ ‘내 차같은 시내버스 만들기’ 등의 방식과 같다. 둘째, 매체의 단순화와 감각화이다. 현대의 모든 상품 선전이나 정치적 홍보는 인스타그램 ,SNS를 통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젊은 감각은 그것에 몰입한다. 그것은 대단한 설명보다는 단순하며 감각적이어야 하고 이미지 중심이어야 한다. 그것을 지나치게 전문성이나 목적성에 천착하기보다는 대중의 감각과 흥미에 접목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지난 대선에서 여당과 야당의 두 후보의 짧은 영상 중에 대중의 호응을 얻은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일이다. 이를테면 ‘요리하는 윤석열’이나 ‘반려견 토리’를 안고 있는 윤석열이 공약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러나 대중은 그것을 통해 동질감을 증가해 가게 된다. 셋째, 대중의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제 대중은 관람자에서 참여자로 바뀌고 있다. 보는 자에서 실행자로 바뀌고 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 아니라 백행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이다. 따라서 그들이 직접 참여하게 하고 즐기게 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은 볼 때보다 흥미있게 참여할 때 몰입도와 신뢰감을 더 높이다. 한때 정치인들이 선거 사무실에서 포스트잇을 놓고 방문객마다 한마디씩 써 붙이게 했다. 그것 역시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다. 정치인이 대중에게 ‘나라면 이런 공약’을 제시하게 하는 방법도 좋다. 정치인의 경우 유권자의 호응을 얻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웃는 얼굴만 갖고는 안된다. 도널드 트럼프는 화난 얼굴로 유권자의 마음을 얻었다. 어쨌든 대중이 참여하지 않으면 모든 일은 도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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