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석 한량
박정빈
광명서 여수 액스포행
자유석 승차권 한 장 들고
ktx에 몸을 싣고 달린다
좌석 입석도 아닌 자유석
8호 차 빈자리에 앉으면 되는
입석보다 더 나은 자유석
누구나 먼저 온 순서대로
남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곳에
한량 두량 가리지 않고
좌석에 승차하여 몸을 싣고
달리는 기쁨 입, 좌석보다 자유롭다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겨울 눈 쌓인 소나무 꽃
차도 가고 나도 가는
남도 여행길 기적 소리
기차는 오늘을 싣고 정한 시간에
목적지 향해 달리지만
우리네 인생은 언젠가
루비콘강을 건너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을
목적지 향해 달리지만
우리네 인생은 언젠가
루비콘강을 건너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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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박정빈
거북 등 닮은 소나무 숲속 한켠에
배롱나무 한 그루 살고 있다
숲속에 묻혀 왠지 외롭게 보이는
홍자색의 어여쁜 나무 한 그루
한 해 세 번 피고 지면
가을 벼가 익고 붉은 꽃이 백일 동안
핀다 하여 붙여진 이름 백일홍
앞산에 노각나무가 그리워졌는지
맨위 가지부터 옷을 벗는다
삶의 괴로움과 역경을 훌훌 털어버리고
홀라당 벗자 피부가 어린아이 같다
매끄러운 만큼 각질 또한 상처가 크다
태어나면서부터 동거했던
피부를 보호해준 겉옷
달과 태양에게 하소연하고
뻐꾹새는 소나무 위에서 노래한다
가지 새로 방긋이 미소 짓는 햇님
숲속엔 해와 달 바람과 구름이
살고 있어 배롱나무는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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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
박정빈
혹독한 겨울바람이 분다
방충망 칸칸에 들어찬 바람
스르르 밀려나는 방충망
여기까지가 끝인가 봐
힘없이 물러서는 겨울바람
거실만 바라보고 한 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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