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브레이어가 쓴 셸링에 관한 부분에서,
젊이에게 {젊라47700혁명24규소}
프랑스 혁명의 의의는 사회정치에서 자연권과 사회권의 등장으로 인민이 입말을 제대로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유럽의 주변국의 여러 나라에서는 인민이 입말을 할 수 없었다. 권력에 붙어던 지식인이 미학적 시와 글을 쓰고, 정치경제학적 시와 글들을 탄압 받았다. 대표적인 예가 괴테의 탄압을 받은 렌츠이고 정치경제적으로 헤겔을 비판한 맑스는 독일에서 추방되었고, 프랑스 반동시대에 프러시아의 압력으로 맑스는 프랑스에서 쫒겨 영국으로 가서 그 한많은 이야기를 긴 세월을 걸쳐서 자본론을 저술 할 것이다.
프랑스 지성인들이 말하는 것이 있다. 당신의 말과 문장이 누구의 혀(랑그, 입말)에 침을 찍어서 쓰느냐를 생각하라고 한다. 내가 우리나라 언론과 그에 포로가 된 이들의 인용이 거의 99% 앵글로 색슨의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해보라, 반동의 세력은 대혁명 바깥에서 있었던 것을 넘어서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서, 자본의 제국 시대에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참주정이 지배하는 시절에 이 뭣꼬의 “뭣”을 탐구했다. 레닌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온 유럽이 아름다운시대(벨 에포크)라고 식민지 수탈과 약탈을 추종하던 시절에 이런 제국주의 시대에 “뭣을 할 것인가?”라고 했다. 규소의 시대 20세기 말에 WWW의 발명자(버너스-리)는 인민의 도구로 누구에게나 쓰게 공공재로 내놓았다. 도구/무기를 무기/도구로 바꾼 빌게이츠, 잡스, 슈미트,.. 세사람은 같은 해에 태어나 19세기 반동들처럼 사적이익을 추구했다. 무기가되어 식민지 수탈과 달리 플랫폼과 인공지능 수탈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 21세기 이다. 수탈의 대상은 어린이가 아니라 젊은(18세-30세)이다. 이들의 피와 살을 먹으며 무한정 팽창 중이다. 열정페이라고 하는 작자들 속에서, 젊은이에 대해 그나마 88만원 세대를 썼던 이들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21세기 반동들에 대한 저항, 항거, 혁명은, '뭣을 해야 하는가?' 라고 레닌처럼 다시 물어야 할까? (57RLB)
* [버너스-리(Sir Timothy John Berners-Lee, Tim Berners-Lee 1955-) 영국시민 1989년 웹을 제안하다 1994년 W3C(World Wide Web Consortium)를 창립., 이를 세계가 무상으로 공유하고, 영국은 그에게 훈장을 수여하다.]
* [같은 55년 출생들, 1955 빌 게이츠(William Henry Gates III dit Bill Gates 1955-), 스티브 잡스(Steve Paul Jobs 1955-2011),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 Eric Emerson Schmidt 1955), 이들은 사적 소유로 길을 텃다. 인공지능과 쳇이니,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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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브레이어(1876—1952), “철학사(1926-1946?)” 19세기 철학, 셰링부분에서 .
<따라서 그 철학은 절대자로부터 또는 이법(la Raison)으로부터 결코 나오지 않는다. 그 이법/이성은 절대자에 대한 인식 기관(l'organe)이다. 셸링은 스피노자(Spinoza, 1632-1677)와 브루노(Bruno, 1548-1600)에게서,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플라톤주의자에게서 동시에 자신의 선구자를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브루노에서 그는 매우 야릇한 천문학들 중 일종의 형이상학적 천문학을 세우고, 그 천문학에서 그는 거대한 천체들의 각각, 행성들의 각각, 태양 등을 가지고 자치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종류의 [개별]절대자들을 만든다. 이 절대자들은 각자 그자체적으로 운동의 법칙을 갖는다고 한다. 그 어느 곳에서도, 사람들은 그 자연철학이 뉴턴(1642-1727)의 과학과는 어떤 관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이[책의] 몇몇 쪽에서보다 더 잘 볼 수는 없다. 뉴턴 과학은 단지 존재들의 상호 관계 만에 의해서 그 존재들을 규정할 뿐이다. 동일성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해소할 수 없었던 결국 오래된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시도이다. 또한 그 오래된 문제란, 과학은 그것을 이미 포기해버렸고 그리고 자연철학이 그것을 다시 문제 삼는다. 그것은 존재들의 특별한 규정의 문제이다. 이 철학은 개념의 분류작업의 오랜[낡은] 방식 대신에 직관의 방법으로 대체했다. 이 직관 방법은, 괴테(Goethe, 1749-1832)가 식물의 모든 기관들 속에서 잎사귀의 변형형성들을 따른다고 하듯이, 다른 것 속에 동일한 것의 변형형성들(les transformations)을 따른다.*1 셸링의 동일성 체계는 그 당시 매우 널리 퍼진 탐구 경향의 완전한 일반적 표현이며, 과도한 추상의 표현일 뿐이고, 이 탐구 경향은 라이프니츠의 말에 따르면, 현상들을 연결하는 시공간적 관계들이라기보다 “형태[형상]들의 연속성”(la continuité des formes)의 탐구이다.(6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셸링은 직관 속에 자의적인 어떤 것도 남기지 않았고, 권능들에 대한 자기의 개념 덕분에 직관에게 진실한 방법을 부여했다고 자부했다. 권능들의 각 삼원성은 주체-객체(le sujet-objet) 속에서 세 가지를 - 실재적 또는 객관적 국면(l'aspect), 이상적 또는 주관적 국면, 이것들의 동일성, - 계속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이리하여 온자연(la Nture)은, 그것의 실재적이고 객관적인 국면에서는 무게(pesenteur)와 응집(cohésion)이며, 그것의 이상적인 국면 하에서는 빛이다. 그리고 마치 동일성처럼 [온]자연은 빛이 침투한 무게 즉 유기체이다. 자연의 측면(son côté)을 옆에 젖혀두고, 정신은 그것의 실재적 국면에서는 지식(Savoir)이고, 그것의 이상적이고 주관적인 국면에서 행동이고, 두 개의 동일성에서는 예술이다. (633)
<이 권능들의 각각은 그 자체적으로 절대자의 직접적 표현이다. 이 각각에는 권능의 동일한 삼원성이 반복되어야 한다. 거기에 예술의 철학(Philosophie der Kunst(1803 강의, 1859 출판)의 출발점이 있다. 이 강의는 셸링이 예나의 낭만주의 환경에서 얻었던 미학적 교육의 모든 결과물들과 더불어, 동일성의 체계의 마지막 형식을 포함하고 있다. 음악적인 문화의 전반적 부재, 16세기의 이탈리아 회화의 독점적 사랑, 그리스 사원에 자리를 차지한 건축물의 이상, 호머(Ὅμηρος, 기원전 9세기)시대의 숭배와 단테(Dante, 1265-1321)시대의 숭배, - 이 숭배는 세르반테스(Cervantes, 1547-1616) 또는 괴테(Goethe, 1749-1832)의 소설과 비슷한 인접 관계를 겪는 숭배이며 - [스페인 극작가] 깔데론(Pedro Calderón, 1600-1681) 또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의 드라마 등, 이러한 모든 것은 예술적인 취향을 보여주는데, 이 취향의 옹색함(l’etroitesse)이 놀랍다.*2 그럼에도 이것들은 모두 그의 재료들이다. 그가 피히테에서 자기의 자연철학의 도식을 발견했던 것처럼, 슐레겔 형제의 미학적 이론들 속에서 자기 철학에 추상적 정식들에게 내용을 부여할 실체를 찾으러 갈 것이다. 예술은 유한 속에서 무한의 표현이다. 영원한 이념은 상상 속에서 살아있게 된다. 따라서, 만일 신화가 임의적 창조가 아니라 상상 속에서 일종의 체계적 상징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 그 상징 속에서 신들과 상상의 관계는 이념들과 사유의 관계와 같다 -, 신화는 예술의 기초이다. 사실상 크리스트교는 신화에 적대적이다. 무한을 유한한 형식 속에 굳어버리게 하는 경향에 반대하는 필연적인 반작용으로서 크리스트교는 무한[자] 앞에서 유한[자]를 겸손하게 만든다. 유한자가 더 이상 무한자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왜냐하면 유한자는 [여기] 있기[현존] 때문이지(마치 미네르바가 직접적으로 지혜를 표현하는 것처럼), 오히려 유한자가 의미하기 때문이 아니다(크리스트의 십자가는 그자체로서는 불명예이지만 [의미상] 영광이다). 크리스트교와 프로테스탄트는 형식들로부터 자유이며 파괴이다. 셸링은 슈레겔처럼, 새로운 예술의 영감이 될 새로운 신화에 준하는 신화의 탄생을 믿었다. 그것이 자연철학이다. 이 자연 철학은, 그 철학이 사물 속에 도입한 불가사의한 모든 소통을 통해서, 크리스트교와 더불어 상실했던 깊이와 상상적 흥취(la saveur)를 세계에게 다시 부여한다.(630)>>
*
역자 주1
[셀링은 분류작업에서 린네보다 뷔봉을 따른 것 같다. 뷔봉과 쥐시외의 분류작업을 거쳐서 변형생성론(la transformation)은 뷔봉에에서 라마르크로 이어지는 생물 생성론이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브레이어 표현으로보면, 셸링은 프랑스 생물진화론의 탐구들 잘 못랐던 것 같다.즉 그 당시 1800년 초부터 1830년까지 프랑스에서 변형론의 논쟁을 길었는데, 그것에 대해 셸링은 관심을 지속하지 못한 것 같다. ]
역자 주2
[이런 미학적 취향의 옹졸함, 프랑스는 봉건제를 타파하는 대혁명을 하는데, 정치적 왕정 또는 종교적 절대(독단)를 비판하지 못하고(칸트는 죽을 때까지 10년간 자연신앙에 대한 글을 발표하지 않았다, 피히테는 자연신앙에 대한 글을 썼다가 무신론으로 몰려 예나대학을 떠나야 했고 방향을 바꾸어 자아(주체)와 비아(자연)의 투쟁을 말한다.), 포로가 되어 옹호하는 미학적 취향은 옹졸함이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먹물(지식인, 예술가)들이 혁명의 뒤편에서 미학적 시를 쓰는 것은 탐만치에서 치졸함에 해당할 것이고, 프랑스는 대혁명이후에 사회정치적 행동으로 나가 나갔다면, 후기 칸트쥬주의자는 프러시아의 영광을 노래(베토벤)하고 시를 썼을 것이다. (57RLB)]
첫댓글 철기시대에서 잉여 수탈과 식민 착취에서
유토피아인 것처럼 소상품 대량 생산이라고 했다. 생산 장비를 자본가들 소유하니까,
규소의 시대 소통의 방식이 다를때, 유토피아주의자는 디스토피아를 말했다.
.. 다품종 소량생산이라고, 이들을 유통하는 과정은, 철기시대 생산과정과 달랐다.
.. 그것을 알려준 것은 생산과정이 아니라,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의 전지구화였다.
소품종(소생산업자)와 소비자의 연결이 플랫폼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 플랫폼은 삶의 소통의 감성적일까
.. 플랫폼은 소유자와 관계없이, 공동체(공산주의)의 연결방식의 확장일까?
.. 산업사회 250의 과정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다.
.. 규소의 시대, 상부상조의 혁명적 방식은 플랫폼의 장악일까?
.. 여섯살 꼬마애의 손가락에 밀고 당기기일까?
두째 천년세대(MZ) 세대가
.. 잉여의 착취를 당하고 살까?
.. 혁명은 인민의 자각과 학습, 내공에서 계속이어간다.
1789년 농도(노예)가 폐지되면서 인민이 성립했다.
인간은 자유롭지 못했다
1848년이래로 프롤레타리아가 자유와 평등을 내걸었다.
유럽의 왕조들의 반동들은 심했다.
식민지 전쟁은 소비에트 연방을 만들었다.
잉여 착취는 거침없었다. 2차 대전이 일어났다.
전쟁은 중화인민공화국을 만들었다.
세계사는 왕권과 교권 그리고 지식권의 카르텔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두 나라를 만들었다.
냉전시대에는 작은 여러 국가들을 만들었다.
이 국가들이 자본의 잉여착취를 반대했다.
둘째 새천년은 규소의 시대와 DNA 시대를 알리고 있다.
증기기관 원동기(모토)가 250여년동안 패거리의 잉여착취를 만들었다.
WWW 의 시대에도 잉여착취와 식민지 수탈이 가능하리고 믿는가?