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평화에는 품위와 정체성이 깃들어 있다. 그때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손님은 지친 몸이지만 품위와 정체성을 간직하고 왔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시인 자신일 수도 있고 마을의 예언적 수호신 같은 은마(銀馬)일 수도 있고 조국일 수 있다. 왜 고달픈가? 시인은 만주벌판을 떠다녀 지쳐 있고, 수배로 피해 다녀야 하는 신세이니 지쳐 있을 수밖에 없다. 고장은 수탈로 피폐해졌고, 조국은 일제의 폭압으로 지쳐 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청포를 입고 찾아왔다. 청포는 전통적이며 청결하며 시인의 정체성이자 마을과 민족의 정체성이다. 손님은 순수한 우리 전통과 맥을 간직하고 온 것이다. ‘청포를 입고 찾아온 손님’은 《광야》에서 ‘백마 타고 온 초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름다운 귀향의 상상이다.
-<이상호 지음 『시를 읽으면 세상이 보인다.』 22-23쪽> - **은마(銀馬) -안정효의 소설 『은마는 오지 않는다』(고려원, 1990)에서 6.25 전쟁 때 인천상륙작전 직후 춘천 근처의 작은 마을인 금산에 유엔군 병사들이 들어와 언례를 성폭행하고 난 후 마을의 인심과 풍습이 사나워진다.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믿어 온 마을의 수호신인 은마를 기다렸으나 그 은마는 오지 않고 마을은 점차 해체되어 간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 은마가 반드시 오리라 고대한다. 이 소설은 1991년 영화(장길수 감독, 이혜숙 주연)로도 나와 흥행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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