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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란트는 인류의 역사가 식량을 구하고 부를 축적하려는 경제적 본능에서 출발했다고 보았습니다. 때로는 정복 전쟁을 통해 ‘군사력이 정치적 우세를 낳고, 그것이 다시 경제적 통제’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경제력에 의해 굴러갑니다.
그는 “부의 집중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모든 사회에서 소수의 수중에 자본이 몰리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능력, 운, 그리고 기회의 차이로 인해 자본은 항상 집중되려는 성질을 띱니다.
그러나 부가 지나치게 소수에게 집중되어 다수의 민중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역사는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지배층이 현명하게 부를 재분배하는 ‘평화적 개혁’을 단행하거나, 참다못한 민중이 폭발해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폭력적 혁명(예: 카틸리나의 반란, 프랑스 9월 학살 등)’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즉, 역사는 불평등의 심화와 이를 해소하려는 진자운동의 반복입니다.
2. 듀란트 주장에 대한 비판적 고찰: “50년 전의 렌즈로는 담을 수 없는 오늘의 문제들”
윌 듀란트의 통찰은 오늘날의 양극화 현상을 이해하는 데 훌륭한 뼈대를 제공하지만, 현대 사회의 특수한 면모들을 설명하기에는 몇 가지 치명적인 맹점이 있습니다.
듀란트는 “역사는 인플레이션적 경향을 띠므로 현명한 자는 돈을 쌓아두지 않는다”며 실물 자산과 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산 불평등은 단순한 물가 상승이나 전통적 ‘토지·공장 소유’의 문제를 넘어섰습니다. 현대의 부는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글로벌 유동성, 그리고 금융 자본의 속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돈을 쥐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넘어, 화폐 발행 시스템 자체와 자산(부동산·주식)의 레버리지 구조가 빈부격차를 구조화하고 있다는 점을 듀란트의 단순한 인플레이션 이론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듀란트는 농업이 자본주의적·국가적 대규모 체제로 재편되면서 “호미를 쥔 사람이 트랙터의 일꾼이 되었다”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트랙터나 콤바인의 등장을 넘어, 인간의 지능과 노동 그 자체를 알고리즘이 대체하는 AI 혁명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난한 자들이 뭉쳐서 혁명을 일으키거나 육체 노동력으로 저항할 수 있었지만, AI와 자동화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노동력의 가치 자체가 소외되거나 무력화될 위험이 큽니다. 불평등의 축이 단순한 ‘부의 편중’에서 ‘지능과 데이터의 독점’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듀란트가 보았던 시대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혹은 국가 권력과 민간 자본이 대립하는 구도가 선명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불평등은 국가의 통제를 아득히 뛰어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초국적 자본에 의해 발생합니다. 국가가 세금을 거두어 부를 재분배하려 해도, 자본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규제를 회피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개혁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듀란트의 낙관적 대안은 오늘날의 거대 플랫폼 독점 구조 앞에서 무력해지기 쉽습니다.
맺음말: 역사의 교훈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윌 듀란트가 《역사의 교훈》에서 경고했듯, 지나친 불평등은 언제나 사회의 내부로부터 체제를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폭발물입니다.
50년 전 그가 바라본 세상이 ‘부의 집중과 대중의 폭발’이라는 물리적·경제적 충돌의 시대였다면, 오늘날 우리는 AI, 플랫폼 자본주의, 그리고 데이터의 독점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초고도화된 불평등의 가파른 비탈길을 걷고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분명 운율을 가집니다. 오늘날의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과 기술적 격차를 현명하게 제어하지 못한다면, 역사가 기록해 온 그 파괴적인 진자운동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작동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